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4 관관저구(關關雎鳩) =========================
진애왕의 죽음에 이 경이 충격을 받고 애통해하긴 했으나 민도공주 때와 다르게 금새 이 경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가을이었다. 이 경은 령의 이름을 영령에서 '태령(台鈴)'으로 개명하였는데 본디 '영'이었던 돌림자를 별 태자로 고친 것이었다. 이 경은 별처럼 빛나는 영선의 두 눈을 보고 그 돌림자를 땄으나 영오의 이름은 개명하지 않아 그의 마음이 한왕에게서 떠났음을 세간에 보여주었다.
이 경은 황성에 돌아오자 마자 진맥을 하였으나 태의가 말하기를 피임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희락기까지는 회임의 가능성이 낮다고 말하여 이 경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이 경은 곧 영선이 달래는 것에 힘을 얻어 그를 자주 덮치려고 했는데 영선은 그에 순순히 응해서 황손을 가지는 대사에 충실하게 임했다.
"올해가 지나기 전까지 회임을 하자구나."
임신, 임신 타령을 하는 것에 영선도 이제는 포기를 해서 고개를 끄덕인다. 이 경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영선의 입에 장어를 넣어주고 있었다. 영선이 기가 딸려서 퀭한 눈으로 그것을 우물거린다. 영선이 결국 한탄해서 중얼거린다.
"아, 장강 아래에서 나보다 더 생기가 넘치는 자가 없었는데 나는 정기를 빨아먹혀 이젠 이렇게 고목이 되어가구나"
이 경이 영선의 입에 오미자탕을 뜬 수저를 넣는다. 영선이 후룩거리면서도 한숨을 푹 쉬고 말을 이었다.
"세월이란 것을 몰랐는데 이제 알 것 같다."
그러나 이 경은 그런 쓸데없는 말에 대거리를 하지 않고 얼른 검은깨를 올린 인삼조림을 영선의 입에 넣어줄 뿐이었다. 영선이 으적으적 인삼뿌리를 씹다가 체념하여 웅얼거린다.
"구슬 주머니가 텅텅 비도록 황상을 모셔야지요."
"그럼, 그래야지."
이 경이 태연하게 닭육수를 수저로 떠서 영선에게 먹여준다. 영선이 헛웃으면서 그것을 받아먹었다. 이 경의 눈빛이 초롱하다.
저녁식사는 드물게도 이 경이 영선에게 마구잡이로 밥을 퍼먹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영선은 거의 토할 때가 되어서 이 경에게 사정하여서 황상의 공포스러운 시중을 멈추게 할 수 있었는데 시중에 서툰 이 경으로 인해 식사시간이 길어져 노을을 보게 되었다. 이 경과 영선은 가을의 붉그스레한 노을에 정자를 치우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그것을 구경했다. 청련거사의 시가 수놓아진 병풍이 뒤에 있었고 둘은 기다란 의자에 함게 앉아 있었다. 이 경은 말없이 환하고 창창한 노을을 보다가 문득 술이 생각나서 입맛을 다신다.
"금소환주라도 들일까?"
영선이 그것을 말릴리가 없었다. 반색하여 영선이 술을 들이고 이 경과 영선이 대작을 한다. 둘다 술을 좋아하고 특히나 독한 술을 좋아하는 지라 이 경이 홧홧해지는 몸에 얼굴을 불그스름하게 하여 영선의 얼굴을 본다. 영선의 얼굴도 취기에 달아올라 있으니 다른 장식구들은 다 떼고 가벼운 매화 비녀만을 꽂고 있는 것이 어찌나 소담하고 아름다운지.
이 경은 참을 수가 없어 영선의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얼굴에 입을 맞춘다. 영선이 온화한 표정을 하여 작게 웃었다.
"어찌 귀여운 짓을 하십니까."
이 경이 실실 웃으면서 영선의 부드러운 뺨에 연신 입을 맞춘다. 영선도 몽롱한 눈을 하여 문득 다른쪽의 뺨을 만지작거리면서 상념한다.
'나의 살결도 이제 부드러워 졌는가.'
