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6 관관저구(關關雎鳩) =========================
"초 나연의 집이 *단가(斷家)라 수소문을 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녀가 어렸을 때에 부모를 잃고 열살 쯤에 식모로 살았었는데 손에 동상을 입어서 세밀한 작업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정이 드디어 강 채요의 뒤를 캐서 만족스러운 결말을 얻은 날이었다. 아정이 그의 공에 상기된 얼굴을 하며 신이 나서 황귀비에게 고한다.
"또한 강 채요의 아버지인 낭중이 여양인인 딸을 보고 욕심을 품어 선대의 궁에서 유명하던 침방 궁인을 빚을 져서 선생으로 삼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늙은 궁인이 숨이 붙어 있어서 그 침술이 뛰어나고 오밀조밀한 어린 여양인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영선이 숨을 내쉰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황귀비의 입매가 굳어졌다.
"또한 그녀가 입막음을 해서 고향으로 돌려보낸 탁빈의 전 궁인들을 추궁해서 그녀가 저번에 신귀비 저주사건을 이용하여 탁빈을 음해하려 함을 자백받았습니다. 전에 폐태자가 물에 빠지기 전에 강 채요와 다툼이 있던 것도 증언을 들었고 폐태자가 강 채요를 죽이겠다고 화를 내어 소리친 것도 증언받았,"
"폐태자가 아니라 내 아들 오왕 이 영경이다!"
황귀비의 날카로운 말에 고 아정이 멈칫하다가 더욱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황도 증거도 충분합니다. 이 모든 것 중에 단 하나만이라도 드러나도 중 죄입니다."
고 아정은 머리를 조아려 말을 기다렸으나 황귀비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고 아정이 의문한다. 어째서 강 채요를 죽이겠다고 하지 않는가. 누구보다 황귀비야말로 강 채요를 증오해야할 사람이 아닌가. 고 아정이 의아한 눈을 한다. 그러나 이윽고 황귀비의 어두운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온다.
"수고했다."
그 말을 끝으로 황귀비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고 아정이 고개를 조아려 소절을 하곤 관저궁을 빠져나온다. 고 아정이 답답한 눈으로 관저궁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무슨 생각에 이르러 조소를 짓는다.
"하!"
고 아정이 절레 고개를 흔들면서 날카로운 말로 빈정거린다.
"제 친자식도 아닌 것을 부정이라니!"
지극정성이군. 고 아정이 그렇게 비꼬면서도 진심으로 그가 한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복잡한 얼굴을 하여 걸음을 한다. 관저궁에서 영선이 령의 요람 안을 잠깐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살이 좀 줄어 얼굴이 적당히 혈색이 오른 령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그 령의 이목구비에 익숙한 사내의 얼굴을 떠올린 영선이 아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령아. 나는 충신보다는 그의 연인이 되고 싶다."
령이 하품을 한다. 영선이 그에 살풋 웃으면서 눈을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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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과 영선과 희 치가 같이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희 치는 그저 조용히 앉아서 영선과 이 경이 대거리를 하거나 서로를 희롱하고 깔깔거리는 것을 즐겨 보았고 가끔씩 영선이 희 치를 놀리거나 이 경이 희 치에게 쭈벗쭈벗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주 같이 밤을 보내고, 이 경을 같이 탐한다. 이 경은 그 열락에 천상에 오른 듯한 환상을 느끼면서도 그 버거움에, 그 숨결에, 그 단 목소리와 사랑하는 연인의 손길에 그것이 현실임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
"죽어도, 죽어도 돼!"
실로 그러했다. 이 경은 그 열락에 휩싸여 죽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쓰러지듯이 기절하여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항상 관저궁이었고 영선이 다정하게 그를 쓰다듬곤 배고파요? 라는 말을 했다.
이 경이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끄덕이면 영선이 정자에 차려놓은 그가 손수만든 음식들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이 경이 그것을 우물거려 먹으면 그것을 영선이 행복하게 바라보곤 했다.
"술을 먹인 어린 닭(醉鷄)이예요."
젓가락으로 뜨끈하게 김이 나는, 야들한 닭의 배를 비틀자 하얀 속살 사이로 김이 모락모락 난다. 인삼과 계피, 황과 대추를 넣은 속살에서는 은근한 향취가 나고 있었고 그 가운데 노르스름한 계란을 꺼낸 영선이 그것을 반으로 잘라 이 경의 입에 대준다. 이 경의 표정은 그 날 별로 좋지 못하여 퍼러죽죽하다.
"음."
이 경이 우물거리다가도 얼굴을 찌부린다.
평소라면 은은한 표정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찬찬히 바라보았을 이 경의 표정이 슬쩍 굳어 있었다. 그에 영선의 표정 또한 살짝 굳어졌다. 아침부터 이 경의 표정은 참 안좋았다. 자다가 일어나서 옆을 보니 이 경은 얼굴을 찌부리고 얼굴을 손에 묻고 있었다. 저가 본다고 조절을 해서 저정도이지 실은 더 문제가 있을것이였다. 아마.
