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5 여위열기자용 (女爲悅己者容) =========================
꿈에도 꾸지 못했던 장면이다. 유아하고 꽃 같은 청년은 땀 흘리는 것을 싫어하고 자주 더위를 먹어 이 경의 속을 애태우곤 했었다. 그럼에도 그런 그가 검을 들고 있는 광경은 신기하게도 너무나도 잘 어울렸기에 이 경은 혹여 그 모습을 본적이 있던가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 영선이 고개를 들어 엄정한 두 눈으로 그들을 흝었다. 호리한 두 몸은 곧 검을 들고 있을 때 하나의 날카로운 칼처럼 보였다. 그리고 검을 손에 든 영선은 소나무처럼 곧고 올바른 기세를 다잡고 있었다. 칼잡이들의 몸이 움찔거릴 때 영선이 고요한 목소리로 조용하게 말한다.
"그 말을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지."
이 경은 그 말이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웃고야 말았다. 이 상황이 받아들이기 힘듦에도 이 경은 환하게 웃고야 말았다. 그것을 힐끔 본 영선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서렸다. 검을 움직여 살짝 들어 올린 영선이 종사와도 같은 기품을 품은채 고요하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세로 그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사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매가 스치는 소리였다. 이 경은 어쩐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 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소리없이 나아갔다.
비명은 짧았다. 춤을 추는 듯이, 운무(雲舞)처럼 이어진 검은 살기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투명하게 벼려있었고 스치는 것들을 끊어내고 있었다. 두 눈이 가라앉아 적의 칼에 집중하고 있었다.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유려하게 이어지니 비명을 지를 새 없이 간결하게 급소를 베었다. 새파란 두 눈은 낯설게도 정제된 투기를 머금고 있었다. 이 경은 정신을 차렸고 곧 대전에 홀로 서서 검을 늘어트린 영선을 볼 수 있었다. 검신을 따라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 작교가 도망치고 있었다. 영선은 이 경을 두고 가지 못해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잠시 그 등을 노려보던 영선이 이윽고 바닥에 쓰러진 이 경에게 다가가 장포를 벗어 몸을 덮어주었다.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해요. 늦어서."
이 경은 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재회한 충격도 충격이지만 영선의 낯선 모습이 주는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경이 넋을 잃고 그를 보다가 입을 달싹이려 한다. 영선은 시간이 없어 연인의 재회를 나눌 수 없어 이 경의 팔을 잡고 당겼다.
임신한 산부를 다루기엔 거친 손길이었다. 이 경이 비틀거리는 것을 꽉 잡아서 단단히 옥죈 영선이 그를 바라보면서 진지한 얼굴을 했다. 뺨을 잡고 영선이 속삭였다.
"이 작교가 교활하게 굴었어. 어둠에 진짜와 가짜 어림군을 구별할 수가 없는데 저들은 해내고 있어."
이 경의 몸이 움찔거린다. 서서히 정신이 든 이 경이 영선을 올려다 보았다. 영선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지고 있다고."
이 경의 심장이 떨어진다.
"특수한 안료를 칠했던가 아니면 자기들끼리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그린 것 같은데 너무 어둡고 혼란스러워서 지금은 나도 모르겠어. 이 경아. 너와 네 아이는 살아야 돼."
다시 불안감이 찾아든 이 경이 영선의 소매를 잡았다. 영선이 단호하게 그 손을 뿌리친 뒤에 다시 이 경의 얼굴을 거칠게 잡아 눈을 마주했다. 이 경이 마음이 급해 숨을 헉헉거리다가 그 푸른빛이 감도는 두 눈을 코 앞에 마주한다. 영선의 눈은 흔들리지 않고 희망을 담아 곧게 빛나고 있었다.
이 경의 숨이 멈췄다. 영선이 소리를 높여 강하게 말한다.
"빠져 나가자."
그리고 이어진 말에 이 경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낭인 중에서 면식이 알고 있는 자가 있어. 그들이 목숨을 내놓고 너를 지킬 거야."
"너.. 남준이잖느냐."
이 경이 더듬거리면서 말한다.
"어, 어디를 간다고?"
이 경이 두려움에 가득차서 영선을 보았다. 영선이 그의 팔을 잡고 거칠게 이끈다. 이 경이 비틀거리면서 영선을 따라 무기력하게 질질 끌려간다. 영선이 숨을 참고 잇새에 억누른 목소리를 낸다.
"그들이 너를 빼돌릴거야."
"영선아."
"나는 너를 위해 싸워야 해."
