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148)

00114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수회지에서 울고 있었다. 무기력함을 참을 수 없던 날이면 이 작교는 수회지의 낡은 배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그 때 이 작교는 동생을 생각할 때도 있었고 가끔 이 경으로 인하여 교류가 끊긴 옛 친구를 생각할 때가 있었으며 특히나 힘없이 손목을 늘어트려 창백한 웃음을 짓는 모후를 생각할 때가 많았다. 생각할 거리는 많았다. 이 작교의 인생은 항상 고통이 가득했으니까. 나이가 먹어서도 이 작교는 어린아이처럼 웅크려 울었다.

 가장 힘든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단 것이었다. 비밀통로? 알아도 이 작교는 겁을 냈다. 이 경은 그를 학대했고 이 작교는 길들여진 개였으니까. 겁먹은 개는 조련사에게 짖지 못한다. 이 경은 이 작교를 그렇게 길들였다. 이 작교가 운다. 울면서 웃는다. 나이가 먹어 이 작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그냥 죽어가겠지.'

 이 경의 뺨을 친다. 무기력하게 떠밀려 입술이 터진다. 한번도 폭력을 휘두른적 없는 이 작교가 홀린듯이 다시 손을 들어 내리쳤다. 그 강하던 이 경이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도 못하고 고개를 꺾고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옥좌 아래로 내려간 이 작교가 이 경의 멱살을 잡아 올리고 있다. 그가 중얼거렸다.

"왜 그랬지?"

 수회지에서 울었을 그 때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모후에 비견될만큼 아름다운 청년이 갸웃하여 그를 보고 있었다. 이 작교는 그 만남을 잊지 못한다. 진아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이 작교를 보았다.

 이 작교가 손을 다시 휘두른다. 철썩, 소리와 함께 이 경의 고개가 돌아간다. 뺨이 붉게 물들고 이 경이 이윽고 정신을 차려 흐릿한 눈에 다시 초점을 맞추었다. 이 경이 다시 손을 들어 내리치려는 것에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견 진이... 죽었나..."

 이 작교의 눈이 충혈된다. 저 허공으로 치켜뜬 손이 파들거렸다. 이 작교가 그를 내팽겨치면서 울부짖었다.

"그래!!!"

 그저 작게 그 안에서 싹튼 복수심이었다. 이 경에 대한 원망의 씨앗이 발아하여 이 작교를 움직였다. 제 귓바퀴를 핥고 깨무는 견 진이 이 작교에게 다급히 매달렸다. 경국지색의 미인이 그를 껴안고 사랑을 갈구하여 애달파할 때 이 작교는 견 진에게 그저 말없이 웃으면서 몸을 내어주었다.

 그저 이 경이 괴로웠으면 했다. 이 작교 자신이 괴로웠던 것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조금이라도 괴로워했으면 했다.

 쾅!!

 이 작교가 분노에 차서 이 경의 앞에서 발을 굴러 소리쳤다.

"나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그 어리석고 가여운 아이는 숨을 끊었어!! 내가,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도..."

"이 작교 너는 역시 멍청해..."

 이 경이 엎드린 상태에서 중얼거린다. 이 작교에 눈에 광기가 일렁인다. 그 말에 냉수를 끼얹은 듯이 머릿 속이 정리되어 차가워진 이 작교가 바로 음산하게 웃는다.

"이 경. 너는 정말 밉고 증오스럽지만 우리가 핏줄이란 사실은 부인하기 힘든가보다."

 이 작교가 뜸을 들이다가 달콤하게 웃었다.

"이제 네가 내 손에 잡혔고 나는 진진에게 사죄할 수 있게 되었어. 진아에게 너무나도 못되게 굴었어. 진아에게 너무 못되게 굴었지."