남준의 일을 끝내고 이년에 가깝게 몸을 가꾸고 근육을 마르게 했으니 비록 지금도 남준의 몸이 있었으나 그 옛날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상념을 하던 영선의 눈꺼풀이 나풀거린다. 이 경이 술에 취해 영선의 목을 핥고 허리를 쓰다듬었다.
정신없이 이 경이 영선의 흰 목을 핥았다. 뜨거운 아랫배의 열기가 그를 참을 수 없게 하여 참다못해 영선의 허벅지를 꽉 잡아 사타구니 안쪽 살로 손을 더듬이며 움직이려 한다.
그리고 그 때 이 경이 훅 퍼지는 정갈한 찻내와 자신의 어깨를 붙잡는 손에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영선이 여우처럼 웃으면서 말을 한다.
"오랜만이네요."
흑벽의 두 고요한 눈이 보인다. 청색 그림자가 질만큼 칠흑같은 흑발이 치렁거리고 그와 대비되는 빳빳한 새하얀 장포로 탄탄한 몸을 감춘 사내. 대나무와 같은 사내였다. 꼿꼿한 허리에 곧은 자세. 그 은은하게 그 형상에서 풍기는 기품이야말로 일품인 사내. 아름답고 유려한 얼굴에 우아한 콧대와 한치의 흠집도 없는 미모. 아무리 보아도 적응되지 않는 경국의 인사. 이 경이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희 치."
이 경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치, 여기에 왔느냐?"
제법 다정한 목소리였고 희 치는 그것에 이 경을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이 경의 볼을 아주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작게 말했다.
"예."
영선이 금소환주를 홀짝인다. 그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그 둘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이 경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왜?"
항상 음월전에만 박혀 있던 희 치다. 그가 음월전에 은둔하여 하물며 태양전이라고 할지라도 찾아 오는 일이 드물었으니 그 음침함을 잘 알고 있다. 이 경의 말에 희 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 경을 귀여워하는 듯이 그의 뺨을 살살 만지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이 있으니 왔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 희 치는 말을 하지 않았고 영선은 그것을 알았으나 입 밖에 내뱉지 않았다. 이 경이 잠시 얼떨떨한 기분에 영선을 본다. 영선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 경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저 완벽하게 생긴 사내의 무뚝뚝하면서도 그 진심어린 말이 기뻤다. 붉게 달아오른 뺨을 술기운이라 애써 생각을 하며 이 경이 오른쪽 옷자락을 헤치고 희 치를 까만 눈으로 바라본다. 희 치가 그것을 유심히 바라본다. 이 경은 커다란 강아지를 닮아 있었다.
"흠흠. 앉아라."
*********************************
그들이 정자에서 가을 노을을 보며 술을 마신다. 노을빛이 희 치의 콧대에 반짝 거리면서 걸린다. 오랜만에 찬란한 햇빛 아래에서 선 희 치의 얼굴은 생기가 돌아 몹시 아름다웠다. 왼편에 앉은 영선 또한 그의 머리색과 비슷한 빛을 맞아 마치 몽환적이게 보였다. 이 경이 어느쪽을 보아도 입을 다물지 못해서 그저 정면을 바라보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려고 한다.
희 치가 술을 홀로 마시다가 영선의 손에 손등을 얻어맞고 눈가를 찌부린다. 영선이 이 경의 가슴을 더듬으며 앙칼지게 말했다.
"자작이라니 무례하잖아!"
희 치가 살풋 웃는다. 영선은 어느덧 장난기가 들어 교태를 부리며 이 경에게 술을 따르고 있었다. 이 경이 희 치가 있어서 당황하다가도 머뭇거리면서 술을 마신다. 영선이 이 경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 경이 미인을 양 옆구리에 끼곤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니 보기 드물게 이 경이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는 것에 재미가 들려 영선이 안주로 건무화과를 들어 이 경의 입에 댄다.
"자, 앙~ 하세요."
