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148)

00132 관관저구(關關雎鳩) =========================

 하늘의 아들.

 중화천자.

 도올의 중심이자 그 모든 것.

 그 드높은 위세의 이 경이 고개를 푹 숙여 일어나지 못한다. 이 경이 소꼬리찜과 장어, 그리고 그 밖의 강장식품들을 휘적이면서 얼굴을 벌겋게 하여 차마 장인과 장모의 얼굴을 보지 못해서 뜸을 들인다. 영선이 젓가락 끝을 물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숙릉군이 입을 열었다.

"궁이 답답하지요."

"응?"

 이 경이 머뭇거리다가 답을 한다.

"아니, 뭐.. 그냥 궁이 궁이지."

 숙릉군이 그리고 짜증을 내면서 말을 했다.

"성생활이 억압받으니 여기에 와서.."

"아빠!"

"와서 그짓만해. 잠도 못자게.."

"아빠!"

 영선이 눈을 부라리며 말하자 숙릉군이 나는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는 뻔뻔한 눈으로 그를 본다. 영선이 이를 악물고 어거지로 웃더니 홍시처럼 얼굴이 붉어진 이 경의 손을 잡아주면서 말을 한다.

"그냥, 희락기, 였다고!"

"응응. 잘 알지."

 백리 화가 대충 말하면서 소꼬리찜을 냠냠거린다. 이 경이 백리 화의 말에 침통한 표정을 짓는다. 백리 화가 아무리 음인이라도 그는 여인네인데 이 경의 밀부를 적나라하게 보았으니 이 경이 거의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아 울먹거리는 것에 영선이 화들짝 놀라서 달래준다. 친모가 그를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가니?"

 영선이 중얼거린다.

"네."

 숙릉군이 냉큼 대답했다.

"빨리 가버려!"

 이 경이 수치스러워 죽으려고 하고 영선이 이를 아득 간다. 기가 죽지 않고 백리 화가 쨍알 대면서 영선을 은근히 갈구고 영선이 발끈해서 먹다 말고 백리 화에게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든다. 이 경이 멍하게 그것을 보았다. 결국 백 소영이 호호 웃으면서 말을 했다.

"폐하!"

 이 경이 백 소영을 바라볼때 그 순간 모든 웃음소리가 끊기고 그들이 입을 다물었다. 소영의 눈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묘안의 두 눈은 찬란한 별빛이 흐르고 늙어도 쇠한 것처럼 보이지 않아 고아하고 생기가 넘치는 소영의 얼굴에 활력이 넘친다. 이 경은 그 순간 영선의 나이가 먹은 모습을 생각한다. 이 경이 그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즐거웠습니다."

 그 순간 이 경이 무언가 모를 감동에 휩싸여 젓가락을 내려놓고 소영을 바라본다. 소영이 은은하게 웃고 숙릉군과 백리 화 또한 방긋 웃으면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이 경의 목이 화끈했다. 어째서인가. 이런 간단하고 소탈한 말에 감동하는 이유는 뭘까. 이 경이 입을 떼지 못한다. 소영이 영선을 닮은 매력있는 웃음을 지었다.

"처음엔 걱정했지만, 이 아이가 정말 행복해 하더군요."

 이 경이 침을 삼킨다. 어쩐지 이 경은 그 말에 더없이 기쁘고 만족했다. 영선이 말없이 젓가락을 내렸다.

"나는 이 아이가 황족이나 권세가와 엮인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지만.."

 소영의 눈이 빛났다.

"이 아이는 항상 그래왔듯이 나의 걱정을 이기고 그 누구보다 제 삶을 제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지요."

 이 경이 소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그 순간 이 경이 이어진 말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야 말았다.

"영선아. 행복하거라."

 영선이 그릇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네. 엄마."

 그 성품이, 그 가풍이 말해주고 있었다. 영선이 어떤 혈통과 어떤 마음을 지니고 태어났는지 말을 해주었다. 숙릉군가는 조금 건방졌으나 평온했고 욕심이 없이 솔직했다. 이 경은 그들이 건방지다고 미워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 경이 피식 웃었다. 이 경은 그들을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떤 곳보다 영선을 떠올리게 하는, 영선이 좋아하는 곳이었으니까.

 이 경과 영선이 숙릉군가의 배웅을 받아 강남순어를 끝마치고 환궁했다. 숙릉군은 그 누구보다 기뻐했으며 백리 화는 또 오라는 말을 남겼고 친모는 은근한 웃음을 지으면서 배웅했다. 돌아오는 어가 내내 이 경이 친모가 싸준 과일 말림을 먹으면서 그들을 그렸다. 숙릉군가의 따스하고 격식없는 모습을 그린다.

"또 오자."

 이 경이 중얼거린다. 그에 영선이 방긋 웃었다. 이 경이 빈말이 아니라 떠나면서도 숙릉군가의 주홍 것들이 그리워서 내내 아쉬워했으나 이어진 영선의 말에 방긋 웃고야 말았다.