 잠시 말을 멈추고 이 작교의 눈이 흐려졌다. 과거를 상념한다. 진이 사랑을 말할 때 이 작교는 거짓으로 사랑을 말했다. 같은 양인인 진에게 안기는 것을 역겹게 여겼다. 양인이면서 같은 사내 양인에게 다리를 벌려 그를 받는 것에 창부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더럽게 생명을 연명하고 복수하는 법도 정말 치졸하구나. 내가 이렇게까지 밑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견 진은 어땠지? 그 과거가 어떠했느냔 말이다. 이 작교가 헛웃었다. 매화가 필 때면 잠을 자다가 견 진이 매미깃같이 부드럽게 얇은 머리카락을 늘어트리며 이 작교에게 팔짱을 켰다. 긴 침상 위에 둘이 엉켜붙어 누우면서 창 밖을 응시했다. 깍깍, 새 우는 소리를 듣고 견 진이 이 작교의 얼굴을 홀린듯이 보며 손을 들어 매만졌다. 이 작교는 말이 없었으며 견 진은 이 작교의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무어라 속삭였다.

 쾅!!

 이 작교가 이 경의 머리채를 잡고 그의 이마를 바닥에 찧는다. 이 경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억눌린 신음을 낸다. 그럼에도 이 경이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이 작교를 쏘아보고 있었다. 이 경이 비틀린 웃음을 짓는다.

 이 경은 깨달았다. 눈이 돌아간 이 작교가 이 경을 살려둘 것인가. 결국 그를 손아귀에 넣은 이 작교는 그 사랑하던 견 진의 자식인 이 영오도 죽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이 작교가 황제가 되어야 했으니까. 황손들을 다 쳐죽이고 그가 황제가 될 것이다.

 사랑이라? 웃기는군.

 이 경이 목숨을 포기하여 코웃음친다. 이 경이 코에 피를 줄줄 흘린채로 조소를 흘렸다.

"이제와서 내 잘못이라고? 커흑...!"

 이 작교가 다시 손을 휘두른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작교가 광기에 휩싸여서 중얼거린다.

"그래."

 이 작교가 입술을 비틀어 기괴하게 웃는다. 항상 온화하고 은은한 향취가 났던 이 작교가 광인과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고 있었다. 불룩 솟은 배가 닿지 않도록 몸을 웅크린 이 경이 악 소리를 내면서 옆으로 쓰러졌다. 이 작교가 그의 옆구리를 걷어찬 것이었다. 이 경의 얼굴이 새하얘진다. 이 경이 이를 악물고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 이작교...!"

"네 잘못이야."

 이 작교가 홀린 눈으로 그것을 본다. 발을 들어 이 작교가 이 경의 머리를 짓이긴다.

"내 동생이 독살당해서 내 품에 피를 토하면서 관절이 굳어 죽어간 것은 누구 잘못이지?"

"끄윽...끅..."

 이 경이 짐승 같은 신음을 흘린다. 이 작교가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너야. 너가 있어서 그랬어."

 이 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머리를 짓이게는 발은 잔악했다. 이 경이 몸을 덜덜 떤다. 이 작교가 속삭이듯이 말한다.

"불임인 아내를 내게 주었지. 나는 자식을 가지지도 못하고 안지도 못했어. 내 피붙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 연교가 죽고 아무도 없었으니까."

 이 경이 성질을 참지못해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

"영, 영오를 잘 대해주지 그러냐...아악!!"

 작교가 힘을 주어 이 경의 머리를 내리 찧게 한다. 이 경의 코에서 피가 왈칵 흘러나왔다. 피에 젖어서 이 경이 증오를 담아 작교를 노려본다. 그것을 본 이 작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 경이 입술을 비틀고 낮게 웃어 말했다. 이 작교의 손이 떨려왔다.

"영오는, 어차피 죽일거면서.. 왜 외면하지? 네 알량한 사랑의 가치란...아악!"

"닥쳐!!"

 이 작교가 이 경의 뺨을 친다. 이 경이 바로 눈에 쌍심지를 켜며 이 작교를 노려보았다.

