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9 관관저구(關關雎鳩) =========================
이 경이 산달이라 색색거리면서 희 치와 영선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그 전 희의 유산과 령의 조산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어 희 치는 관저궁에 한동안 머물었고 이 경은 끙끙대면서 불쌍한 눈을 하여 그 둘을 옭아맸다.
영선과 희 치가 번갈아가면서, 혹은 같이 이 경을 달랬으니 이 경이 그 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영선은 곧 체념하곤 이 경의 손을 꼭 붙잡고 그를 달래주었다.
그렇게 짹짹 거리는 새소리, 관관히 우는 연못의 물수리의 울음, 하늘하늘한 늦봄, 초여름의 따스함을 같이 맡이한다. 이 경이 꾸벅 졸아 영선에게 기대고 영선이 픽 웃었다.
'이것이 행복인가.'
영선이 관저궁의 아름다운 후원을 본다. 이 경이 궁을 지어 그 앞에 깊은 연못을 파고 물을 채웠다. 하얀 연꽃을 심고 그 위에 물수리를 풀곤 그 궁의 이름을 나의 짝, 나의 아내의 궁, 관저궁이라고 했다. 이 경이 그를 사랑하여 손수 현판에 관저궁을 써서 걸었다. 영선이 멍하게 과거를 상념한다.
힘든 나날이 있었다. 정말 지독히도 힘든 나날이 있었고 절망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양모가 그를 한번 구원했고 그녀가 죽자 절망한 영선이 다리 밑에서 굶어 죽으려고 했다. 하늘이 도와 날씨가 풀려 살아남았다. 석 형일이 희망이 있다 말을 하자 영선은 믿었다.
웃는다. 영선이 웃었다. 이 경이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포기하지 않았더니 그의 세상에 빛이 들었다. 곧 영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가 되어 있었다. 영선이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사랑도 쟁취했다. 우정도 가졌다. 그 하나 수치스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 영선이 멍하게 초여름 햇살의 관저궁 후원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나는 행복하게 살았구나."
이 경이 그의 옆에서 자고 있었다. 다정하게 손을 꼭 잡으면서 이 경이 자고 있었다. 영선이 작게 웃었다.
"나의 사랑."
숨결. 영선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
"나의 주인, 나의 음인."
이 경의 숨소리에 집중한다. 영선이 한참을 이 경의 숨소리와 옅게 들리는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관저궁에 햇살이 들고 있었다. 물수리가 관관히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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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채요는 흐릿한 시야에, 미미하게 보이는 그 뿌옇고 흐린 시야에서 령의 얼굴을 찾았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것은 자신의 씨였다. 자신의 핏줄이었다. 강 채요는 그 순간 단 한번도 령을 잊지를 못했다. 꿈에서도 잊지 못하고 령을 그리워했다. 입신양명이 꿈이었던 강 채요의 마음에는 단숨에 그 조그맣고 귀여운 생명체가 자리했다.
강 채요가 운다. 령을 볼 수가 없었다. 채요는 령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분신이기에, 자신의 단 하나밖에 없는 온전한 편이기에 채요는 령을 그리고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에 자식이 태어난다면 그를 사랑해줄텐데. 항상 채요는 생각했다. 아비는 채요에게 가혹하게 대했고 채요는 어린 나이부터 방중술을 배우면서 만약 그가 자식을 가진다면 제 아비처럼 그를 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그 조그마한 젖먹이. 옹알대고 아웅하는 작고 약한 생명체. 계자의 품에 안긴 그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황귀비는 불쾌하게 여겨 요람의 자락으로 그 얼굴을 가렸다. 채요는 비명을 지르면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사랑한다. 저 아이는 제 분신이었다. 제 핏줄이었다.
마차에서 떨구어지면서 채요는 령의 옹알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꺄르르 웃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저 아이를 태자로 만들기로.
채요가 가질 수가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그 아이에게 주기로.
채요가 아등바등 쟁취하려고, 얻으려고 애썼으나 결국 가지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령은 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황귀비는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듯 했다. 채요는 황귀비의 성품을 짐작하고 있다. 그는 보통이 아닌 사람이지만 의외로 약한 부분이 많았다.
령은 황귀비의 품에서 더 행복해질 수가 있었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에 채요는 더 이상 황귀비에게 매달릴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채요 자신이 더 매달려서 황귀비의 분노를 산다면, 만약에 황귀비가 그 아이를 버려서 채요와 령이 둘 다 끈 떨어진 연의 신세가 된다면. 그것은 령의 앞날에 암담한 먹구름이 낀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그래서 채요는 찢어지는 고통을 삼키고 그 아이를 넘겨주었다. 그 아이를 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았다. 령을 그리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령의 드문하게 보이는 손이 보인다. 휘휘 젓고 있던 작은 손.
황귀비인가.
