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8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추국장이 마련되고 현장에서 추포된 영선이 그에 끌려가 추궁을 받았다. 그가 귀비이고 황제가 아끼는 후궁이기에 처음에는 고신을 않으려 정중하게 그를 대했던 고문관이 이윽고 입을 굳게 다물고 텅빈 눈을 한 영선에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그를 협박했다. 이렇게 계속 있으면 고신을 당할 거라고, 아마 끔찍한 고통이 그를 장악할 것이라고 겁박하였으나 영선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비빈의 몸에 손을 댈수가 없으므로 가할 수 있는 형벌의 종류가 많지 않았다. 손가락 마디 사이에 대나무를 끼어놓고 줄을 엮었으니 병사 둘이 그 둘을 양 끝에서 잡고 있었다. 곧 힘껏 줄을 당기자 영선의 잇새에서 죽인 신음이 새어 나온다. 영선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리고 일각의 고문 끝에 병사들이 끈을 놓고 당황하여 어리둥절하여 주위를 살폈다. 영선이 아픈 손을 붙잡고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오 상환이 핏기가 가신 창백한 얼굴로 서있었다. 영선이 그를 바라본다. 검을 손에 꾹 쥔 오 상환의 눈이 충혈되었었다. 상환이 이를 악물고 감정을 억눌러 말한다.
"따라 오십시오."
영선이 홀린듯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비틀거리면서 상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이 경이 추국을 황급히 금지시키고 영선을 태양전에 부른다. 영선이 태양전의 안에 들어갔을 때 그는 미칠듯한 불안감에 침을 삼켰다. 시립한 궁인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몸을 조아리고 있다. 류 태감의 얼굴에 핏기가 없이 싸늘했다. 가끔씩 흐느낌이 들리고 영선이 귀에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안감을 느끼고 침을 삼킨다. 바로 궁인들을 잡아 흔들고 이 경이 무사하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지극하나 영선은 차마 그러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이 경을 바라본다.
이 경이 평온한 얼굴로 침상 위에 앉아 있었다. 이 경이 고개를 들어 영선을 바라본다. 흰 침의를 입고 있는 이 경의 얼굴은 창백하였으나 더 이상의 동요가 없이 고요한 모양새였다.
"왔느냐."
이 경이 손짓을 한다. 한참을 그곳에 서서 이 경을 바라보던 영선이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그의 말을 따랐다. 침상 곁으로 다가가서 영선은 그 주위의 의자에 앉고 잠시 말없이 이 경을 보았다. 이 경의 얼굴은 시체와도 같았다.
이 경이 잠시 말을 고르다가 힘빠진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곳에는 깊은 체념과 후회가 있었다.
"너에게 진실을 원했으나 막상 나는 그것을 피했다."
영선이 말없이 이 경을 본다. 이 경이 어두운 얼굴로 말을 읇조린다.
"두려웠지. 모든 것이 두려웠어."
영선은 의자에 앉아서 말이 없었다. 이 경이 그에 신경쓰지 않고 말을 잇는다.
"그래서 나는 중반쯤에는 거의 이 아이가 네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아니 막상 낳으면 부드러운 주황색 머리카락을 가졌을 것이라는 어리석인 희망에 휩싸여 있었다."
"......"
"나는 겁쟁이었고 또 어리석었어."
"......"
"어리석었어. 영선아. 나는 정말 미숙했거든."
이 경이 담담하게 말했다.
"미안하다. 정말로."
영선의 미간이 꿈틀거린다. 이 경이 동요없이 차분한 시선을 하여 그를 보고 있었다.
"너를 놓아주기 싫었다. 미칠듯이 싫었고 죽을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너가 불연듯 떠나갈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솔직하게 말을 하는 이 경은 입을 다물고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영선이 몸을 떨면서 이 경의 배를 보고 있었다. 한참의 침묵이 이어지고 이 경이 미미한 미소를 띄면서 힘빠진 목소리로 말을 한다.
"너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
영선은 이 경의 얼굴에서 두려움을 읽고 침묵한다. 이 경은 겁에 질린 두 눈으로 영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이 쥔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담담하게 말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이 경이 동요하는 것이 영선에게 바로 느껴졌다. 이 경이 울컥임을 참고 웃으려고 노력했다.
"너를 놓아주겠다."
목이 맥힌 소리가 들려온다. 이 경이 감정을 억누르려 하고 간신히 이어진 말을 내뱉었다. 영선이 멍하게 그 얼굴을 바라본다.
