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3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기나긴 밤이었다. 그리고 황궁이 술렁였던 날이었다. 하늘의 자식인 천자가 쓰러졌으니 태의들이 태양전으로 황급히 달려갔고 병사들이 이 경의 몸을 소중히 안고 태양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경의 얼굴은 무척 창백했으며 혈색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파랗게 질린 입술이 달싹이고 있었다. 이 경이 신음성을 흘리면서 감겨진 두 눈 사이로 눈물을 한줄기 흘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이 경의 명령에 영선이 지하감옥이 아닌 본래의 구색을 맞춘 가구가 있는 방으로 옮겼다. 태의 둘이 신음을 흘리는 영선에게 매달렸다. 태의 하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용케도 기절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다행히 채찍이 작고 얇은데다가 성기지가 못해서 살거죽이 뼈에 닿지 못하고 패인 자국을 내는 것에 그쳤다. 태의가 혀를 차면서 손을 놀렸다. 구불한 뱀의 모양으로 가슴에서 배 아래까지 상처가 나있었다. 태의가 충격을 걱정해 영선의 입에 무명천을 물려준다.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던 영선이 태의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태의 하나가 삶은 수건에 독주를 묻혀서 몸을 닦는다. 잠시 몸을 살피던 다른 태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영선이 흐릿한 시야 속에서 정신줄을 간신히 잡으며 눈을 번뜩였다. 움푹 파인 두 눈이 어둠 속에서 짐승의 눈처럼 빛닌다. 깡마른 손목도 나뭇가지같은 몸도 그 어느것도 불쌍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눈만큼은 형형하게 제 기색 이상으로 빛나고 있다. 태의 하나가 속으로 탄식을 삼키며 손을 놀렸다.
지혈에 성공한 태의가 붕대를 감더니 단단히 그것을 고정시키면서 무심코 말했다.
"신귀비 마마. 폐하께서도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영선의 손이 꿈틀거린다. 고개를 돌려 태의를 노려보는 두 눈이 살벌했다. 태의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저희는 폐하께 가봐야 합니다."
무명천을 뱉어내고 영선이 메마르고 쉰 음성을 낸다.
"향을.."
"예?"
영선이 눈을 꾹 감고 주먹 쥔 손을 파르르 떤다. 영선이 고통에 자신의 허벅지를 더듬이면서 만지다가 손톱을 박아 피가 날 때까지 악쥐고 있었다. 영선이 더듬거리면서 갈라진 목소리를 간신히 토해냈다. 영선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강 채요의 향을... 황후께..."
영선이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참고 말을 이었다.
"폐하와 강 채요를 격리시켜..."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게 그를 바라보는 태의에게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영선이 비명을 삼키고 고통을 참았다. 희게 질릴 정도록 손을 꽉 움켜쥐고 근육을 팽창시키던 영선이 끄윽,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태의가 주춤거리면서 밖을 나가고 궁인 하나가 수건을 들고 영선의 땀을 닦았다. 숨을 헐떡이면서 영선이 충혈된 눈으로 반즘 열린 문이 끽끽 대는 것을 바라본다. 몸이 떨리고 있었다. 영선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격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제대로 된 상이 나오고 하루에 한번씩 태의가 방문하여 영선의 상처를 진료했다. 살이 조금 붙자 영선의 다 죽어가는 얼굴에도 혈색이 돌았다.
상을 가지고 드나드는 궁인들이 영선에게 소식을 전했다. 황후가 강 채요를 구금시키는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이었다. 열댓쯤 되어보이는 궁인 하나가 제법 잘 차려진 밥상을 놓으면서 입을 조용히 달싹였다.
"아직 참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계십니다."
영선이 창백한 낯을 하여 궁인을 보고 있다. 궁인이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침상을 벗어나지 못하여 도 요소 상궁께서 궁인들을 다스리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영선이 이불을 잡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등이 시큼거렸다. 신산함이 그를 격통하고 있었다. 영선이 크게 굳은 얼굴로 멀거니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선이 가만히 넋을 빼고 그렇게 있다가 한참을 고통스러운 숨을 쉬면서 손을 말았다. 이불이 찢어져서 영선이 손 안에 그것을 바라보면서 짧게 웃었다.
'이것이 은애옥(恩愛獄)인가!'
영선이 날카롭게 웃는다. 칼날이 부러져 비산하고 있었다. 육신이 찢겨져 나갔으나 하물며 혼의 아픔만 하겠는가. 영선이 목을 꺾어 몸을 튕기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얼굴을 쥐어 뜯으며 고통을 삼킨다.
'육친이 서로 얽혀 벗어날 수가 없구나!'