"어디 아파요?"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이 노르스름한데!"
영선의 호들갑에 이 경이 뚱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식사는 하고, 태의를 부르지."
이 경은 이 식사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황금보다 귀하여 그렇게 말했고 밥을 거르는 것을 안좋다고 본 영선 또한 긍정했다. 이 경은 느릿하게 눈을 떴다 감았다. 이 경이 순순히 태의를 부른다는 것을 보면 심각한 것인데.. 병이라도 있는 것인가. 괜스럽게 마음이 안좋아져 거북한 심정으로 수저를 올리던 영선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이 경이 취계가 담겨진 접시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핼쓱한 표정으로 수저로 떠서 맛을 볼려던 찰나에, 입에 머금고선 토악질을 한 것이었다.
"이 경!!"
깜짝 놀란 영선이 바로 뛰쳐나가 옆에 있던 그릇 안에 것을 쏟아 버리고 이 경의 입가에 대어주었다. 이 경이 몸을 웅크리고 토악질을 했다. 영선이 경악서린 표정으로 이 경의 등을 쓸었다.
"우욱.... 욱...!"
영선이 굳은 표정으로 이 경을 바라보았다. 정신이 없는 듯 토를 하고 입가를 훔치는 이 경이 헉헉거렸다. 어지러운 듯이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렸다. 애써 초점을 잡으려는 것에 또 경악한 영선이 이 경을 부둥켜 안고 그의 몸을 쓰다듬으면서 시비를 불렀다.
"안되겠다. 당장 태의를 불러야겠다."
"헉...허억..."
"계자야!! 류 태감!!! 이리와라!!! 태의(太醫)를 부르고자 한다고 해!! 당장 가서 태의를 부르고자 한다고 전해!!"
"헉! 예!!"
"이런 제기랄.. 이 경, 이 경..? 괜찮아? 정신 차릴 수 있겠어??"
영선의 마음에 두 가지 감상이 교차한다. 설마, 혹시.. 하는 마음과 동시에 이 경이 혹여 몸이 좋지 않은 것인가. 전자였으면 좋겠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이 경을 보니 영선의 마음이 편치 않다. 다급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영선에 이 경이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을 영선의 품에서 도닥임을 받던 이 경이 간신히 떨리는 입을 열었다.
"토, 토할 것 같아. 음식 냄새가.."
영선이 바로 이 경을 들쳐 안고 후정을 떠났다. 침실로 빠르게 달려가 침대에 뉘인 후에 영선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이 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좀 괜찮은 듯이 파르스름한 입술에 한숨을 쉬면서 얼굴을 쓸어내린 그가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영선이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이 경이 억지로 몸을 뉘인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영선이 초조함에 손을 매만진다. 전자인가. 후자인가. 전자라면 과연 누구의 아이인가. 어느 쪽도 상관없지만, 아니 제 아이란면 더 기쁘겠지. 그러나 영선은 숨을 쉬지 못했다. 후자라면 어떻게 하지.
설마. 설마하는 마음에 떨고 있는 것에 어깨에 조심스러운 손길이 닿았다. 멍한 표정으로 영선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편안해진 표정이었다. 아니 기분은 좋지않아 보였지만 괜찮은 표정이다. 그에 영선은 확 정신을 들어서 연인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 걸 속으로 자책하고 한숨을 쉬며 애써 칭얼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아프지 마요. 정말 어린 애인 간 떨어져."
"입, 입덧일까?"
이 경이 중얼거리면서 웃는다. 영선이 그를 쓰다듬고 눈을 휘어 웃는다.
한참을 말없이 그렇게 다정하게 서로를 쓰다듬었다. 태의가 오자 영선이 자리를 비켜주고 이 경이 조용히 손목을 내어주었다. 고명한 태의는 이 경의 진맥을 짚더니 안색이 변했다. 대번에 영선의 안색도 싹 바뀌었다.
"어...!"
심상치 않은 태의의 표정에 영선의 표정이 굳어졌다. 불안감에 휩싸인 영선이 태의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심각한 건가. 심각한 것인가."
그러나 태의는 영선의 얼굴을 보고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알듯 모르는듯한 태도에 영선의 얼굴이 기쁨으로 찬다. 환희에 찬 목소리로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희맥인가?"
희맥이라고, 태의가 희맥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듯한 절박한 목소리였다.
"뭐, 뭔가?!"
"이...건..."
태의는 다시 이 경의 손목을 짚더니 안색이 대변하여 영선의 얼굴을 한번 보고 이 경의 얼굴을 싹 봤다. 그제서야 이상함을 눈치챈 영선이 응? 거리고 이 경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그리고 태의가 웃으면서 입을 열며 한 말에 둘은 순간 패닉에 휩싸여 입을 떡 벌리고야 말았다.
"경하드립니다. 쌍생아가 드셨습니다!."
