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148)

00125 관관저구(關關雎鳩) =========================

 어느 날 문득 이 경이 말했다.

"너의 친정을 들릴까?"

 영선이 동그란 눈으로 이 경을 보았다. 이 경은 평소에 고양이 같던 눈매가 순해진 것을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시원하게 웃고야 말았다. 영선이 드물게도 입가에 밥풀을 묻히면서 그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

 이 경은 평소에 본적 없는 영선의 모습에 손을 들어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영선의 입가를 쓴다. 영선이 깜짝 놀라서 입술을 낼름 핥았다. 이 경이 다정스럽게 영선의 허벅지를 쓸면서 말했다. 영선이 냠냠거리면서 밥알을 짓이겨 넘기더니 우아하지만 조금은 다급하게 차를 마셨다.

 말리화를 넣은 차로 산초를 가신 후에 대답한다.

"진짜로?"

 눈이 깜빡거린다. 이 경은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속으로 즐거움을 삼킨다.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진작에 말을 할걸,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경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네 사가가 강남이니까 강남순어를 핑계로 들리면 되겠구나. 아마 장인인 숙릉군(淑綾君)의 나이가 나랑 엇비슷하다곤 했나, 건강하겠..."

 그 순간 무슨 생각이 퍼뜩 이 경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 경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꽝꽝 얼어붙고야 말았다. 이 경의 입매가 경련을 일으킨다. 후식으로 차를 호록이던 영선의 눈에 의아함이 스친다. 이 경의 입가가 실룩인다. 이 경이 침묵하더니 이윽고 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남준과 시선이 짐의 즉위년도부터 유명하던 명사(名士)던데?"

"아하하하하."

 영선이 그제서야 이 경이 영선이 굳이 말을 하지 않던 사실을 눈치챘음을 깨닫고 입을 조개처럼 꼭 다물고 시선을 피한다. 이 경이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무살에 입궁을 하려면 더벅머리 아이 때부터 검을 잡고 무쌍을 펼쳤다는 소리인가."

"강남의 신동이라하면 이 몸이었습, 왁! 깜짝이야!"

 이 경이 영선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더니 신경질을 낸다.

"몇 살이야?!"

 그제서야 영선도 찻잔을 내려놓고 짜증을 냈다.

"아 입궁할 때 서른살이었어요, 왜?!"

"뭐?!"

"왜? 황상도 믿었잖아! 열여덟이라 믿었잖아! 이것도 관리한 거예요. 화식, 기름이 든 음식, 짠 음식 안먹고 몸 가볍게 하려고 노력하고 한거라니까. 내게 고맙게 여겨야지! 내 몸 예쁘게 관리해서 턱하니 대령해주잖아!"

 이 경이 눈을 부라리면서 말했다.

"내가 아들뻘이라 예뻐해줬더니 이 것이 나를 속여? 이제보니 네가 나를 형이라고 불러도 되겠구나."

"어떻게 지엄하신 황상께 형이라고 칭합니까?"

 영선이 근엄하게 말을 하자 이 경이 발끈한다.

"이럴때만 내가 지엄하지?!"

 이 경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담겼고 발끈한 영선이 이 경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대든다.

"그래도 아직도 파렴치한 것은 맞거든요! 세상에 그래도 이게 몇살 차이야? 아직도 삼촌, 조카 뻘아니야? 큰형님과 큰형님 과거 볼 때 아장이면서 대문까지 기어나와 온 가족의 웃음을 사는 귀염둥이 막내라면 몰라도 어디서 억울하게 여겨요?"

"구체적으로 말하지마!"

 따박따박 말을 하니 눈 앞에 환상이 펼쳐지는 것 같은 착각에 이 경이 울컥해서 소리친다. 이 경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영선이 앙칼지게 말을 한다.

"파렴치해도 이렇게 파렴치할 수가, 내가 이제 나이가 어리지 않다고 이쁘지 않은거야? 왜 열여덟살 짜리 어린애 후궁으로 맞이해서 예뻐하시지?!"

"아, 아니 그게.."

 이 경이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꼬리를 말고 영선의 눈치를 본다. 안그래도 어려서 영선에게 먼저 숙이고 들어가던 이 경이다. 열두살이나 많은 나이에 지고 들어간 세월이 억울해서 울컥했으나 영선이 팔짱을 끼고 잔뜩 토라진 것에 안절부절한다.

"네가 너무 예뻐서 내가 생각도 못했잖냐. 솜털도 보송하고 어리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흥!"

 이 경이 살살 그를 달래면서 손을 만지려는데 영선이 그것을 홱 빼어 내고 고개를 돌린다. 이 경이 영선의 하얀 손등을 다시 붙잡으면서 주무른다.

"응? 네가 제일 예쁘지? 내가 누구를 후비로 들일까?"

