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148)

00122 관관저구(關關雎鳩) =========================

 이 경의 시야가 흐릿하다. 미칠듯한 고통이 그를 꿰뚫고 있었다.

 뭐지. 지금 무슨 상황인거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동시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 경이 입을 열고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그제서야 청각이 돌아온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난다. 소란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경이 흐릿한 시야 속에서 천막을 보았다. 자신의 주변을 가리고 있는 천막을 본다. 아. 내가 전장에 있었던가. 동시에 이 경은 자신의 옆에 묵묵히 서있는 아름다운 사내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내색하기 전에 이 경이 비명을 지르면서 손에 쥔 것을 붙잡는다.

"폐하, 폐하!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주시옵소서."

 뭐라는 거야! 이 경이 속으로 화를 내면서 다리를 덜덜 떤다. 피냄새가 훅훅 들어온다. 이 경이 가랑이를 찢는 고통에 엉엉 울면서 몸을 떤다. 어디야. 영선은 살았나. 희 치가 와서 다 해결했나. 곧 이 경이 아픔에 미친듯이 몸부림을 쳤다.

"폐하!!"

 그리고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 이 경이 숨을 멈춘다. 곧 이 경은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이 누군가의 손임을 눈치챘다. 단단하게 그를 옥죄는 손을 꾹 붙잡고 이 경이 격정에 떨었다.

"힘을 내. 정신을 잃으면 안돼."

 이 경이 눈물을 흘렸다. 살아 있구나. 동시에 이 경이 눈 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이 경의 몸에 거짓말처럼 찰나간의 활기가 돌았다. 이 경이 그의 손을 꽉 쥐고 힘을 준다.

"됐습니다!! 됐어요!!! 사내아이입니다!"

 으아아앙! 우렁찬 울음 소리와 함께 이 경의 몸이 힘이 빠졌다. 긴장이 풀린다. 귓가가 멍해졌다. 숨을 쉴 때마다, 호흡이, 심장이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왼손을 꽉 붙잡는 누군가의 또다른 손만이 이 경의 감각에 걸렸다. 곧 이 경의 귓가에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경의 머리가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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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 치의 등장에 어림군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고 반란군들은 거의 이년이 다 되도록 심하게 앓아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희 치의 모습에 경악하며 절망했다. 곧 승기가 어림군 쪽으로 넘어갔고 수도의 사마들이 황성으로 군사를 이끌고 왔을 때는 희 치는 창을 내리고 있었고 기백의 반란군들이 시체가 되어 쓰러진 시점이었다. 말로만 듣던 북걸의 무위는 설화보다 더 경악스러운 것이었고 어림군들은 한사람의 등장만으로도 사기가 올라 너무나도 쉽게 반란군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병사들 중에서는 살아남은 이가 없었다. 희 치는 덤덤하게 그들을 학살했다.

"오른쪽 견장이 비뚤어졌더군."

 희 치는 어떻게 아군을 구별했냐는 말에 그렇게 답했다. 어둠 속에서 미세한 차이를 알아보았다는 희 치의 말에 소 재도는 멍하게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영선은 낭인들을 하나씩 다 척결하고 마침내 비밀통로로 도망치던 이 작교를 추포했고 희 치는 이 작교를 지하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일을 처리했다. 험란한 자리에서 이 경이 진통을 느껴 조악하게 천으로 주변을 가렸고 희 치는 그 가운데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 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경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흘릴 때마다 희 치의 손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곧 영선이 다가와 이 경의 손을 꽉 붙들었다.

"괜찮아."

 그 말에 이 경이 안도한듯 웃음을 지은 것 같은 것은 착각일까. 희 치가 그를 보았다. 이 경의 손을 꽉 붙잡으면서 영선이 그를 희망이 가득찬 눈으로 보았다. 영선이 속삭였다.

"힘을 내. 정신을 잃으면 안돼."

