소설리스트

89화 (89/148)

00089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희게 질린 강 채요의 얼굴 위로 공포심이 스친다. 주홍색 머리를 금색 전자로 틀어올린채 황족만이 입을 수 있는 황색의 화려한 옷을 입고 황후에 준하는 복식으로 흰색 봉황이 수놓아진 옷을 입고 있다. 입술 가운데에 황금색 연지를 덧바르고 눈가도 붉었으니 언틋보면 정궁과 다르지 않은 차림을 한 신귀비가 조용히 신발을 벗고 들어와 두 사람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옷이 바닥 위에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다.

 이 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돌아보지 않았으며 그에 강 채요가 잠시 동요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돌리고 불상에 다시 기도했다. 검지와 약지, 소지에 낀 호갑투가 마주한다. 손을 모으고 영선이 조용히 예불을 드렸다.

 향이 타는 냄새가 어지럽다. 영선은 그 사이에서 아주 기이한 냄새를 맡았다. 아주 미약하고 은은하나 분명히 무언가 이질적인 향기를 맡았다.

 영선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인다. 눈을 뜬 영선의 옆에서 이 경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이 경의 말에 영선이 불상이 짓고 있는 따스한 미소를 바라보면서 말을 한다.

"내명부 일로 바빴습니다."

"알아. 안다."

 이 경이 황급하게 말을 했다.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선이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면서 이 경을 본다. 숱이 많은 주황색 속눈썹 사이로 빛이 차르르 감도는 황갈색 두 눈이 보인다. 보석같은 두 눈을 잠시 바라보던 이 경이 중얼거렸다.

"보고 싶었다."

 이 경이 말을 다시 되뇌었다.

"보고 싶었... 정말로 그랬지."

 넋을 잃고 중얼거리는 말에 영선이 잠시 웃는다. 이 경은 입을 다물었고 영선 또한 말이 없었다. 강 채요는 눈이 보이지 않아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영선이 그 때 강 채요의 궁인에게 눈짓했다.

 영선이 염주를 내려놓은 뒤에 나직히 말했다.

"잠시 자리를 비켜주겠나?"

 강 채요는 멈칫하다가 궁인들의 부축을 받고 불당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영선이 잠시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다가 고개를 돌려 이 경을 본다. 이 경의 굳은 얼굴을 바라본 영선이 입술을 달싹이려다가 이내 웃었다. 이 경이 참지 못하고 영선에게 달려들어 그를 눕히고 그 붉은 입술 사이로 혀를 넣어 갈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애타게 입 새의 샘물을 찾았다.

 이 경이 흔들리는 눈으로 영선을 바라볼 때에 영선이 그를 쓰다듬으면서 조용히 속삭인다.

"나의 경은 잘 지냈습니까?"

 그제서야 이 경이 눈물을 참으면서 영선의 소매를 잡아 당기고 그의 옷을 허겁지겁 벗긴다. 이 경과 영선이 둘 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어 몸을 엉켰다.

 곧 정갈한 불당 안이 뜨거운 열기와 난잡한 공기로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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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경은 잠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젊었을 때에는 눈물을 흘린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나이가 먹고 나서 오히려 눈물을 몹시 흘리면서 서글퍼했다. 이 경이 도리질을 치면서 얼굴을 소매로 가렸다.

"으흑...큭..큿...!"

 처음에 보았을 때 촌스러웠던 십대의 청년이 저랑 시선을 맞추더니, 아니 이제 지엄한 자리에서 만인이 어려워하는 저에게 다가와 살살 깐죽거리고 그렇게 말을 가리지 않고 톡 쏳았다. 그것을 뭐라하지 못할 만큼 소중해진 그 아이는 어느새 허리를 꾹 껴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고 마른입술은 한참동안 대고 있었다.

"아, 아...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 경이 손가락으로 불당의 나무 바닥을 긁었다. 눈물을 삼키면서 이 경이 흐릿한 기억 속에서 어느 과거를 생각했다.

"흐..."

 지극히 착하고 지극히 영리하다. 아름다운 청년이 말을 타고 웃을 때 이 경은 그 마음을 뺏긴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경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운다. 영선이 다정하게 눈고리를 쓰다듬자 이 경이 그를 거부하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싫다. 귀비."

 귀비라. 영선의 얼굴이 굳어진 것을 느낀 이 경이 흐느끼면서 시선을 피한다. 강한 쾌락이 그를 잠식했으나 어쩐지 가슴이 무척 격동스러워서 이 경을 그를 보고 싶지가 않았다. 시선을 피하는 이 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싫다. 이 경이 울다가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경, 경."

