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화 (93/148)

00093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이 경과 같이 동침했으나 아이 소식이 없었다. 영선은 그것이 대충 그가 극양인이 아니기고 희락기 때 동침하지 않아서라고 예상했으니 이 경이나 영선 둘 중에 한명이라도 희락기가 온다면 높은 확률로 아이가 생길 것이 분명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탐일을 장기 복용한 탓인가 원래 작년쯤에 와야 할 양인의 희락기가 영선에게는 오지 않고 있었다. 탐일이 복용하면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피임을 할 수 있으나 장기복용을 한 탓에 불안감을 느낀 영선은 태의를 불러 진찰하게 했다.

 영선의 손목을 짚고 잠시 생각하던 태의가 고개를 숙이고 말을 했다.

"아직까지는 양성(陽性)이 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간이 찌부려지고 손에 낀 호갑투가 잘그락 소리내는 것을 눈치챈 태의가 다급하게 말을 덧붙혔다.

"그러나 거의 탐일로 억누른 양기가 풀렸으니 얼마지나지 않아 웅솟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아부로 영선은 그가 믿음직스럽지 않아 짜증을 내며 손을 휘둘러 그를 내쳤다. 아차한 태의의 표정이 좋지 않을 때 계자가 쌍심지를 키면서 태의에게 노성을 질렀다.

"대체 무엇을 하는 거요?!"

"송, 송구합니다."

 그제서야 벌떡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는 태의를 노려보던 영선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다.

'불안한 탓인가.'

 요근래 어쩐지 모르게 영선은 조급함이 들었다. 이 경에 대한 마음이 한 때 차갑게 식은 때가 있었고 그를 의심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 경이 오로지 영선만 보면서 다정다감하게 대하는 것에 다시 마음이 봄과 같이 풀려서 영선은 이 경에 대하여 온화한 마음을 품고 다시 초년의 연애감정을 되살린 상태였다.

 영선은 그 가운데에서 아주 미묘한, 아주 미묘한 공허함을 느꼈다. 그 공허에서 나오는 약간의 불안함.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아주 미세한 빈틈.

 그 허기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해야할까. 이 경은 채요와 동침하지 않으나 그녀를 깊게 신뢰하고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영선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 안에 옥어를 굴린다. 그렇다면 영선은 아무런 도발없이 공손히 영선을 대하는 채요를 가만히 놔두어야할까?

 채요의 그림자만 보아도 역기가 치솟는다. 모든 불안감과 공허의 근원이 그녀에게 있었다. 영선이 웃는다. 서방을 나누는 것이 이렇게 증오스러운 일이다. 그렇다. 영선은 투기를 하고 있었다. 이 경과 채요가 나란히 서있으면서 웃으며 담소를 나눌 때 아무리 이 경이 해명을 해도 영선은 분노가 치솟아 그 기혈이 어지럽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차라리 이 경이 후궁전에서 여러명과 동침을 하였어도 이토록 신경이 쓰이지는 않을 것이다. 영선은 이 경의 지조에 대해서는 관심히 없었다. 오직 마음 하나만을 바라며 그 마음은 한조각이라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싫었다. 영선이 오직 아주 한톨의 자리만을 허용하는 유일한 상대가 치아였고 그것도 아주 많이 양보한 결과였다.

 강 채요는 불길하고 요사스럽다. 교활한 그녀는 요즘들어서 후궁과 궁인들, 이 경의 크나큰 호감을 얻었고 무척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샀다. 아주 미묘한 냄새. 아주 예민한 영선이기에 알아챌 수 있는 거의 무취의 그것은 끝이 약간 비리고 달면서 백합의 냄새가 섞였다. 그러나 아주, 아주 소량이기에 알 수 없는 향기.

 영선은 그 향을 찾기 위해서 아정을 부렸다. 강 채요의 궁인을 매수하고 사람들을 부려 강 채요의 향을 빼돌리기 위해서 노력했으니 희 치가 없는 지금 아정이 영선에게 복종하여 예전에 내명부에 심어두었던 무리들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 강 채요의 뒤를 충분히 캘 수 있을 것인데 강 채요의 측근도 향을 발견하지 않으니 영선은 그에 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체 그것이 어디에...'

 확실한 것은 궁에선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 영선이 뒤져보지 않은 곳이 단 세 곳이었다. 태양전, 음월전, 그리고 실상 태자의 대우를 받고 있는 한왕 이 영오가 위치한 건청궁(健淸宮).

 영선이 크게 동요해서 손등을 만지작 거린다.

'영오는 나를 원망하는가!"

 위비의 일이 찝찝하여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영선은 이성을 되찾고 고개를 절레 저었다. 아니다. 위비는 채요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영오와 채요는 접점이 없었다. 음월전은 영선이 단언컨대 자신의 궁보다 더 확신하여 믿는 곳이었으니 태양전에는 감히 찾아갈 수가 없고 그것 또한 사리에 맞지 않아 영선은 의문을 느꼈다.

'대체 어디에 향을?'

