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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112/148)

00112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괜찮다."

 부푼 배를 끌어 안으면서 끊임없이 영선을 안심시킨다. 그러나 영선은 이 경의 창백한 안색과 송골맺힌 땀을 알아 침묵했다. 이 경은 연신 괜찮다를 반복하여 말했으나 안색은 그저 편치 않았다. 호위대의 대원들이 이 경을 원을 그려 호위하여 길을 뚫고 있었다. 당왕의 습격이라는 말 답지 않게 군사는 보이지 않고 짚을 태운 연기만이 가득했으나 호위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 경이 오 상환의 뒤에서 버럭 소리질렀다.

"내 검!"

 영선이 그들 옆에 바로 자리한 호위의 허리춤에 묶인 검에 손을 대는 이 경을 보면서 기겁하여 이 경의 손을 찰싹였다.

"산달인 산부가 검을 휘두를 셈입니까?"

 오 상환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폐하께서 검을 잡으시는 그 순간 가망이 없습니다!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이 경이 그 말에 이를 악물면서 손을 거둔다. 말마따나 배가 부를대로 부른 이 경은 걷는 것도 장기가 눌려 버거운 상황이었고 평소의 건강한 몸이라면 제 몸 건사하는 것은 일도 아닌 이 경은 자신보다 체구가 호리한 영선에게 의지하여 걷고 있었다.이 경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로 가는 거냐."

 주위를 경계하는 오 상환의 이마에 땀이 맺힌다. 그가 날카로운 눈매로 비명을 지르면서 뛰쳐가는 궁인들을 샅샅이 살핀다. 혹여라도 기습을 할까봐 상환은 낯익은 얼굴이라도 그 스쳐가는 이들을 하나하나를 경계하는 중이었다.

"어디서인가 당왕이 낭인들을 부려 황성 안에 어림잡아 백명이 넘는 되는 무리들을 침투시켰습니다. 관저궁에 불을 지르고 암살하려는 것을 황급히 잡았습니다."

"백명?"

 이 경이 기가 막혀서 소리쳤다.

"고작 백명에 이렇게.."

 상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밤이옵고 어림군들은 황성의 외곽과 태양전에 거의 몰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도 이윽고 사태를 깨닫고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황실 호위대가 이 경을 호위하나 이 경의 주력인 어림군은 황성의 문을 지키려 그곳 외곽을 둘레로 자리하였고 그들이 주둔하는 곳은 외전과 태양전의 처소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관저궁에 있던 이 경은 지금 소수의 친위대에게만 보호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경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영선의 손을 꾹 잡고 뒤로 숨긴다. 영선이 이 경의 팔을 꽉 잡고 흔들린 눈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낭인들은 궁 안에 들어왔다. 오 상환의 얼굴에는 피가 드문하게 묻어 있었다.

"뿔뿔히 흩어져서 어쩐 일인지 내성의 지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몇몇을 죽였지만 다른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어림군이 있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상환은 이 경에게 대답을 주지 않았고 이 경은 땀이 범벅인 손으로 영선의 손을 꽉 잡고 중얼거렸다.

"괜찮다, 영선아."

 영선이 말없이 그 손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이 경이 불안정하게 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영선이 그 손을 꽉 쥐고 날카롭게 눈을 치켜뜨며 주위를 살폈다. 이 경이 침의 위에 검은 밋밋한 장포를 걸친다. 영선 또한 침의 위에 사가의 평복과 흡사한 검은 장포를 걸치면서 갓으로 머리를 가렸다. 영선이 손을 들어 경의 머리 위에 꽂혀진 황룡이 양각된 동곳을 뺐다. 손을 떨궈 바닥에 버린 영선이 이 경의 팔을 꽉 잡고 그를 부축했다.

 이 경이 팔을 잡은 영선의 손길에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어 영선의 부축을 받으면서 자리를 뜬다. 이 경이 이를 악물면서 증오의 말을 내뱉었다.

"이 작교... 끝까지..."

 죽여 놓았던 증오의 감정이 셈솟는다. 이 경이 문득 종수궁에서 나는 연기와 소란을 발견한다. 영선이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입매를 딱딱히 굳혔다. 견 진은 살았는가, 죽었는가. 영선은 그러나 곧 머리를 휘젓고 이 경을 이끌고 상환을 따랐다.

