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148)

00092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정천사에 가십니까?"

 이 경은 채요의 망설이는 얼굴을 보고 불심이 깊은 그녀가 정천사를 가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경은 굳은 얼굴을 하여 바로 말했다.

"*빈어(嬪御)가 밖을 출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이 경은 그리 말하고 채요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것을 깨달은 채요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이 경이 그것을 보고 마음을 풀어 죽을 개어 호호 식혀 떠주었다. 채요가 앙증맞은 붉은 입술을 벌리고 이 경이 그것을 떠서 채요에게 먹여주었다. 채요는 방긋 웃으면서 그 죽을 받아 먹었고 이 경은 혈색 좋은 채요의 살결과 볼을 보면서 속으로 감탄했다.

 살이 붙은 채요는 정말 흐드러지는 꽃처럼 밝고 사랑스러웠고 그 피부에선 은은한 향기가 나고 머리는 먹물처럼 검었다. 이 경이 잠시 그를 보다가 흰이마가 텅 비었다는 생각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주사는 없느냐?"

"예?"

"붓과 주사."

 이 경의 말에 당황하던 궁인이 옥기에 붉은 염료를 가지고 온다. 이 경이 갠 염료를 붓에 묻히고 그것을 살짝 털더니 채요의 흰 이마에 매화를 그린 뒤에 붓을 내려 놓았다. 강 채요가 조용히 이마를 만지려는 것을 이 경이 손목을 잡은 뒤에 말했다.

"마를 때까지 기다려라!"

"아."

 손목은 너무 가녀려서 부러질 것만 같았다. 이 경이 크게 당황하여 채요를 바라본다. 채요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발견한 이 경이 얼굴을 굳힌 뒤에 뻣뻣한 목소리로 말했다.

"짐은 이제 태양전으로 돌아가야겠다."

"몸이,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채요가 손을 휘저으며 이 경의 얼굴을 만지려고 노력하자 이 경이 그 손을 잡고 잠시 망설이다가 그 손에 깍지를 끼고 다정하게 말을 한다.

"다행이구나."

 강 채요가 입술을 달싹인다.

"감사합니다."

 이 경은 대꾸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떴다. 채요가 다 나았으니 이제 병간호를 하지 않아도 되리라. 충분히 이 경은 의리를 지켰고 민도공주에 대한 도리를 다했다. 그리하여 채요를 찾지 않아도 되련만 어째서인가 이 경은 가지 않으면 채요가 그리웠고 마음이 크게 급하고 불안했다.

'내가 왜 이러는가?'

 붓을 떨구면서 이 경이 놀라서 멍하게 창 밖을 바라보았다.

'대체 내가 왜 이러지?'

 이제 가을이라 꽃이 질 무렵인데 채요의 얼굴이 꽃보다 아름다웠고 그녀가 신경이 쓰였다. 넋을 잃고 채요가 위치한 곳을 빤히 바라보던 이 경이 고개를 휘저으면서 중얼거렸다.

'아니다. 아니야.'

 그저 가을이 오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다.

 망설이다가 이 경이 홍리당에 들어선다. 수수한 옷을 입고 화장을 하지 않은 채요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밥을 깨작이고 있다. 이 경이 그를 신경쓰다가 작게 말했다.

"밥은 왜 먹지 않느냐."

 채요 대신에 그의 궁인이 잽싸게 말을 했다.

"사람이 없으시니 외로워하시며 폐하를 그리워합니다."

"초 나연!"

 채요가 꾸중하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폐하 앞에서 말을 가려하거라!"

 그러나 이 경은 그녀의 좋지 않은 안색을 보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 경이 잘 간호하여 살이 올랐었는데 볼이 움푹하고 눈이 쾡하니 이 경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반찬을 슥 흝어보던 이 경이 버럭 소리질렀다.

"상이 이게 뭐냐!"

 엄연히 채요가 서비(庶妃)가 아닌 3 품으로 정비(正妃)인데 심하게 빈(貧)한 밥상에 이 경이 크게 화가 나서 소리질렀다.

"앞으로 내무부에서 이딴 밥상을 내오면 책임자를 처벌할 것이다."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채요가 이 경에게 손을 뻗으나 허우적거려 닫지를 못한다. 이 경이 다급하게 채요를 붙잡고 넘어지려는 채요를 끌어 안았다. 이 경이 채요의 귀여운 귀끝에 스치는 은은한 백합의 향을 맡고 눈을 풀었다.

"채요야."

 이 경이 채요를 부축하고 자리에 앉히면서 말했다.

"상을 다시 내오라고 말하고 나랑 같이 먹자."