"내가 너에게 못된 짓을 많이 저질렀구나."
그리고 근처에서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영선이 그 때 표정이 굳어져서 이 경의 손을 본다. 손등까지 창백하여 떨림을 참지 못하고 있다. 궁인이 황급히 입을 막고 있었다. 류 태감의 눈이 부릅 떠져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영선이 그 때 태양전에 다다렀을 때부터 그에게 스멀하게 찾아왔던 불길함을 다시 느끼곤 눈을 날카롭게 뜬다.
이 경이 창백하게 웃으면서 영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갈라지고 부르튼 입술을 달싹인다.
"한번만 다시 믿어주면 안될까?"
영선이 이 경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그에게로 달려든다. 이 경을 잡아챈 영선이 바로 그의 몸을 누르고 손으로 바로 그의 입을 벌려 그 가운데에 중지를 집어 넣었다. 이 경이 갑작스럽게 입 안이 후벼져서 컥컥 거리면서 영선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영선이 이를 악물고 소리친다.
"뱉어!!!"
그제서야 궁인들이 엉엉 거리면서 우는 소리가 난다. 류 태감이 그제서야 흐느끼면서 바닥에 엎어져서 비통하게 울고 있었따. 영선이 충혈된 눈으로 이 경의 몸을 꽉 잡아채고 믿을 수 없이 강한 힘으로 그를 옥죄었다. 이 경이 영선의 팔을 잡아 뜯으려고 팔을 할퀴다면서 몸부림을 쳤다. 영선이 그를 놓지 않고 몸을 숙이게 하곤 혀뿌리를 중지로 긁었다.
"컥, 커억..."
이 경이 충혈된 눈에 눈물을 흘린다. 영선이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면서 목구멍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몸을 고꾸라트리면서 힘겹게 토악질을 하는 이 경을 충혈된 눈으로 노려본다. 이 경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도리질을 하며 영선의 옷을 쥐어 뜯는다.
"싫어, 싫다... 그, 그만!"
영선이 이를 악물고 이 경의 등을 쓸었다. 이 경이 정신을 잃고 눈물을 흘리면서 울부짖는다.
"놓거라. 영선아, 날 놓아줘.."
이 경이 옷자락을 잡고 그를 밀치려고 했을 때 영선은 끝까지 그를 잡고 버텨 놓지 않았다. 이 경이 결국 구토를 하여 바닥에 위액 섞인 멀건 탕액을 토하는 것을 바라본다. 영선이 그를 보고 이를 악물고 주먹쥔 손을 떨었다.
"대체... 왜..."
영선이 참지 못해서 이를 아득 문다. 몸을 파르르 떨고 고개를 숙인 이 경의 어깨를 잡아챈 영선이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여 이 경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소리쳤다.
"왜 탕약을 마셨습니까? 왜?!?!"
이 경이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이 경을 한참을, 한창을 노려보던 영선이 이윽고 떨리는 손을 놓았다. 이 경이 영선에게서 멀어지려 뒤로 물러난다. 영선이 멍하게 이 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희를 잃고 가슴 아파하셨잖아요."
이 경이 눈을 꾹 감고 뜨지 않는다. 기운이 빠진 이 경에게 궁인들이 달라붙어서 입술을 닦고 물을 건넨다.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반쯤 잃어 헐떡거리는 이 경에게 영선이 갈라지고 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 상황에서도 아이를 지키고자 하셨잖아요. 저랑 황후에게서 아이를 거부당한 그 상황에서도, 희를 원했잖아요."
영선이 말없이 이 경을 바라본다. 곧 잠시 힘든 미소를 짓던 이 경이 쓰라린 얼굴을 했다. 이 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영선은 충혈된 눈으로 이 경을 노려보고 있었다. 몸에 근육을 긴장시키며 이 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격렬한 감정이 몰아치는 것에 참지 못하여 이 경을 꿰뚫듯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
이 경이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친 이 경의 얼굴을 노려보던 영선이 펴진 손가락을 말아 꾹 쥐고 더듬 거리면서 말한다.
"잠시, 시간을.."
이 경이 두 눈을 감았다.
"시간을 주십시오."
영선은 관저궁으로 돌아가서 그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둑한 얼굴로 창가에 앉은 영선은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보면서 가라앉은 눈을 했다. 석 형일도, 계자도, 그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못했고 영선은 초여름에 매미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턱을 괴고 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곧 물이 흐르는 소리도 들은 것 같았다. 영선이 문득 과거를 생각하며 눈을 꾹 감았다.