"견 진이 생전에 얼마나 그를 아꼈는지 모르지?! 영오만을 살려달라면서 나에게 빌었어!"

"닥쳐, 닥쳐!!!"

"영, 영오만을, 영오만을 살려달라면서.. 으하하하.. 이 작교, 네, 네가 결국 죽일건데... 견 진이 나에게 빌었지, 큿.."

 미친 듯이 그의 뺨을 내리치는 작교의 눈에 핏발이 서있다. 이 경이 기가 죽지 않고 그를 노려보면서 조소했다. 비웃는 이 경의 눈에 승자의 여유가 스친다. 꼴이 엉망이 되고도 이 작교는 덜덜 손을 떨고 있엇고 이 경은 웃고 있었다. 결국 이 작교가 격정을 참지 못하고 이 경의 목을 졸랐다.

"끅, 끄윽..."

"네가 뭘 알아!!"

 이 경이 이 작교의 손을 버둥거리면서 붙잡는다. 목젖을 누르고 이 작교가 붉어진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귀신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저것이 단정하고 고고하던 이 작교의 모습이다. 이 경은 만족감을 느껴서 웃었다. 입에서 거품이 흐르고 있었다. 이 경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숨을 못 쉬어서 허옇게 뜬 얼굴을 노려보면서 이 작교가 증오를 토해낸다.

"요리도!! 량천도!! 안사 그 아이도!! 네가 내가 소중하게 여긴 모든 것을 망쳤어!!"

"끄으윽.."

"차라리 죽이지 그랬어! 왜?! 왜 나에게 그랬어?! 왜?! 내가 뭘 어쨌다고? 너한테 하란대로 다 했잖아! 바짝 엎드리고 복종했잖아!!"

 이 작교의 하얗고 매끄러운 손등에 손톱이 박혀 피가 흐른다. 이 작교가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이 폐부를 찢는 음성을 낸다.

"왜 나에게 그렇게까지 가혹했어!!"

 이 경이 거의 다 죽어갈 때에 이 작교가 손을 놓는다. 헐떡이며 이 작교가 한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아래에서 목을 붙잡고 숨을 고르는 이 경의 눈이 허옇다. 이 경이 배를 잡고 움찔거리고 있었다. 이 작교가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영오는 죽일 수 밖에 없지."

 영오가 산다면 작교도 죽는다. 영오는 증오스러운 이 경의 피가 섞인 그를 위해서 죽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작교는 견 진의 피가 섞인 그를 미워할 수가 없어 중얼거린다.

"너를 죽여 견 진을 위로하고 그 아이를 죽여서 영오를 위로해야지."

 이 경의 벌려진 입 사이로 침이 흐른다. 이 경이 탁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 작교가 음산히 웃어 아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이 나라에서 제일 가는 국향이 인온황후의 도화향이라는 것을 들어본적이 있을테지?"

 이 작교가 광인처럼 날뛰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던 검을 든 무리들이 웅성인다. 그 중 하나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아, 예.. 그렇죠."

 이 작교가 무슨 의도로 말을 하는 줄은 알겠으나 이 경의 부풀어오른 배나 추레한 모습, 사납게 생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던 그가 떫은 표정을 짓는다. 이 작교가 숨을 참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애가 떨어질 때까지 돌려서 범해!"

"......"

"본왕의 말이 들리지 않는가?!"

 품에 안기에 큰 몸뚱아리에다가 있던 성욕도 죽을 만큼의 몰골을 한 이 경이 탐탁찮아 머뭇거리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 이 경에게 우르르 다가갔다. 서슬 퍼런 목소리에 덩치 큰 중년 사내를 안게 된 이들의 얼굴이 좋지 못했다. 이 경의 몸이 움츠려진다. 이 경이 탁한 웃음을 흘리곤 이 작교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온 것이 그가 초래한 결과인가. 이 경은 배에 손을 올리고 바닥에 엎어져 몸을 떤다. 자신의 옷을 거칠게 벗기는 손길에 저항하지 않고 이 경은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그리고 이어진 목소리에 이 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신귀비?"