"예쁜 건 음월전 폐하가 예쁘지요!"

"......"

"못됐어!"

 순간적으로 훅 들어온 사실에 말문이 막힌 이 경이 말없이 손을 조물거리자 영선이 손을 뺀다. 이 경이 차마 희 치의 외모를 상기하곤 양심에 찔려 말을 더 할 수 없어 가만히 있는다. 영선이 토라져서 이 경의 엉덩이를 쳤다. 이 경이 야릇한 생각이 들어 눈살을 찌부렸다. 어쩐지 황실의 재미없는 정사만을 즐겼던 이 경은 영선을 만나고 제법 다양한 쾌락을 알아가고 있었다.

"예쁜건 이 달덩어리같은 예쁜 엉덩이죠."

"읏! 야.."

"이 투실하고 동그란 엉덩이로 저보다 열두살 어린놈 앞에서 흔들어보아요! 아무도 참을 수 없을 걸요? 과즙이 톡 터지는 신선하고 맛있는 복숭아..."

"그만! 그만!"

 이 경이 음담패설과 엉덩이를 손갈퀴로 꽉 잡는 손길에 깜짝 놀라 소리친다. 그러나 능란하게 엉덩이를 꽉 깨물고 살살 만지는 손길을 아예 떼어내지 못해 끙, 소리를 내며 서서히 들어 올렸다. 영선이 이 경의 바지 위 엉덩이 골을 문지르자 이 경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달콤한 도화향이 흐르고 참지 못한 영선이 이 경의 바지를 쑥 내린다. 투실한 엉덩이 사이로 달콤하고 신선한 과즙이 흐르는 것에 영선이 참지 못하고 흐벅진 살을 손바닥으로 찰싹 내리쳤다. 이 경이 학, 소리를 내면서 다리를 오무린다.

 정자 안이 곧 뜨거운 열기와 신음으로 가득찼다. 아침 식사 후, 입조하기 바로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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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선의 외숙이 그를 입양해서 키웠다고 하니 이 경은 그의 자세한 사건을 묵묵히 들었다. 그 김에 희 치의 일을 부분적으로 제외한 과거를 하나 하나 설명해주었다. 청련거사의 일, 양모의 일, 시선의 일, 어떻게 그가 싸구려 기녀들에게 글자를 전수받고 말을 깨우쳤는지, 세상을 아름답게 받아들였는지, 결국 검을 잡고 불의한 자를 찌르게 되었는지. 그 모든 것을 이 경에게 말했다. 묵묵히 듣던 이 경은 영선의 말이 끝나자마자 말했다.

"네가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는 잠시 할 말을 잃었으며 영선은 그를 바라보았다. 이 경이 울컥함에 눈을 감고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이 경이 잠시 눈썹을 파르르 떨다가 이윽고 조용히 말한다.

"내가 금을 배우마."

 영선이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네가 피리를 불어라."

 영선이 눈을 감았다. 그의 다사다난하고 폭풍과도 같았던 과거가 스쳐지나갔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이 경을 만났다. 눈을 떴다.

"나의 삶엔 절망이 없었으니 동정하지 마세요."

 영선이 중얼거렸다.

"그 하나의 일이 없었다면 이 자리의 제가 없었을 겁니다."

 이 경이 참지 못해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왔느냐."

 이 경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영선의 손을 잡고 그는 흐느꼈다. 영선이 온화한 눈으로 이 경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군요."

"내, 내가 어떻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영선이 울지말라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속으로 말을 삼키고 붉은 눈가를 닦는다. 영선이 다정하게 말했다. 뺨을 잡고 그의 얼굴을 들게 했다. 이 경이 다각의 빛이 빛나는 묘안을 보았다. 보석같이 찬란한 두 눈을 보았다. 황갈색 두 눈에 사랑이 담겨져 있었다.

"내가 피리를 불고 당신이 금을 불어, 누대 위에서 연주해요."

 이 경의 부드러운 입술에 입도장을 찍는다. 이 경이 울던 중에 웃으면서 그를 본다. 영선이 검지로 이 경의 입술을 헤집으면서 살짝 웃었다. 예쁜 못난이. 영선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영선이 이 경의 손을 잡았다. 이 경이 눈물을 그쳤다.

 이 경과 영선은 다음 달에 강남으로 순어를 떠났다. 한 어가를 타곤 두 손을마주 잡은 채였다. 길을 가는 내내 이 경과 영선이 강남의 좋은 경치를 둘러가면서 소곤대었다. 서로 마주보면서 웃고 이 경과 영선이 손을 잡고 장강 주변을 걸었다.

 이 경은 그리고 영선의 친정을 들리곤, 말문이 막히고야 말았다.

