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4 관관저구(關關雎鳩) =========================
신귀비는 아들을 낳은 공로로 황귀비(皇貴妃)에 책봉되었다. 이 궁 내에서 신황귀비의 권세를 감히 넘볼 사람이 없었으며 신황귀비가 이 영오를 비롯한 세 아들의 아비이니 사람들은 그가 태후에 오를 거라고 확신했다.
영선이 쓴웃음을 흘렸다. 이 미아가 씁쓸하게 웃는다. 그녀가 품에 칭얼거리는 강후 유 설을 안고 있었다. 유 설의 눈이 또랑하고 크다.
"마마의 탓은 아니죠."
그가 다식과 정빙을 가져오자 영경은 손을 들어 끈적한 꿀을 덕지덕지 묻히면서 허겁지겁 그것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것을 영선이 할말을 잃고 바라본다. 영경은 침을 질질 흘리면서 꾸역꾸역 씹지도 않고 그것을 삼키고 있었다.
영선이 영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모든 고난을 이겨내기 쉽지 않겠지만 내가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구나."
나직한 목소리에 영경의 몸이 조금 움찔거렸다. 영경이 눈치를 살살 보다가 과자를 내려놓았다. 입가의 과자 부스러기를 닦곤 영선이 빙그레 웃었다. 영선이 몸을 돌렸다. 이 미아가 유 설을 안고 그를 배웅했다. 진심을 담아서 그 등에 말을 했다.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황귀비 마마."
영선은 대답을 하지 않곤 유 설의 볼따구를 한번 찝곤 대문 밖을 나섰다.
정신이 나간 영경이는 이 미아의 집에서 요양을 하기로 하였으니 양부가 된 영선이 그를 보러 이 미아의 집을 들린 것이었다. 그가 후궁이니 원래는 허가가 나지 않은 것을 이번에 이 경이 그의 황궁 출입을 자유롭게 풀어주어 갈 수가 있었다. 이 경은 영선이 자유롭기를 원했다. 남준인 그가 황성에 갇혀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사가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은 황후도 수여받지 못한 것으로 또한 많은 반발이 있었으나 이 경은 늘 그랬듯 황권으로 찍어 눌렀다. 이미 이 작교를 처리하여 흉흉해진 조정의 인물들은 거세게 반항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신귀비가 분수를 아는 사람이라 오직 미아를 볼 때만 그 권한을 사용했고 그는 영경을 정기적으로 보러 오겠다는 약속을 미아에게 하곤 회궁했다.
한달에 두 번 있는 문안에 오랜만에 출석한 영선은 품에 포동하게 살이 오른 령을 안고 활짝 웃었다.
오랜만에 태어난 어린 아기에 후궁들의 분위기가 훈훈하다. 건 재인이 신기하여 영선의 허락을 맡고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 미인이 그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후궁들이 모두 아기를 만지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영선이 콧대를 높이면서 자랑하듯 말했다.
"이봐! 동생들, 그렇게 많이 만지면 안돼. 우리 령이를 조심해서 다루라고."
"네, 네, 알겠습니다."
본래 공손하게 그를 대해야할 건 재인도 건성이면서 말하고 푹신한 아이의 손을 연신 만지작거린다. 고 미인도 유심히 그 아이를 보고 있었다. 고 미인의 눈빛에 잠시 날카로운 빛이 스친다. 무언가를 눈치챈 고 미인이 입맛을 다시면서 영선을 본다.
'생불인가.'
강 채요를 싫어하는 고 미인은 그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떨떠름하게 있었으나 그것을 입 밖에 낼만큼 바보는 아니라 그저 입을 다물 뿐이었다. 영 가도가 차마 신귀비에게 가까이 가지 못해서 움찔움찔 거리면서 그 아이를 힐끔거렸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존재는 그렇게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탁 빈이 그를 씁쓸하게 웃으면서 바라본다. 문득 영선이 그에게 물었다.
"영연이는 잘 자라고 있소?"
영선이 순수하게 묻는다. 탁 빈이 고개를 까딱였다. 탁 빈은 이 경과의 그 사건 이후로 자철궁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탁 빈은 오로지 영연만을 돌보았다. 영선은 그에게 연민이 들어 많은 것을 챙겨주었으니 탁 빈은 총애는 잃었어도 풍족한 삶을 유지했는데 그럼에도 남은 외로움과 쓸쓸함은 영연을 키우는 것으로 달래고 있었다. 영연은 학식이 모자러도 효자라 탁 빈을 무척 생각한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영선이 빙그레 웃었다.
"언제 영연이를 데리고 관저궁으로 오시오. 언제든지 문을 열어놓을테니."
탁 조가 그제서야 마음편히 웃었다. 영선이 다시 령을 품에 꼭 껴안고 다정하게 그를 바라본다.
그것에 불안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얀 강 채요였다. 소리가 들려오던 그 포대기에 휩싸인 아이 쪽을 응시한다. 채요의 얼굴이 동요한다. 채요가 중얼거렸다.