 지쳐서 힘을 내지 못하던 이 경의 팔뚝에 힘줄이 솟았다. 곧 들리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희 치의 얼굴이 순간 멍해진다. 영선이 환하게 웃으면서 이 경의 손을 잡고 얼굴을 비볐다. 눈물이 범벅이 된 영선이 조악한 천에 쌓인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러다가 이 경을 바라본 영선의 표정이 굳어진다.

"폐하?"

 이 경의 머리가 땅에 떨어진 것에 영선이 피가 식어서 멍하게 그를 바라본다. 영선이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희 치가 달려가 이 경을 품에 안았다.

"폐하? 폐하?! 폐하?!"

 이 경, 이라고 부르려는 영선을 멈추곤 희 치가 고요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영선의 숨이 헐떡인다. 희 치의 흑벽같은 두 눈이 영선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그만, 지금 태의에게 갈테니."

 희 치가 조용히 말한다. 영선이 이를 악물었다.

"더 소란을 피우지 말고 냉정을 찾아라."

 영선은 령을 안고 희 치를 따라갔다. 이 경이 태의에게 지쳐서 혼절한 거라고 진찰을 받고 태양전의 침대에 눕혔을 때 그제서야 영선이 령을 살필 수가 있었다. 령의 빨갛고 쭈굴한 몸은 몹시 조그마했다. 째지게 앵알앵알 우는 령의 몸이 너무 가볍다. 영선이 속으로 걱정이 되서 령을 바라보았다. 령의 이목구비는 강채요를 닮지 않았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눈이 쭉 올라간데다 턱이 각졌다. 순간 영선이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못, 못생겼...'

 영선이 간신히 도리질을 하고 식겁해서 중얼거린다.

"아니야, 애들은 원래 이래. 크면 예뻐."

 령에게 미안해서 뺨을 매만졌다. 영선이 제 손가락을 탁탁 치면서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령을 가만히 바라보고 속으로 식은땀을 흘린다. 이 경의 판박이였다.  자꾸만 머릿 속에게 령에게 미안한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영선이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면서 예쁜 구석을 찾는다.

"음, 경이를 닮아서 코도 높고.. 경이를 닮아서 입술도 보드랍고 예쁘고..."

 경이를 닮아서 피부도 까맣고, 경이를 닮아서 눈도 째지고.. 아니 이게 아닌데. 영선이 도리질을 치고 제 뺨을 친다. 그리고 영선이 으음,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침상을 보았다. 이 경이 의식을 차려서 그를 보고 있었다. 영선이 환하게 웃으면서 이 경에게 말을 걸었다.

"폐하!"

 이 경이 중얼거린다.

"반란군은?"

 덤덤하게 그 상황을 지켜보던 희 치가 고개를 까딱였다. 이 경이 그에 잠시 희 치를 바라본다. 이 경이 중얼거렸다.

"그래. 너라면."

 영선에게 시선을 던지 이 경이 그가 비단보자기에 안고 있는 조그마한 생명체에 몸을 움찔한다. 어느새 손가락을 쭙쭙 빨면서 옹알거리는 령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본 영선이 령을 이 경에게 넘겨주었다. 이 경이 잠시 보자기를 젖히고 그 얼굴을 본다.

 채요를 닮지 않았다. 이 경이 안도감에 한숨을 쉬었다. 희 치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경이 한참을 령을 바라본다. 령이 하품을 하면서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것을 바라본다. 령이 아직 어려 몸이 쭈글하고 붉었다. 이 경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못생겼어."

"애애애앵!"

 령의 코를 쭉 눌러 한번 돼지코를 만든 이 경이 이내 영선에게 령을 넘겼다. 영선이 평안하게 칭얼거리다가 봉변을 당한 령을 품에 안고 식겁한다. 령이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애한테 왜 이래요?! 그리고 폐하 판박이구만!"

"뭐? 어딜봐서 나를 닮았,"

 이 경이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꾹 다문다. 이 경이 삐져서 고개를 돌리는 것에 영선이 령을 품에 고쳐앉고 입술을 삐죽이며 웅얼거린다.

"귀엽기만 한데.."

 이 경은 말문이 막혀서 무어라 하지 못했다. 잠시 어색하게 영선을 바라보던 이 경이 볼을 긁적였다. 침묵하던 이 경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 설명 좀 해라."

