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7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베개에서 미끌어져서 떨어질뻔 한다. 영선이 스스로 밀치고도 놀라 이 경을 잡지 못하고 그것을 지켜보기만 한다. 이 경이 기겁해서 침상을 가까스로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배를 잡았다.
"너?!"
충격을 받은 이 경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고개를 들어 영선의 얼굴을 바라본다. 방금 전까지 사랑을 나누었던 연인이 침상 아래로 자신을 밀치려던 상황이 믿기지 않아, 이 경이 배를 끌어안고 얼굴을 흉신악살처럼 일그러트렸다. 지금껏 임신 와중에도 영선의 구박을 웃으며 견뎠던 이 경의 얼굴에 분노가 일렁거렸다.
그러나 이 경은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고 영선도 사과하지 않았다. 당황한 영선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으나 그는 오히려 이 경을 강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이 경은 이를 악물고 침상 위로 발을 늘어트려 옷을 주섬거리면서 입었다.
한참의 침묵이 이어진다. 침의를 다 갖춰입은 이 경이 침상에 걸터앉아 침착하게 숨을 고른다. 영선이 눈을 꾹 감고 그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 경이 그러다가 결국 감정을 참지 못해서 분노를 억누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싫다고 령이도 싫어졌어?"
이 경의 어깨가 떨려왔다. 등을 진 이 경을 바라보지도 않고 외면한 영선의 얼굴이 싸늘했다. 참지 못하고 몸을 돌린 이 경이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 경이 이성을 잃어 영선의 어깨를 밀친다. 영선이 그 때 평소 그답지 않은 맹렬하고 날카로운 기세로 이 경의 손을 쳐내고 손등을 때린다.
이 경이 따끔거리는 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울부짖는다.
"날 떠나고 싶었으면, 이럴 거면 령을 버리고 갔으면 되잖아!"
눈물이 뚝뚝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이 경의 일그러진 얼굴 위가 눈물로 범벅이 된다. 이 경이 원망을 담아서 영선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친 숨을 내쉬면서 원망을 토하지만 그만큼 간절하게 영선을 바라보면서 원하고 있었다. 몸이 떨려온다. 이 경이 배 위에 손을 얹으면서 영선을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영선이 그 애처로운 광경에도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차갑게 군다. 영선이 하, 한번 조소를 하다가 날카롭게 말한다.
"그 말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이 경의 얼굴이 굳어져 반문했다.
"뭐?"
영선이 웃으면서 잔인하게 말했다.
"입 밖에 낸 말을 정녕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냐고 물었지."
순간 귓가에 들리는 말을 깨닫지 못한 이 경이 입을 벌리고 벙긋 거린다. 한참을 멍하게 그를 바라보던 이 경의 몸이 눈에 보일정도록 떨려온다. 이 경이 경악에 찬 눈으로 영선을 바라보면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이 경의 새파랗게 질린 입술이 달싹여지고 더듬거리면서 쉰 목소리를 잇새에 내뱉는다.
"지금, 뭐라.."
영선이 그 때 시원하게 웃었다. 마음에 근심거리를 지워버리듯이 영선이 입술에 크게 호선을 그리면서 눈을 휜다. 영선이 이를 까득이면서 증오를 담아 말한다.
"왜 거짓을 말해, 이 경?"
이 경이 숨을 멈춘다. 상상 외에 잔혹한 말에 화를 내지도 못하고 새하얀 얼굴로 영선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본다. 영선은 웃지 않고 싸늘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기색은 돌변하지 않았다. 영선이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떠나면 잡을 거잖아. 당신 나를 엄청 좋아하잖아. 사랑하고."
"너, 너가.."
"그래서 나를 때리고 강제로 범하고 가두고 고문하고 그리고 이 짓거리까지 하는 거잖아."
이 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환멸나."
영선이 웃는다.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내가 해야하는 거야. 아 진짜 열받는다고. 나는 당신이 산부건 말건 싫고 증오스럽단 말이야. 난 얼굴도 보기 싫고 역겨워."
창문 밖으로 참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봄기운에 봉긋하게 솟은 꽃봉오리 위로 새가 앉아 있었다. 긴장을 깨는 소리에도 이 경은 숨을 쉬지 못하고 목을 잡는다. 목이 막혀서 헐떡이던 이 경의 눈매에 눈물이 흘렀다.
"그, 그렇게 증오스러운거냐."
이 경이 더듬거리면서 말한다.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영선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당연하지! 언제까지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를 할거야? 내게서 몸을 움츠리고 나를 기만할 셈인가!"