"영선아!"
"지금처럼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 경이 영선이 어디론가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에 그의 소매를 잡고 놓지 않았다. 이 경이 기겁해서 그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너는 남준이 아니다. 이제 남준이 아니라 귀비야."
"하찮은 무부(武夫)의 검 하나가 힘이 될 수 있으면 제가 가만히 있어야겠습니까?"
"너는 나를 지켜야지!"
"......"
"가지마라, 제발.."
"......"
이 경은 답이 없는 영선에 숨을 들이킨다. 영선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 이 경이 몸을 굳혔다. 이 경의 숨이 거칠어진다. 영선이 고요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 경이 천천히 손가락에 힘을 푼다. 힘없이 옷자락이 스쳤다. 이 경이 감정을 억누르면서 울음을 참고 말한다.
"살아, 살아야 해."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거예요."
그리고 영선이 복도 한켠의 문을 열고 이 경을 밀었다. 비틀거리면서 이 경이 그 방에 들어갔을 때 영선이 빠르게 문을 닫았다. 이 경이 뛰쳐나가려다 그를 붙잡는 손길에 막힌다. 이 경이 곧 정신을 차려 몸을 늘어트리고 헐떡였다.
"무슨?"
"배가.. 배가.."
그러나 이 경의 사정을 그들은 봐주지 않았다. 다급한 상황이었다. 덩치가 커다란 곰같은 역사 하나가 얼굴을 구겼다. 흉신악살과도 같고 악한과 같은 모양새였으나 이 경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전에 배를 움켜지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가 이 경을 번쩍 안아들고 그 위에 눈매에 칼자국이 있는 사내가 겉옷을 벗어 그 위에 뒤집어 씌운다.
"당왕이 알려준 비밀통로가 태양전 밖에 있습니다."
소름끼치도록 갈라진 목소리가 들린다. 뱀의 소리같이 쉿쉿거리는 소리가 절로 듣는 사람을 진저리치게 만든다. 그러나 그는 분명 정중하게 이 경을 대했다.
"남준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면 건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당신을 살려 훗날 죄를 치르겠습니다."
그리고 일련의 무리가 이 경을 호위하여 주변을 경계하곤 뒷문을 통해 그 자리를 빠져 나갔다. 이 경이 헐떡거리면서 몸을 움찔이고 있었다. 이 경이 새파란 입술을 달싹였다.
"영선이는 어디.."
그를 안고 달리던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가 크게 고민하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낭인들 중에 포악한 이들이 있습니다. 뿔뿔히 흩어져서 닥치는 대로 살육하고 있습니다."
이 경이 크게 절망하여 그의 옷깃을 부여잡고 눈을 부릅 뜬다.
"영선이는?"
"남준이 해결하실 겁니다."
이 경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것에 더 이상 답변하지 않고 계단 옆에 웅크리고 앉아 그를 끌어 안아 뒤에 숨긴다. 배를 손에 말아 쥐고 몸을 떨고 있다. 이 경과 태내 아이가 잘못될까봐 사내가 그를 다시 움켜쥐고 그의 몸을 숨겼다.
사내의 눈에 매서운 빛이 든다.
'남준께서 궁궐에 계실 줄은 몰랐다.'
그가 돌연 사라진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협사들이 당황하여 날뛰고 있을 때 그를 가장 가까이 따르던 석 형일이 무어라고 했는가. 그는 그가 죽었다고 했다. 세간이 무어라 떠들었는가. 탐관을 암살하던 그가 보복당해 죽었다고 했다. 혹자는 그가 목숨을 바쳐 도와준 빈민이 그를 배신하여 정체를 누설했다고 했다.
그 날에 사람들이 정의가 사라진 날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후에 의가 사라진 날이었다. 남준 한 사람의 비밀스러운 죽음이 많은 이들을 절망케한 날이었다. 이상이 있을 때 배를 곯아도 살 수 있었지만 길을 잃은 순간 그들은 협사가 아닌 돈을 주고 사람을 죽이는 들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죽었다던 남준과 궁궐에서 마주쳤을 때 무슨 감정이 들었던가.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남준의 아이를 꼭 지켜야한다. 반드시!'
사내의 얼굴이 크게 굳어졌다. 검을 쥔 손이 비틀었다.
'남준께서 죽음에 이르른다 하여도..'
그는 숨이 넘어갈듯이 헐떡거리는 남준을 떠올렸다. 그가 창백한 얼굴에 호흡을 가누지 못하면서 더듬거려 말한다.