"황성에도 주홍 것들을 만들면 되죠?"

 이 경이 활짝 웃는다.

"응!"

 그리고 이 경과 영선이 장안에 당도하였을 때, 이 경이 어가에서 내리자마자 들은 소식은 정오에 진왕 이 영연이 개에 물려 죽었다는 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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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경이 격분하여 소리친다.

"영연이가 대체 왜 죽어? 왜?!"

 아무리 탐탁찮고 마음에 차지 않는 아들이라지만 한때 이 경은 그를 동정할 때가 있었고 마음이 풀려 그를 놀아줄 때가 있었다. 혈육은 혈육이다. 분명 이 경은 영연에게 정이 있었고 배 아파 낳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더군다나 이제 황궁에 둘 밖에 남지 않는 귀한 성인 황자인데 갑작스럽게 이런 소식이 웬말인가. 이 경이 대노하여 사람들을 고신하여 추국하고 그리고 이 경은 그들이 자백한 말에 혈압이 올라 몸을 뻣뻣하게 굳히면서 억, 소리를 냈다.

"지금, 뭐, 뭐라.."

"한왕 전하와 함께 있으셨나이다.. 흑흑흑.."

 그리고 궁인이 이 경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말을 내뱉었다.

"한왕 전하께서 도망가시면서 진왕 전하를 밀치셨나이다. 진왕 전하가 넘어지셔서 일어나지 못하고 미친 개에 그만.."

"미친 개가 여기에 왜 온단 말이야!!!"

 이 경이 궁인의 배를 걷어차다 못해 참지 못해서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며 쩌렁쩌렁하게 노성을 질렀다.

"한왕이 진왕을 죽게 만들어?! 목숨이 두려워 아비를 위해 변명하지도 않았던 불효자가 이번에는 비겁하게 도망치면서 기어코 동생을 내팽겨치다니!!!"

 이 경의 호흡이 불안정하다. 영선이 놀라서 이 경을 붙잡으려다가 이성을 잃은 이 경의 손에 비틀거리다가 결국 굳은 표정으로 한발자국 물러난다. 심지어 영선도 말리지 못할만큼 이 경은 분노하고 있었다. 영연의 시체에 흰 천이 덮혀져 있었으나 그 사이로 축 늘어진 손이 이 경에게 똑똑히 보였다.

 개에 물려 비명을 지르며 돌아가던 아이가 죽었으니 이 경이 기가 막혀서 소리를 지르다가 얼굴이 터질듯이 붉어진다. 영선이 놀라서 그에게 달려와서 그를 잡는데 이 경의 입에서 거품이 일었다. 영선이 경악하여 비명을 지르면서 이 경을 태양전으로 옮겨 태의에게 보인다.

 영선이 이 경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몸을 이완시켜서야 이 경이 깨어날 수 있었다. 영선이 울음을 흘리고 있었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이도 이제 적지 않으신 분이 첩을 두고 떠나려 하십니까."

 엉엉 우는 영선을 퀭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 경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영연이 죽었다."

 영선이 그제서야 울음을 그치고 이 경을 바라보았다. 이 경이 팔로 눈을 가리고 한참 뒤에 다시 입을 뗐다.

"영연이 죽었어."

 영선이 그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이 경이 물기가 서린 음성으로 말했다.

"그 아이가 멍청하다고 구박을 많이 했는데 이제서야 후회가 되는 구나."

 영선이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 경은 그 날 영연을 위해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들 하나만을 보고 의지하며 살아가던 탁빈이 통곡을 하다가 결국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다들 그가 죽었으리라 예상을 할만큼 참혹한 모습이었다. 이 경이 정신을 차리고 그를 위로하여 탁비로 삼았으나 그 누구도 그것이 그에게 위로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경이 애통해하면서 죽은 진왕을 위해서 무덤을 지었으니 살아서 두 번이나 자식의 무덤을 짓는 것에 이 경이 자조하면서도 죽은 진왕을 박대한 것이 슬퍼서 그 규모를 민도공주에 미치지는 않으나 가례를 치룬 성인 친왕에 준하게 했다.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슬플 '애'라는 시호를 내려 진애왕(晉哀王) 으로 기렸으니 후손이 없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공정군주와 소 재도가 낳은 젖먹이인 소 장건을 진애왕의 양자로 삼아 대를 잇게 했다. 그 둘이 대를 이은 자식은 있는데다가 아들의 지위가 황족이 되는 것에 만족하여 소 장건을 순순히 바쳤다.

 죽은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그 충격이 돌아가 영오에게 향했다. 이 경이 당장에 이 영오가 거주하는 건청궁으로 뛰쳐가 이 영오를 걷어차곤 바로 그를 주먹으로 두들겨 팼다.

"폐하, 꺄아악! 폐하!"

"이 비겁한 놈!! 짐이 너를, 너를, 후계로 생각했는데 감히 동생을 미끼로 주고 도망쳐!!"