 희 치가 조용하게 말했다.

"과거제로 제 이권을 뺏고 토지할분령으로 기반을 뺏는 폐하에게 반발한 수도 귀족이 지원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암암리에 귀족들이 불법으로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는 것을 아실겁니다."

 뿌리가 깊은 귀족들은 자신의 세력 안에서 황제와도 마찬가지다. 이 경이 묵묵히 그 말을 듣는다.

"폐하의 황권이 워낙 공고해 도전할 생각을 못했지만 이도 저도 않고 이 작교가 반정을 성공하면 수도를 전복하겠다는 이들이 있어서 정규군을 움직였습니다."

 희 치가 깔끔하게 말했다.

"폐하는 쉬시면 됩니다."

 이 경이 작게 말했다.

"이 작교는?"

"잡았습니다."

 이 경이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윽고 덤덤하게 말했다.

"황실 족보에서 이 작교와 이 연교를 파버리고 소성황후를 폐후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작교는 그냥 요참형에 처하자."

 본디 성격이라면 능지처참이나 거열형을 할 이 경이 그저 허리를 베는 것으로 끝내자고 한다. 요참형도 극형이였으나 이 작교가 저지른 죄는 아주 처참한 것이었다. 그러나 희 치는 반문하지 않았다. 희 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이 경은 이윽고 아이를 달래는 영선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한참을 령을 달래고 결국 울음을 그친 아기를 소중히 껴안는다. 입을 오물거리고 침을 질질 흘리는 령을 바라보았다. 영선이 령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 경은 그런 영선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폐하."

"응?"

"령에게는 젖을 딱 한번이라도 물려주시면 안됩니까."

 이 경이 대꾸가 없었다. 영선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자 이 경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만.."

 그리고 영선이 령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폐하."

"......"

"영오와 영경이를 제가 입양해도 될까요."

 이 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경이 숨을 멈추면서 영선을 보고 있었다. 영선이 다정하게 령을 달래는 것을 바라보는 이 경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야 말았다.

"그래."

 어차피 무슨 상관일까. 어느 순간 미움과 증오, 분노가 풀리고 응어리진 모든 것이 허망해졌다. 이 경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해라."

 아이를 든 영선은 생각보다 더 령을 좋아하고 있었다. 령을 친자식처럼 몹시 아끼고 있었다. 새삼 감동한 이 경이 격정에 빠져 몸을 떨다가 퍼뜩 몸을 떨었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든 이 경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영선을 본다.

"그나저나 네가 남준이라고??"

 영선이 시선을 회피한다. 이 경이 버럭 소리지르면서 말했다.

"왜 하필이면 너야?!"

"응? 네?"

"이이익..."

 주먹을 쥐고 몸을 떠는 이 경의 말에 영선이 이상함을 느끼고 희 치를 본다. 희 치가 고개를 설레 젓는다. 영선이 중얼거린다.

"아, 그게.."

"내가!!"

 이 경이 콧잔등이 찡그려진다. 영선이 콧등을 일그러트리는 령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또 령에게 미안한 생각을 했다.

"얼마나 남준을 좋아했는데!!"

 그러고보니 북걸을 싫어한 이 경이 그와 대비되는 남준을 거론하곤 했다고 하던가. 남준 시절에도 이 경은 구시대의 적폐를 청산하는데 도움을 준 남준을 생각보다 더 좋아했다. 탐관오리에 물러서지 않는 협객이라. 민심이 듣기 좋은 이야기를 떠벌리니 이 경도 전대 권신들을 물리치기 쉬웠다. 이 경이 울분에 차서 침상을 퍽퍽 내리친다.

"왜 남준이 너, 잇!!"

 속으로 고아하고 속세에 초연한 협객을 생각했던 이 경이 무언가 속은 기분에 억울함에 치를 떤다. 파르르 몸을 떨고 영선을 노려보는 것에 영선이 웃음을 참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선도 나라는 것을 알면 경악하겠지..'

