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3 관관저구(關關雎鳩) =========================
정향 섞인 찻내와, 대나무의 시원하고 청량한 향이 난다. 드르륵 문이 열림과 동시에 창백한 얼굴의 영선이 굳은 표정으로 그 안을 바라보았다. 희 치가 정 가운데 눈에 쌓인 소나무가 그려진 병풍 아래 방석에 앉아 품에 령을 안은채로 있다가 영선을 바라본다. 희 치의 표정이 냉랭했다.
영선이 감정이 격해서 성큼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간다. 영선이 다급하게 말을 꺼낸다.
"너 당장 강 채요의 일... 히이이익?!"
말을 하려던 영선이 그 순간 희 치의 품에 안긴 령을 보고 기겁해서 소리친다.
"이, 이게 뭐야?!"
영선이 경악해서 당장에 희 치의 품에서 령을 뺏어 든다. 순순히 그를 내준 희 치의 눈이 움푹 파여 있었다. 영선이 살이 오를 때로 올라 그야말로 묵직한 령을 들어 올리면서 입을 쩍 벌린다. 한순간에 영선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령, 령이가 왜 돼지가 되어 버렸어?!"
희 치가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말이 심하군."
희 치가 태연하게 말을 한다.
"네 아이에게 말이 심해."
영선이 불 난 집에 부채질 하는 말에 그를 흘기더니 이내 아이고 소리를 내면서 발을 구른다. 푸둥푸둥하게 살이 오른 아이가 헤헤 거리면서 침을 흘리면서 팔다리를 아웅아웅 거리고 있다. 영선이 경악해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말 그대로 푸둥푸둥이다. 포동포동이 아니었다. 푸둥푸둥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아 영선이 멍하게 령을 본다. 령이 꺄꺄 거리면서 오랜만에 온 아비를 반기고 았었다. 령은 미숙아라 작고 가벼워 영선의 걱정을 샀는데 그것이 옛말이 되어 이제는 다른 아이의 두배 세배가 되어 있다. 영선이 격분해서 희 치에게 소리친다.
"애를 돼지로 만들어 놓았어!!"
악을 쓰는 영선이 그러나 울먹이는 령에 아차하여 그를 품에 안고 얼렀다. 어찌나 무거운지 영선에게도 묵직한 무게다. 희 치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살기가 가득찬 목소리를 냈다.
"아기 부모가 아기를 내버려두고 어딜 싸돌아다녀."
그것이 처음으로 영선을 향한 희 치의 살의였다. 영선이 그 말에 느껴지는 음울함에 멈칫하다가 이윽고 복잡한 표정으로 령을 본다. 푸둥한 살이 날카로운 눈매와 험악한 인상을 가리고 있다. 귀엽기는 귀여워졌네. 영선이 해탈하여 푸둥한 손으로 제 몸을 톡톡 치는 령을 검지로 놀아준다.
오랜만에 보는 령의 얼굴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영선이 이윽고 굳은 표정이 되어 계자를 불렀다. 계자에게 령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라는 명을 내린 뒤에 영선은 입술을 깨물었다. 영선이 이윽고 지독히 갈라진 목소리로 말한다.
"영연이가 죽은 것을 들었겠지."
희 치가 입을 열고 얼이 빠진 소리를 낸다.
"아."
희 치가 멍하게 있다가 이윽고 눈살을 찌부리며 중얼거린다.
"뭔가 했더니 그 일 때문인가."
희 치의 태도는 너무나도 가벼웠고 애도의 감정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동네의 소문을 들은 사람처럼 희 치는 그것을 남의 일인냥 굴었다. 남의 일은 맞지. 그러나 희 치는 너무나도 가볍게 그를 무시하고 오히려 영선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령이 유모의 모유를 먹지 않아. 아직 어린데 젖을 금방 뗄,"
그 때 영선이 노성을 터뜨린다.
"치아!!"