이 경의 심장이 쿵 떨어진다. 이 경의 몸이 굳었다. 동공이 수축하고 눈이 크게 떠진다. 머리서부터 발 끝까지 뇌격이 흘러 혈관을 태우고 있었다.
영선이 눈을 꾹 감았다. 모진 말 끝에서 실망이 섞인 낮게 깔린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영선이 한탄하듯이 슬픈 목소리를 냈다.
"눈 앞에 위기를 모면하자고 신의를 져버릴 수가 있습니까.."
이 경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몸이 차게 식었다. 그리고 이 경이 고개를 들어 영선을 보았다. 영선이 조소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모르는 척 해야하고 너가 나를 속이는 것을 바라봐야 하나?"
영선이 증오를 담아 소리쳤다.
"기만자!"
이 경이 숨도 못쉬고, 아니 깊고 불규칙한 숨을 훅훅 낸다. 동공이 수축대고 이 경의 몸의 진동이 커졌다. 이 경의 입이 벌려졌다. 영선이 저물어가는 석양을 떠올린다. 영선이 충혈된 눈으로 이를 악물면서 이 경을 노려보았다. 이 경의 부푼 배를 보고 있었다. 영선이 말없이 그 배를 바라보고 그 위에 얹은 손을 바라본다. 결국 떨리는 목소리가 이 경을 찔렀다.
"나는 탐일을 오래 복용하여 양성을 아직 회복하지 못해 작년에 올 희락기도 오지 않았지."
이 경이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보고 있었다.
"양성을 찾았다면 희락기부터 왔을 건데 내가 희락기를 다른 음인과 보냈을까? 이 경?"
영선이 비웃으면서 말했다.
"너도 알잖아. 너와 다르게 나는 너 뿐인걸. 나는 백번 죽어도 다른 음인을 바라보지 않아. 너와 다르게."
이 경의 몸이 경련한다. 영선이 충혈된 눈으로 옆에 있던 탁상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이 경이 눈을 꾹 감고 눈물을 주륵 흘렸다. 울면서 결국 얼굴을 마주보지 못해 고개를 숙였다.
"나를 잡으려고 그런 거짓말을 했단 말이야!!!"
영선이 울분을 토해내면서, 몸을 꺾어 비통하게 소리친다.
"나에게 왜 그런 거짓말을 해?! 내가 모를 줄 알아?! 내 향을 맡고 무의식적으로 움찔거리는 당신을 모를줄 알아?! 내 향을 맡고 몸이 안좋아지는 너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하루에도 천번 만번 고민했던 내 마음을 알아?! "
이 경이 그제서야 자신을 밀어낼 때 영선의 착잡한 표정과 배를 볼 때의 흔들리는 시선을 눈치채고 헐떡인다. 이 경의 눈이 습해지고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영선을 바라본다. 배에 댄 손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이 경이 그제서야 엉엉 울면서 몸을 숙이고 웅크렸다.
"잘도 흉내냈어! 회임한 몸으로 역겨울텐데 다른 양인의 품에 안겨서 낑낑대는 네가 증오스럽지만 안쓰러워서 말을 하지 않았지! 하지만 끝까지 나를 속였겠지. 이 경. 너는 아이를 낳고서도 그 애를 내게 쥐어줄 참인가."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변명을 하면서도 이 경은 그 말이 닿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선의 상처받은 얼굴과 배신에 치를 떠는 모습과 그리고 그 사실에 증오를 삼키면서 이 경을 노려보곤 흘리는 눈물이 그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 경이 말을 못하고 슬피 울면서 몸을 꺾어 웅크렸다. 이 경이 속으로 통곡을 삼켰다.
숨기고 싶었다. 영원히 숨기고 싶었다. 두 번이나 쓰러진 이 경의 맥을 짚은 태의가 희맥이 잡힌다고 말을 했을 때 이 경은 그것이 영선의 아이인줄을 알고 뛸듯이 기뻐했다. 자신에게서 등을 돌려 망부석처럼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할 아이일줄을 알고 이 경은 영선을 다시 보기를 갈망하여 그의 향을 찾았다.
그리고 찾아온 영선의 향에 이 경은 구역질을 참아야만 했고 절망에 떨어야만 했다. 한번의 날일 뿐이었다. 비가 오던 날이었고 가을의 일이었다. 아이는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이 경을 기쁘게 했고 또 이 경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영선이 차가운 눈으로 사랑을 말할 때 이 경은 영선의 마음이 떠나려는 것을 깨닫고 이성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지를 잃고 그 아이의 아비를 속였다.