 그 말에 침묵하던 영선이 조용히 말했다.

"경아."

 그 부드러운 목소리 하나만 있었다. 이 경이 감격하여 몸을 떨고 영선이 그제서야 얼굴을 소매로 가리고 몸을 떨고 있는 이 경을 다정하게 끌어 안았다. 이 경이 눈을 꾹 감았다.

 장난기 많은 그 여우상의 청년이 감히 부르는 그 이름도 기분이 그리 나쁜것만은 아니었다. 춥다며 앵겨붙을 때도 그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얻었고 성애 이상으로 그를 그렸다.

"흣...!"

"아.. 나의 경..!"

 머리가 새하얗다. 상념이 멈췄다. 이 순간에 이 경은 바닥을 뜯고 몸을 떨고 있었다. 새하얘진 손끝. 상상도 못했던 쾌락 속에서 그를 어쩔줄 모르게 만들었던 그 달뜬 신음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허벅지를 타고 뜨겁고 말캉한 정(精)이 묻어 내렸다. 지극한 쾌락 속에서 이 경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약간의 침이 입가로 흘러내려갔다. 겉에 사정하여 엉덩이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 정의 끈적거림은 존재감이 확실했다.

 영선은 그의 허리를 껴안고 그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이 경의 귓가에 달뜬 숨소리가 들렸다. 거친 호흡에 멍했던 이 경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응..?"

 이 경은 천천히 몸을 돌려 얼굴을 마주 보게 겹쳤다. 이 경이 잠시 몸을 떨다가 영선의 부드러운 얼굴을 쓰다듬고 훌쩍인다.

 밀착된 자세에서 이 경은 땀에 매끈거리는 가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가 아름다운 얼굴을 쓰다듬었다. 문득 보게 된 맨몸에서 가슴에 자리한 흉터를 발견한 이 경의 눈살이 잠시 구겨졌다. 한참을 머무는 이 경의 손을 잡아챈 영선이 그 손을 갑자기 깨물었다.

 세게 문건 아니지만 약하게 문 것도 아니였다. 눈살을 찌부린 이 경이 영선을 바라보았다.

"좀만 더 있자."

 그렇게 말하면서 영선의 품에 쏙 들어왔다. 이 경이 그 품 안에서 깨문 흔적이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 잠시 바라보다가 영선의 허리에 손을 넣어 그를 꽉 껴안았다. 이 경은 잠시 몽롱하게 멍해서 이성을 참을 수가 없었다가 이윽고 픽 웃고야 말았다.

 이 경이 잠시 편안하여 졸음이 찾아와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영선이 이 경의 등을 다독이자 이 경이 잠을 깨려고 노력하면서 웅얼거렸다.

"오해하지 말거라."

 이 경은 청년을 조심스럽게 밀어 올렸고 그에 순순히 그에게서 떨어진 청년이 그를 바라본다.

"그 아이는 같이 예불만 같이 했을 뿐이다."

 이 경은 몸을 일으켰다. 영선이 약간 놀라 이 경을 바라보았을 때 이 경이 아슬하게 걸쳐진 영선의 바지춤을 잡아 풀었다. 영선이 놀라서 이 경을 바라보았을 때 이 경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하물 끄트머리를 입에 담더니 그를 응시하곤 눈을 깜빡였다. 영선은 굳은 표정을 하더니 얼굴을 쓸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

 이 경이 순진한 눈으로 보는 것에 영선이 이 경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사랑스럽게 행동해서 나를 영원히 잡아 놓을 생각이지요?"

 이 경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깔고 순순히 혀를 움직였다. 영선의 허벅지를 꽉 틀어쥐고 귀두를 입에 물고 입술로 잘근 거린 뒤에 혀로 부들한 것을 핥았다. 흥분해서 서서히 솟아 오르는 성기의 대를 입술로 한번 흝은 뒤에 혀로 할짝 거렸다. 성기를 혀로 싹 한번 쓸어 그 끝을 두어번 핥은 뒤 입 안에 문 뒤 잠시 그 안에서 두었다. 귀두를 입에 담은 그는 입을 더 벌리고 머리를 숙였다.