영선이 그것에 얼음장같이 차가운 시선을 던지자 그제서야.희 치가 그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쉰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희 치가 이윽고 나른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알겠다."
희 치가 자세를 낮춰 중얼거린다.
"알겠어. 너는 이런 것을 싫어하니까."
영선이 그를 노려보더라도 이윽고 체념하여 한숨을 내쉬었다. 영선이 화를 꾹꾹 누르며 말한다.
"강 채요가 담월지에 있었지."
"맹인이라 용케도 의심을 피했지."
희 치가 묘한 웃음을 흘린다.
"그 몇년간 맹인 행세를 했으니 얼마나 교활한 여자냐."
영선이 이를 아득바득간다. 희 치가 차를 마시더니 눈을 감고 향을 음미한다. 이윽고 희 치가 눈을 떠서 흑백이 선명한 아름다운 두 눈으로 영선을 본다. 영선이 그를 마주 본다.
"죽여줄까."
가볍고 태연한 목소리였다. 희 치가 중얼거린다.
"잔인하게?"
그 말에 영선이 이를 간다. 몇번 아득거린 영선이 이윽고 힘빠진 목소리로 말을 한다.
"네가 손을 쓰면 일이 너무 처참해져."
영선은 차라리 자신의 손을 쓰면 썼지, 이 광기의 소산을 궁궐에 풀어놓을 수가 없었다. 즐거이 웃는 희 치에게서 피냄새가 흐르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마치 무언가 꿈틀거리는 듯했다. 영선이 그를 보면서 중얼거린다.
"아정이 그에게 수은을 먹이고 있지."
영선이 눈을 꾹 감았다.
"수은중독은 괴롭지만 의심을 받지 않고 장기적으로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라, 아정이 그 방법을 선택해서 증오하는 채요를 죽이려 했다."
영선이 이윽고 침묵한다. 희 치도 그에 말을 걸지 않고 숱많은 속눈썹을 내리깔면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영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채요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안 물어보냐."
희 치가 이윽고 눈을 떠서 흑벽의 두 눈으로 영선을 담는다. 희 치가 중얼거렸다.
"채요가 령의 생부인 것을?"
영선이 말이 없었다. 영선이 문득 날카로운 웃음을 한번 흘린다.
"하!"
영선이 살기가 등등한 웃음을 흘리더니 이윽고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령은 내 아들이야!"
영선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누구도 그것을 부정할 수 없지. 이 영령은 내 아들이야. 이 경이 태내에 품은 내 첫 아이지."
희 치가 그를 덤덤하게 보다가 문득 말했다.
"너 각인했느냐."
영선이 말없이 웃는다. 희 치가 그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작게 웃었다.
"언젠가 우리 아이의 문제를 논해야겠지."
"이런 분명히 저번에 네가 나보고 전의 말을 취소하겠다고 했는데?"
희 치가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강남일기가 약속을 어기다니, 세상이 곡할 노릇이군!"
영선이 그를 장난이 반쯤 섞여 노려보다가 삿대질을 하며 농을 한다.
"이 경은 내 아이를 먼저 낳아야해!"
희 치가 빙그레 웃는다. 이윽고 영선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정이 채요를 치워낼 증거를 모으고 있지."
영선이 그러다가 어두운 표정을 했다.
"하지만 난 그것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이 경이 힘들 때에 자신이 믿었던 사람이 또 자신을 배신했다고 하면, 그리고 령의 아비가 그리 잔혹한 짓을 했다고 하면.. "
영선이 눈을 감았다. 이 경은 사람의 애정을 갈구하는 이였다. 외로움을 많이 타고 또 믿음을 배신하는 행위를 너무나도 많이 겪은 이였다. 영선이 탄식했다. 이 경은 무척 상처를 받을 것이다. 무척 상처를 받겠지. 힘들 때에 그를 돌봐준 강 채요는 몇번이고 이 경에게서 버림받았고 이 경은 그런 그녀에게서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강 채요는 교활했으니 원망도 하지 않아 이 경에게서 동정을 샀다. 그리고 영선은 과거를 떠올린다. 영연을 아끼다가 탁빈 사건에 그를 내치고 영경을 사랑해서 태자로 삼다가 약영의 일에 그에게 려 씨로 개명시키고 조국으로 인질로 주었다.