 바닥을 짚은 손이 떨린다. 이 경이 고개를 확 꺾어 이 작교를 올려다본다. 이 작교가 그제서야 반응하는 이 경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래야지. 이 경이 괴로워해야지. 이 작교가 이 경의 약점을 파고 든다. 이 작교가 음산하게 웃었다.

"가져와."

 이 경의 시간이 멈췄다.

 그가 보여준 것은 피에 젖은 갓이었다. 이 작교가 그를 보며 여유롭게 그것을 발치에 던진다. 멍하게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바라보던 이 경이 어느 순간 몸부림을 쳤다. 애초에 힘이 거세고 무인인 이 경의 팔에 맞은 낭인들이 떨어져 나간다. 옷이 반쯤 벗겨진 채로 이 경이 이 작교에게 달려들려는 것을 한무리의 사내들이 그의 목에 팔을 둘러 제압했다. 꺽꺽 거리면서 이 경이 버둥거린다. 분노와 불안함을 담은 충혈된 눈으로 이 작교를 노려보는 이 경을 보며 이 작교가 그제서야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를 쫒다가 주홍색 머리를 스치면서 본 사람들이 있지. 갓이 떨어지고 이게 누군가. 그 유명한 관저궁 신귀비라."

"영선이 어떻게 했어?!?!"

 윤간을 당할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았던 사람이 그 연인을 입에 담자 이성을 잃은다라. 이 작교가 입을 다문다. 그는 씁쓸함을 느끼고 그 누군가를 생각했다.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듯 했다. 이 경은 이 작교보다는 더 나았다. 그는 적어도 솔직했다.

 곧 이 작교가 중얼거렸다.

"그도 데려와서 너와 똑같은 꼴로 만들어주지."

 이 경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다. 자신의 옷을 벗겨 내리는 손길에도 저항하지 못하고 몸을 벌벌 떨면서 이 경이 말한다.

"그, 아이를?"

"정정하지. 너보다 더 잔인하게, 더욱 더 잔인하게 해주지. *인체를 들어봤나?"

"개자식!!!!"

 참지 못한 이 경이 그에게 다시 뛰쳐나가려는 것을 낭인들이 붙잡는다. 벌거벗은 이 경의 눈에 핏발이 끊기고 곧 이 작교를 증오를 담아 노려본다. 이 경이 괴로워한다. 이 작교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 이래야 된다. 체념한 사람처럼 당당히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지 않는가. 이 경은 더 괴로워해야했다. 더 괴로워서, 괴롭고 괴로워서 차라리 죽는 것보다 더 험한 지옥을 경험해야지.

'그래야지 진진이 평안할 것 아닌가.'

 이 작교가 속으로 되뇌였다. 이 경은 관저궁 신귀비의 일에 반응하고 있었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견 진이 죽고 이 작교는 절망을 느꼈고 복수를 다짐했었다. 이 작교는 웃으면서 말했다.

"얼마지나지 않을거야. 사람을 보냈으니까."

 이 경이 격동하여 입을 떼려한 그 순간 문이 삐걱거렸다. 이 경이 그에 어느덧 섬뜻하게 마음을 스치는 불안감을 느껴 숨을 멈췄다. 이 작교의 얼굴에 희열이 스치고 있었다. 낭인들이 손을 멈췄다. 이 경이 몸을 벌벌 떨었다.

"폐하?"

 이 경이 지옥으로 떨어졌다.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기어코 복도를 울렸다. 익숙한 낭랑한 목소리가 이 경을 지옥으로 몰아 넣고 있었다. 작고 경쾌한 발걸음이 들린다. 이 작교가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이 경이 충격에 동공을 수축시킨다. 몸이 벌벌 떨리고 신형이 흔들린다. 비틀거리는 이 경의 팔을 낭인 하나가 잡아 채어 거칠게 들어 올렸다. 이 경이 불안함에 몸을 미친듯이 떨면서 호흡을 거칠게 했다.

