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5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영선은 이 경에게 가식으로 웃지는 않았으니 이 경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서글펐다. 그 날에 영선이 무감정한 눈으로 사랑을 말하였을 때 이 경은 정말 지독한 후회에 사로잡혀서 고통스러워했다. 항상 사랑이 가득하여 생기있게 반짝이는 두 눈은 지극히 냉랭하고 싸늘했다. 그러나 그 입으로 꿀같이 달콤한 말을 하니 이 경은 대놓고 기만하는 영선이 아예 마음을 듣은 듯하여 서글펐던 것이다. 그것보다는 나았으나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이 경은 영선이 차가운 눈으로 이 경의 배를 볼 때마다 문득 주눅이 들어서 머뭇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영선에게 달려들어서 쓰다듬고 어루어만져달라고, 만져달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영선은 연인 백 영선이라기 보다는 대단하신 관저궁 신귀비의 모양새로 그에게 충정을 다하는 듯 했다. 이 경은 한짓이 있어서 차마 그것에 원망을 토로하지 못하고 영선의 눈치를 보았다.
이 경이 참으로 싸늘한 얼굴로 말없이 수저로 국을 떠먹는 영선을 바라본다. 혹여라도 오 약영 같은 일이 있을까봐 손수 식재료를 검수하고 요리를 한 영선은 짜지 않고 맵지 않고 담백한 음식으로 이 경을 돌보고 있었다. 따뜻한 닭육수를 이 경의 그릇에 다시 덜은 영선이 먹는 틈틈히 이 경의 식사를 돌보고 있었다.
이 경이 머뭇거리다가 영선이 그릇에 내어준 닭다리살을 오물오물 먹었다. 완전히 화해한 것은 아니고 아이 때문에 휴전한 것이란 것을 두 사람 다 잘 알았으나 마음이 어느정도 편안해진 이 경의 볼살이 다시 오르고 있었다. 한참을 입덧을 할 때라서 고생하고 있는데 말이 극도로 적어든 영선이 드물게도 그에게 말을 걸어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어본 것이다. 이 경이 닭이 먹고 싶다고 하자 영선은 닭과 계피를 우려 탕을 만들었다.
이 경이 잠시 그 때의 생각을 한다. 영선을 감옥에 보내고 끊임없이 고뇌하고 괴로워하며 분노하던 이 경은 어느 순간 동경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이 무척이나 상한 것을 발견했다. 하루 새에 새치가 생겼으니 마음을 앓고 앓아 육신에 미쳐 버리고야 말았다.
수저를 잠시 쥐던 이 경의 얼굴이 새하얗다. 접시를 바라보며 젓가락 끝으로 닭의 가슴살을 비틀던 영선이 그것을 눈치채고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이 경이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영선의 눈치를 보았다. 눈알이 데굴 굴러가면서 기가 죽어서 말도 못하고 욱욱거리는 것을 바라본 영선이 입을 한번 비틀고 빈정이 상한 표정을 하더니 한숨을 쉰다.
그 표정에 이 경이 눈을 질끈 감고 시선을 피한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영선이 빈그릇을 들어 이 경에게 대고 등을 쓸어 주었다.
이 경이 눈알을 도르륵 굴리면서 영선을 몇번 힐끔이다가 결국 참지 못하여 웩, 소리를 내며 토를 한다.
'그 때 화내지 말걸.'
목 안쪽이 쓰라린 것도 신경이 쓰이지만 무엇보다 머리가 빙글 돌고 역한 기분이 들어서 몹시 아프다. 새삼 그 때 일이 떠오른 이 경이 눈매에 대롱 눈물을 달았다. 닭은 괜찮은데 계피향이 맞지 않아 억지로 입에 닭을 쑤셔 넣던 이 경이 욱욱 거리면서 몇번의 구역질을 한다. 박쥐를 먹고 구토를 하던 영선에게 화를 낸 것이 떠올라 이 경이 늦은 후회감을 느끼면서 영선의 팔에 매달렸다.
한참을 헐떡거리던 이 경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영선을 꼭 잡고 있었다. 영선이 이 경의 몸이 진정되자 바로 몸을 떼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 경이 눈치를 보다가 궁인이 내온 박하물로 입을 헹구고 자기도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말없이 젓가락을 들던 영선이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몸에 받지도 않는데 왜 억지로 먹어요?"
어째 익숙한 말이라 이 경이 찔끔거리면서 영선의 눈치를 본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어두운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에 영선이 식사를 계속 할려고 해도 신경이 쓰여서 하지 못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영선이 그를 잠시 보다가 화를 억누르면서 말했다.
"기다려봐요."