령은? 영선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가 친부라지만 이 경은 영선이 령에게 다정하게 대해서 그에게 관심을 주는 것이지 이 경과 영선의 사이를 깨트리게 만들 뻔한 령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다. 친왕의 작위를 주지 않는 것도 그러했다. 황자, 황녀가 일고 여덟살 전후로 책봉받는 것이 원칙이나 영선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관례를 깨고 바로 왕과 공주의 작위를 주겠다던 이 경은 령에게 친왕 작위를 주지 않았다. 명백히 이 경은 령을 영선과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영선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까.
영선의 표정이 딱딱해진다. 만약에 영선이 령을 거두지 않았다면 령은 그의 다섯 자식 중에서 가장 비참했을 것이다. 영선의 눈치를 본 이 경이 령을 내팽겨치고 박대했을지도 몰랐다. 아니, 확실하다. 지금도 제 친자식이 태어나면 령을 박대할까봐 걱정이 되는데 채요가 그 짓거리를 하여 이 경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면.. 영선이 할 말을 잃고 중얼거린다.
"이건 뒤로 처리할 일이지."
영선의 눈에 순간 섬뜩이는 빛이 감돈다. 희 치가 그를 유심히 보았다.
"언제든지 내가 필요하면 말해."
낙천적인 말에 영선이 소매를 휘휘 젓더니 이윽고 령의 생각에 다시 열이 올라 버럭거린다.
"령이 커서 너를 원망해도 난 몰라!"
희 치가 어깨를 으쓱이고 영선이 느긋한 걸음거리로 음월전을 빠져나온다. 희 치가 영선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가 이윽고 픽 웃는다. 웃음이 극히 적은 희 치를 실소나마 짓게 하는 사람이 영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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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악!"
그의 예상대로 이 경은 푸둥하고 넙대대한 령을 보고 기겁해서 비명을 질렀다. 그를 허공에 들어올리며 이 경이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친다.
"령이 대체 왜 이런거냐?!"
이 경이 묵직한 무게에 또다시 식겁해서 소리쳤다.
"령이 왜 돼지, 돼지가.."
차마 말을 못 잇고 이 경이 식은땀을 흘리며 령을 바라본다. 원래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 경을 닮았던 령의 얼굴에 살이 그득하다. 영선이 그것에 포기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중얼거린다.
"우리가 없다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니 황후께서 밥을 원하는 줄 알고 계속 밥을 먹였다고 합니다. 유모의 모유를 거부하여 유아식을 만들어 주었는데 저렇게 되었습니다."
이 경이 그 말을 듣더니 순간 멈칫한다. 이윽고 이 경이 조금 감격한 얼굴을 하며 령을 본다.
"음, 이 애가 부모를 참 잘 따르구나."
이 경이 속으로 아비도 어미도 배신했던 영오를 생각하면서 영령에게 더 정이 가서 그를 쓰다듬는다. 꺄르르 거리는 아이가 손발을 바동거리더니 이 경의 손을 콕콕 친다. 이 경이 저도 모르게 힘빠진 미소를 지었다. 영연의 생각이 영령으로 조금 가셔졌 그 옆에서 한참을 영령을 바라보던 이 경이 중얼거린다.
"채요와의 각인을 깼다."