 그것은 이 경을 암암리에 꼬시고 있었다. 사람의 호감을 사고 한치라도 그녀를 보지 않으면 마음이 허전하고 기분이 나쁘게 하고 있었다. 심지어 석 형일조차 눈치를 못했던 아주 가느다란 치명적인 향. 영선은 도저히 두 눈을 뜨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옷을.. 옷을 뒤져보았으면.."

 채요의 몸만은 가장 측근인 초 나연이란 궁인밖에 손을 대지 못하니 중얼거리던 영선이 희미한 눈으로 그 과거를 상기시킨다.

 영선은 싸늘하게 웃고 있었고 그 앞에서 채요가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영선은 차를 한모금 마시고 탁, 소리를 내여 찻잔을 내려놓았다. 채요는 눈을 느릿하게,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깜빡였고 아름답게 혹은 초연하게 웃어 세속과 벗어난 선녀와 같이 굴었다. 영선은 화려한 나비비녀를 손에 굴리다가 웃었다.

"아름답지 않나."

 채요에게 그것을 건낸다. 채요가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그것이 아정이 가져간 자신의 나비비녀임을 깨닫고 웃었다.

"잃어버린 제 물건을 되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영선이 문득 창 밖을 바라보면서 눈을 깜빡인다. 영선은 채요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고 하얀 구름을 바라보면서 나직히 말했다.

"그대의 눈이 보이지 않겠지만 창 밖에 구름은 하얀 실이 뭉친 듯하지. 나는 방래산에서 *하루에도 아홉번 영혼이 치솟는 것을 느꼈고 저 구름이 그리움이 걸려있는 것이라 생각했지. *내 사랑은 꽃처럼 구름 위에 걸려 있고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나의 간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견뎠지."

 영선은 마른 나무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채요의 얼굴은 점차 무덤해지고 어느덧 무표정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는 살기나 표독스러움보다는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영선은 채요에 대한 원한을 잊었고 채요는 어딘가 떠나갈 것 같은 영선의 뜬금없는 말을 비웃지 않았다.

"저 구름은 어디로 흘러갈까."

 영선은 웃으면서 고개를 돌려 채요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몇번이라도 바뀌는지, 산은 여함없다고 하지만 흘러가는 강은 절벽을 깎지. 채요. 너는 아니? 내가 이 경을 어떻게 그리는지?"

 누이에게 하는 듯한 다정한 말에 채요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위는 푸르고 아득한 하늘인가요?

"마음 아래에는 넘실거리는 파란 물결이 있을까?"

 채요는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영선의 말에 한동안 말을 열지 않았다. 쓸쓸한 얼굴로 탁상을 매만지던 채요는 화려하지도 가련하지도 않았다. 채요는 한참 후에 말을 했다.

"사가에서 뵈었으면 좋아했을겁니다."

"나에게 마음을 주지 않은 여인이 없었어."

 영선은 가볍게 웃고 잠시 채요를 보았다. 측은함인가, 경계인가, 안타까움인가, 아니면 탐색인가. 영선은 채요를 한참 보다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마음이 이러하다."

 영선은 웃으면서 말했다.

"사랑하는 정인을 지키고 마음을 붙들어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 채요. 나가라."

 강 채요는 조용히 절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영선은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고 채요도 그를 뒤돌아보지 않았다. 영선은 잠시 쓸쓸한 눈으로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채요는 관저궁의 대문 앞에서 잠시 멈추어선 뒤에 가뿐하게 웃었다.

"내가 내 죄의 대가로 지금 당장 죽더라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겠어."

 영선은 창 밖으로 시선을 주면서 잠시 눈에 측은한 빛을 띄었다. 영선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가련하구나.'

 그의 눈에 육궁의 모든 이들이 독이 풀어진 어장에서 살려고 몸부림치려 하는 작은 것들이었다. 육궁들이 암투를 써서 영선이 손을 쓸 때는 아무리 그들이 독해도 영선은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영선이 신경을 쓰는 것은 이 경의 무른 마음이었다. 연민이 들었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채요는 괴물이 되었고 죄없는 한낮 어린 아이를 살해하려했다. 그것은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지옥에서도 억겁의 만화에 타오르지 않을까. 영선은 한숨을 쉬며 손을 거두고 창문을 닫았다.

 또다시 정천사에 가는 날이었다. 영선은 장미석을 꿰어 만든 목걸이를 걸치고 옥호갑투를 쓴채 주홍색 머리카락위에서 홍마노를 올려 간단하게 장식한 은관을 착용하고 있었다. 평소에 금색과 적색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던 것을 장미가 그려진 장신구를 귓바퀴에 차고 청옥침을 귀에 여러개를 꽂고 있어 그는 유난히도 비가 오는 날씨와 어우러지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기품이 있었으나 은은했고 이 경은 그를 보면서 항상 옷을 잘 입는다는 생각에 그에게 무심코 곁에 있던 화병에서 수국을 꺼내 그에게 드밀었다.

 *영선이 그것을 잠시 보다가 그것을 들어 머리에 꽂았다.

"예쁜가요?"