"하하하하!!! 이 경!! 이 경!! 하늘이 도와주신다!! 나의 복수를 하늘이 도와주신다!!"

 이 경은 보았다. 비단이 깔린 휘장 뒤에 보이는 그림자를. 곧 드러난 몸이 문 앞에서 멈춰서는 것을 보았다. 오른쪽 소매가 찢어진 장포를 걸친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고양이를 닮은 키가 크고 호리한 청년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흐트러진 주홍색 머리카락이 보인다. 고생을 한 듯 얼굴에 생채기가 있었으나 무사한 모습을 확인한다.

 살아 있었구나. 그 순간 이 경이 최초로 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뇌리에 퍼득 스치고 들어오는 순간 이 경이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가, 가!!! 제발 가!!!"

 청년이 고개를 돌려 거의 벌거벗은 이 경을 바라본다. 믿기지 않은듯 청년이 멍한 얼굴을 하곤 되뇌인다.

"이 경?"

 그리고 상황을 눈치 챈 청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갔다. 일순간 분노로 얼굴을 물들인 청년의 눈에 거대한 감정이 일렁거렸다. 그러나 곧 그는 숨을 크게 들어쉬어 격정을 진정시켰다. 청년이 차분한 얼굴로 이 작교를 바라본다. 백면서생이 믿을 수 없을만큼 강인한 기개로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 작교가 그를 보며 속으로 놀라움을 삼키면서 읇조렸다.

"내 억울함을 알아 하늘이 나를 도와주셨다."

 청년이 조용히 말했다.

"하늘은 너와 같은 변명하는 자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숨을 삼키고 청년이 단호하게 말한다.

"하늘은 크고 육중하여 그 옥좌에서 일어나 몸을 거동할 일이 거의 없지. 반란자의 더러운 입으로 하늘을 들먹이지 마라."

 이 작교의 얼굴이 굳는다. 이 경이 눈을 꾹 감았다. 절망어린 눈물이 한줄기 흐르고 있었다. 상황에 맞지 않게도 영선은 겁을 먹고 움츠리지 않았다. 그가 이 경을 바라보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그 순간 이 작교와 이 경이 동시에 소리쳤다.

"죽여!"

"도망가!!"

 그리고 영선이 두려워하지 않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입을 떼고 소리쳐 쾌청한 목소리가 찌를 듯이 대전을 울린다.

"부인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가꾸고(女爲悅己者容)!"

 탁기 하나 없이, 가슴 속에서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목소리가 천지간에 쩌렁하게 울리는 순간, 이 경은 고개를 돌려 영선을 마주했다.

 이 경을 잡고 있던 낭인 하나의 옷깃을 잡아 벌린 뒤에 몸을 당긴다. 휘청거리는 사내가 검을 뽑을 그 순간 품에 숨기고 있던 검을 한손으로 뽑아 갈비뼈 사이에 깊숙하게 찌르고 있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士爲知己者死)!"

 그 눈이 푸르고 명료하게 빛날 때, 이 경이 두 눈을 크게 뜬다. 그 순간 이 경은 낭랑하고 명료한 목소리에 정앙(正央)이 가득차 있고 그는 울림이 좋은 목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을 들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고 청명한 목소리를 들었다.

 영선이 몸을 숙이고 검을 비틀어 빼내는 순간 낭인들 너덧명이 그에게 달려들어 이 경의 시야가 가려진다. 비명을 지르려는 이 경의 입이 이윽고 굳게 다물리고 흔들리는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쾌속하게 검을 빼내 빙글 돌린다. 빠르게 팔의 근육을 끊어 스친 검이 비명을 지르려는 턱 아래의 급소를 찌르고 있었다. 동시에 몸을 숙여 앞발에 힘을 주어 신형을 무너트리고 손을 뻗어 달려드는 다른 낭인의 허리춤에 달린 단검을 꺼내 사선으로 그었다. 가슴이 베이고 쇄골에 힘을 주어 박는다. 동작이 끝나기도 전에 장포가 흩날리게 빙글 몸을 돌아 무너지러는 신형을 다 잡고 회전에 더한 힘으로 검을 끊었다. 유려한 검이 동작을 끊지 않고 하나를 베고 하나를 더 베었다.