얼마 전에 강 채요의 희락기가 다가와 그녀가 소식을 넣었다. 그래도 이 경이 강 채요에게 온정을 가지고 있기에 채요는 기대를 하였으나 갑자기 자신의 사지를 묶는 것과 태의와 파결사가 들어오는 것에 비명을 지르면서 반항하였다. 이 경이 강 채요의 뺨을 잡고 흐릿한 눈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 경이 중얼거렸다. 이게 너에게 더 나은 길이겠지. 그 때의 강 채요의 얼굴은 심하게 배신당한 얼굴이었다. 이 경은 아랑곳 하지 않고 각인을 파기했다. 곧 강 채요는 미칠듯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악을 썼고 결국 땀을 줄줄 흘리면서 정신을 잃는다.
이 경은 그녀를 량빈으로 책봉해 그를 달랬다.
"영선아."
이 경이 중얼거린다. 숙릉군가에서 이 경이 영선을 붙잡고 애원하면서 각인을 하자고 했으나 그는 그것을 외면했다.
"너는 왜 나와 각인을 피하니."
이 경이 그 때는 그냥 넘어갔으나 나중에는 그것이 크게 고민하였다. 영선은 그에게 각인했으면서도 이 경이 그에게 각인하는 것을 눈을 덮어 말린다. 이 경이 크게 동요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똑바로 말했다.
"나와 각인을 피하는 것이냐."
영선은 잠시 그를 바라본다. 이 경은 그 시선을 받았다. 영선이 곧 령의 요람을 보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영선이 령의 투실한 뺨을 만지작거리면서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령이 동생이 태어나면... 령을 박대하지 말아주세요."
이 경이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령을 보았다. 영선이 중얼거린다.
"령도 령의 동생도 사랑해주세요."
"......"
영선이 웃으면서 말한다.
"황상. 제가 당신의 몸이 위험한 것을 내버려둘 것 같습니까."
각인 상대와 밤을 보내지 않으면 사람을 미치광이에 이르게까지 하는 격렬한 고통에 잠식되는데 어찌 그것을 황제에게 하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것을 하도록 놔두겠는가. 이 경이 무어라고 말을 할 때에 영선이 웃었다. 음인의 각인은 백일의 한번으로 양인보다 주기가 훨씬 짧다. 혹시라도 이 경과 영선이 격리당한 상황이라면? 이 경은 각인의 일을 조정에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만약의 상황에서 이 경은 미칠듯이 괴로워할 것이다.
그것을 어찌 보겠는가. 영선이 이 경의 뺨을 감싸쥔다. 다정하게 웃으면서 이 경의 입술을 꾹 눌렀다. 이 경이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탄식한다.
"영선아. 넌 조금은 더 네 욕심을 부릴 필요가 있다."
영선이 아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사랑이 당신이고 나는 당신만을 욕심내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죠?"
참다못해 이 경이 영선에게 달려들어 목을 감싸곤 입술을 쪽쪽인다. 영선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이 경의 허리를 껴안았다. 이 경이 영선의 품 안에서 중얼거렸다.
"너를 만난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 하늘의 선물이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이 경은 영선이 없는 날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온화하게 웃고있는, 사랑으로 가득찬 저 찬란한 두 눈. 그것은 최음의 효과라도 있는 듯이 이 경을 헐떡이게 하고 있었다. 령을 옆에 둔 것을 생각한 영선이 이 경의 엉덩이를 톡 친다. 그제서야 이 경이 입맛을 다시면서 물러나곤 중얼거렸다.
"그러고보니 '영(永)'자가 재수가 없는 것 같다."
영오는 패륜아가 되어 버렸고 영오는 개에 물려 죽고 영경은 미쳤으니 어쩐지 이 경은 그것이 찜찜하여 눈살을 찌부리다가 중얼거렸다.
"조만간 돌림자를 바꾸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영선이 그를 말없이 웃으며 바라보며, 속으로 글자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생각을 억눌렀다. 영선이 손을 맞잡고 만지작거렸다. 영선이 문득 호갑투를 낀 손등을 내려다보더니 차가운 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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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치나 영선이나 귀엽다고 우쭈쭈하지 대부분의 사람들 입장에서 이 경이는 완전 폭탄일듯하네요. 자식들만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