 숙릉군의 작위에 맞지 않게 단아한 집이었다. 처음에 이 경은 그곳이 영선의 친정이 아닌줄 알았다. 풀이 베어져 잘 관리되어져 있었으나 결코 화려하거나 큰 곳이 아니었다. 머뭇거리는 이 경에게 영선은 태연하게 그곳이 자기 집이라 말했다. 이 경이 그 집을 다시 보았을 때 그곳에는 고아한 기풍이 서려있었다. 이 경이 그제서야 수긍하고 열린 대문에 들어가려한다. 그러나 이 경은 곧 멍한 표정을 짓고야 말았다.

 영선의 등짝에 매서운 손길이 이어진다. 석 형일이 그것을 말리지 않았고 이 경의 새 호위대장인 등 소청이 깜짝 놀라 그를 보았었나 그 중년인의 생김새에 몸을 뻣뻣하게 굳힌다. 주황색 머리카락을 가진 호리한 인상의 중년인이 앙칼지게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이 경이 넋을 놓고 그것을 본다.

"영선이?"

"너 이놈 시키가 연락도 하나도 없이!!"

"악, 악, 아파! 아빠! 그만, 그만!"

"너 궁에서 퇴출당하고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악, 악! 아빠! 그만해봐! 지금 내 남편 왔잖아!!"

 꼭 영선이 늙으면 저렇게 될까? 이 경이 생각한다. 그제서야 빗자루를 내려 놓은 중년 사내가 멍하게 그들을 바라본다.

"아."

 이 경이 기침을 하다가 근엄하게 말을 한다.

"숙릉군. 자네가 아이를 잘 키워 짐의 일상에 샘물같은 기쁨이 가득하니 명문의 고아한 기상으로 저 아이를 잘 양육한 공을 치하하여 짐이 왕림하였다네."

 그러나 숙릉군의 표정은 묘했다. 이 경의 발끝부터 아래를 짧게 훑어 보는 시선에 공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숙릉군은 바로 바닥에 엎드려서 충직하고 근엄한 목소리로 냈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그리고 이 경은 짐작했다. 영선의 간을 배 밖으로 내놓은 듯한 배짱이 혈통을 타고 내려오는 집안 대대로의 것이라는 것을.

 밥상의 상석에 이 경이 앉고 영선이 그 옆에 앉았다. 앞에 영선의 양부가 앉아 있었으며 이 경의 앞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영선의 생모가 앉아 있었다. 생모의 얼굴이 젊어 이 경은 영선의 동안인 얼굴이 누구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를 톡톡히 알 수 있었다. 영선의 어머니의 얼굴은 입가에 주름이 있었으나 표정이 별로 없이 덤덤했고 오히려 삼촌보다는 무게감이 있는 진중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영선은 친모의 얼굴을 보자마자 양부에게 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기가 죽어 쩔쩔맸고 이 경은 그에 영선의 성격 또한 친모의 공이 지대했음을 깨달았다. 친모의 눈매는 무심했으나 가끔씩 영선이가 머리가 돌 때 보이는 기색이 평소에도 가득했다. 이 경이 속으로 생각한다.

'온통 주홍 것들로 가득해!'

 그리고 여자인 영선이 앉아 있었다. 아니 여자인 영선은 아니지만 영선과 꼭 닮은 고양이 눈이 인상적이다. 이 경이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호리한 몸매에 주홍색 머리를 틀어올린 화사한 여인이었다.

 숙릉군이 그들을 소개했다.

"제가 숙릉군이옵고, 저쪽이 누님이신 백 소영(白燒瑩)이옵고, 저쪽이 황귀비의 친누이인 백리 화(白里華)입니다."

 그리고 이 경이 그 말에서 느껴지는 느긋함과 건방짐에도 화를 내지 못하고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가 분명히 미묘하게 예법에서 어긋나게 행동하는데도 그것이 밉지가 않은 것이 신기했다. 이 경이 고개를 까딱이자 숙릉군이 눈치를 본다. 이 경이 입술을 실룩이고 젓가락을 들었다.

 이 경이 식사 시간 와중에 생각했다.

'황제가 온 것보다 밥이 더 중한가?'

 그들이 뇸뇸 거리면서 밥을 먹고 있으니 이 경은 자신이 황제가 아닌 그냥 말단관리인줄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는 생각을 실없이 할 정도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음식이 고소하고 깊은 맛을 풍겨 이 경이 곧 수저를 뜨곤 젓가락을 놀려 냠냠 거린다.

 영선이 그를 보다가 메기의 살을 뜯어서 양념과 함께 쌀알에 올려 주었다. 이 경이 앙 받아 먹자 영선이 제 입속에도 메기살을 먹었다. 이 경이 중얼거린다.

"메추리알 조림."