"저도 아이를 만질 수 있을까요."
영선이 그 때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 순간 공기가 차갑게 식는다. 아이의 손을 조물거리던 건 재인이 눈치를 보면서 그를 놓는다. 모두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순간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을 한 영선은 이미 온화하던 얼굴빛을 거두고 있었다. 강 채요는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한번만.."
항상 당당하던 채요답지 않은 간절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영선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솟고 그가 소리칠 무렵에 그 때까지 주렴 안에서 그것을 보던 희 치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안을 시작해도 되려나."
강 채요가 뭐라 하기도 전에 영선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폐하."
그녀가 무어라 손을 쓰기도 전에 후궁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시작했고 곧 강 채요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절을 했다. 강 채요가 건성으로 하는 것에 영선이 지적을 하여 강 채요는 혼자서 다시 절을 해야 했다. 영선은 그에도 못마땅해서 몇번이고 황후에게 절을 시켰으니 채요가 흐느끼자 그제서야 그만두게 했다.
영선이 황귀비라 황족의 반열에 들어서 그도 문안을 받았다. 채요가 또 트집을 잡을까 두려워 했으나 이번에는 영선은 그녀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채요가 비틀거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채요가 끊임없이 눈물을 흘려 영선이 그것을 불쾌하게 여기며 계자에게 안긴 령의 얼굴을 천으로 가렸다.
채요의 얼굴에 절망감이 감돈다.
"마마! 마마! 잠시만.."
영선이 그를 무시하고 수레에 오른다. 문안이 끝나고도 채요는 포기하지 않아 뛰쳐나와 다급히 말고삐를 잡고 매달렸다. 나연이 그녀와 함께 고삐를 붙들고 있었다. 채요의 머리 위에 나비 비녀가 흐트러진다. 채요가 흐트러진 머리를 한채 황급히 수레에 매달려 악다구니를 썼다.
"한번만, 한번만 만지게 해주십시오. 다, 다 잘못했습니다. 한번만.."
"가자!"
영선은 냉정하게 말했고 마부가 고삐를 당겼다. 채요가 그것을 잡고 매달렸으나 힘이 쎈 태감이 그녀를 떼어낸다. 채요가 곧 엉엉 울면서 수레를 따라갔다.
궁인들이 그녀가 미친 줄 알고 소곤거렸다. 결국 채요가 거리에 엎어져서 흐느꼈다.
"내 아가... 아가..."
그리고 그것을 그녀를 가르스름한 눈으로 바라보던 째진 눈의 환관이 그녀에게 얇고 밧줄을 땋은 채찍을 내리친다. 채요가 봉변에 놀라서 소리치자 환관이 찢어지는 듯한 노성을 터뜨린다.
"감히 목숨이 열개라도 되는거라도 되는 거요?! 황귀비 마마의 아기씨에게 망발을 하다니."
"난, 난! 후비다!"
채요가 정신을 차려 소리쳤음에도 환관은 비웃으면서 그녀를 비꼬았다.
"그리고 황귀비 마마에게 밉보였지."
채요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환관이 빈정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천한 환관 주제에 감히 윗전의 허락도 없이 후비를 괴롭힐 것 같으십니까?"
채요는 이어지는 매질에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듯이 홍리당으로 돌아왔다. 홍리당에 온 채요가 침상에 엎어져 앓으면서 흐느꼈다.
"내 아이... 내 아이... 령아..."
하염없이 부르짖는 채요가 눈물을 멈추지 못해 작은 어깨를 들썩인다. 채요의 안색이 창백했다. 홍리당에서는 그 날 부로 울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영선이 환관이 신황귀비의 명을 듣고 채요를 때렸다는 소식을 듣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난 그런 명령 내린적이 없는데."
계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인들이 마마께 영합을 하려는 것이지요."
영선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말리지는 말지."
그리고 영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건 그렇고 누구를 자신의 아들이라는 거냐!!"
채요는 화가 난 영선의 벌을 받아 열녀전을 배껴쓰는 명을 받았다. 채요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열녀전을 쓰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속으로 령을 생각하여 한탄했다. 채요의 눈에서 눈물이 마를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채요는 속으로 오직 중얼거릴 뿐이었다.
'내 아이.. 그 아이 분명 내 아이야... 령은 내 아이다.'
확신한 강 채요의 눈에서 눈물이 고였다.
'내 아이를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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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치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이 경이 령을 품에 안고 음월전으로 찾아온 까닭이었다. 그 날 이후로 처음인가. 민도공주, 희가 죽은 이후로 처음인가.
"아옹 아옹..."
희 치가 잠시 이 경을 바라본다. 옹알대는 령이 손바닥을 쫙 펴더니 몸을 부르르 떨고 하품한다. 이 경이 묵묵히 비단에 휩싸인 령의 얼굴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안아 볼래?"