 채요가 부끄러운듯 웃으면서 작게 끄덕인다.

 부랴부랴 내온 밥상에 조기가 있어 이 경은 궁인을 물리고 직접 젓가락 끝으로 조기를 발라주었다. 이 경은 문득 밥을 먹을 때마다 자신의 시중을 들었던 영선의 생각이 났으나 채요가 눈이 멀어 이 경은 오랜만에 채요에게 직접 발라낸 조기 살을 먹여주고 음식을 먹여 주었다. 채요가 크게 감동하면서도 입을 열고 잘 받아먹자 이 경이 재미가 붙어서 씩 웃으면서 말했다.

"채요야. 많이 먹어라."

 그리고 채요는 그 때 충동적으로 이 경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 경이 놀라서 채요를 바라볼 때 채요는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이 아이가 원래 이렇게 말을 가리는 성격이 아닌데 이토록 꺼려한다. 이 경이 채요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자상하게 말했다.

"짐이 여기 있는 것이 좋으냐?"

 채요는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홀로 먹으면 두렵고 마음이 빈하여 밥이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채요가 겁을 먹어서 말한다.

"죄송합니다."

 이 경이 그에 채요를 응시하다가 작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움츠러든 채요의 손을 토닥이면서 이 경이 자상하게 말한다.

"그렇게 사과할 일이 무에 있겠느냐? 네가 지아비를 의지하는 건데 나는 결코 못마땅해하지 않다."

 채요에게 이 경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나면 가끔씩 들리겠다."

 그러나 이 경은 저녁 식사 때마다 홍리당에 매번 거동을 하여 그녀의 식사를 도왔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이 경과 채요가 잠시 담소를 나눈다. 향이 강한 차를 마시면서 이 경은 편안함을 느꼈고 소화를 할 겸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관저궁으로 향하여 영선에게 조잘거리면서 말을 걸었다.

 이 경은 관저궁의 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낭랑한 음성을 들었다.

"*아아, 피는 꽃으로 화려하게, 지저귀는 새로 능란하게, 부는 바람으로 산뜻하게, 달돋이로 황홀하게.."

 이 경이 문을 열자 크고 시원한 목소리가 뚝 그치고 이 경을 바라본다. 이 경은 창문에 걸터 앉은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화려한 옷차림을 하지 않고 잠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있었다. 밖을 바라보던 고양이 같은 두 눈이 깜빡이며 이 경을 바라본다. 이 경이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본다. 시원하게 올라간 입꼬리에 이 경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아."

 이 경이 그에게 다가가 창틀에 올라간 영선을 조심스럽게 안아 내렸다. 생각보다 묵직한 몸이 느껴졌다. 이 경이 씩 웃었다.

"너야 말로 살쪘다."

 그리고 이 경은 황급하게 덧붙였다.

"넌 더 살쪄야 해."

 영선이 웃으면서 허공에 대롱 매달려 익살맞게 웃었다.

"폐하는 좀 빼야해요."

"뭐?"

 이 경이 어이없어서 웃다가 이내 씩 웃으면서 영선을 침상 위에 던진다. 영선이 침상 위에 폴싹 앉아서 이 경을 순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경이 그에게 다가가 영선의 허리를 끌어안고 귀 위에 입을 맞췄다. 영선이 그의 품에서 나는 기묘한 향을 맡고 눈썹을 꿈틀거린다.

"노래를 더 불러봐라."

"싫은데요."

"더 불러보거라!"

 이 경은 자신의 허리띠를 쫙 푸른 영선의 손길에 놀라서 그를 보다가 이윽고 작게 웃었다.

 영선이 이 경의 입술을 맞추면서 눈을 떴다. 눈을 감고 황홀한 표정을 짓는 이 경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다. 영선이 이 경의 몸을 더듬으면서 아주 과거의 일을 생각한다. 눈이 심유하게 가라앉아 옛날을 상기시킨다.

'왜 울지도 않고 그 아래에서 가만히 배곯아 있느냐.'

 이 경의 살갖을 만지고 그의 옷깃 사이로 손을 너으면서 과거를 상기한다. 이젠 중년이 되어버린 사내가 어린 낯을 하여 그를 내려보았다. 죽립을 쓰고 칼을 든 사내의 그림자가 자신을 가린다. 영선은 이 경의 입술을 탐하고 숨을 불어 넣었다.

 어린 영선은 깡마르고 텅 빈 눈을 하여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무얼 하겠습니까?'

 헛웃으면서 말한다.