 이 경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고 영선도 익숙하게 메추리알 조림을 젓가락으로 집는다. 이 경이 입을 열자 그 속으로 계란이 쑥 들어갔다

 그리고 이 경은 정적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영선을 닮은 묘안석 두 눈이 세 짝이 있다. 이 경이 멍하게 그 시선을 받는다. 숙릉군이 눈을 깜빡이면서 그것을 보고 있었고 친모의 입술이 실룩였다. 누이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감돈다. 누이가 입을 열었다.

"매우 사이가 돈독하시군요?"

"누나는 신경꺼."

 영선이 발끈해서 대답하고 이 경이 우물거리면서 태연하게 답했다.

"이 아이는 나를 사랑해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지. 그저 나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노라."

 영선이 일년 전 까지만해도 사랑한다면서, 떠나지 말라면서 눈물콧물 다 쏟아내고 엉엉 울던 이 경을 생각하고 입가를 씰룩인다. 영선에게 불운하게도 그 말을 들은 친정 식구들의 입이 고양이처럼 오무려졌다. 그들이 입가를 가린다. 영선이 이를 악물면서 이 경에게 중얼거렸다.

"내가, 알기로는, 참, 다른 이야기인데요?"

 이 경이 굳이 대답을 하지 않고 누룽지탕을 한웅큼 떠서 복스럽게 먹는다. 이 경이 눈을 데굴 굴리면서 느긋하게 웃었다.

'이것 봐라?'

 영선도 기가 센데 그에 못지 않아 보이는 가족이 세명이 더 있으니 영선도 쩔쩔매고 있다. 이 경이 뭔가 즐거워져서 멍청한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수저를 놀렸다. 그를 잠시 노려보던 영선이 이윽고 표정을 풀곤 중얼거렸다.

"그래요. 난 이 사람 없으면 못살죠."

 이 경이 우물거리던 입을 멈춘다. 이 경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얼어 붙었다. 영선이 새침한 표정을 짓고 이 경의 팔을 잡고 대신에서 누룽지를 떠서 후후 불어 그 입에 대어 주었다. 이 경이 입을 열지 않자 꾹꾹 눌러 그 안에 어렵게 수저를 넣은 영선이 씩 웃었다. 가족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 경이 뻣뻣하게 굴다가 이윽고 수저를 놓곤 중얼거렸다.

"이 아이가 무척 소중하다."

 영선의 표정에 아득함이 스쳤다. 그것을 본 영선의 친정식구의 얼굴이 야릇하게 변해갔다. 이 경이 애써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팔에 감긴 영선이 애교를 부리는 것에 마음이 녹았다.

"고맙구나. 이 아이를.. 내 곁에 보내주어서."

 그것은 이 경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영선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 경은 잘 살 수 있었겠지만 무척 재미없는 삶일 것이다. 이 경은 진심으로 그 무채색의 지루한 삶이 두렵고 끔찍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다. 만약 영선이 조금이라도 그 고난에 마모되거나 꺾였다면 보지 못했겠지. 그리고 이들이 없었다면 영선도 없었겠지. 그래서 이 경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천자의 인사를 들은 이들의 표정은 덤덤했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친모가 그 때 입을 열어 말했다.

"영선이의 얼굴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 경은 말없이 웃었다. 친모가 말을 이었다. 이 경의 훈훈한 미소가 와그작 깨진다.

"비록 나이가 많고 좀 투박하게 생겼으면 어떻겠습니까. 영선이랑 여러 얘기를 하기에는 모자란 면이 없잖아 있겠지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영선이가 행복하니 저도 좋네요."

 그렇게 당당히 말하고 누룽지탕을 수저로 떠먹는다. 이 경의 입가가 부들 떨렸다. 그와 동시에 숙릉군과 누이가 다시 식사를 시작하고 영선도 다시 메기살을 뜯어 이 경의 입가에 대주면서 귀엽게 눈을 깜빡이면서 말했다.

"앙, 벌리세요."

 문득 이 경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다시 돌아온다. 너무나도 태연하게구니 말도 할 수 없고 영선이 팔을 잡고 애교를 부리면서 말을 하는게 이 경에게 음란한 생각이 들게 한 것이다. 영선의 분홍빛 촉촉한 입술을 바라보던 이 경이 으적으적 살을 으깨면서 고개를 돌려 퉁명스러운 얼굴을 했다.

 *마당의 배나무(梨)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 경이 우물거리면서 이것도 나쁘지 않는다는 생각을 속으로 중얼거린다.

============================ 작품 후기 ============================

주석 1. 이 경의 성씨인 이는 배나무를 뜻한다.

동양에서 까마귀는 길조입니다!

영선희치는 생각중이고 희치영선은 외전으로 스치듯이 나옵니다. 희치영선을 질투하는 이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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