'살려, 지, 지켜서 빼돌려라..'
남준이 지친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몸이 병약한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포악하게 날뛰며 이 경을 찾으며 사람을 죽이는 낭인을 죽이러 갔으니 남준 시절에 정명정대하나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검술은 오직 검을 들고 갑옷을 입지 않은 무리들을 상대하던 것이다. 정규군의 갑옷은 급소를 가려 상대하기 힘들었다. 그것은 북걸의 영역이었다. 일대일로 결투하는 것은 남준의 일이었고 갑옷을 입은 무장병사와 상대하는 것은 북걸의 일이었다. 그 둘이 장기로 두는 영역은 엄연히 달랐다.
낭인들이라면 괜찮으나 혹시라도 병사들에게 발각되면?
몇 명이고 떼로 올려오면 남준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사내가 불길한 상상을 하며 이를 악문다. 남준은 몸이 약했다.
그 옆에 눈매가 사나운 사내가 중얼거렸다.
"저기 사자등상 아래다."
그것을 바라본 이들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하나가 찢어질듯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저길 뚫자고? 저긴 이미 전장이야!"
"앞뒤가 막혔어. 우리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애초에 퇴로를 뚫는 일이 쉬운줄 아나? 저기가 가장 쉬운 길이야."
말마따마 가짜와 진짜가 뒤섞인 어림군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정규군의 숫자가 많고 그 기세가 첨예하고 맹렬했으니 더욱 뛰어났으나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해 뒤엉켜 있다. 어둠 속에서 당왕은 교활하게 연기를 피우고 등불을 깼다. 가짜 어림군이 족족 진짜 어림군을 구별하여 칼을 쑤시고 있었다. 그리고 미세하게 가짜 어림군의 승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숨기는게..."
"방금 전이라면 그랬겠지만 이젠 어쩔 수 없어. 당왕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어림군이 저렇게 패배하면 저들은 폐하를 죽이기 위해 기를 쓸거다."
그는 돌려 말했으나 이미 패배를 얘기하고 있었다. 이 경이 배를 쥐고 고통을 호소한다. 잠시 그를 묵묵하게 살피던 칼자국의 낭인 하나가 말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더욱 더 뚫을 곳이 없어진다. 가짜 어림군이 승기를 잡으면."
잠시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칼자국이 이 경을 잠시 바라보더니 상의를 벗기 시작한다. 그는 곧 손을 뻗어 정신을 잃어 식은땀을 흘리는 이 경의 옷과 자신의 것을 바꾼다. 그가 허리춤에 칼을 뽑아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얼굴을 긋는다.
살점이 흐트러진다. 그를 꿇어 앉은 이들이 묵묵히 바라본다. 순식간에 얼굴을 훼손한 그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천자를 해하고 의리를 버린 죄를 이렇게 속죄할 기회를 얻으니 내가 운이 좋구나."
그렇게 말한 그가 목에 검을 뚫어 자결한다. 숨이 끊어진 칼자국을 품에 안은 사내 하나가 눈을 꾹 감고 감정을 한번 억눌렀다.
"그가 원하는대로 하자."
곧 목을 벤 사내 하나가 훼손된 머리를 들어올리고 자리를 박차고 계단 위로 올라간다.
"이 작교의 목이다!!!"
그 순간 전장이 술렁인다. 장안에 가득한 사람들이 모두 그 처참한 목을 볼 수 있게 그는 높이 그것을 치켜 올리면서 당당하게 소리쳤다.
"역적이 처분당해 이렇게 비참하게 죽었다!! 항복해라!!!"
가짜 어림군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속지마라! 저건 가짜다!"
그러나 이미 술렁이기 시작한 가짜 어림군의 사기가 꺾이기 시작하는 것이 낭인들의 눈에 보였다. 잃을 것이 많아 반드시 이 작교가 황제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그들은 불길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전장의 흐름이 달라진다. 동시에 이 경을 끌어 안은 이가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곰 같이 거대한 사내가 전장을 달린다. 창과 칼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사내가 부풀어오른 거대한 근육으로도 막지 못하는 날카로운 냉병기들을 한껏 웅크려 몸으로 받았다.
이 경의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사내의 허벅지에 무언가 축축한 액체가 몰려오고 있었다. 이 경이 신음하기 시작한 것에 사내가 충혈된 눈으로 이를 악문다. 등의 살점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전장을 난입한 갑옷을 입지 않은 사내는 난도질이 당한 몸을 기어코 움직이면서 사자등상에 다가갔다.
