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8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영선은 관저궁 밖을 나오지 않았다. 이 경이 다섯번이나 궁인을 보내어 영선에게 태양전에 오라고 말을 했을 때 영선은 그저 아프다며, 풍한이 들었다며, 속이 좋지 않다며 관저궁의 문을 열지도 않으며 거절했으나 마지막으로 직접 류 태감이 왔을 때는 얼굴을 보여 그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류 태감이 이 경의 측근 환관이니 영선은 그를 맞이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류 태감은 창백한 영선의 얼굴을 보면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 경의 말을 전했다.
"이번이 마지막 전령입니다."
류 태감은 곤란한 표정을 하고 말을 듣는 영선의 아미가 살짝 일그러진다.
"이번에도 오지 않는다면 머리채를 잡아서라도 관저궁 밖으로 끌고 나오라는 명입니다."
영선은 그에 말없이 있었으나 석 형일의 안색이 변하고 계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망연히 류 태감을 응시한다. 그런 시선을 애써 무시한 류 태감이 한숨을 쉬면서 반쯤 애원하듯이 영선에게 말했다.
"귀비 마마. 제발 한번만 봐주십시오."
말만 전해 들어도 이 경의 성질머리가 짐작이 간다. 아무렴 그토록 어화둥둥하던 영선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오라는 명령까지 내릴 정도이니 화도 화지만 이 경이 지금 이성을 잃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 경도 영선의 성격을 알텐데 앞뒤 가리지를 않고 그토록 가혹한 명령으로 반강압적으로 그를 대하니 영선은 그 상태가 짐작가서 잠시 말없이 상념하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류 태감도 알잖아요. 나는 정말 이런 것을 싫어해요."
류 태감이 손을 저으면서 황급히 말했다.
"아이고, 압니다만은.."
그러나 영선은 그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아 손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영선이 느릿하게 손을 휘저으면서 말한다.
"더 말할 필요가 없어. 나는 폐하께 갈 거요."
"그게 정말이십니까?"
반색해서 류 태감이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기쁘게 말했다.
"정말 잘 결정하셨습니다! 정말 잘 결정하셨습니다!"
영선이 웃으면서 짤막하게 말했다.
"내가 더 무슨 선택을 할 수 있나? 어차피 내겐 세가지 길밖에 없잖습니까. 지금 순순히 고집 꺾고 폐하께 제 발로 걸어가는 것, 머리채 잡혀서 끌려 가는 것, 그리고 숨을 끊어 관저궁의 모든 궁인들이 폐하의 분노에 잔혹하게 죽고 나는 시체도 남지 않는 것."
류 태감이 그 말에 멍하게 영선을 본다. 창백하게 질린 류 태감이 영선의 안색을 살피면서 입을 쩍 벌리고 있다가 이윽고 정신이 들어 더듬거리면서 말을 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마, 마마.."
류 태감이 경악서린 목소리로 힘들게 말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영선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맞아요. 쓸데없는 말이지."
영선은 잠시 제 손등을 쓸다가 눈을 깊게 가라앉힌다.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던 영선이 고개를 살짝 까딱인다. 희희낙락하여 류 태감이 돌아가자 영선이 자리에 한참을 자리하다가 가벼운 옷으로 갈아 입었다.
적당히 격식이 있는 옷이었다. 검은색과 푸른색이 적당히 섞인 옷은 결코 가벼운 색이 아니었으나 자수가 금이 아닌 은사이고 문양은 장강파룡 다섯이 얽혀 여의주를 희롱하는 모양새였다. 영선은 꼼꼼히 옷매무새를 살피고 은테에 *점취 장신구를 만들어 그 주변에 푸른 벽옥을 박아 놓은 전자로 깔끔히 정리된 머리를 덮는다. 전자 끝에 길게 늘어진 108개의 진주를 엮어 만든 비녀 끝의 술이 늘어져 있었고 보보할 때마다 짤랑 거리면서 맑은 소리가 났다. 푸른 신발에 달린 푸른색 모란의 장식은 은박에 작은 옥이 매달려 있어 가끔씩 짤랑이는 소리를 낸다. 항상 패용하는 호갑투는 은과 진주를 사용한 것으로 오른손 검지와 약지, 소지, 그리고 왼손 엄지와 약지를 제외한 전체에 착용하고 있었다.
영선이 태양전의 문 앞에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 궁인이 앞 문을 열고 그 뒤에 문을 궁인이 또 열고, 그렇게 다섯개의 문이 열려 저 안쪽에서 넓은 자단목 탁상에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앉아있던 이 경이 자그마히 보였다.
영선이 창백한 얼굴로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 이 경이 영선의 모습을 보다가 그 자태를 보고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잠시 시정을 고정했다. 정면을 보고 있던 영선이 문이 열리자마자 그 안으로 들어온다. 키가 크고 호리한 영선이 걷는 모습은 몹시 우아한 감이 있었다.