이 경이 반사적으로 입을 열고 건무화과를 받아 먹어 우물거린다. 이 경의 귀가 새빨간 것을 발견한 희 치가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희 치가 손에 들린 옥잔을 만지작 거리면서 잠시 생각하다가 그것을 단숨에 털어놓고 이윽고 이 경의 턱을 잡아 들어 올린다. 이 경의 눈이 크게 떠졌다.
"우, 우웁.."
혀가 능란하게 이 경의 안을 헤집는다. 곧 달콤하고 그윽한 향이 이 경의 입 안을 감돌고 이 경이 눈 앞이 새하얘져서 몸을 덜덜 떨면서 넋을 잃어 몸에 힘을 뺐다. 혀가 이 경의 입천장을 쓸고 있었다. 이 경이 입을 떼자 헥헥 거리면서 충격에 빠져 어버버 거린다.
"너, 너어?"
이 경이 동그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에 희 치가 태연하게 술을 홀짝인다. 흑벽안과 마주한 이 경이 갑자기 부끄러워져 얼굴을 붉히려는 것에 영선이 이 경의 턱을 갑자기 돌려 입을 맞추엇다. 이 경이 입 안에 가득 차는 그윽한 술내에 몽롱한 눈을 하고 흐응, 소리를 낸다. 입을 떼자 고양이 같이 웃음을 짓는 영선이 있었다. 헐떡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 경의 얼굴이 다시 돌아간다. 희 치가 이 경의 허리를 감싸 쥐곤 술을 입으로 넘기고 있었다. 이 경이 결국 학, 뜨거운 숨을 내뱉곤 헐떡여 붉게 달아오른 눈매를 한다.
이어지는 상황에 이 경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헐떡거리면서 결국 눈꼬리에 눈물을 아롱 달았다. 희 치의 단단한 팔이 허리를 휘감고 영선이 이 경의 팔에 매달리곤 있으니 번갈아서 고개가 돌아갈 때마다 한쪽은 목련을 닮아 고아한 희 치가, 한쪽은 장미와 같이 화려한 영선이 눈에 보인다. 이 경이 얼굴에 취하고, 숨결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손길에 취한다. 이 경의 몸이 자꾸 쓰러져 마치 성교 중 교성을 내는 것같은 신음을 흘리며 의자 밖으로 구르려고 하니 영선과 희 치가 입으로 술을 넘기고 손으로 건무화과를 먹이면서도 은근한 시선을 주고 받았다.
희 치가 이 경이 열락을 느껴 손발을 허우적대는 것을 잠시 본다. 희 치의 눈에 만족감이 스치고 영선이 희 치의 손등을 꼬집는다.
"왜? 이 경이 그렇게 예쁘디?"
장난기 서린 말에 희 치가 픽 웃는다. 이젠 입을 다물지 못해 술을 입가에 질질 흘리고 있는 이 경의 턱을 잡아 올린다. 삼키지 못해 가득찬 술을 희 치가 혀로 꺼내서 입 안에 담았다. 금소환주의 독한 맛에 복숭아향이 감돈다. 희 치가 그를 음미하더니 중얼거린다.
"재밌지."
이 경이 덜덜 몸을 떨면서 희 치와 영선의 옷깃을 꽉 잡는다. 히극거리는 이 경을 동시에 바라본 순간 희 치와 영선이 거의 비슷한 순간에 말했다.
"내 아이를 낳고,"
"약속은 내 생각엔,"
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힌다. 영선의 입꼬리가 비틀거리고 희 치의 두 눈에 즐거움이 스친다. 영선이 손을 들어 이 경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이 경이 안심하여 영선의 옷깃을 꼭 잡고 그 안에 파고든다. 희 치가 그것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입만을 맞췄는데도 저리 이성을 잃으니 어찌나 음란한가."
이 경이 그 말에 눈을 크게 뜨고 희 치를 본다. 그의 입에서 나올법하지 않은 말이다. 희 치가 이 경의 발목을 잡아 든다. 이 경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서 영선을 보았을 때 영선이 웃고 있었다. 희 치는 이 경의 물소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벗기고 연꽃이 수놓아진 버선을 보면서 작게 웃었다. 이 덩치에 연꽃이라니.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이 경이 주춤거리는데 희 치가 영선의 버선을 벗긴다. 빛을 보지 못해서 하얀 발등이 드러났다. 발만은 이렇게 하얗다. 굳은살이 여기 저기 박혔으나 그럼에도 오랫동안 전장을 다니지 않고 어가를 타고 다녀 부드러운 부분이 있었다.