그는 그 아래를 주먹으로 찧고 우수수 떨어지는 돌 안에 이 경을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이 경이 미끄러지면서 비스듬하게 꺾인 통로로 미끄러져 간다.
사내가 안도의 한숨을 흘리는 그 순간 숨을 멈췄다. 이 경의 손목이 붙잡혀 미끄러져 가는 도중에 바닥에서 발을 딛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들려 있었다.
"커헉..."
가슴을 관통한 창이 아래에 찍힌다. 이 경이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눈을 떠서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 얼굴을 확인한다.
"이, 이 경이다!!!"
이 경은 그 얼굴을 몰랐으나 그가 적임을 알 수 있었다. 거의 이지를 잃어 이 경이 짐승처럼 버둥거렸다. 그리고 이 경을 잡은 병사가 그를 미친듯이 끌어올린다. 상체가 통로에서 꺼내져 바닥에 내팽겨친 이 경의 배에 창을 들이대던 이의 목이 잘렸다.
그 순간 어림군의 복장을 한 병사 하나가 그 소리를 듣고 이 경을 공격하려던 가짜 어림군의 목을 벤 것이다.
"폐하를 지켜라!"
그 순간 승리의 열쇠를 얻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난투극이 벌여졌다.
이 경이 배가 아파서 신음을 내고 그 소리에 곧 주위 병사들이 우수수 몰려들었다. 죽은 가짜 어림군과 구원군을 부르던 어림군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리고 전장의 승패를 갈라 놓을 이 경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미친듯이 서로에게 검을 휘두르고 창을 휘두르고 방패로 짓누르면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 경이 어지럽고 혼잡한 상황 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아악!!"
진통이 심하게 오고 있었다. 이 경이 다리를 떨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몸을 지탱하기 버거워 벌벌 떨고 있다. 이 경이 비명이 지름에도 그 소리가 묻혀 냉병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이 경을 죽여라!!"
"폐하를 지켜라!!"
이 경이 혼란 틈에서 헐떡인다. 고통이 그를 잠식하고 이 경이 피가 여기저기 흩뿌려진 바닥을 손으로 긁어 그를 꿰뚫는 아픔을 삼켰다. 고통이 그의 몸을 꺾게 만들었고 곧 이 경의 마음에 불안이 가득 찼다.
이 경이 무기력하게 비명을 지른다.
령은 생각보다 일찍 이 세상 밖을 나오게 되었고 그나마 그와 그의 아이는 생사를 장담하기 힘들었다.
이 경이 손톱이 뒤집어질 때까지 피가 나도록 바닥을 긁는다. 이 경의 눈에 하나둘씩 핏줄이 끊어져 곧 눈알이 붉은 산호가 그려진 것처럼 기괴하게 변해있었다.
배를 잡고 괴로워하는 이 경의 주위로 이 경의 생과 사가 가름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경의 마음에는 그러나 절망만이 가득했다.
영선이 없다. 영선이 없다. 이 경은 그 생각만을 반복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가 없어 이 경은 불안했고 그의 피부를 콕콕 찌르는 살기와 핏물과 살점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어림군들이 그를 지키려 노력했으나 이 경을 둘러싼 선이 서서히 밀리고 있었다.
이 경의 몸이 가끔씩 펄떡이고 있었다. 입이 다물려지지 않아 타액이 줄줄 샌다. 초점이 없이 이 경이 몸을 늘어트렸다. 이 경이 충격에 휩싸여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너와 내가 둘 다 살 수 있을까.'
이 경이 희미하게 한 생각이었다. 이 경은 그 동안 믿고 믿었으나 이번에야 마음이 꺾여 속으로 절망했다. 아니다. 우리는 죽을 거야. 죽을 거겠지.
이 경이 흐느꼈다. 령도 죽을 거다. 상환이 죽었듯이, 나를 지키던 저 낭인이 죽었듯이, 그리고 너와 나도 죽겠지.
이 경이 자포자기해서 생각했다.
'차라리 그게 나을 것이다. 둘 중 하나가 죽는 것보단...'
그리고 그 순간 이 경의 귓가에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멈췄다.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절망에 빠트리던 천박하고 맹렬한 소리가 끊어졌다.
곧 남은 것은 적막이었다.
이 경의 몸이 굳는다.
그 순간에 전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언가가 기세를 바꾸고 있었다.
이 경이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간신히 든다.
