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5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제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의심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것을 안다. 그렇기에 영선은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그 한마디 말을 했다. 그러나 돌아온 불신의 눈동자. 분노와 격정에 어쩔 줄 몰라하며 몸을 떠는 이 경의 모습에 영선은 속으로 헛웃었다.
'사랑의 대가가 이것인가?'
그러나 영선은 치밀어 오르는 원망을 억눌렀다. 자신이라면 이 경을 한치의 의심없이 믿어줄텐데, 허나 무의미한 가정을 재치고 영선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 경은 영선과 희 치가 태내 아이를 적개하는 것을 두 귀로 들었다. 그리고 영선은 그에 변명하지 못했다. 말을 하려면 희 치와 위현의 이야기를 해야될 것이다. 영선은 속으로 조소했다. 친구의 아픈 과거를 함부로 말하여 눈 앞의 고난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인가. 차라리 죽고 말지. 영선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가 입에 담아야하는 것인 희 치가 이겨내야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영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변명을 하려면 할 수 있었고 달변인 영선은 이 경의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영선은 왠지 그리 하기 싫었다.
이 경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영선을 보았다. 한참을 일그러진 얼굴로 영선을 바라보던 이 경은 이윽고 어둡게 가라앉은, 분노와 증오가 섞인 눈으로 영선을 노려보았다.
"내 귀로 듣고, 내 눈으로 보고, 내가 직접 네 앞에 있다."
이 경의 슬픈 목소리에 영선은 가슴이 욱씬거리는 착각을 느꼈다. 영선이 창백하게 웃었다. 이 경은 표정없이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영선은 그 앞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채요와 석 형일, 오 상환은 그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공간에 있는 것은 오직 그 둘뿐이었다.
보아라. 내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 앞에 있건만 저 사내는 나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영선이 그저 이 경을 고요히 응시했다.
사랑이 어떻게 의심과 병립할 수 있는가?
의심은 마음의 감옥이요. 영선은 이 경과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이윽고 헛웃었다. 천자와 사랑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겉옷을 벗고 마당에 무릎을 꿇고 반성하거라."
이 경이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눈을 느릿하게 깔고 이 경은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나려했으나 비틀거리는 바람에 채요가 그를 황급히 지탱해야했다. 채요의 어깨를 짚고 간신히 균형을 잡은 이 경의 숨결이 거칠다. 채요는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악, 소리를 내었고 이 경이 그에 벌벌 떨리는 손을 떼고 얼굴을 돌려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췄다.
"영선아. 너 어떻게 나한테..."
그러나 더 무슨 말을 하랴. 영선은 헛웃으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 경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말을 하려던 이 경은 그러나 말을 삼키고 바로 발걸음을 내딛어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빠져 나갔다.
영선이 불당벽에 기대어 이 경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오 상환이 걱정스러운듯 뒤를 보다가도 다시 황급히 이 경을 쫒아 사라진다. 석 형일이 숨을 거칠게 쉬다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하실겁니까?"
"석 형님."
황궁에서 흔히 냈던 익살맞은 목소리가 아닌 고요하고 진중한 목소리가 들린다. 석 형일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을 때 영선은 귀비가 아닌 사가에서의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영선은 은은하게 웃으면서 그에게 사가에서처럼 존대를 하며 말을 하였다.
"마당에서 돗자리를 깔아주겠습니까?"
석 형일이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낮은 신음성을 흘렸다.
"소사(小事)입니다."
영선은 작게 말했다.
"정이 깊어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영선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꿇어 앉겠습니다."
벌컥, 문을 열고 이 경이 바로 침상 위에 기어 들어간다. 이불을 젖히고 그 안에 들어가 몸을 감싸고 돌돌 말았다. 충격을 받은 이 경은 익숙한 습관대로 이불에 몸을 파묻고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이불을 꽉 쥐고 시선을 밖에 주지도 않고 그저 공황에 빠진 이 경은 미칠듯한 원망과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렇게 독하다고?'
눈이 있고 귀가 있다. 그리고 이 경은 그제서야 세간에 영선이 독하다고, 교활하다고, 요호라고 말을 하는 것을 하나 둘 상기시키고 미칠듯한 두려움과 배신감에 헐떡였다.