희 치는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령을 안아 들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령의 얼굴을 본다. 토실한 뺨에 장미빛 혈색이 돌아 희 치는 그를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령이 건강하군요."
"그렇지."
"더워하지는 않습니까?"
"음월전이 시원하지 않느냐."
희 치의 몸이 굳는다. 이 경이 말없이 그에게 다가가 팔뚝을 잡았다. 철사를 꼬아 놓은 듯한 단단한 팔뚝이 흰 문사복 뒤로 느껴진다. 이 경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희 치를 보았다. 흑벽(黑璧). 빛조차 반사되지 않는 두 고아한 눈동자가 이 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시원하게 드니.."
희 치가 이 경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 경은 어쩐지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으나 그저 참고 말을 흘려 보냈다.
"아이를 안고 자주 오마."
희 치가 침묵한다. 이 경이 이윽고 시선을 피하고 팔뚝을 잡은 채로 령을 바라보았다. 령이 꺄르르 웃고 있었다. 희 치도 시선을 아래로 하여 령을 바라보았다.
"령아, 잘 웃네?"
"아바바바!"
"고 놈, 지금부터 말을 하려는 거냐?"
이 경이 시원하게 웃었다. 희 치가 잠시 그를 보다가 문득 한 팔로 령을 안아든채로 다른 한손으로 이 경의 턱을 잡아 들었다. 이 경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머리가 잡혀 이 경이 발꿈치를 들어야 했다. 희 치의 혀가 곧 이 경의 입 안을 헤집었다.
"우음... 읍..."
이 경이 숨을 쉬기 어려워 발 끝으로 간신히 신형을 유지하여 희 치의 팔에 매달렸다. 희 치가 곧 턱을 놓곤 허리를 끌어 안아 그를 잡아 당긴다. 품에 안긴 령이 희 치의 한 손으로도 안정감을 느껴 하품을 했다. 이 경만이 그와 반대로 눈을 풀면서 희 치의 옷자락에 매달릴 뿐이었다.
입술이 떼어진다. 이 경의 앞에 붉은색 홍순(紅脣)이 보인다. 이 경이 저도 모르게 멍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홀릴만큼 유아한 미목수려한 미남이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가을 해질녘 노을과도 같고 담아하게 피는 하얀 연꽃과도 같다. 정갈한 향기가 나는 사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희를 잃은 슬픔이 가셨습니까."
흰 치아가 보인다. 이 경이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스쳐지나가는 듯한 아득한 목소리가 희 치에게서 났다. 나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이 경의 가슴을 울렸다.
"다행입니다."
희 치의 팔뚝을 붙잡고 이 경이 엉엉 울었다. 희 치가 령을 품에 안은채로 이 경의 쓰러지는 몸을 허리를 팔로 감아 붙잡는다. 이 경이 붉어진 눈매를 하며 희 치에게 연신 말했다.
"희가.. 희가..."
"......"
"너가 기뻐했으면 했었다..."
이 경이 흐느끼면서 진심을 토했다. 희 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이 경을 달랬고 이 경은 희 치에게 매달려 그간의 설움을 쏟아내면서 한을 토했다. 이 경이 울음을 그쳤을 때 그는 희 치에게 더 이상 원망의 말을 내뱉지 않았다.
이 경이 배고프다가 보채는 령에게 가슴을 열어 젖을 주고 희 치가 손을 들어 이 경의 눈가를 문질렀다. 이 경이 가슴을 조막만한 손으로 더듬이는 령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희 치가 눈이 발게진 이 경의 눈매를 문지른다. 희 치는 말이 없었고 이 경은 문득 그 령의 얼굴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이를 가질까?"
희 치가 얼어붙었다. 이 경이 멍하게 되뇌였다.
"치(雉)."
처음으로 다정하게 불리는 이름에 희 치의 몸이 움찔거린다. 그 말은 치아(雉娥)와 다른 울림이 있었다. 이 경은 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선이 아이를 가진 다음에.. 우리도 아이를 가지자. 치야."
희 치의 귓가로 들려오는 희망의 소리였다. 이 경이 답이 없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눈을 감은 희 치가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이 경은 그에 말을 걸지 않았다. 이 경은 오직 령을 고쳐 안았고 이윽고 희 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곤 눈을 감았다. 희 치의 몸이 떨려왔다.
까악. 까마귀 우는 소리가 창 밖에서 울렸다. 희 치는 한참을 눈을 뜨지 않았고 이 경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곧 잠이 들 때까지 둘은 미동하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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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의 꽃... 왼쪽엔 남준 오른쪽엔 북걸... 아이고 배야... ㅠㅠ
그 장상사 최심간 때 이 경이 심운화를 찾아가면서 오 상환에게 농담으로 정비로 책봉한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정후로 책봉했었죠.
코난을 못봐서 모르겠는데 일본 배경이니 아마 카루타가 맞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