 낭인이 검을 끊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에 믿기 힘들어 하는 얼굴을 하며 두 눈을 부릅뜨다가 이윽고 그 얼굴을 자세히보고 찰나에 경악어린 눈을 한다. 칼이 코 끝에 닿을 때 저도 모르게 비명과도 같은 말을 잇새에 흘리고야 말았다.

"남, 남준(南俊).."

 동시에 죽음과 같은 침묵이 대전에 자리했다. 칼이 멈추지 않고 검을 끊듯 뼈를 끊었다. 이 경이 숨을 멈추고 중얼거린다.

"남준?"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남제일검(江南第一劍)? 강남일기(江南一技)?"

 거짓말처럼 침묵이 내려 앉았다. 낭인들이 그 순간 얼어 붙어서 숨조차 쉬지 않고 미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영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의 술렁임이 그들 사이에 자리하여 비명이 그들을 사로잡고 공포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이 경이 멍하게 영선을 바라 볼 그 쯤에, 영선이 말없이 칼날을 비틀어 피를 떨구었다. 털썩, 검에 베인 사내가 천천히 쓰러지는 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 작품 후기 ============================

주석 1. 여후의 사람 돼지 고사.

이 장면을 쓰기 위해 이 힘든 챕터를 견뎠습니다ㅠㅠㅠㅠ

다음편 챕완 후에 백 영선 외전 3편 갑니다.

+) 슷삐님 남준을 죽였다는 말에 귀신처럼 알아채셔서 놀랬습니다bb 스게!

영선 씨그널

1. 검술 수련 중에 이 경의 허리를 기습하여 끌어 안았을때 전장에서 뼈가 굵은 이 경과 오 상환이 그것을 막지 못하고 이 경은 심지어 넘어지기 까지 했다. 오 상환과 이 경이 둘다 놀라는 장면이 있었다. 2챕 초반

2. 이 경이 영선의 근골이 생각보다 좋고 힘이 좋다고 생각하는 묘사 多 챕터 전반

3. 이 경이 영선의 손에 굳은 살이 박힌 것에 비파 때문이라고 말을 하지만 영선은 뜸을 들이거나(장상사 최심간 초반 백수를 걸을 때) 감이 좋은 이 경이 혹시 눈치 챌까봐 걱정할 때 굳은살 박힌 손을 펼쳐보는 묘사가 있다.

3.5 '생긴 것은 그래도 귀공자 중에 귀공자로서 대접받은 이 경이지만 그 감각 하나만큼은 짐승 뺨친다. 영선이 이 경이 혹시 자신에 대해서 눈치를 챘을까 하는 마음에 불안해하면서 양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을 꽉 쥔 뒤에 영선이 쓴웃음을 지었다.'(42화)

4. 영선이 이 경에게 지켜주마라고 다짐할 때에 이 경이 자신의 다짐이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묘사. 남준으로서의 자신을 잘 알기에 하는 대사. 1챕 후반

4.5 '영선이 얼마나 큰 손해를 감수하고..... 천만금을 주어도 사지 못할 큰 은혜' 남준으로서 영선은 돈이나 권세에 움직이지 않음.16화

5. 욕탕에 있던 이 경이 잠에 들자 표정 하나 일그러트리지 않고 들어올렸다. 3챕 욕탕씬

6. 의자에서 떡칠때도 이 경을 잡아 지탱하고 그네에서도 이 경의 몸을 한팔로 지탱함. 그 외에도 생각보다 영선이 이 경에게 힘을 쓰는 씬이 많았다. 탕약 때도 이 경을 쉽게 제압.