'나는 세간에 나를 태에 품은 모정은 하늘보다 높고 아비는 나를 어루니 이 세상이 무너져도 두 사람만큼은 내가 공경할 것이고 그 두 사람만큼을 나를 사랑할 것이라 했습니다. 바로 말했습니다. 나는 지는 꽃처럼 비참하고 내 목소리는 우짖는 새처럼 무기력하고 희망은 더운 바람처럼 헛되며 이 세상은 해가 없어 구름에 가려진 달빛만이 가득합니다. 나는 왜 태어났습니까?'

 일찍 죽는 것이 낙입니다. 눈을 감고 몸을 늘어트린다. 칠일을 굶어 몸이 깡마르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득해진다. 이 경을 품에 안고 영선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석 형일이 무어라고 말했던가? 영선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렇다면 희망을 다시 한 번 가져보겠습니다.'

 그 때가 열살이 되던 때였다. 이 경이 헐떡이면서 침대 위에 있었다. 영선이 옷을 정리하고 있을 때 문득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면서 무언가를 상념한다. 말발굽소리가 난다. 남준이 오는 소리였다. 꺄르르 웃는 소리가 났다.

 심운화가 비파를 켜고 있었고 영선이 박수를 치며 동량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있었다.  눈 중에 매화(雪中梅)가 필 때 영선은 정자에 기대어 앉아서 옆에 심운화가 춤을 추는 것을 감상하고 있었다. 영선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순백의 눈과, 불멸한 달빛과, 꼿꼿하게 피어난 꽃과 함께 살다 죽으니 영원하려나.

 상념에서 깨고 영선은 이 경이 추워하는 것을 알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이 경이 뒤에서 음, 소리를 내고 있더니 기분이 좋아서 씩 웃는다. 영선이 조용히 말했다.

"무언가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이 경이 당황하여 얼어붙자 영선이 몸을 돌리고 이 경을 바라보았다. 이 경이 그 심유하게 빛나는 두 눈에 압도되어 멍하게 그를 바라본다. 다각의 다채로운 눈은 생기가  넘쳤고 화려했으며 보석과도 같았다. 이 경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했다.

"채요가 정천사를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영선은 말을 끊었다.

"마음이 제 곁에 있으면 나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영선이 이 경을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잘되었습니다. 채요를 정천사에 데리고 같이 예불을 드립시다."

 이 경이 멍하게 있다가 더듬거리면서 말을 한다.

"그래도, 그래도.."

 영선이 그를 떠보는 것이 아닐까 눈치를 보던 이 경은 그를 곧은 시선으로 응시하는 것에 그 진심을 느끼고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영선아. 다행이구나. 나는 네가 오해할까봐..."

 뒤이은 말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영선은 말없이 이 경을 보았다. 믿음이 있다면 의심하지 않는다. 영선은 신나게 떠들고 영선의 옷자락을 잡고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잠을 자는 이 경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침대에서 정좌하여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로 앉아 있다. 촛불이 일렁거리고 영선의 얼굴은 웃음기가 없었다.

 아침에 음월전으로 갔다. 크게 애통해하는 희 치의 몸은 말라있었고 그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차 있었다. 절망한 희 치의 모습은 위현의 일 이후로 본적이 없었다. 위현의 유골함을 안고 단발이 되어 흐느껴 울 때를 제외하곤 본적이 없었다. 희 치를 달랬으나 영선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내가 너희를 두고 어디갈까."

 한숨을 쉬는 영선은 이 경의 볼을 손등으로 다정스레 쓰다듬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영선의 얼굴이 어두워져 갔다. 가장 슬픈것은 서서히 궁에서 제 마음이 멀어져간다는 것이었다. 슬픈 얼굴로 이 경을 바라보던 영선이 이내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순진무구하게 잠을 자는 이 경을 깨워서 당장에라도 화를 내고 싶었다. 희 치와의 약속이 깨지고 오직 마음이 있는 곳에 머물기 위하여 궁에 남았다. 그러나 마음이 바람을 타고 저 궁 담벽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해야하나.

 영선은 불상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부디 우리의 마지막이 이렇게 찾아오질 않기를. 더 이상 마음이 멀어지지 않았으면, 실망하지 않았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석 형일이 팔짱을 끼면서 시를 필사하는 영선을 바라본다.

"당신이 각오를 했을 때 이만한 일을 예상하지 않았으리가 없잖습니까. 폐하께서는 대단히 당신께 잘해주고 계십니다. 더 이상 바라는 것입니까?"

"......"

"첩으로 들어가서 대체 무얼 바라는 것입니까. 당신 답지 않습니다. 그 당신이 약속을 깨어 그 단 한번도 깨지지 않은 신뢰를 무너트려 오명을 자초한.."