'채요도, 채요, 저 아이도 영선이가 손썼겠지.'
이 경이 충격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그가 넘어갔고 무시했던 많은 것들이 의문스럽게 다가온다. 채요와 영 가도, 황자와 황녀, 구 화, 탁 조, 안 답응을 비롯한 많은 후궁들의 얼굴과 사건들이 교차되고 영선의 그 미묘하게 웃는 것을 생각한다. 이 경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믿었다. 영선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 알아도 모르는 채 넘어가려고 했다. 이 경이 몸을 떨다가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로 영선이 두렵고 지독해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희가 아무리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 아이라도 위패의 안을 파내고 거기에 소금을 집어 넣어?"
이 경이 두려워서 입술을 달달 떨면서 허우적거린다. 공황상태에서 이 경이 분노를 넘어선 충격에 빠져 비명같은 소리를 질렀다.
"구천에도 그 아이가 편하게 있는 것이 못마땅하단 것이냐!"
차라리 지워버리겠습니다. 영선이 하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이 경이 멍하게 문지방을 바라본다.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이 경이 두 눈으로 본 광경이 너무나 비상식적이라서 이 경은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밤에 몰래 불당으로 가서 위패에 소금을 채우다니 이 경은 그 끔찍함에 몸서리를 치고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 경이 눈물을 꾹 참다가 결국 한줄기 눈물을 흘리고 몸을 늘어트렸다.
불당에서 기도를 올리던 그 모습도 기만이었다. 이 경이 참을 수 없는 배신감과 허탈함에 몸을 늘어트렸다. 그리고 그 때 조용히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에도 아무 응답하지 않고 넋을 잃고 미친 사람처럼 앉아 있던 이 경은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것에 동공을 흔들며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이 경의 뺨에 뚜둑 떨어지고 있었다. 멍하게 있는 이 경의 뺨을 더듬고 채요가 자신의 가슴에 이 경의 얼굴을 묻게 하여 그를 달랬다.
"얼마나 상심하셨습니까?'
이 경이 눈시울을 붉혔다. 우는 모습을 들킨 것이 수치스러워 손을 빼려 할 때 채요가 이 경의 손을 꾹 잡고 눈을 마주했다. 채요의 초점없는 눈에는 몽운한 것만 같이 흐르는 물이 고여 있었다. 채요가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구보다 처연하고 비통하게 울고 있었다. 그것은 이 경보다 더 참혹한 모습이었다.
이 경은 멍하게 채요를 보았고 채요는 이 경의 손을 잡고 부비며 흐느끼며 울었다.
"우셔도 됩니다. 아이를 잃은 고통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아이를 잃은 고통을 말로 달랠 수가 있습니까?"
채요를 잠시 보던 응시하던 이 경의 어깨가 떨렸다. 채요가 그것을 보고 일어나 이 경의 몸을 끌어안았다. 채요의 부드러운 몸에 강제로 끌어안겨진 이 경의 몸이 떨려오더니 이윽고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비참한 음성을 내었다.
"끄윽... 으흐으윽..."
이 경이 채요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몸을 떤다. 채요가 이 경을 부둥켜 안으면서 가슴아파 애통하게 말했다.
"울으세요. 맹인은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이 경은 그러나 그러고도 차마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고 몸을 덜덜 떨었다. 통곡을 참고 참아, 속에 억누르려고 했으나 차마 막아내지 못한 감정이 잇새로 빠져나온다.
그리고 이 경은 자신의 허벅지를 쓰다듬는 희고 부드러운 손에 움찔하고 채요의 품에서 빠져 나와 채요를 크게 뜬 동그란 눈으로 올려보고야 말았다. 채요가 흐릿한 눈을 깜빡이며 이 경을 맑게 응시하고 있었다. 채요는 애처로운 듯이, 가여운 것을 대하듯이 안타까운 음성을 내고 있었다.
"폐하, 폐하.."
채요의 손이 허리띠를 잡는 것에 이 경이 눈을 크게 뜨면서 채요를 바라본다. 이 경이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채요의 손을 잡고 그를 떼려고 했다. 그러나 채요는 다른 손으로 이 경의 금사로 짠 허리띠를 잡고 풀었다. 이 경이 다급하게 말을 했다.
"채요, 채요.. 이건.."