 새침하게 웃으면서 하는 말에 이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예쁘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것에 영선이 묘하게 웃었다. 이 경이 손을 내밀어 영선은 그 손을 잡았다. 어가에서 이 경이 옆구리에 영선을 낀채로 그를 소중히 품에 안고 있었다. 영선은 가라앉은 눈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를 땅에 대고 오체투지한 백인(白人)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영선은 민초(民草)를 지극히 아련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워.'

 영선이 문득 중얼거린다. 이 경이 영선을 껴안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영선이 그에 복잡한 시선을 던졌다.

 불당에서 이 경이 가장 앞에서 앉아 향을 올리고 그와 나란하게 앉을 수 없는 영선이 반발자국 뒤에 앉아 공손히 손을 모으고 진심을 담아 기도했다. 영선은 눈을 감고 진심으로 부처에게 빌었다. 마음에 불안한 모든 것을 빌고 영선은 눈을 떼고 가라앉은 두 눈으로 불상의 미소를 바라본다. 영선의 두발자국 뒤에 강 채요가 무릎을 꿇어 앉아 있었다.

 영선과 이 경이 오랜시간 무릎을 꿇어 앉아 있다가 영선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꽃을 보고 올게요."

 이 경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뒷마당으로 나온 영선이 연못가에 서서 파란 연꽃을 가만히 바라본다. 진흙 속에서 피어 청정한 저 꽃은 잎이 크고 대가 높아서 더러운 것이 닿지가 않았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닮아 잎은 그 끝은 하얗고 대로 갈수록 그 청명함이 빛을 발했다. 영선은 가만히 그것을 보다가 조용히 읇조렸다.

"세상에 가장 기이한 연꽃인데 너는 보지 못하지."

 강 채요가 등 뒤에서 걸어나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파란 연꽃은 정말 아름답습니까?"

 채요가 중얼거렸다.

"예불을 올리느라 열중해서 볼 시간도 없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연꽃을 감상하던 영선을 책망하는 말이라 영선은 픽 웃어 넘기고야 말았다. 채요는 궁인의 손을 잡더니 연못가로 다가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영선은 자신의 가까이로 오는 채요의 손목을 잡아챘다. 갑자기 쥐어진 손목에 놀란 채요가 비명을 지른다.

"꺅?!"

 영선이 그에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꽃을 만져보거라."

 그리고 영선은 채요를 연못에 밀었다. 채요가 크게 놀라 허우적거렸고 채요의 손에 파란 *연꽃이 망가지며 진흙에 젖었다. 영선이 그것을 잠시 바라본다. 초 나연이 비명을 지르면서 주인을 구출하는 것을 바라본다. 나연이 분기에 솟아 소리쳤다.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영선이 그 때 조용히 말했다.

"너가 소주를 돌보지 않아 그녀가 미끄러졌을 뿐인데 왜 나를 탓하느냐?"

"예??"

 영선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폐하께 내가 그랬다고 고해라."

 그에 나연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영선을 한참동안 응시한다. 영선이 북풍보단 서린 눈으로 그 시선을 바로 마주한다. 몸을 덜덜 떨면서 비명을 지르던 채요가 나연의 옷자락을 잡고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미끌어, 졌구나."

 나연이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채요가 그녀의 뺨을 치고 소리쳤다.

"왜 나를 보필하지 못했느냐!"

 나연이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면서 비굴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마마!"

 영선이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네가 이 추운 날에 연못에 빠졌으니 오한이라도 들면 크게 앓을 것이 분명한데 오늘은 환궁할 수가 없구나."

 강 채요가 몸을 떨었고 영선이 강 채요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황제는 밤에 다니지 않는다."

 강 채요는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연은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엉망진창이 된 채요를 부축하여 빈 방을 찾으러 갔다.

 그 둘을 그 뒤에서 잠자코 바라보던 영선의 눈이 한순간 매섭게 빛났다.

============================ 작품 후기 ============================

주석 1. 백 거이 장상사 최심간 中 하루에도 아홉번 영혼이 치솟는구나.

주석 2. 이백 장상사 최심간 中 그대는 꽃처럼 구름에 걸려있다네.

주석 3. 이백 장상사 최심간 中 위는 푸르고 아득한 하늘, 아래는 넘실거리는 파란 물결.

주석 4. 수국은 토양에 따라 색이 달라져 변심을 상징한다.

주석 5. 연꽃은 연인간의 사랑을 뜻함.

1. 썰 & 설정 풀기위한 도원향가 전용 트위터를 만들었습니다. 파사이원 @pasaieonyokbul 수위가 있으므로 비공개 계정으로 만들었어요!

2. 채요는 영선이랑 희 치만 없었다면 황후-> 태후까지는 무난하게 될 수 있었을텐데ㅠㅠ 하늘이시여 주유를 낳고 제갈량을 낳으시나이까.

3. 발닦개수 & 후회수 저도 빨리 쓰고 싶네용. 다음 세편 정도가 절정일것 같습니다.

4. BGM은 your collar

하르트만의 요괴소녀

ELEX KANG- 흐르는 벚꽃 위에서

The nation of greatness and courtesy

후궁견환전 보살만

 이 노래정도가 아닐까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