영선이 미친듯이 웃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병사들이 문 밖에서 정중하게 시립하여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선이 크게 웃더니 호쾌하게 말을 했다.
"폐하께서 나를 부르고 계시는 거냐? 나를 찾으시는 거냐?"
차마 아무말도 못하고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지위가 높아 망토를 입고 있는 사내가 머뭇거린다. 영선이 조소하더니 이불을 던지면서 침상 아래로 발을 딛였다. 비틀거리는 그를 궁인이 놀라 다가가 부축하였다. 영선이 조용히 속삭였다.
"경이 나를 찾는다면, 가야지.. 나의 불쌍한 경은 지금도 겁에 질려서 떨고 있을 테니."
그것은 너무나도 작아 궁인조차 거의 들을 수 없는 미약한 목소리였다. 영선은 터덜거리면서 발걸음을 한다. 그러나 그들이 향한 곳은 태양전이 아니었다. 영선이 발걸음을 멈춰선다. 두 눈을 크게 뜬 영선이 충격에 몸을 떤다.
봉두난발로 산발이 된 석 형일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뺨에 생채기가 길게 나있었다. 영선이 망부석이 되어 그를 바라본다. 석 형일이 두 눈을 흔들어 멍하게 그를 응시하다가 이윽고 굳은 입술을 열어 달싹였다. 입술에 피가 터져 있었다.
"처음엔 다같이 가두어져서 간수들이 학대를 하여 삼순구식을 당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밥이 잘 나오고 대접이 좋아졌습니다."
그 옆방에서 계자가 몸을 떨고 있었다. 다른 궁인들이 웅크려 있다가 영선을 보고 흐느끼면서 뛰쳐나와 창살을 잡았다. 영선이 손을 들어 창살을 잡았다. 영선의 어깨가 움츠러들어 떨리고 있었다.
계자가 울면서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마마. 저희들은 괜찮습니다."
관저궁 신귀비는 아랫것들이라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항상 누이처럼 다정하게 대했다. 모두가 참새처럼 입을 모아서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면서 짹짹 말을 한다. 영선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가 억지로 웃으면서 말을 한다.
"노비들이 어떤 일을 당해도 주인께서는 마음 쓰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사람마다 쓰임이 다르니 마마께서는 신경쓰지 마세요."
영선이 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멀건 얼굴에 충격이 흘러 내렸다.
"너는..."
계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마마. 말 그대로 궁궐의 재물인 저희들을 잘 대접해주시고 아껴주셔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계자는 울음을 삼키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 누구도 노비를 그렇게 대하지 않습니다. 마마를 모신 것이 저희의 복이었습니다."
그것에는 비장한 각오가 있었다. 괜찮다고 말을 하였으나 그들 사이에서 동요가 있었고 두려움이 장악하고 있음을 알아챈다. 영선이 그를 멍하게 바라본다. 죽음을 각오한 여인들이 눈물을 참고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할 수도 있음에도 그들은 영선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이제 가셔야 합니다."
영선이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결국 몇번이고 그 이름을 부르던 병사들이 그를 끌고 가고 석 형일이 굳은 표정으로 있다가 버럭 소리지른다.
"비천한 목숨이지만 품은 각오는 비천하지 않습니다!!!"
영선의 뒤로 크나큰 음성이 쩌렁하게 울렸다. 영선의 등을 비수처럼 찌르는 말이였다.
"온정 따위에 마음을 꺾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러나 곧 철문이 굳게 닫히고야 말았다. 영선은 영혼을 남긴 채로 걷고야 만다. 비틀거리면서 향한 곳은 태양전이었다. 문이 열릴 때까지도 넋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말없이 울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병사가 문을 닫는다. 영선이 그 자리에서 서서 혼이 없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있었다. 허수아비가 그곳에 있었다. 감정이 교차하고 과거를 노닐던 영선이 고개를 들어 앞을 본다. 영선이 비틀거리면서 발걸음을 뗐다.
이 경의 의자 앞에 다가간 영선이 무릎을 꿇으면서 손을 뻗었다. 이 경의 움푹 들어간 뺨을 쓰다듬던 영선이 곧 눈물을 삼키면서 그의 무릎을 잡고 허벅지에 머리를 다정하게 기댄다.
잠시 몸을 떨고 있던 이 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렇게 다정하게 내게 몸을 기대느냐?"
영선이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허공을 보면서 흐릿한 목소리로 말한다.
"궁인들을 죽이실 겁니까?"
이 경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영선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영선은 이 경의 허벅지에 손을 대고 그를 가볍게 다독였다. 그의 몸에 기대어 뺨을 부빈다. 영선이 애교를 부리는 것에도 이 경이 몸이 굳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을 삼켰다. 이 경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영선이 일그러진 얼굴을 했으나 이 경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영선이 이 경의 옷자락을 잡고 칭얼거렸다.