7. 호갑투를 써서 굳은살이 박힌 손을 가린다는 묘사가 많았다. 특히 감정이 격해질때 손을 모으는 자세를 취하거나 손을 움찔거림.

8. 아이를 죽이려 뛰쳐나가는 오 상환의 팔을 단숨에 잡아채서 그를 멈췄다. 오 상환이 놀라워하는 장면. 삼챕 강에서 아이가 진흙던지는 씬 전후.

9. 이 경이 고 아정에게 몸을 보인 것을 수치스러워 패닉할 때 영선은 오 상환을 부를 생각을 하지 않고 품 속에 단도를 뽑았다.

10. 영선이 이 경에게 머리를 잡혔을 때 아무리 대담해도 생리적으로 겁을 집어먹었을 법한데 눈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는 씬이 있었다.

11. 이 경이 영선을 밀쳤을 때 생각보다 힘이 센 영선이 이 경의 손길에 너무나도 쉽게 내동댕이쳐졌다는 구절이 있다.

12. 구 화가 영선을 밀쳤을 때 손에 크게 밀려나는 감각이 없었는데 영선은 크게 쓰러짐(힘을 흘려서 충격을 완화함.)

12.5 '그러나 어쩐지 무언가 제대로 타격이 없이 허전한 것 같은 느낌에 가미인이 분이 풀리기보다는....' `13화

13. 검술수업할 때 영선이 자신이 검술이 천하제일이라 체력만 있었다면 장군이 되었을 거라는 말을 함.

14. 장상사 최심간 때, 이 경이 고 운정에게 납치 되고 영선이 허름한 차림으로 홀로 이 경을 찾을 때 양아치들을 족쳤다는 서술이 암시되어있다.

15. 영선이 고 재인이 보낸 암살자를 보았을 때 '명성도 팔아버릴 정도로 돈이 급했냐'라는 서술이 그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있다는 암시가 되어 있다. 남준으로 협객을 이끌던 영선이기에 그를 단번에 알아챈 것.

16. 석 형일과 영선의 대화에서 과거 암시. 북걸과 병렬하면서 그가 남준임을 암시한다.

17. 이 작교와 견 진의 정사장면을 본 영선이 굳은살이 박힌 손을 만지작 거리는것. 시그널은 부족하지만 살기를 죽이려는 행동이었음.

18. 석 형일과 영선의 대화에서 석 형일이 벚나무(속세 혹은 애정)에 얽힌 영선이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에 크게 흔들려함. 영선은 구름(이상 협)을 바라보는 한이 있더라도 추락하겠다는 말을 함.

19. 강남일기(江南一技)라 에둘러 거론한 희 치(28화) '강남일기의 명성도 옛말이군' 약속을 꼭 지켰던 남준의 신뢰도를 언급함.

20. 97화, 외전에서 나오겠지만 여 형일은 희 치를 고문한 환관이다. '이제 십년이 넘은 일인가? 남준이 그 당시 탐관 여 형일을 습격하고 네가 그것을 막았던것? 그 때 내가 사정을 알고 얼마나 기막혀 했는 줄 알아? 나는 네가 제대로 돌아버린줄 알았어.' 탐관이라 습격한 여 형일을 북걸이 지키고 있으니 그 사정을 들어본 영선이 기막혀하다.

21.111화, 그 때는 내가 지켜주면 되지, 안 그래요?

22. 영선은 자주 손에 신경을 쓰고 매만지는 묘사가 많았다. 악기로 굳은살이 박힌 손이라지만은 비파를 연주하면 손가락 측면과 정면에 굳은살이 박히지 상대적으로 손바닥은 깨끗하지만 영선은 손바닥마저 굳은살 투성이라는 묘사가 있었다.(어딘지는 모르겠는데 정독하시는 분들 제보해주세요><)

22. 영선은 간간히 맹상군과 협객의 이야기를 하였음.

23. 그 외에도 남준 시그널 많으나 지금은 생각이 안나네용 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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