서서히 무너져가는 몸, 떨리는 손. 이제 수명이 얼마나 남은 것인가. 채요는 헛웃는다. 자신은 졌다. 그러나 령은 살았다. 그것으로 되었다. 채요는 령을 위해서 쇠창문을 열고 개에게 향을 뿌려 그를 날뛰게 만들었다. 영연과 영오가 개에게 쫒긴다. 영오가 영연을 뿌리치고, 영연이 넘어져서 공포에 질려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았다. 컹컹! 우짖는 개의 섬뜩한 이빨.
강 채요는 자신이 저지를 죄악을 회피하지 않고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윽고 끔찍한 소리가, 흐릿한 시야에 끔찍한 광경이 가득찬다.
'지옥에 가지도 못할 거야.'
아마 지옥보다 더 깊숙한 곳, 그 밑바닥까지 떨어지겠지. 강 채요는 중얼거린다. 하지만 어쩌라고 배운 것이 이것뿐인데. 아비는 항상 황제를 홀리라고 말을 했고 황제의 총애를 얻고 다른 경쟁자를 박살내라고 말을 했다. 채요에게 또래 친구란 없었고 채요와 말을 나누는 일은 없었다. 여섯살 때 나무인형을 가져와 그녀에게 방중술을 가르친 아버지는 강 채요에게 온정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탁 빈. 강 채요는 그를 잠시 생각한다. 그에게 다정하게 대하여준 투박한 사내. 강 채요와 함께 살아, 그는 강 채요가 총애를 못 받으니 다정하게 대해주었고 황귀비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초야를 도와주었다.
대체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멍청할까. 그렇게 생각하던 강 채요가 웃는다. 그러나 웃음이 곧 입가에서 사라진다. 강 채요가 멍하게 하늘을 본다. 흐릿한, 그저 형체만 보이는 구름. 청명한 하늘.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강 채요는 탁 빈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니다. 이제 와서 그런게 무슨 소용인가. 채요가 웃는다. 그녀는 오직 총애를 얻으려 탁 빈을 음해했고 그의 아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은혜를 원수로 갚으니 이다지도 사악한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그저 나풀거리는 걸음으로 담월지에 가서 쪼그려 앉는다. 여기서 강 채요가 샛길로 숨어들어가서 개의 창살을 열었지.
그녀가 웃는다. 황귀비를 생각한다. 죽음이 목전에 온 것을 안다. 답지 않게 감상에 빠져 채요는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었어. 나는 령을 사랑했단 말이야. 내 아들을 사랑했단 말이야. 영연이에게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채요가 령을 생각했다. 황귀비의 품에 안긴 그녀의 아들. 그녀의 피. 그녀의 핏줄.
"령을 위해서라면 영연을 죽일 수 밖에 없었어."
그리고 그녀는 문득 그녀의 흐릿한 시야에 보인 땅에 스치는 그림자에 놀라 고개를 든다. 채요가 갑자기 이마에서 느껴지는 극한의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퍽!
"아아아악!"
누군가의 거친 손이 채요의 머리채를 잡는다. 채요가 흐리멍텅한 시야에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뜬다. 충혈된 눈으로, 핏발이 선 눈으로 얼굴을 흉신악살처럼 일그러트린 산발의 사내가 손을 휘두른다.
"네가!!"
망치다. 쇠망치가 채요의 이마를 찍어 그녀의 골을 울리고 그녀에게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극한의 고통을 선사하고 있다. 채요가 눈을 희게 뒤집어까면서 손을 허우적거린다. 채요가 문득 흐릿한 시야 속에서 황귀비와의 대담을 상기시킨다.
'나는 내 죄의 대가로 지금 당장 죽더라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겠어.'
그랬던가. 그렇게 말했던가. 채요가 흐릿하는 시야에서 또다시 그녀의 머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억, 소리를 낸다. 곧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채요가 희미해지는 시야에서 곧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쾅!
"어억!"
"영연이를 죽였어!!!"
그러나 어째서 이렇게 평온한 것인가. 채요가 중얼거린다. 너무 피곤했어. 너무 피곤했지. 독하게 사는 것도 힘이 드는 일이야. 나는 너무 쓸데없는 일에 내 삶을 낭비했어. 지독하게 낭비했지.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 곧 정신이 끊어졌다. 채요는 아스라이, 처음으로 너끼는 평온함에 가득차서 눈을 감았다. 수풀 사이로 망치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곧 풍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담월지 옆에 처참하게 눈을 부릅뜨며 죽어간 체요의 시체가 있었다. 수면 위에 파장이 그려져 나갔다. 연잎에서 개구리가 우는 소리가 난다. 초여름의 햇살이 평화로운 담월지 안을 비추고 있었다.
하늘이 그렇게도 청명한, 그렇게도 맑았던 날의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 완결 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