 훈련을 받은 호위대는 검은 평복을 입어 어둠에 가려지고 있었다. 궁이 불타고 비명을 지르는 궁인들이 뛰어다닌다. 낭인의 시체가 몇몇이 있고 곧 몇몇이 황급히 무언가를 소리지르고 있었다. 이 경이 핏발을 서서 분기에 차 주먹을 쥔다. 혹여라도 그가 검을 들고 뛰쳐나갈까 두려워 영선의 그의 손목을 잡아 눌렀다.

 이 경이 억누른 신음을 잇새에 내뱉는다. 영선이 애써 그의 팔짱을 꽉 잡고 꺾여진 길을 돈다. 이 경이 그곳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끌려갔다. 영선이 참다못해 소리 질렀다.

"령이를 생각하세요!"

 이 경이 그제서야 충혈된 눈으로 영선을 잠시 보다가 몸을 파르르 떨면서 배를 만진다. 이 경이 중얼거렸다.

"이 작교가 짐의 사람을 죽인다. 이 작교가 짐의 사람을 해하고 있어."

 이 경의 눈에 증오가 스쳤다. 태어날 때부터 그의 적이었던 사내가 이 황성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경이 분노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드디어 이 작교가 발톱을 드러냈다!"

 영선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간간히 습격하는 무리들이 있었으나 다섯명 내의 조를 짠 이들이 전부일뿐이다. 영선은 보다 못해 호위에게 장포를 하나 건내받아 이 경의 머리에 쓰여 시야를 가렸다. 그를 끌어안고 영선이 앞을 바라본다.

 육궁에서 외전으로 나아가는 중간에 태양전이 있었다. 그를 지나 비상사태에 보고 받은 어림군들이 대궐 앞 넓은 공간에 꽉꽉 채워져 있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창과 활로 무장한 이들이 믿음직스럽게 등불에 빛춰진 은빛 물결을 흘리고 있었다. 이들이 마음을 놓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 상환이 안심하여 그들에게 달려갔다. 영선이 그 때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딱딱히 굳혔다. 어림군 총독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만!"

 상환이 그를 듣지 않았다.

"총독은 어디에 있나!"

 그리고 앞줄에 있던 이들이 몸을 숙였다. 영선이 그들이 들고있는 활을 눈치챈다. 활은 살상능력이 뛰어나 다른 냉병기와 다르게 오직 국가에서만 관리되었다. 화살촉이 정방형이었다. 영선은 국군이 쓰는 활촉의 끝이 꺾여 있는 것을 알았다. 영선이 이 경을 잡고 미친듯이 그를 당겼다. 태양전의 기둥 뒤에 이 경을 밀치고 영선이 몸을 구부린다.

 곧 화살이 하늘을 덮는 소리가 났다. 이 경이 불안감에 차서 소리친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야?!"

 영선이 이를 악물고 이 경의 머리를 품에 안는다. 이 경이 몸부림치면서 저항하는 것에 영선이 핏발 선 눈을 하고 품에 그를 옥죈다. 영선이 대전 앞을 살핀다. 화살에 맞은 상환이 경악에 차서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다. 호위대가 쓰러진다. 영선이 숨을 거칠게 쉬며 이 경을 끌어 안는다. 앞이 보이지 않아 이 경의 영선의 팔에 잡고 매달렸다. 불안해하는 이 경이 몸을 떨고 있었다.

 어림군의 갑옷과 흡사하나 다르다. 은색의 갑옷 위에 금빛이 미미하게 감도는 어림군과는 다르게 그 갑옷의 색은 어두웠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소란이 일었다. 영선이 상황을 살피면서 숨을 죽였다. 금위군의 앞이 검은빛의 갑옷이었다. 그 뒤가 웅성이다가 상황을 알아채고 경악하여 창을 겨누어 정확히 어림군과 가짜 어림군이 삼대 칠의 병력으로 나뉘어져 서로를 겨누고 있었다.

'이 많은 병력이 도대체?'

 영선이 숨을 거칠게 쉰다. 저 멀리서 나머지 어림군들과 어림군 총독이 그들을 포위하는 것이 보였다. 어림군 총독에게 몸을 웅크려 등에 빼곡한 화살을 맞은 상환이 입에 피를 흘리고 충혈된 눈을 하여 소리친다.

"화살을 쏘지 마시오!!"

 영선이 입술을 깨물고 아찔함을 느꼈다. 영선이 속으로 탄식하면서 상환의 어리석음을 원망했다. 상환은 불안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화살을 쏘지 마라!!"