사람이 지치기엔 충분한 시간동안 자리를 떼지 않았다. 이 경은 그동안 죽은 사람처럼 침상 위에서 누워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고 영선은 그 자리에서 돌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를 않았다. 어둑해진 하늘과 해가 사라지고 빛이 들지 않을 무렵 식사를 거른 그가 걱정되어 얼쩡거리더라도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죽음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이 경이 눈을 감고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진짜 그 아이 자식일것만 같았어."
류 태감이 오랜 침묵 끝에 말을 거는 이 경에 놀라 반문한다.
"예?"
이 경이 쓰게 웃으면서 손을 떼고 말한다.
"글쎄다. 그냥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영선이를 닮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영선이 다정하게 챙겨주었으니 그런 착각을 한 것인가. 이 경이 사형선고를 받기 직전의 사람과도 같은 불안감을 느끼고 그러나 떨리는 손을 애써 감싸쥔다. 이 경은 이미 선택권을 넘겨 주었다. 몸은 분명 영선을 거부했으나 어쩐지 이 경은 중간 쯤에는 정말로 그 아이가 영선의 자식이라고 믿고야 말았다. 미친 사람과도 같이 그렇게 믿고 나중에는 심지어 걱정마저 하지 않고 령을 그 아이의 자식으로 생각했다. 그저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영선이 한참 뒤에 자정 쯤에서야 태양전의 문을 열었다. 문지방에서 새하얀 얼굴을 한 영선이 말없이 그를 보고 있었다. 어쩐지 창백한 얼굴이었으나 그는 어쩐지 마음의 짐을 덜어 가벼워보였다. 이 경이 긴장하여 두려운 눈으로 그를 보았을 때 영선이 새파란 입술을 달싹였다.
"사람에게 세 번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에게 폭행을 하였을 때, 저는 폐하의 어죽을 먹고 한 번의 기회를 드렸습니다. 심 운화 사건 때 모과를 죽이고 저에게 협박을 하였을 때, 저는 전국옥새를 받고 또 한 번의 기회를 드렸습니다."
숨을 멈추고 영선이 가느다란 한숨을 내뱉는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 경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영선을 바라본다. 멍하게 그 얼굴을 보아 안색을 살피던 이 경이 왈칵 눈물을 흘렸다.
"응, 영선아. 정말 그럴게. 내가 앞으로는 정말 너를.. 실망시키지 않으마. 너에게 잘 하겠다. 영선아, 내가 잘못했다."
영선이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 경을 보고 있었다. 이 경이 참지 못하고 영선의 소매를 잡아 당기면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잘못했다. 영선아. 내가 다 잘못했다."
영선이 빠르게 말했다.
"령은 제 아이입니다. 제 아이로 채요와는 상관없습니다."
"알, 알겠다. 알겠다.."
영선이 이를 악물고 언성을 높혀서 말한다.
"그 아무도 사랑하지 마세요! 그리고 다시는 제 허락 없이 다른 누구와 몸을 섞지 마세요."
이 경이 울먹거리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이 경이 환하게 웃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영선을 바라보고 더듬던 이 경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영선이 떨리는 손을 들어 잠시 망설이다가 이 경을 껴안았다. 곧 끌어안은 영선이 이 경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를 있는 힘껏 붙잡아 얼굴을 비비면서 울었다. 이 경이 곧 울면서 중얼거렸다.
"각인하자."
이 경이 다시 한번 소리내어서 말한다.
"각인하자, 영선아. 각인하자."
영선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이 경을 거칠게 끌어 안았다. 이 경이 연신 그 말을 중얼거리면서 이성을 잃고 울고 있었다. 영선을 끌어안으면서 이 경이 끊임없이 되뇌었다.
"내가 너에게 각인하겠다. 우리 각인하자. 각인해서, 그래서, 우리 아이도 가지자."
영선이 어린아이처럼 칭얼대고 정신을 잃고 말을 하는 이 경의 머리를 꾹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이 경이 한참을 진정을 못하고 끊임없이 영선의 옷자락을 잡고 중얼거렸다. 영선이 눈을 꾹 감고 몸을 파르르 떤다. 영선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다시 다정한 빛을 눈에 띄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영선이 눈매를 휘어 웃었다. 눈꼬리에서 눈물이 매달렸다가 두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