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화 (94/148)

00094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건녕후의 작위를 뺏겼다.

 새로운 세제를 도입했으니 모범을 보여야할 소 재도가 한낱 토지 따위에 집착하여 이 경을 곤란해하고 있으니 그것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이 경이 작위를 뺏어 경고한 것이다. 소 재도는 더군다나 같은 강북귀족인 견 진을 지지했었던 이기에 이 경은 현재 소 재도 같이 능력은 있지만 탐욕스런 인사를 등용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고 인재를 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소 재도가 원래 견 진에게 백탁향을 바쳤으나 그가 망해버렸으니, 기겁한 소 재도는 외전(外殿)인 태양전에서 일하는 그의 사람을 부려 채요에게 그 향을 빼돌렸다. 강북귀족 중에서 영 가도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 없으니 강 채요 밖에 답이 없었던 것이다.

 강 채요는 교활했기에 그것이 총애를 퍼다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절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기를 계속했다. 이윽고 이 경이 발견하여 채요에게 감격했을 때 채요는 그에게 다가가지 않고 의심을 풀었다.

'천천히, 천천히..'

 이 경이 영선을 사랑하는 것은 우물보다 깊어서 웬만한 모략으로는 영선을 꺾기가 힘들고 쳐내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하여 채요는 신뢰를 다지길 원하여 신뢰를 쌓았으니 연정보다는 그것을 원했다.

 천자의 믿음.

 하늘을 땅으로 바꾸고 땅을 하늘로 바꾸는 힘.

 그리고 강 채요가 생각보다 이 경의 마음 안에 쉽게 들자 소 재도는 완벽하게 그녀의 편이 될 생각을 하여 자신을 구명코자 하였다.

"이보시오."

 채요의 궁인, 초 나연이 몰래 손을 뻗어 어느 지체높은 부인이 치마 속에서 건네주는 종이를 받았다. 부인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나연이 눈을 깜빡였다. 원래 불교를 믿지 않는 귀족들도 황제가 절에 다니니 원래 하류계급이 믿는다고 하여 천시되었던 불교를 믿으려는 이들이 속속들이 생겨났다. 특히 정천사는 황족들이 자주 방문하여 귀족들이 모일 때가 잦았다.

 소 재도가 백탁향을 소분하여 채요에게 건내줄 때가 바로 이 때였다. 채요가 증거를 숨기기 위하여 그것을 원했고 내명부에 자기 사람이 없는 것을 경계하여 오직 나연만이 그것을 접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오늘 또한 나연이 백탁향을 받았으나 채요는 물에 빠져 절에 남게 되었다. 잠시 생각하던 채요가 웃었다.

 채요는 물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나연이 아닌 일반 궁인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빨아 오거라."

"예, 마마."

 영선이 굳은 표정으로 탁자를 호갑투 끝으로 타닥 친다. 이 경이 같이 동침하자며 소매를 잡고 은근히 애교를 부리는 것도 애써 무시하고 왔는데 결과가 썩 좋지 못했다. 영선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결국 옷에는 없다고?"

 채요를 연못에 빠트리고 젖게 하여 옷을 벗겼건만 그 옷을 조사한 석 형일은 고개를 도리질하면서 말했다.

"전혀 없습니다."

"하. 진짜 이거 대단한 여자야."

 이 경이 실망하면서 바라보던 것이 아직도 머릿 속에 어른거린다. 영선이 짜증을 삼키면서 창문 밖에 어둑한 하늘을 바라본다. 언제 비가 올지도 모르는 꿉꿉한 날씨가 더 그의 기분을 안좋게 만든다. 영선이 잠시 고민하다가 석 형일에게 말했다.

"그래도 채요를 한번 잘 감시해줘."

"예."

 석 형일이 고개를 숙인다. 영선은 턱을 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경이 한동안 채요와 저녁을 함께했다.'

 처음에는 간호를 한다며 채요의 땀을 닦았고 그 다음에는 채요가 자신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고 심지어 지금까지 식사를 같이 했다. 이 경이 채요와 잠자리를 안한다고 하지만 차라리 그것만 못한 것이다. 이 경은 지금 채요를 아끼는 것이니까. 영선이 쓴웃음을 흘린다. 그건 차라리 성애를 원하는 것보다 진한 악몽이었다.

 그리고 채요의 향은 그냥 두고 볼 수준이 아니었다.

'향이 없고 인지조차 힘들며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향이라..'

 영선이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어쩐 잡놈 모리배들이 육궁에 손을 댄 거냐.'