 애써 자신은 시원일이 더 좋다고 말하는 이 경의 서랍에 시선의 글귀를 적은 소병풍첩이 있는 것을 다 안다. 영선이 웃음을 참지 못해서 입가를 씰룩 거리면서 령을 소중하게 껴안았다. 령이 냠냠 입을 오물거리면서 영선의 품에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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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 들어와라."

 희 치가 몸을 뻣뻣하게 굳고야 말았다.

 허연 젖이 가슴골에 고여있었다. 축 늘어진 이 경이 수유를 하느라 걷어올린 상의를 내릴 생각없이 침상에 축 늘어져 있었다. 희 치의 눈이 이 경의 다시 탄탄하게 납짝해진 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령이 옹알대면서 손을 뻗자 이 경이 귀찮은 듯이 령을 다시 배 위에 올려놓았다. 아기가 가슴을 더듬고 만지작 거려 젖내를 참고 있었다.

 젖살이 붙은 이 경이 노곤한 상태에서 아가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희 치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앞섶을 풀어헤치고 갈색에 부풀은 유두를 아가에게 물리면 그 조그만한 입을 오물대다가 젖 냄새를 찾고 도톰한 가슴살을 푹 잡는 것이다. 침을 뚝뚝 흘리는 입을 헤 벌려서 유륜을 물면 이 경은 젖을 물리는 가슴 살을 살짝 들어 올려주었다.

 야무지게 꼴깍거리면서 젖을 한참을 빨아 먹다가 침과 허연 젖을 입가에 잔뜩 묻히며 도리질을 쳤다. 이 경이 지친 눈으로 희 치를 보자 희 치가 얼른 손을 뻗어 령을 받아 등을 두드려 트림하게 해주었다.

 순간 아이를 받아 든 희 치의 얼굴이 멍했다.

"아앙.."

 손가락을 빨면서 사지를 바동거린다. 어느새 살이 피둥하게 오른 령의 눈은 제법 동그랗고 맑았다. 희 치가 넋을 잃고 그것을 본다. 너무나도 조그맣고 미약했다. 꽉 쥐면 터질 것 같은, 그 생각에 이른 희 치의 몸이 움찔 거린다.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희 치가 이 경을 보았다. 이 경은 희 치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하품을 하고 있었다.

 더워지는 날인지라 수유를 한 이 경은 희 치가 령을 받아 등을 두드려 어르고 있을 때 바로 누워 뻗어버렸다. 더위에 강한 이 경이면서도 수유를 하니 땀이 더욱 찼다. 이 경이 혀를 차면서 배를 긁는다. 나른한 눈으로 희 치를 보던 이 경이 졸음 속에서 풀린 혀로 웅얼거렸다.

"애기... 봐줘."

 희 치가 손을 쓰기도 전에 이 경은 잠에 빠지고야 말았다. 밥도 잘 먹고 몸도 피곤하고 나른하니, 요즘 들어 많이 지쳐하던 이 경이 믿음직스러운 희 치에 등장에 잠에 든 것인다. 그것에 희 치가 속으로 크나큰 절망을 느끼면서 멍하게 령을 본다. 위현께서 숨을 끊으신 이후로 이토록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던가. 아니 희가 죽을 때 그랬지. 그리고 그와 비견될 정도록 충격에 빠진 희 치가 그 조그맣디 조그마한 생명체를 품에 안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리고 희 치가 불연듯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이의 얼굴은 영선의 감상과는 반대로 제법 똘똘하고 잘생긴 상이었다. 코에 콧방울이 일었다. 희 치가 손을 뻗어 콧물을 닦아 주었다.

"넌..."

 희 치가 령을 끌어 안고 그 얼굴을 보았다. 이런 감정을 언제 느껴보았지. 북방의 영웅이 령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응시한다.

 한참을, 한참을 희 치가 그를 껴안고 바라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막챕 시작합니다ㅠ.ㅠ 감격.. 이 챕터는 이제 힘을 빼고 야한 일이 가득할 예정입니다.

노블 vol2는 다 채우고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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