 총독이 화살을 물리고 이 작교가 확신하여 두 눈을 빛낸다. 영선이 이 경을 꾹 잡아 그를 품에 가두었다. 이 경이 숨을 죽인다. 상환은 이 경이 이곳에 있음을 적들에게 확신시켜주었다. 이 경을 원한 결정이 적들에게 이 경이 이 자리에 있음을 확언했으니 곧 어림독 총독이 못박아 소리쳤다. 영선이 눈을 감는다. 돌이킬 수가 없다. 이젠 이 경과 영선은 사냥감이었다.

"폐하를 구출하라!"

"와아아아!"

 어림군들이 부딪힌다. 곧 우수수 몰리는 이들이 냉병기가 부딪히는 살벌한 소리를 냈다. 비명소리와 함께 큰 소란이 일었다. 중간에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는 이들이 소리쳤다.

 이 경을 찾아라!! 폐하를 찾아라!!! 황제를 찾아라!!!

 어느 순간 낭인들의 무리가 태양전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림군이 발이 묶이고 병장기를 든 낭인들이 태양전으로 이 경을 죽이기 위해 오고 있었다. 영선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어서 이 경의 천을 벗기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이 경의 볼을 감싸쥐었다.

"태양전에 숨어."

 영선이 별빛이 흐르는 듯한 찬란한 눈으로 이 경을 응시했다. 그것에서 이 경이 시선을 떼지 못한다. 영선이 눈을 휘며 웃었다.

"잘 들어요. 저기는 지금 빠져나가지 못하고 당신이 이 전투의 승리의 열쇠야."

 이 경이 영선의 손을 붙잡고 넋을 잃어 중얼거린다.

"너는?"

 영선이 이 경의 볼을 단단히 틀어쥐고 소리쳤다.

"숨어서 시간을 얻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당신이 버텨!"

 이 경이 악을 쓰면서 말한다.

"그러면 너는?!"

 영선이 이 경의 볼을 쓰담더니 잠시 침묵했다. 이 경을 바라보며 생각하던 영선이 그 눈가를 다정하게 쓸고 눈매에 입을 맞췄다. 이 경이 불안하여 몸을 떨면서 소리친다.

"대답해라, 너는.."

"첩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지요(女爲悦己者容)"

 영선이 문득 밝은 황갈색의 두 눈에 부드러운 빛을 띈다. 다각의 색이 묘채로운 눈이 이 경을 담았다. 이 경이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영선이 이 경을 가볍게 밀치면서 뒷걸음질 친다. 이 경이 비틀거리면서 무심코 배를 감싸쥐고 정면을 바라보았을 때 이 경을 잠시 바라보던 영선이 갓끈을 고쳐 묶었다.

 이 경이 붉어진 눈을 하고 그를 향해 달려갈려할 때 영선이 그에게 검지 끝을 내민다. 영선의 얼굴은 온화했으나 엄정했다. 초연한 얼굴에는 다정함이 있었으나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짐한 영선의 얼굴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 경이 무어라 말을 하기전에 영선이 말했다.

"돌아오겠습니다."

 이 경이 이를 악문다. 충혈된 눈으로 주먹을 말아쥐고 몸을 떤다. 영선이 장포의 소매를 찢어 발겨 고난당한 모양새를 취한다. 침의 서매 위에 황룡이 그려져 있었다. 황룡패용을 허가받은 영선의 침의 위에 황제만이 쓸 수 있는 용이 그려져 있었다. 호리한 몸을 헐렁한 검은 장포가 덮어 내린다. 이 경이 무어라고 말을 하기전에 영선이 속삭이듯이 말했다.

"저 곳에서 홀로 잘 버텨주세요. 우리를 위해 시간과 싸워주세요."

 이 경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이 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꼭 돌아와야 한다."

 영선이 말없이 등을 보여 달려간다. 이 경이 짐승이 죽어가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그것을 바라보며 몸을 웅크린다. 배를 잡고 헐떡거린 이 경이 충혈된 눈으로 사라져가는 영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격정이 몸을 떨어 그를 두렵게 만든다. 그러나 비틀거리면서 이 경이 기둥을 손톱으로 긁어 일어난다. 이 경이 태양전을 노려본다. 궁인들이 아는 뒷문을 향해 이 경이 자리를 박차고 달려갔다.

============================ 작품 후기 ============================

조금 길어져서 분할했네오.

19화를 보시면 비밀통로는 황실의 안주인들에게 전수되었다고 서술되었습니다. 태후가 죽고 소성황후가 죽으며 이 작교에게 누설했습니다. 그 비밀을 인온황후가 알지 못하여서 황실에는

 전승이 끊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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