이각(30분)이 지나서 돌아온 영선은 소금과 닭육수만으로 만든 미음을 끓여서 그의 앞에 내려놓은 뒤에 향이 없는 오이장아찌를 덜었다. 이 경이 눈치를 보다가 수저를 들어 허겁지겁 닭죽을 먹는다.
중화대륙에서 가장 존귀한 천자가 걸신들린 거지처럼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먹는 광경에 영선이 궁인들을 물려 시선을 피하게 한다. 이 경이 입덧이 심해서 굶는 일이 잦았으니 영선은 이 경의 몰골이 보기 싫더라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어서 신경질을 내면서 요리를 직접 했다.
이 경이 그렇게 눈칫밥을 먹고도 꾸역꾸역 관저궁에 찾아와 식사를 함께 했다. 정무를 보는 일을 제외하고는 영선과 함께 밥을 먹고 침식을 함께 했다.
영선은 자신에게 찰싹 달라붙는 이 경에게 짜증을 내더라도 어느순간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보곤, 또 그의 배를 보곤 했다. 이 경은 새근거리면서 영선의 옷자락을 꼭 잡은채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넉달이 지나고 어느새 배가 서서히 부르고 있었다. 그 심하고 지랄맞아서 영선을 부엌데기로 만들던 입덧이 찬찬히 가시고 있었다. 영선이 이 경의 한줌의 희끗한 머리가닥을 보고 착잡한 마음이 들어서 그것을 만지작 거렸다.
"아직은 흰머리 날 나이가 아닌데.."
영선은 그러나 손을 거두고 이윽고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천진한 표정으로 자는 이 경이 무척이나 미웠으나 더욱 더 미운 것은 그럼에도 그가 싫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영선이 한숨을 쉬면서 자지 못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 잠이 없는 이 경이 눈을 스륵 뜬다. 조금 봉긋하게 솟은 배가 무거워 이 경이 눈을 찌부렸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부린 이 경이 배를 만지작 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선이 그를 창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경이 눈을 크게 뜨면서 영선을 바라본다.
영선이 문득 입을 열어 말했다.
"아이 이름은 뭘로 할겁니까?"
"어?"
이 경이 반문했으나 영선은 굳이 답을 하지 않았다. 그에 정신을 차린 이 경이 아아, 소리를 내면서 미간을 찌부리면서 상념한다. 이 경이 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태명을 정해야지..."
영선이 잠시 이 경을 노려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생각해둔 것 있습니까?"
"응? 아니, 마땅한 것은 없는데.."
자신이 말하고도 희의 때와 다르게 너무 무책임해 보이는 것처럼 보여 황급히 이 경이 손을 내저어 변명한다.
"그게 아니라 내가 학식은 뛰어나지 못하니 영선이 네가 짓는게 나을 것 같아서 고민하고 있었다."
영선이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배를 응시했다. 영선이 고요한 침묵을 유지하면서 눈을 느릿하게 깜빡인다.
"맑고 청아하게 울려 금화를 아로새겨 꾸민 매방울(金花鷹鈴子) 같이 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지."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령(鈴)."
이 경이 그 말을 되뇌였다.
"방울이라."
멍한 눈으로 그 말을 한참을 되뇌이던 이 경이 웃으면서 영선을 바라본다. 영선이 시선을 피했으나 이 경이 기분이 좋아서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예쁘구나. 정말 예쁘다!"
영선이 이름을 지어준 것에 어쩐지 조금은 그의 마음이 풀린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듯 하다. 이 경이 배를 만지작 거리면서 령을 연신 되뇌이면서 웃음을 흘렸다. 영선이 그 얼굴을 외면하여 말을 하지 않았다.
이 경은 여섯달이 지나자 옷을 입어도 눈에 띌 정도록 배가 볼록해져 왔다. 입덧은 끝나가는데 이 경의 표정이 그렇게 좋지가 않아서 류 태감이 몰래 태의를 불러서 추궁했더니 그가 곤란한 표정을 하다가 결국 왕진 결과를 토설했다.
류 태감이 그 말을 듣고 얼굴을 일그러트리더니 바로 관저궁으로 가서 영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아무리 폐하께서 강건하신 육체를 가지고 계시더라도 엄연히 산부십니다."
원망이 담긴 눈을 한 류 태감의 머리가 희게 셌다. 노인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닌지라 영선이 신경이 쓰여서 손톱을 정리하던 것을 멈추고 잠시 그를 오만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류 태감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구박을 계속 받으시니 옥체가 미령해지시고 임신 초기에 워낙 고생을 하셔서 옥중 아기씨께서 온전치 못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영선이 참다 못해서 미간을 구기면서 말한다.