"어......?"
"...지금 뭐라했지."
영선이 후려맞은 듯한 멍한 얼굴로 태의를 벙찌게 바라보았다. 이 경이 낮은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는다. 끝이 살짝 갈라져 나왔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강렬한 시선 속에서 태의가 싱글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아기씨가 둘이나 드셨습니다! 경하드립니다. 폐하!"
"...!"
"쌍, 쌍생..?"
영선이 이 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이 경이 쩌적 굳어져서 영선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쳤고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던 영선이 이 경을 바라보며 애써 표정을 관리하려는 듯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이 경은 넋을 잃고 순간 배에 손을 대고 있었다. 영선이 입가를 슬쩍 가렸다. 그러다가 이 경의 배에 조심스럽게 손을 댔다.
"거짓이면 화를 입을 것이다."
"구할 구푼 구리 확실합니다!"
"하...."
영선은 이 경의 배를 더듬었다. 이 경의 손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겹친 영선이 숨을 잠시 고르고는 넋을 잃은 이 경의 얼굴을 두손으로 잡아 저를 보게 했다.
"내 아이야?"
그리고 얼굴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에 정신을 차리니 눈 앞에는 진지한 표정의 연인이 있었다. 이 경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는 영선, 젊은 외모를 가진 연인은 천천히 입을 열어, 이 경에게 느릿하게 말했다.
"숨이 어때?"
이 경이 숨을 들이킨다. 영선의 과일향내가, 그 은은하고 생기있는 향취가 코 끝을 찌른다. 이 경이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을 삼켰다.
"네 향이 달콤하다..."
이 경이 눈물을 삼킨다. 그 대신에 영선이 환하게 웃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영선이 그를 끌어안는다. 이 경이 그를 꽉 끌어안고 목덜미에 코를 대고 향을 마신다. 그를 꼭 껴안고 숨결을, 그리고 옷 사이의 향을 깊게, 깊게, 깊게 들이 마쉬곤 환희에 차서 소리쳤다.
"네 향이야! 네 향이 달아!"
그는 숨을 멈춘 것 같았다. 그래서 영선은 애인에 대한 사랑을 담아 부드럽게 웃었다.
영선은 다시 이 경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이 경이 입을 열어 혀를 받아 들이고 손을 뻗어 영선의 허벅지를 더듬거려 안쪽으로 향했다. 그 때 말똥히 눈을 뜨고 있던 태의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안정기 지날 때까지는 안됩니다!!"
"엥?"
"안정기?"
"자리잡을 때까지는 합방 금지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아, 그렇지. 영선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 경을 바라보았다. 이 경은 표정을 미세하게 구기고 있었다. 영선이 씩 웃으면서 이 경의 입꼬리에 입을 맞췄다.
"아, 그건 또 힘드네."
이 경이 뭔가 아쉬운듯한 오묘한 눈으로 제 허리를 안고 있는 영선을 내려다보았다. 주홍색 탐스러운 머리 위에 입을 맞췄다. 이 경은 정갈한 향이 나는 영선의 몸 향기를 맡다가 눈을 감고 그를 끌어 안았다.
"음음..."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은은한 미소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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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이 이 경을 끌어안고 희 치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그를 장난에 힘입어 놀려야할지. 아니면 승자의 여유로운 미소를 그를 응대해야할지, 아니면 관대하게 그 다음에는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말을 해야할지 고민한다. 중요한 것은 이 경은 영선에게 찰싹 달라붙어 몸을 뗄 생각이 없었고 영선은 그를 소중하게 끌어안곤 그가 향을 맡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배를 조물조물 만져주곤 있었다.
그리고 연통을 받고 관저궁으로 온 희 치의 다향이 관저궁을 울린다. 영선이 그 순간 눈살을 찌부리며 이 경의 얼굴을 자신의 품에 묻게 하여 거드름을 피웠다.
"향을 죽여! 내 음인은 지금 내 아이를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영선은 그 순간 이 경이 품에서 얼굴을 빼는 것과 새까만 둥그런 눈을 크게 뜨는 것을 보았다. 영선이 의아한 눈으로 이 경을 본다. 이 경이 입을 벌리고 넋을 잃은 멍청한 표정으로 문에 기대어 서있는 희 치를 본다. 팔짱을 끼며 방 안에 들어가지 않아 그 안을 보고 있던 희 치의 눈에 의아함이 스친다. 이 경이 새파란 눈으로 그를 보다가 이윽고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어, 너, 너도... 달아?"
희 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영선의 눈이 크게 떠진다. 이 경이 차마 무슨 말을 더 하지 못하고 억억 거리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그 말을 소리칠 수 밖에 없었다.
"태, 태의!!!"
세 사람의 얼굴이 드물게 벙쪄있다. 혼란에 빠진 이 경의 비명이 관저궁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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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핵가족
아주 희박한 확률로 이부 형제가 쌍생아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확률이 몇만분의 일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