이 경이 탁자에 앉고 있었고 자단목 탁상 위에는 약식으로 된 화로에 위에 무언가 탕이 끓고 있다. 영선이 걸어오는 것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이 경이 말없이 손을 뻗었다. 영선이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이 경이 그를 꽉 잡아 당겨 비틀거리는 영선을 의자에 강제로 앉혔다.
이 경이 중얼거린다.
"너에게 화를 내지 못하겠다."
이 경이 수저를 쥐고 잠시 고민하다가 영선에게 손짓을 했다. 영선이 말없이 수저를 든다.
화로의 훠궈가 무엇인지 몰라도 귀한 재료를 쓴 것임은 확신했다. 독특한 향이 나고 그곳에는 특유의 비린내가 산재했다. 그저 비린 것이 아닌 고소하기도 했고 짐승의 향이 났다. 이 경이 젓가락을 휘저어 박쥐의 뼈를 꺼내어 영선의 접시 앞에 덜어준다. 영선이 자신 앞의 그것을 바라본다.
"너 날짐승은 먹지 않니?"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이 경이 영선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묵묵히 접시에 앙상한 뼈에 살점이 몇개 달라붙은 그것을 본다. 지옥에 떨어져 괴로워하는 귀신마냥 입을 벌린채 발버둥치는 모양으로 삶겨진 그것을 바라보다가 젓가락을 들었다.
그것에 이 경이 만족해서 자신도 박쥐의 살을 발라 먹었다.
근래에 박쥐 말린 것을 진상받은 이 경은 영선과 저녁을 같이 하고 싶어서 계속 그를 호출했었다. 박쥐 말린 것이 식감이 독특하고 풍미가 있어서 이 경도 별로 접하지 못한 것인데 어떻게 제주 자사가 그것을 구해서 바친 것이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영선 탓에 귀한 식재료를 버린 것이 벌써 몇번이던가. 분기를 참으면서 음식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가 탁자를 엎은 것도 수어번이다. 이번에도 영선이 오지 않았으면 정말 화가 났을 텐데 영선이 저렇게 잘 차려입고 앞에 앉아서 젓가락으로 살점을 뜯고 있으니 이 경도 마음이 풀려서 박쥐의 다리를 잡고 살을 뜯어 먹었다.
이 경이 냠냠 거리며 박쥐를 한마리를 다 먹어치워갈 때 영선은 가슴의 살을 깨작이며 뜯고 있었다. 이 경은 신경이 쓰여서 뭐라 할까 생각을 하더라도 영선의 얼굴이 워낙 창백하게 질려있어서 그를 무시했다. 이 경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며 국물을 떠서 영선의 앞접시에 부어주었다.
말라가던 박쥐의 살이 촉촉하게 젖었다. 영선의 젓가락이 잠시 멈춘다.
"너 많이 아프냐."
이 경이 퉁명스럽게 말한다.
"국물이 보약이다. 많이 먹어라."
영선이 다시 젓가락을 들어 박쥐의 살점을 비틀었다. 그 날카로운 젓가락의 끝을 붉은색 입술에 가져다 댄다. 이 경이 영선이 먹는 것을 흐뭇하게 보았다.
영선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어서 마치 병자 같았다. 이 경은 그것이 자꾸 신경이 쓰였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수저로 국물을 떠먹는다. 코 끝을 찌르는 알싸한 향기에 만족하던 이 경은 옆에서 욱, 거리는 소리에 수저를 멈추고 시선을 돌린다.
입을 막고 어깨를 움츠린채 떠는 영선이 있었다. 핏기라곤 하나도 없어서 몸을 벌벌 떠는 영선이 이윽고 몸을 웅크리고 눈을 크게 뜬다. 이 경이 수저를 내려놓고 그를 바라본다.
"우욱!"
영선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다급히 접시의 뼈를 버리고 그 위에 토악질을 한다. 입을 벌리고 몇번 헛구역질을 하던 영선이 헉헉 거리면서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눈의 초점이 풀려 있고 입가에 타액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영선이 손수건을 꺼내 입을 가린다. 영선이 땅에 손을 짚고 몸을 벌벌 떨면서 호흡을 거칠게 한다.
이 경이 그것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한순간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던 이 경이 이를 악물고 굳게 입을 다문다. 한참을 바닥에 쓰러진 영선을 노려보던 이 경이 감정을 꾹 억누른 목소리로 사납게 말했다.
"속이 안 좋으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분노에 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너 정말 계속 이럴거냐? 나에게 시위하는 거냐?"
이 경이 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체 너가 뭘 그리 잘했다고 이러는 게냐?!"
탕!
결국 이 경이 성질을 못이기고 젓가락을 던져 그릇을 깨트리고야 만다. 자기가 엎어져서 국물이 새어 나오고 이 경이 충혈된 눈으로 영선을 노려보다가 이윽고 크게 소리쳐 궁인에게 명령했다.
"신귀비를 궁으로 모셔라."