 이건 강 채요 따위가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영선이 모르고 아무도 연원을 찾지 못하는 향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리가 없다. 이 경은 자신과 같이 있을 때도 언뜻 멍하고 홍리당 쪽을 은근히 바라본다. 영선이 모르는 척 하지만 이 경은 상당히 초조해하면서 채요의 곁에 있을 때 안정감을 찾았다. 그러나 그 향이 티가 나지 않아 영선은 차마 이 경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홀려있는 이 경은 거의 중독된 것처럼 채요의 존재를 찾았다.

 그건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았다지만 분명 마약과도 같은 부류다.

'심지어 개중에서도 강하지.'

 영선이 아득한 심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대체 누가 이 경에게 마약을 쓴단 말인가?

 영선이 주먹을 말아쥐면서 눈에 살기를 띄웠다. 이 경이 천진난만하게 그를 대하려니 영선은 속이 끓고 숨이 멎었다. 영선은 그 때 순간적으로 씁쓸한 생각이 떠올라 눈을 감고야 말았다.

'희 치라면 다를텐데.'

 양인 중에서도 드물게 색향을 가진 희 치다. 그 향이 은은하고 강한데다가 극양인 특유의 성질 때문에 이 경은 희 치에 대한 꺼리낌을 서서히 풀자 마자 음월전을 자주 찾았다. 만약 희 치가 있더라면 채요의 향 쯤이야 가볍게 흐트러트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정향이 섞인 고아한 다향은 아직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입 안이 쓰다. 그리고 희 치는 지금 음월전에서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영선은 눈을 심유하게 가라앉혔다.

"마마!"

 영선이 안타까워할 순간에 석 형일이 문을 열고 빠르게 다가와 무릎을 꿇는다.

"채요가 불당으로 갔습니다."

 그 순간 영선이 몸을 꿰뚫는 벼락 같은 충격에 눈을 크게 뜬다. 지금 머릿 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되어 흐르고 있었다. 영선이 탄식을 하여 말했다.

"불당!"

 정기적으로 세사람이 거동할 때가 많았으니 정천사야말로 성도에 자리잡은 유일한 절이면서도 황제가 자리하는 곳이라 사람이 바글거렸으니, 영선도 불교도라 차마 절을 생각하지 못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아이는 정말 간이 크구나!"

 영선이 석 형일을 따라서 불당으로 향한다. 채요가 불당 밖으로 나가고 무언가 불안하게 주위를 살펴보고 나연이 채요의 머리 위에 천을 덮는 것을 본다. 누가 보아도 태연하지 못한 행태였고 꿍꿍이가 있는 속이었다. 영선은 그것을 잠시 보다가 석 형일에게 손짓했다.

"안을 살펴봐."

 굳이 들어가서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생각이 깊은 영선이 그 자리에서 잠자코 서있는 채로 망을 본다. 닫힌 불당의 문을 유심히 바라보던 영선이 문득 하늘이 검고 구름이 몽아하여 달빛이 없는 것에 시야 확보가 잘 되지 않아서 눈가를 찌부렸다.

 불당 안으로 들어가 샅샅이 살펴본 석 형일이 문을 열고 나와 영선에게 곤란한 표정을 하여 말했다.

"제가 찾기로는 없습니다."

 영선이 미간을 찌부리며 말했다.

"잘 살펴 봤어? 하나라도 놓친 곳이 있으면 안돼."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석 형일이 꼼꼼한 사람인 것을 아는 영선인지라 곤란한 표정을 하는 그를 잠시 바라볼 뿐이다. 영선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손을 까딱였다.

 끼익.

 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불당 가운데 부처의 일그러진 형상이 없었다. 아침에는 자비로웠던 부처의 미소가 달빛도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에서 마치 흉신악살과도 같은 험한 인상으로 보인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서늘함을 느낄만도 한 그 넓은 불당에서 영선이 서있다가 이윽고 왼쪽 벽면 쪽부터 시작하여 꼼꼼히 불당을 살핀다.

 한바퀴 불당을 돌면서 벽면을 더듬고 발로 바닥을 살피면서 혹여나 틈이 없는지 살폈다. 석 형일도 꼼꼼하지만 훨씬 눈썰미가 좋고 예민한 영선이 심지어 머리카락 한올마저 살피면서 무언가 틈이 있는지 보았으나 이윽고 제자리에 올 설쯤에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돌린다.

"천장은 살폈니?"

 석 형일은 그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고 영선도 여인 둘이 천장을 오른다는 말이 개소리임을 알고 천장을 한번 볼 뿐 이내 시선을 거두고 정면을 바라본다.

 마치 비사문천처럼 사나운 얼굴을 한 부처가 자신을 보고 있다. 이 빛마저 들지 않는 어두운 밤에서 부처의 안광이 시퍼렇게 빛나는 듯 하다. 그 오금이 저리는 광경에도 묵묵히 손을 잡고 앞을 응시하던 영선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상은 살펴보지 않았었나?"