"장미원에 다시 나를 데려가줘요. 설마 제가 밉다고 밀어버린 것은 아니죠?"
이 경에게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몸이 떨리고 있었다. 호흡이 거칠어진 것이 귓가에 들렸다. 영선이 이 경의 다리를 껴안고 뺨을 비빈다. 영선이 상냥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조금 화난다고 이러시는 법이 어딨어요? 내가 돌아오면 다시 나를 예뻐해주실 건가요?"
황옥색 두 눈이 충혈되어 핏발이 서있다. 어느 순간 물기가 묻어 습해져 있었다. 이를 악물면서 영선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토했다.
"경, 우리 다시 돌아가자."
이 경이 긴 침묵 끝에 피를 토하는 처절한 목소리를 낸다.
"이러지 마라."
영선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눈은 아득한 저편을 바라보아, 그는 과거를 헤집고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입매에 웃음을 띄고 있었다.
"겨우내 금을 가르쳐드릴게요. 저는 혹독한 스승인데 괜찮습니까?"
이 경이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눈을 꾹 감은 이 경이 처참한 표정을 짓는다. 영선이 입술을 달싹였다.
"봄이면 영화원에서 내가 황옥 피리를 불테니 당신은 금을 켜줘요. 선황과 인온황후께서 그러하셨듯이 같이 연주를 해요."
이 경이 참지 못해 말을 끊어 절규한다.
"그러지 마라! 내게 그렇게 말하지 마라!"
영선이 고개를 들어 이 경을 바라본다. 손을 꽉 잡으면서 영선이 조용하게 속삭였다.
"사랑합니다."
이 경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진다.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주먹 쥔 이 경이 팔걸이를 내리치려다 힘을 풀고 손을 늘어트린다. 잠시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이 경이 손을 들어 조심하게 영선의 주홍색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이 경이 눈물을 주륵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차가운 눈으로 내게 사랑을 말하는구나."
영선은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고 이 경이 입을 굳게 다물고 처연한 웃음을 흘리다가 영선의 턱을 잡아 든다. 몸을 숙인 이 경이 영선에게 입을 맞추면서 눈을 감았다. 눈매에 고인 눈물이 뺨에 한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입술을 뗀 이 경이 말없이 영선의 손아 이끌었다. 영선이 나풀거리는 나비같은 두 눈썹을 깜빡이며 이 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경이 그의 손을 자신의 배 아래에 두었다. 영선의 표정이 그제서야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두 눈을 크게 뜬 영선이 믿기지 않은 것을 들을 듯이 이 경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다. 이 경이 지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입을 달싹였다.
"네 아이다."
영선이 멍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경이 눈을 꾹 감고 말없이 눈물을 흘린다. 초췌한 얼굴에 움푹 파인 볼에 그늘이 져있었다. 이 경이 눈을 뜨고 영선을 응시한다.
영선이 배를 더듬거리다가 손을 뗀다. 한발자국 물러선 영선의 얼굴에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되어 있었다. 경악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이 경이 시선을 돌렸다. 한참의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그리고 영선이 한참 후에 날카롭게 웃는다. 이 경의 몸이 움찔거린다. 영선이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웃음을 지우고 창백한 얼굴로 이 경을 바라본다. 달빛이 창문 사이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손을 몸 앞에 가지런히 모아 매만지는 영선이 잠시 생각 후에 조소를 하더니 이 경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 경이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호리한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아슬하게 보인다. 영선은 웃더니 중얼거렸다. 이 경의 귓가에 목소리가 맴돌았다.
"벗어나지 못하여 서로가 애욕하는가."
이 경은 답을 하지 않았고 영선은 한참을 이 경을 응시하다가 손을 뻗어 이 경의 배 위에 손을 가지런히 올려 놓았다. 이 경이 눈을 감자 영선이 홀린듯이 그 배를 쓰다듬었다.
"내 아이.."
붉은 입술 사이로 말이 흘러 나왔다. 영선의 두 눈이 멍하게 흐려져 있었다. 한참을 격정에 휩싸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영선이 눈을 꾹 감고 몸을 기울인다. 이 경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영선은 그를 끌어안아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몸을 떠는 영선을 바라보던 이 경이 머뭇거리다가 영선의 부드러운 머리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달빛이 창문 사이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연인이 부둥켜안고 한참을 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마약+성깔입니다. 불씨에 기름 뿌린 것처럼 원래 성깔에 약을 콸콸콸 더해서... 거기 플러스 임신초기불안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