축객령에 비틀거리는 영선을 궁인들이 부축하면서 태양전 밖으로 그를 이끈다. 영선이 나가는 뒷모습을 잠시 노려보던 이 경이 분노가 머리 끝까지 올라서 탁자를 주먹 위로 내리쳤다. 탕, 소리와 함께 그릇이 떨어져 깨지고 류 태감이 아이고 소리를 내면서 그의 눈치를 보았으나 이 경은 결국 탁자의 접시를 다 손으로 뒤엎어 던져버린채 옷을 벗어 던지고 그 자리를 빠져 나갔다.
궁인들의 부축을 받아 관저궁으로 돌아온 영선을 계자가 울먹이면서 달려들어 살핀다. 헉헉 거리는 영선에게 박하잎을 탄 물을 주자 영선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입 안을 빈 잔에 헹궈 뱉는다. 영선이 몇번을 더 그렇게 입 안을 정리하다가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마, 마마. 어찌하여 그러셨습니까?"
날 때부터 황궁에 자란 계자가 두려워서 몸을 떨며 말했다.
"폐하 앞에서 구토 하는 모습을 보이셨으니 이제 어찌하면 좋습니까?"
계자가 겁을 먹어서 발을 동동 구른다. 그것을 헐떡이며 지친 눈으로 바라보던 영선이 말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린다. 계자가 울먹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폐하께선 마마를 무척 아끼시니 크게 벌하시지는 않겠지요? 예?"
영선은 말이 없었고 이 경은 영선을 벌하지 않았다.
궁궐 내에 많은 소문이 돌았고 계자는 속으로 귀비의 죄에 유폐나 냉궁, 영항 행까지 생각하고 있다가 다행이라 생각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영선은 이 경의 한동안 긴 침묵이 무언가 신경이 쓰였고 그리고 그것에서 이 경의 노여움을 읽고 불안함을 느꼈다.
요즘 제정신이 아닌 이 경이 크게 무언가 저지를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 영선이 불안함에 탁자를 톡톡 친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 경의 얼굴은 영선이 몸에 안 좋다고 이해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하물며 요즘 다급해하던 이 경이 이렇게 쉽게 용서를 할 리가 없는데. 영선은 생각을 하다가 결국 포기하여 시경을 꺼내서 책장을 넘겼다.
"마마, 태양전 궁인이 찾아왔습니다."
*위풍을 넘기던 영선이 문득 문 너머의 목소리에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까딱였다. 계자가 그것을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들게 하시오."
드르륵. 문이 열리고 궁인이 찾아와 무릎을 꿇어 공손하게 말한다.
"신귀비 마마를 뵈옵니다. 황제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영선은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시경을 덮은 영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한밤 중이었고 뜬금없는 부름이었지만 영선은 그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너무 간단한 흰옷만을 입고 있어 옷을 갈아 입으려던 영선이 재촉하는 궁인의 말에 결국 간소한 차림으로 그를 따라간다.
멀리서 환하게 등불이 밝혀진 태양전을 보고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영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문 앞에서 선 영선은 그 새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요란한 음악소리를 듣고 결국 예감이 맞은 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독한 주향(酒香)이 코 끝을 찌르고 있었다.
"신귀비 마마 납시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영선이 본 것은 이 경의 술잔에 술을 따르는 영 가도였고 그녀를 옆구리에 껸 채로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경이었다. 이 경의 왼편에는 강 채요가 그의 가슴에 손을 올리면서 한껏 교태를 부리고 있었고 오른편에는 고 아정이 이 경의 허리를 끌어 안고 살살 그를 만지고 있었다. 눈을 살짝 위로 떠서 자리에 들어온 영선에게 시선한 이 경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 턱을 치켜뜨고 그를 내려본다.
영선이 시선을 피하면서 땅 아래를 바라보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이 경이 영 가도가 따른 술잔에 입을 댄다. 목울대가 움직이더니 이 경이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그를 탁자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탕!
이 경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한다.
"귀비 잘 왔소."
이 경이 원망과 분노가 잔뜩 섞인 눈으로 영선을 노려본다. 영선이 꼿꼿하게 서서 그 시선을 받아 흘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주석 1. 푸른 물총새의 깃털.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고 정교하다.
주석 2. 시경 중 위나라 노래, 사랑에 관련된 시가 많다.
1. 안개꽃을 든 기사는 올해중에는 쓸 계획이 없습니다ㅠㅠ 너무 피폐해서 제가 지쳐요. 단편으로 보신 분들도 아시겠지만 결말도 그건... 좀 매우 슬퍼서 언젠가 피폐한 것을 쓰고 싶을 때 쓰려고요.
2. 이굥이 나름 질투작전.. 요기 멤버들은 소금 사건 이후로 이굥이가 처음 부른 거예요. 삐뚤어진 이굥이...
3. 토를 했으면 걱정을 해야지 왜 화내는 건지 저도 이해를 못하는데 이 시대엔 황제를 불쾌하게 만드면= 대죄이니까요ㅠㅠ 특히 토하는 거 보임= 이거 진짜 웬만한 후궁이라면 황제가 화나서 죽일 수도 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