 구토감이 쌓였다. 끝이 목젖을 치고 목구멍 안으로 들어왔다. 영선이 이 경의 머리를 쥐었다. 세게 쥐고 있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세게 쥐었다가 풀었다가 쓰다듬었다 했다. 이 경은 꾹 참고 목 안까지 성기를 넣었다. 주홍색 수풀이 코 끝에 닿을 때까지.

"경, 경아."

 잠시 탄성이 있었다. 이 경은 숨이 막혀 코로 기침을 했다. 침이 입가에 번들거리면서 흘렀다. 이 경은 머리를 뒤로 뺐다가 다시 하물을 목 안까지 넣었다. 몇번 위아래로 담은 뒤에 탄탄한 허벅지에 올려 놓은 오른손을 떼서 성기를 쥐고 흔들었다. 허벅지 근육이 도드라졌다. 달뜬 숨소리가 들렸다.

 이 경도 숨을 몰아 쉬면서 성기를 손에 쥐고 다시 입에 넣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가쁜 숨. 영선은 이 경의 머리카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 경이 성기를 입에 빼고 머리를 쥔 힘에 고개를 살짝 들어 그를 올려다 보았다.

 입가가 번들거렸다. 벌려진 입에 침과 액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이 경의 상기된 얼굴과 몽롱한 눈을 본 영선은 바로 이 경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술 사이로 공격적으로 들어온 혀를 이 경의 혀가 휘감았다. 입을 거세게 부딪히고 정신없이 혀를 서로 탐했다.

 이 경의 어깨를 꽉 잡은 영선이 이 경의 입 안 구석구석을, 핥고 또 탐색하고, 혀를 세게 얽히게 한 다음에야 입을 뗐다. 숨을 몰아쉰 둘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숨을 헉헉 거린 영선이 입술을 닦았다. 이 경이 그대로 다시 성기를 입에 물었다.

 이 경이 그 성기를 물고 정신없이 그걸 탐하고 미친듯이 먹어치우고 애무한 뒤에, 그의 혀뿌리, 목구멍 안에 영선이 파정했다.

"하아..흣..!"

 목 안에 가득찬 끈적하고 짙은 정은 아무 맛도 없었고 물컹하고 살짝 달았다. 조금은 청량했다. 구토감을 삼킨 이 경이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입가에 살짝 정이 묻어나왔다.

 이 경은 잠시 정을 입 안에 물고 있다가 꿀꺽 삼켰다. 입가에 흐르는 정을 닦으려고 영선이 손을 뻗었다. 입가에 묻은 흰 액을 손가락으로 훔쳤는데 이 경은 그 손가락을 핥았다. 멈칫한 영선의 검지를 이 경이 놓치기 싫다는 듯이 게걸스럽게 핥았다. 눈을 살짝 내리깔고 싹싹 핥아먹은 이 경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영선아."

 이 경이 멍한 눈을 한채로 넋을 잃어 말을 한다.

"보고 싶었다."

 잠시 묘한 기류가 흘렀다. 나른하게 풀린 영선이 허리를 푹 숙여 이 경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이 경을 꽉 끌어 안더니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도.."

 귓가에 간헐적으로 들리는 숨소리가 너무 좋아 이 경은 몸을 떨고 말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있다가 이 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 공주, 공주 앞에서.."

 그제서야 정신을 차려 공주의 위패가 있는 것을 깨달은 이 경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떤다. 정신을 차리니 그는 위패와 불상 앞에서 정사를 나눈 셈이 되어 이 경이 그 충격에 넋을 잃다가 이윽고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옷을 입으려고 했다.

"나, 나는 이러려던게.."

 그 때 영선이 이 경의 허리를 쥐어채서 그를 끌어 안았다. 이 경이 무방비하게 품 안으로 들어가더니 귓가에 스치는 숨결에 동그란 눈으로 멍하게 있었다.

"아이 가질까요?"

 이 경이 그에 넋을 잃고 멍하게 있었다. 영선이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작게 속삭였다. 이 경의 배를 쓰다듬고 눈을 감으면서 그의 어깨 위에 턱을 올린다.

"희는 너무 어려서 모를 겁니다."

"난, 나는.."

 이 경이 잠시 고민하다가 영선의 옷자락을 잡더니 고민하다가 시선을 피하면서 말을 한다.

"백일이 지나면..."

 이 경이 영선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더니 침묵 끝에 말했다.

"나는 공주를 보내주려고 한다."