희 치가 발바닥을 문지른다. 연한 살이었다. 이 경이 자기도 모르게 영선의 푸른 비단 옷을 손에 쥐며서 신음을 흘린다. 영선이 발을 조심스럽게 만지고 있는 희 치를 조용하게 바라본다. 수려한 사내가 이 경의 발에 집중을 하고 있으니 마치 그림과도 같은 광경이다. 희 치가 여린 살을 문지르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부드럽군."
이 경이 몸을 파득 떤다. 붉어진 얼굴을 하고 이 경이 그것을 눈을 깜빡이며 바라본다.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발을 만지는 희 치를 바라보며 이 경이 얼굴을 화륵 태웠다.
"아흣..'
신음이 흐른다. 희 치가 이 경의 발을 주무른다. 그 손길이 느긋하면서도 세기가 적당하게 이 경을 압박하여 이 경은 어쩐지 흥분감이 가시지가 않아 영선을 꼭 잡고 희 치를 빤히 본다. 희 치가 이 경을 보지 않고 발에 집중한다. 무인으로서 이 경은 게을르지 않은 흔적을 보였다. 그 발이 보여주고 있었다. 거칠게 발톱이 갈라져 있고 새끼발가락이 눌린 못날 발이지만 희 치는 그 형태를 본다. 분명 모양이 모난 것이 없어서 혹사하지 않았다면 어여뻤을 발이다. 희 치가 경국지색이라는 인온황후를 생각한다. 이것은 저 달아오른 눈매와, 음란한 색향처럼 모후를 닮은 것인가.
희 치가 붉은 입술을 벌려 이 경의 엄지발가락을 입에 담는다. 도톰한 살이 물리자 이 경이 아흑 소리를 내면서 영선에게 매달렸다. 눈물이 대롱거린다. 희 치가 즐거이 동그란 살덩어리, 살집을 입에 핥고 드디어 나른한 눈을 올려 이 경을 본다. 이 경이 그 고요한 두 눈을 보면서도 왠지 모르게 그 눈이 두려워서 퍼득 떤다. 희 치가 미묘하게 웃고 있었다.
타액이 발에 흐른다. 이 경이 몸을 움찔움찔 떨더니 눈물을 흘렸다. 희 치의 입 안에서 애무당하는 발이 너무나도 민감하다. 이 경이 학학 거리면서 제 품에서 바르작 거릴때 영선이 손을 뻗어 탁상의 술을 술병채로 잡아 입 안에 털어 넣는다. 몇모금을 꿀꺽 마시고 영선이 이윽고 이 경의 뺨을 단단히 틀어쥐고 그 작은 입술에 입을 맞춘다. 이 경이 눈을 흐물하게 풀면서 목 뒤로 넘어오는 술을 받는다. 입가에 술인지 타액인지 무언가가 흘렀다. 영선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학학 거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 경의 뺨을 쓰다듬었다.
"츱.."
희 치가 발바닥을 핥고 있었다. 붉은색의 혀가 희 치의 단정한 외모와 맡물려 더욱 야하게 느껴졌다. 이 경이 발을 빼려고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고 몸에 근육이 풀린데다가 희 치에게 발목이 틀여잡혀서 울기만 할 뿐 어찌하지도 못한다. 희 치가 발목을 꽉 잡고 그를 들어 여린 살을 앙 물고 거칠고 딱딱한 발뒤꿈치를 할짝였다. 야살한 두 눈에서 은근하게 스치는 빛이 언뜻 보일 때마다 이 경은 몸을 움찔움찔 거렸다. 희 치는 여전히 무섭다. 이 경은 그러면서도 그 희 치가 자신의 발을 핥고 있다는 것에 묘한 마음이 들어 멍하게 그를 보았다. 영선이 이 경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이번 편은 굳이 후기를 길게 남기지 않겠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