 이성을 잃은 이 경이 흥분하여 한왕을 패니 궁인들이 차마 말리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른다. 그것에 이 경이 더욱 열이 받아 얼굴이 퉁퉁 부어 말도 하지 못하고 피를 흘리는 영오를 내평겨채서 그를 삿대질을 한다. 핏줄이 울퉁불퉁하게 울고 있었다.

"네 놈의 노비들은 주인을 위해서 고언할 생각도 하지 않는구나! 너처럼 비겁한 놈들만 몰려 있구나!"

 그제서야 그들이 다급하게 무릎을 꿇고 땅에 바닥을 찧으면서 이 경에게 주인을 위해 사정했으나 이 경은 이미 분노할대로 분노한 상태였다. 견 진의 때도 그러했다. 영오는 두려움에 휩싸여 견 진이 죽어가는데도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이 경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었다. 이 경이 충혈된 눈으로 피떡이 된 영오를 노려본다. 이가 아득 물리고 몸이 벌벌 떨린다. 영오는 그저 태자이니 몸을 사리는 정도가 아니라 비겁하고 동생마저 내팽겨치는 더러운 작자였다.

"내 태로 어쩌다가 너를 낳았을까!"

 분통이 터져서 이 경이 그를 노려본다. 쾅! 발을 구르면서 이 경이 통곡을 하듯이 소리를 내뱉는다.

"너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개돼지의 아들이구나! 아니다. 개돼지도 부모나 형제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 버러지 같은 놈에게 대통을 잇게 하려 했으니 내가 선조께 큰 죄를 저지를뻔 했구나! 국가대사를 망치려고 했어!"

 영오가 바닥에서 바르작대더니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가 정신을 반쯤 잃어서 죽은듯이 피를 흘리면서 바닥에서 눈물을 흘렸다. 얼굴이 퉁퉁 부어 잘생긴 얼굴의 형체가 이미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를 죽일듯이 노려보던 이 경이 이를 으득 악물더니 소리친다.

"너는 평생 진애왕에게 미안해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 경이 중얼거렸다.

"그래야만하지."

 이 경이 화를 억누르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출궁하여 정천사에서 너는 진애왕의 명복을 빌어라. 열심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네가 꼴도 보기도 싫다."

 이 경이 눈을 꾹 감았다.

"너는 황제가 되지 못한다."

 그제서야 바닥에서 기는 영오가 눈물을 펑펑 흘린다. 죽은 아비를 외면하면서도 훗날에 그를 추존시켜 넋을 풀어줄 생각을 하면서 원통함을 참던 그였으니 영오는 그 누가 보아도 동정을 할 만큼 처참하게 울었다. 그가 엉엉 우는 것에 이 경이 그것이 보기도 힘들고 차마 보아줄만큼 마음이 넓은 것도 아니라서 소매를 떨치면서 황궁으로 돌아왔다.

 영선이 계자의 말에 표정을 굳혔다.

"뭐?"

 계자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개가 지금 능지처참을 당한 궁인들이 기르던 것이었는데 원래 온순하던 것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날뛰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하는데 그 날에 개를 가둔 철창에 지나다니는 이가 아무도 없었고 갑자기 그 철창이 열려서 개가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영선이 이어지는 말에 시야가 아득해져서 눈을 질끈 감는다. 마치 악령의 소식을 들은 것 같이 아찔해져서 어질거린다. 영선이 뒷목이 뻣뻣해지는 착각을 느끼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 곳이 진왕과 한왕께서 계시던 정원의 뒤켠인데 샛길과 이어진 근처에 바로 담월지가 있습니다. 거기서 량사부인이 그 시간에 홀로 앉아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량사부인이 맹인이라 의심을 피해갔다고 합니다. 하필 궁인도 없이 홀로 정자에서 앉아 있던지라.. 행적도 모르지만 어찌 사람들이 맹인이 그 구불한 샛길을 부축하는 일 없이 홀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영선이 그 말에 침묵하다가 증오에 활활 타오르는 눈을 하곤 입술을 비틀었다. 영선의 얼굴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증오가 활활 타오른다. 영선이 그 어느 순간보다 더 흉흉한 얼굴을 하여 이를 아득 물었다. 결국 강 채요가 아이를 죽였다. 이 경의 아들을 죽였다. 영선이 정신줄을 간신히 붙들어 매려 노력을 해도 증오가 그를 잠식하곤 있었다. 영선이 이윽고 고개를 돌려 창 밖에 홍리당을 바라본다. 영선의 얼굴이 그 순간 무섭도록 차갑게 가라앉았다.

============================ 작품 후기 ============================

앞서 말한 관평공주 젖멍이 강후 유 설과 보국의 공주이자 강제로 늙은이와 시집한 인아, 오늘 나온 공정군주와 소 재도의 아들 소 장건의 이야기는 내년에 나올 망향가에서 자세하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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