 그리고 석 형일과 영선이 불상에 다가간다. 다시 꼼꼼하게 불상의 머리와, 손과, 발을 만지작거리면서 살피던 석 형일의 미간이 찌부려진다. 영선이 부처의 맨발을 만지작거려다가 이윽고 부처가 앉은 연꽃 아래에 위치한 밤나무로 만든 나무조각에 향한다.

 영선이 퍼뜩 불안감에 휩싸여 멍하게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는다. 머릿 속이 새하얘져서 생각을 하지 못하던 영선이 순간에 경악에 휩싸여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설마!'

 그러나 강 채요의 그 화려한 눈웃음을 떠올린 영선은 이윽고 분노에 휩싸여 민도공주의 위패를 들었다. 그리고 무기력하게 나뉘어지는 주신과 받침대에 이를 악문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사람이 얼마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독해지는지는 잘 안다. 지금껏 질리도록 보아왔고 그 인간의 혐오스러운 성질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영선은 채요의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듯 웃고 있는 낯을 떠올리고 구역감에 치를 떨었다. 영선은 그리고 주신 안에 채워진 고운 입자들을 보고 탄식했으나 이내 곧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표정을 굳히고야 말았다.

'왜 향기가 나지 않지?'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백탁향의 비린 냄새와 미세한 백합의 향기를 느꼈던 영선이다. 예민한 코 끝에서는 그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순간 영선이 별안간 섬광같이 스쳐지나간 음모의 그림자를 눈치채고 아차하여 위패를 내려놓으려고 할 때였다. 영선은 불당에 자리한 인기척에 몸을 뻣뻣하게 굳힌다. 그제서야 석 형일도 기척을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익숙한 목소리에 손에서 주신을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영선아."

 탕!!

 곧 부서진 위패에서 쏟아져 나오는 고운 입자들. 그리고 영선은 고개를 돌려 멍한 눈으로 그것을 응시한다. 불당의 문 앞에 사내 하나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빛이 없는 밤 사이에 세 사람의 인형이 스치고 있다. 그 커다란 덩치의 사내는 기둥에 손을 짚고 잠자코 그것을 보고 있다. 믿기지 않은 사람처럼 눈에는 경악을 담고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영선을 바라본다. 이 경의 얼굴이 창백했다. 영선 또한 핏기가 가신 얼굴로 이 경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이 경의 팔에 매달리는 채요를 보고 깨달았다. 일이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 채요는 경악에 가득찬 얼굴에 두려운 서린 목소리를 하여 이 경의 옷자락을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이 소중하게 붙잡고 있었다.

"말, 말릴 수가 없어서.. 사내 둘이라 두려워서 차마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채요는 더듬거리다가 이윽고 울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럴 줄을 알았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말렸을 텐데..! 어찌하여 민도공주의 위패를 손상시키셨습니까?"

 그리고 이 경이 창백한 얼굴로 영선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에게 매달린 채요의 울음에도 신경쓰지 않고 영선을 곧이 응시했다. 영선이 멍하게 그를 본다. 차마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낼 수가 없었고 심지어 감정을 추스리지도 못했다. 달변이라는 영선이 차마 할 말을 잃고 무슨 소리를 할지 짐작도 하지 않는다. 머릿 속이 꼬여서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 경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충격받아 바라보는 것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오 상환이 황급하게 떨어진 고운 입자들을 만지작거리다가 이윽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며 더듬거려 말했다.

"소, 소금입니다."

 그 말에 이 경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곧 울음을 터뜨릴 사람처럼 변하여 일그러진다. 이 경의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자리했다. 영선이 공황에 휩싸여 멍하게 이 경을 보다가 이윽고 처참하게 널부러진 민도공주의 위패와 비산한 소금쪼가리를 바라보곤 눈을 질끈 감았다. 영선이 손을 말아쥐고 주먹을 꾹 쥐었다. 이 경이 영선을 처참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경이 넋을 잃은 목소리로 말했다.

"희가 그렇게 싫으냐?"

 영선은 차마 그 말에 대꾸하지 못한채 창백한 웃음을 지으며 이 경을 바라보았다.

============================ 작품 후기 ============================

+) 당욘히 유령계정으로 팔로우 가능하죵!

 내 질투많은 애첩이 내 정부인이랑 가진 아이를 싫어하는 걸 티내고 다녔는데 몰래 대화를 엿들으니 심지어 낙태시켜버리겠다고 뒷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기겁해서 숨기려고 노력했는데 애가 떨어지고 나니 그 뜻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나를 엄청 위로해주고 불당에 백일간 무릎 꿇고 빌어서 감격하고 있는데 어느 컴컴한 날에 몰래 불당으로 기어 들어가 내 죽은 딸 위패 안에 소금을 집어 넣고 있는 애첩을 발견했다.

= 호러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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