어느 순간 홀연히 미풍이 불어오듯 가볍게 다가온 희 치가 창을 손에 들고 있다. 박힌 시체에서 창을 익숙한 손길로 회수하자 그 끝에 피가 뚝뚝 흐른다. 주위에 갑옷이 우그러진 수십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갑옷을 입을 새도 없이 간단한 예의 그 백학같이 흰 옷을 입고 있는 희 치의 얼굴이 평소처럼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 표홀하게 다가와 이 경을 찌르려던 이들을 창으로 찔러 그를 구원하여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키가 큰 희 치가 곧 이 경의 흐릿한 시야에 가득찬다.
이 경은 그 순간 마음에 불안감을 놓아 멍하게 그를 바라본다. 희 치는 겉옷을 벗어 느릿하게 손을 뻗어 뻣뻣하게 다려진 옷을 이 경의 머리 위에 얹었다. 사륵 옷자락이 이 경의 시야를 가린다. 그는 전장에 있는 것이 아닌 다향이 가득한 음월전에 있는 듯이 느긋하고 여유롭게 행동했다. 이 경이 거짓말처럼 그 어느 불안도 느끼지 못한채 눈을 감았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코 끝을 찌르는 정향이 섞인 독특한 찻내가, 음월전의 익숙한 향취가 난다. 이 경이 편안함을 느껴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이 경이 안도하여 긴장을 푸는 순간 그는 서서히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귓가에 누군가의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곧 이 경을 두렵게 하지 못해 그는 졸음에 굴복하여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 작품 후기 ============================
챕완입니다!!!!!!!!!!
+) 남준과 북걸은 별명입니다. 희 치는 군인 출신이라 군인들 상대로 뛰어나고 영선이는 일대일 결투에 강한편.
+) 영선이 체력 약합니다.
+) 지금은 천명 이상의 병력이 서로 붙는 것이 아닌 n백명이 붙는 국지전입니다. 충분히 한사람의 무력이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시점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수천명 수만명 단위의 전투의 판도를 단신으로 바꾼 예가 여포(이하생략) 관우(이하생략) 항우(말그대로 수만의 포위를 뚫고 도망) 곽자의(야! 소리 지르니까 오랑캐들이 물러남..) 척준경(...) 리처드 1세 문앙(이분은 아예 기병 8000기를 고작 20기로 공격한..) 장비 전위(n백명vs1에서 승리) 정봉(n백명vs1을 제압하여 군기를 뺏어 대파) 조운(수만의 기병을 돌파해서 포로를 구함)
+) 덧붙혀서 한세충도 아주 소설같은 일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분은 아예 그 전투중에서 가장 힘들고 오질라게 어렵다는 공선전을 열여덟살때 깔쌈하게 끝낸 것이 단기필마로 쳐들어가서 관문을 부수고 적장의 목을 베서 성 밖으로 내던져서(!!) 사기를 올리게 한 뒤에 함락시켰다고 합니다. 이분 그리고 오십명의 병사들과 함께 요나라 병사 이천명을 포로로 잡았다고...
영선이와 희치의 캐릭터 모델은 각각 이백과 곽자의입니다!
이백은 강남지방을 여행하면서 낭만과 풍류시를 즐기나 검술의 고수에 협객들과 어울렸고 곽자의는 너무 업적이 길어서 검색하시는 것을 권유해요. 짧게 말하면 오랑캐들이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하는 중국사상 최강의 권신이자 혼자 힘으로 입신양명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둘은 극과 극으로 보이는 관계임에도 절친한 벗이여서 서로의 목숨을 구원해주었다고 합니다.
캐릭터의 먼치킨성에 대해서는... 먼치킨이긴 하지만 충분히 있을법 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습니다. 난릉왕(미모+ 능력 사기캐)도 있었고 공자(음률에 통달, 그냥 통달한 수준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제작자를 알아채는 사기능력+ 어미가 무녀라 춤에도 조예가 있음+ 현재 철학가들에게 영향 미친 사상가 2위+ 천하에 명성을 날려 제후들이 스카웃하가려고 했던 용사 자로를 제압한 무력)도 보면 사기캐고 서서(격검의 고수+ 제갈량이 감탄한 행정능력)도 있고 장량도 보면 10년동안 협객생활하다가 심지어 형가 이후로 그 누구도 감히 진시황을 암살하지 않으려 했건만 창해역사와 모의하여 직접 그를 죽이려하고 춘추시대에는 13살의 나이로 재상이 오른 이도 있으니.... 역사가 소설보다 더한데 이정도 쯤이야 라는 마음으로><.... 봐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