 영선은 그에 고양이 같이 씨익 웃음을 지으면서 이 경을 바라보았다. 이 경이 마음 흔들려서 그를 보다가 이내 엉엉 울면서 영선의 옷자락을 잡고 입술을 찾았다.

"보고 싶었다. 정말, 정말.."

 영선은 그런 이 경을 다독였고 이 경은 한참을 영선의 품에 안겨있다가 안녕사를 빠져나왔다. 그에 나온 불당 옆에는 강 채요가 묵묵히 서있었고 강 채요의 궁인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안절부절하여 있었다.

 영선이 그를 잠시 보았고 이 경이 크게 놀라서 그를 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설레 젓곤 영선의 머리에 꽂힌 봉황비녀를 뺀 뒤에 품에 넣었다.

"다시 보면 돌려줄 것이다."

 이 경이 중얼거리면서 사라진다. 강 채요가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영선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말을 했다.

"무례를 저질렀습니까?"

 영선이 그를 잠시 보다가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글쎄다."

 소매를 털며 사라지는 영선의 뒤로 강 채요가 한참을 흙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사흘 후에,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이 경은 우수수 떨어지는 비에 하늘이 뚫어졌는지 의심하면서 그 소리에 놀라서 잠에 깬 상태였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이 경은 짜증을 내면서 류 태감에게 말했다.

"류 사자! 창문을 빨리 닫아라."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다시 잠을 청한 이 경은 다음날 아침에 안녕사가 지난 밤 홍수에 밀려온 흙에 덮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했다.

"그럼 위패는?!"

 다급하게 말하는 이 경은 이어지는 말에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말았다. 류 태감이 공손이 몸을 조아리면서 말했다.

"지난 밤에 소음에 깨어나신 강 미인 마마께서 바로 위패를 걱정해서 산에 올랐다고 합니다. 산사태를 걱정하신 궁인들이 말렸으나 토사물 사이에서 공주의 위패를 품에 안고 내려와 보호하였으며 비를 맞으신 까닭에 미인 마마께서는 사경을 헤매고 계신다고 합니다."

 아찔함에 멍하게 있던 이 경이 이윽고 눈을 꾹 감더니 격정에 떨었다. 이를 악물면서 이 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공주의 위패 앞에서... 사악한 짓거리를 했는데... 어젯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을 짜증냈건만 오직 강 채요만이 민도공주를 걱정했구나."

 탄식하던 이 경이 죄책감에 어두운 얼굴을 하더니 지독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강 미인이 어진 마음으로 공주를 생각했구나."

 이 경이 눈을 감고 말했다.

"그녀를 정 3품 량사부인(良思夫人)으로 봉하겠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이 경이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워 번민 하다가 결국 홍리당으로 찾아가 그녀를 보았다. 만화궁에서 홍리당으로 넘어가 생활하는 강 채요는 파리한 얼굴에 땀을 흘리면서 몸을 떨고 있었다. 무쇠로 된 심장을 가진 자라도 그 얼굴을 보면 측은해하고 동정할 것이다. 깡마른 강 채요가 기침을 하다가 오소소 몸을 떨면서 이불을 꽉 잡고 몸을 떤다. 이 경의 코에 은은한 향이 스쳤다.

 이 경이 침묵하다가 은색 쟁반 위에 올려진 수건을 들어 강 채요의 이마를 닦는다. 소스라치게 놀란 강 채요의 팔을 잡으면서 이 경이 조용히 말을 했다.

"나다."

 그제서야 안심한 강 채요가 힘없이 손을 놓는다. 이 경이 묵묵히 희게 질린 얼굴 위에 땀을 닦더니 은대야 안의 물로 수건을 적신다. 이 경이 잠시 강 채요의 병색이 완연한 얼굴을 보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사겼다.

"고맙다."

 강 채요는 그 말에 힘없이 웃곤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경은 그날에 강 채요를 간호하여 시간을 보내고야 말았으며 그 다음 날에도 졸도한 강 채요를 돌보고야 말았다. 이 경의 품 안에서 봉황비녀가 잘그락 거렸다.

 그리고 다음 날의 다음 날에도 이 경은 오한이 들어 사경을 헤매는 강 채요의 곁에 있었다. 관저궁에서 영선이 팔짱을 끼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영선이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이내 창을 닫고 침대에 가서 누웠다.

 민도공주가 죽은지 백일이 되던 날이었다.

============================ 작품 후기 ============================

슬슬 이 경이의 멘탈이 복구될 때가 되었져... 계속 풀이 죽어 있으면 이 경이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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