"그게 내 잘못이란 건가?"
영선이 손톱칼을 거칠게 내려놓고 날카롭게 언성을 높힌다.
"존전께서 내게 어떻게 가혹하게 대하였는지 그 두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였단 말인가? 류 사자! 아직도 내 가슴팍에는 구렁이 같은 채찍 자국이 나있어!"
그 사나운 목소리에는 기세가 등등한 귀비의 노여움이 서려 있었으나 그럼에도 류 태감이 후환을 생각하지 않고 끅끅 거리면서 바닥에 손을 짚고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태내에 있으신 아기씨는 귀비 마마의 한점 혈육입니다."
류 태감이 고개를 들어 절절한 목소리로 고한다.
"어찌 그 점을 생각하지 않으시고 단지 원수의 자식이라 생각하십니까."
영선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신다. 한참을 그를 묵묵히 노려보던 영선이 빈정거리면서 말을 했다.
"사가에서는 회임을 하고도 밭을 매는 여인이 부지기수다."
"마마!"
"회임이 대수냐? 백성만민들은 다 그리 하는데 폐하께서는 왜 못하신단 말이냐?"
"귀비 마마!"
"난 내 할일은 다 했어!"
참다 못해서 소리친 영선이 심호흡을 하고 한숨을 쉰다. 류 태감이 영선이 소매를 흔드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영선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이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
류 태감은 이어진 한마디에 울상을 지으며 태양전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돌아가라."
그러나 새근거리면서 자신의 가슴팍에 기대어 잠을 자는 이 경을 보면 영선은 한숨을 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을 수 밖에 없다. 이 경이 입을 달싹이면서 으음, 소리를 내다가 머리를 도리질을 치곤 하품을 했다. 그것을 본 영선의 입에서 순간 풋, 소리가 났다. 그 입 안에 손가락을 넣고 싶어서 몸이 달싹거렸다. 영선이 그런 자신을 눈치채자 마자 표정을 굳히고 멍하게 이 경을 바라보았다.
입을 우물거리던 이 경이 끙끙 소리를 내면서 영선의 품에 파고드려고 애쓴다.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던 영선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멍하게 이 경을 바라보던 영선이 검지를 들어 이 경의 콧잔등을 톡톡 찍었다.
문득 이 경이 얄미워진 영선이 미움을 담아 이 경의 볼을 쿡 찍는다. 그와 동시에 이 경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본 영선이 속으로 생각했다.
'안 그래도 못생긴 것이 더 못생겨질 수도 있구나.'
미적 감각이 무척 뛰어나고 세밀하고 아담한 것을 좋아하는 영선에게 이 경의 얼굴은 어린 아이가 찰흙으로 주물주물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못생기게 느껴졌으니 영선은 전부터 그에게 무척 솔직하게 못생겼다고 말을 했었다. 안 그래도 정이 뚝 떨어지고 사람이 미우니 그나마 사랑의 힘으로 사랑스러웠던 것이 더 못생기게 느껴진다. 영선이 갑자기 이 못난이에게 얽힌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럽고 빈정이 상해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이 경의 얼굴을 계속 쿡쿡 찌른다.
"뭐야!"
영선의 괴롭힘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허우적 거리던 이 경이 눈을 번뜩 뜨고 짜증을 냈다. 영선이 손을 빠르게 거두고 태연한 얼굴을 한다. 이 경이 정신을 차리고 영선을 바라볼 때 그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하여 입을 막았다.
"창문을 열고 잡니까? 모기가 와서 잡아줬습니다."
"너가?"
멍하게 그를 바라보던 이 경을 외면하는 영선이다. 잠을 자는 와중에도 모기를 잡아 주었다는 말이 자뭇 감격스러워서 얼떨떨한 심정으로 영선을 바라보던 이 경의 얼굴이 이내 환해진다.
"초봄이라 모기가 날아다닐 줄은 몰라서 열었다. 미안하다."
이 경이 작게 중얼거린다.
"너를 귀찮게 했구나."
영선이 속으로 찔려서 그에게 짜증을 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한참을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다. 영선이 한숨을 쉬면서 머리를 헝크러트리더니 짤막하게 말했다.
"주무세요."
영선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달싹인다. 입 밖을 나온 것은 냉랭한 목소리이나 말 안에는 한줄기 다정함이 서려 있었다.
"제가 지켜볼테니."
============================ 작품 후기 ============================
이제 5년차 연애입니다. 향 맞고 안정 찾는 것은 입덧이랑 증상이 비슷한 걸로 설정했어요. 임신 초기 때 반짝 뜨는 증상.
영선이 마음: 얘는 입 다물고 자는 때만 예쁘니 평생 잠만 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