채요가 그리고 달큰한 숨이 흘러나오는 입술로 이 경의 거칠고 갈라진 입술에 연신 입을 맞췄다. 이 경이 눈을 질끈 감고 도리질을 치는 것을 노동하지 않은 부드러운 손으로 이 경의 뺨을 고정시키고 입을 강하게 맞췄다. 이 경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뜰 때 채요가 결국 이 경의 허리띠를 풀렀다.
"채요, 우읍.."
이 경이 놀라서 말을 하기가 무섭게 부드럽고 농밀한 혀가 이 경의 살 안을 쓴다. 어금니와, 그리고 혀천장을 농밀하게 쓸고 혀로 문지른다. 코 끝에는 채요의 살과, 머릿결에서 스치는 백합향이 감돌았다. 이 경의 눈매가 풀려왔다. 초점이 흐릿해지고 곧 미칠듯한 쾌락이 그를 잠식했다. 이 경이 아읏, 소리를 내면서 벌벌 떨 때 채요가 이 경을 달래는 듯한 다정한 손길로 이 경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풍만한 몸을 부볐다.
"폐하, 걱정마세요. 폐하."
이 경은 강 채요의 입술이 멀어짐에도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고 벌려 있었다. 덜덜 떨리는 몸에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에는 은색 실이 매달려 있었다. 겁 먹은듯, 혹은 두려운 듯 강 채요를 올려다 보는 이 경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강 채요가 아아, 소리를 내며 이 경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을 침상 위에 밀어 넘어트리고 바로 허리띠가 풀린 바지를 쑥 잡고 내렸다. 속곳까지 한번에 내려 성기와 밀부가 바로 노출되어, 이 경은 아랫도리가 훤한 상황 속에서 손을 허우적거렸고 채요는 그 손을 꾹 잡고 멀리 밀어 닿지 않게 했다.
"채요야. 이건 아니다.. 채요..."
강 채요가 이 경의 손을 꽉 잡으면서 몽혼한 미소를 흘렸다. 이 경이 그를 넋을 잃고 본다. 강 채요는 넘실거리는 향 가운데 지상에 적강한 선녀와도 같았다. 채요가 속삭였다.
"위로해드릴게요."
이 경의 옷고름을 잡고 푸른다. 이 경이 곧 나신이 될 때 채요가 자신의 옷을 훨훨 벗어 던지고 곧 요염하고 풍만한 나신으로 이 경을 고양이 같이 새침한 눈매를 휜다. 이 경이 덜덜 떨다가 이내 입을 꾹 다문다. 채요가 이 경의 위를 올라타 그의 귓가를 깨물더니 이윽고 환상같이 아득히 멀어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 몸으로 위로해드리겠습니다. 폐하. 부디 사양하지 마세요."
채요가 몸을 낮춰 이 경의 멍한 얼굴을 자신의 부드럽고 커다란 두 젖무덤 상에 묻는다. 하늘하늘하고 야들한 살덩어리들이 이 경의 두 뺨을 감싸고 채요가 가슴을 문대어 이 경의 입을 가로 막았다. 숨이 막혀서 콜록거리는 이 경에 손의 힘을 풀어 숨 쉴 틈을 준 채요가 이윽고 손을 유려하게 뻗어 이 경의 아랫도리로 향했다. 이 경이 겁을 먹어 위로 올려다 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채요가 매력적인 웃음을 지었다.
"폐하."
이 경의 가슴팍을 더듬고 유두를 꼬집자 이 경이 읏, 소리를 내면서 몸을 웅크린다. 채요가 진한 웃음을 흘리면서 앵두같은 두 입술을 거칠고 질긴 가죽 위로 대었다. 채요의 검은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자 비린 백합향이 물씬 풍겨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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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르넬라님 2000번째 코멘 축하드려요!
++)
드디어 다음편인가요? 핵폭탄이 투하되는 시점이? 이굥이를 얼마든지 물고 뜯고 욕해주세요.
영선이 똥고집이 알자나여...한번 마음먹으면 엄청 독해지는거...ㅠㅠ
다음편 핵폭탄 이후로 이굥이는 똥고집 모드 영선이 때문에 닦개수 후회수가 됩니다.
모두들 조금만 더 힘내세요ㅇㅂ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