 영선이 그를 보지 않고 대답했다.

"노총각은 대답말라."

 울컥한 석 형일이 목소리를 높인다.

"뭐라고요? 노총각이라니 전 그냥 여자에게 묶이고 싶지 않아.."

"그런 변명들을 사람들이 많이 하지."

 태연하게 말한 영선이 백지 위에 쓰여진 장상사를 보며 방래산에서의 기억을 생각하고 잠시 웃었다.

"사람의 마음이 어찌 뜻대로 될까."

 영선이 종이를 내려놓고 잠시 밖을 바라본다.

"북걸이나 나조차도 함부로 거역하지 못하는 것이 정(情)인데 그것을 어찌 소사(小事)라고 할까."

 영선은 아득한 눈을 하여 입술을 달싹였다.

"한 쌍의 기러기가 짝이 죽으면 남은 짝은 슬피 울다가 바위에 머리를 찧어 죽으니 미물마저 마음을 담아 정인을 생각하는구나. 대체 *정이란 무엇인데 생사를 가름하게 하는가."

 석 형일은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고 영선은 웃으면서 먹물이 마른 종이를 접어 서랍에 넣었다.

"그것은 사람이 사랑없이는 살 수 없어서이지. 알겠어?"

 석 형일이 울컥하여 말했다.

"왜 나한테 묻습니까?"

"글쎄다."

"전 정말 인기 많았습니다. 아시잖습니까. 당신이 가르치시던 기녀들이 모두 나를 따라서.."

"헬레레하게 좀만 칭찬해주면 돈을 화수분처럼 뿜어낸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석 형일이 무어라 하는 것을 대충 넘기면서 영선은 모르는 체 그를 약올리면서 기분을 풀었다. 씩씩거리는 석 형일을 은근히 희롱하면서 영선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 경은 여전히 영선만을 찾았으며 채요는 영선과 이 경을 조용히 따라다녔다. 영선과 이 경은 어가를 함께하고 채요는 작은 마차로 그 뒤를 따랐으며 정천사에는 채요는 얌전히 예불을 드렸다. 그러나 영선은 기민하게 채요에게서 나는 향을 눈치채어 그 채요를 가끔씩 날카롭게 노려보곤 했었다. 눈이 보이지 않은 채요는 그것을 몰라 그저 조용하게 예불을 드릴 뿐이었다.

 영선도 굳이 먼저 그녀에게 도발하지 않고 이 경과 같이 달에 한두번 그와 함께 바깥 바람을 쐬었으며 연못을 같이 구경했으니 채요와 이 경과 영선이 같이 함께하는 일이 잦았다. 그것이 삼개월이 이어져서 거의 가을의 끝무렵이 찾아왔다. 영선은 아슬한 마음을 다잡으며 자는 이 경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아이를 가지고 싶었으나 그 전에는 마음이 크게 불안하고 흔들려 영선은 혹시라도 발이 묶일까 이 경에게 에둘러 거절했었다. 이 경은 그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어쩐지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영선은 그저 가을을 타서 예민했던 것이라 생각하며 이 경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아이라.'

 영선은 그 생각만 하면 어쩐지 가슴이 뛰고 기뻐왔다. 상상치도 못했던 일인데 기쁘고 사랑스러운 말이었다. 영선은 멍하게 이 경을 바라보다가 수차례 고민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영선은 이 경에게 입을 맞추면서 애정을 참지 못해 그를 끌어 안고 입맞춤을 퍼부었다.

 잠에 깬 이 경이 웃으면서 말했다.

"왜 그래?"

 영선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러면 안됩니까?"

 이 경이 의뭉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지..."

 이 경이 이윽고 환하게 웃었다. 영선이 그런 이 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웃었다. 눈매가 휘어지고 영선이 사랑하는 눈으로 그를 담았다. 이 경은 그것에 크게 만족하고 어쩐지 기분이 좋아서 영선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넌 항상 그렇게 웃거라."

 이 경은 아침부터 영선을 끌고 침상에 다시 눕혔고 영선은 순순히 이 경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잠시 관저궁의 열기가 뜨거워졌고 애가 타는 목소리가 문 밖을 흘렀다. 문 밖에 시립한 석 형일의 표정이 뚱했다.

============================ 작품 후기 ============================

주석 1. 후궁

주석 2. 화조풍월은 풍류를 뜻함. 영선이 자유를 그리워 밖을 그리워함.

주석 3. 안구사에서 따온 시.

 지금 보았는데 flowerjk님 쿠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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