슬프게 울면서 이 경이 차마 말을 못하고 입을 꾹 다문다. 강 채요다. 영선에게 충격을 주고 상처를 주었던 기억과 얽힌 자의 아이이다. 아무리 이 경이 내명부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더라도 영선이 그녀를 탐탁치 않아 하는 것은 알았다. 영선의 눈치를 살피고 그 아이의 아비를 바꾸려 영선의 품에 애교를 부렸을 때 이 경은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몇번이고 찾았다. 아이가 친부를 찾고 있었다. 배가 불러올 때마다, 이 경은 불안함에 휩싸여 잠에서 몇번이고 깨곤 배를 만지곤 했다.
이제 모든 것이 드러났다. 영선은 증오를 담아 울면서 그를 보고 있었고 일은 돌이킬 수가 없었다. 영선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알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 경은 영선에게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영선이 그제서야 자제심을 버리고 이성을 잃어 진심을 말한다.
"내 생애 당신처럼 역겨운 작자는 없었어."
이 경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경련이 멈추고 이 경의 관절이 굳은 것처럼 그가 몸을 굳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참 후에 이 경의 몸이 퍼득 떨렸다. 굳어진 몸이 움찔 움찔 경련을 일으키면서 들썩였다. 영선이 차가운 눈으로 그를 보다가 문득 이 경의 눈에 흰자가 보이는 것을 보고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이 경?"
이 경의 몸이 쓰러진다. 영선이 기겁해서 침대에서 고꾸라지는 이 경에게 달려들어 그를 껴안아 붙잡는다. 배에 올려둔 손을 떼고 이 경이 파드득 경련하면서 새파란 입술을 달싹인다. 입가에서 거품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영선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이 경!!"
초점이 없이 흐릿하고 흰자가 보인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경이 뻣뻣하게 굳은 혀를 가까스로 움직이면서 부정확한 발음으로 다급히 말했다.
"배가.. 배가..."
이 경이 배를 감싸 쥐고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그가 고통을 호소하면서 눈물을 꾹 감았다.
"배가..."
영선이 경악해서 이 경의 몸을 흔들면서 크게 소리친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이 경의 식은땀이 흘리는 하얀 이마를 바라보았다.
"이 경! 이 경!!!"
입에 물린 거품과 축 늘어진 손. 영선이 불안감에 이 경을 꽉 끌어 안고 미친듯이 이 경을 부르짖는다.
"당장 태의를 불러라! 태의를 불러!!"
그리고 문 밖에서 시립하여 있던 오 상환이 안에서 나는 고성에 불안해하여 서있다가 영선의 목소리를 듣고 크게 대경하여 뛰쳐 나온다. 문을 부수고 오 상환이 들어와 배를 만지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 경을 발견하고 경악하여 영선의 몸을 밀치고 다급히 이 경을 끌어 안았다. 영선이 무기력하게 비틀거리면서 그 뒤로 물러난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폐하!"
이 경은 답이 없었다. 오 상환의 얼굴에서 피가 싹 가신다. 궁인들이 다급히 우르르 몰려와 영선과 이 경의 사이를 가르고 이 경에게 달라붙었다. 영선이 멍하게 그것을 바라본다. 죽은 사람처럼 손을 떨구는 이 경의 모습을 바라본다. 얕은 문 밖으로 흘러 나온 영선의 불손한 목소리가 궁인들의 귀에 똑똑히 못박혔었다. 오 상환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영선을 노려보았다.
"이러고도 살아나가길 원하십니까."
자식을 베고도 이 경에게 충정을 바쳤었던 만큼 노견은 주군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있었다. 영선이 새하얀 이 경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새파란 입술에, 그 부푼 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오 상환의 얼굴이 야차처럼 흉흉해진다. 오 상환이 버럭 소리질렀다.
"폐하에게 위해를 끼친 대역죄인을 추포해라!"
무장을 한 병사들이 우수수 몰려와 양 팔을 잡아 끌 때까지 영선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이 경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질질 끌려가면서도 영선은 궁인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이 경을 되돌아 보면서 그를 응시했다. 이 경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했다. 손이 무기력하게 침대 밖으로 떨구어져 있었다.
============================ 작품 후기 ============================
댓글 감사드립니다. 지금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완결후기로 미룰게요ㅎ..
이굥이 몸이 안좋은 건 채요 향을 못맡아서였구용 후반에 다시 몸이 좋아진 것은 입덧과 같이 페로몬 찾는 시기가 끝나서... 영선이는요 이굥이가 자신의 향을 맡으면 불안해하는 것을 알고 그를 만지려고도 하지 않고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배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