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0/148)

00140 관관저구(關關雎鳩) =========================

 탁 빈, 아니 이제는 탁 귀빈이 된 탁 조가 아들을 그리면서 아들이 죽은 장소를 빙빙 돌았다. 죽은 영연이, 진애왕이, 자신의 자식이 그리웠다. 동시에 화가 났다. 대체 왜 그렇게 죽은 것인가. 탁 조는 더 이상 살 자신이 없었다. 탁 조에게 영연은 모든 것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 아이를 모자란다. 출신이 떨어진다. 소심하다 비웃어도, 심지어 그 아이를 직접 태로 낳은 이 경마저 그를 외면했어도 이 외로운 황궁 안에서 그 아이만이 탁 조가 애정을 둘 곳이었으니까.

 그래서 탁 조는 그 아이를 사랑했다. 영연을 잊을 수가 없었다. 탁 조는 그 아이가 죽은 장소를 그리다, 그리다, 서성이가 문득 샛길을 발견하고 담월지 옆에 앉아서 중얼거리는 강 채요를 발견했다.

"어쩔 수 없었어. 나는 령을 사랑했단 말이야. 내 아들을 사랑했단 말이야. 영연이에게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 말을 들은 순간 탁 조는 바로 그가 왔던 길을 거꾸로 달려가 그가 지나치는 길에 발견하였던, 창고 옆에 떨어진 망치를 주웠다. 탁 조의 눈에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령을 위해서라면 영연을 죽일 수 밖에 없었어"

 탁 조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삶의 빛은 오직 이 영연 뿐이었으니까. 그에게 남은 것은 없었으니까. 망치를 휘두르고 강 채요가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뒤집어깐다. 탁 조는 핏발 선 눈을 하여 다시 망치를 휘둘렀다. 채요가 악 소리를 내면서 얼굴을 다잡는다. 피가 튀기고 살점이 튀긴다. 탁 조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채요를 노려본다.

"너가!!"

 채요가 꽥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탁 조는 그녀가 넘어갈 때까지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채요가 완전히 부서져서야 탁 조는 망치를 집어 던지면서 허망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청명했다. 탁 조가 잠시 그 하늘을 바라본다. 말없이 쨍쨍한 초여름의 하늘을 바라보던 탁 조가 웃는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물에 빠진 탁 조의 시신을 건지고 궁인들이 강 채요의 처참한 시신을 발견하고 비명을 지른다. 곧 황후에게 보고되고 희 치는 깔끔하게 그것을 처리했다. 강 채요는 전에 맹인이라 속였던 것을 기군망상이라 칭해져서 그 낭중의 집안까지 엮어서 처벌을 받았고 탁 조는 아들이 보고 싶어 슬퍼 자결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불쌍하게 목숨을 끊은 탁 조의 소식에 이 경은 크게 죄책감이 들고 그를 불쌍히 여겨 탁 조의 노모와 형제자매에게 작위를 내리고 그에게 명복을 비는 시호를 내렸다. 평안할 안(安), 맑을 숙(淑)이 그의 시호였다. 안숙귀비의 묘와 이 영연의 묘가 합장이 되었으니 원래 후궁은 첩인지라 친아들과의 합장이 불가했으나 이 경이 크게 마음을 쓴 것이었다. 황권이 강하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 일을 이 경이 마음을 돌리지 않으니 산부를 자극하는 것이 크게 위험한지라 조정 신료들이 뜻을 꺾었다. 이 경이 폭급해 혹여라도 몸이 상할까 하는 걱정이었다.

 영선은 강 채요와 탁 조의 죽음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탁 조는 영선과 다르게 남은 것이 없었다. 영선은 몹시 가슴이 묵직하고 괴로워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탁 조에게 그 아들의 죽음을 밝히지 못했다. 영선은 탁 조에게 죄를 지었다.

 정천사에서, 영선은 예불을 드렸다.

 나는 과연 옳았던 것인가. 영선이 처음으로 죄책감에 휩싸여 괴로워했다. 부처는 말을 걸지 않았고 영선은 씁쓸함에 눈을 감았다. 영선은 탁 조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으니까. 그의 이기심이, 사랑하는 이를 위한 마음이 탁 조에게 한을 만들었으니까. 영선은 이기적인 짓을 저질렀다. 영선은 마음이 비통하여 결국엔 몸이 무너진다. 영선이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쓰러지는 일이있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희 치가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희 치의 가라앉은 흑벽이 영선을 담고 있었다. 영선은 말을 하지 않았다. 굳이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으니까. 희 치는 눈을 감았다. 영선이 흐느끼곤 중얼거렸다.

"이런 거지. 나는 하나를 얻었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것이었어."

 희 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영선은 슬피 웃었으나 곧 배가 불러 안절부절하는 이 경에게 다가가 그를 껴안았다. 이 경이 다시 제 곁으로 돌아온 영선에게 안정감을 느끼고 웃었다.

 영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었다. 이 경이 바로 그 대가였으니까. 그 많은 것을 포기하고 영선을 궁에 남게 하던 유인이었으니까.

 영선이 이 경의 배를 쓰다듬고 요와 매이를 기다렸다.

 그리고 달이 밝은 날에, 이 경의 산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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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영선이 입을 막고 몸을 덜덜 떨고 있다. 이 경의 울부짖는 소리는 더욱 끔찍하고 잔혹했다. 차라리 대신 죽으라고 한다면 죽어줄텐데. 어떻게 저렇게 아파하는거지. 어떻게 저런 고통을 견디는 거지. 영선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저건 이 경이 홀로 싸워야하는 전장이다. 영선은 몸을 떨면서 후회에 사로잡혔다.

"아니야. 나는 이렇게까지 자식을 바라지 않았.."

 희 치가 그 순간 영선의 뺨을 잡고 시선을 마주한다. 영선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희 치가 붉은 기운이 일렁거리는 눈으로 영선의 눈을 마주했다. 영선이 그 희 치의 노여움이 스치는 두 눈을 마주한다. 희 치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감정을 억눌러 똑똑하고 명확하게 말을 한다. 영선의 귓가에 희 치의 갈라진 목소리가 닿았다.

"후회할 말은 하지마라."

 희 치가 억누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흑벽의 두 눈은 그 무엇보다 곧고 바르게 영선을 보고 있었다. 그 평소에 위치가 뒤바뀌어서 영선은 동요하고 있었고 희 치가 충고를 하고 있었다.

"이 경이 자식을 다섯이나 낳으면서 그 고통을 예상 못했을 것 같아?"

"희 치.."

"이 경은 다 알고 원한거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영선의 눈에 다시 초점이 돌아온다. 희 치가 그를 놓았다. 영선이 중얼거렸다.

"알아."

"......"

"알지, 미안."

 영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냥 두 손을 모으고 얼굴을 무릎에 묻으며, 그저 하늘에게, 부처에게, 그 모든 것에 기도를 할 뿐이다.

'제발 무사하게 해주세요. 이 경도, 요도, 매이도 무사하게... 제발....'

 그저 영선은 빌 뿐이었다. 끊임없이 빌어서, 빌고 빌어서 그 아이들을 품에 안을 수 있도록. 사랑하는 제 자식과 희 치의 빛이 될 그의 자식을 보고 싶었다. 품에 안고 어르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 경을 끌어안고 싶었다. 장하다고, 기쁘다고, 사랑한다고, 그래 사랑한다고, 그래 당신이 내 의미였다고, 내 마지막 기쁨이자 희망이라고, 피는 꽃처럼 화려하게, 지저귀는 새로 능란하게, 부는 바람으로 산뜻하게, 달돋이로 황홀하게, 그런 아름다운 광경보다 더 환하게 제 인생에서 피어났던 꽃이었다고 말을 하고 싶었다.

"으아아악! 아악! 악!!!"

 영선이 숨을 멈췄다. 이 경은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것이 세시진이었다. 영선이 기력에 지쳐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희 치가 묵묵히 그 자리에서 서있는데 희 치의 표정도 과히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영선의 고개가 팍 들렸다. 희 치의 숨이 멈춘다.

"으아아앙! 아아아앙!"

 희 치의 발목이 그 순간 꺾인다. 놀랍게도 그때까지 평정심을 유지하고 거목처럼 서있었던 희 치는 휘청거리면서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야 말았다. 영선이 감격에 눈물을 흘린다. 희 치가 아득한 시야에 눈을 꾹 감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매이.. 매이... 나의 새벽... 내 어둠을 밝혀줄 나의 기쁨."

 나의 사랑. 나의 가족.

 위현의 웃음소리가 그 순간만큼은 들리지 않았다. 희 치가 헐떡이면서 연신 그 말을 되뇌었다. 나의 가족. 나의 가정. 내가 잃어버렸던 그 모든 것.

 그리고 류 태감이 그들에게 달려와 고개를 숙여 조아리는 그 순간에 그들이 곧장 태양전의 안으로 뛰쳐 들어간다.

 침대에 지친 이 경이 산발이 되어 아이 둘을 품에 안고 있었다. 영선과 희 치가 문을 박차고 들어가 그 문에 서서 그것을 멍하게 바라본다. 헐떡이던 영선을 바라보며 이 경이 씩 미소를 지었다.

"네 딸이다."

 영선이 멍청하게 되뇌인다.

"딸?"

 이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경이 되뇌였다.

"그래. 딸. 나와 너의 황녀, 태요(台瑤). 우리의 아름다운 옥."

 영선이 침대에 다가간다. 이 경이 품에 안긴 태요를 내밀었다. 영선의 숨이 멈췄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비단에 휩싸인 태요를 끌어 안았다.

"앙웅.."

 작은 몸이다. 너무나도 작은 몸이었다. 태요의 몸은 쭈굴했고 영선을 닮아 있었다. 감긴 눈썹이 숱이 많다. 딸의 머리색은 보드라운 주황색이었고 입매는 고양이를 닮아 있었다. 손발을 바동거리면서 태요가 움찔거렸다. 이윽고 뭐가 불편한지 몸을 바르작대면서 앙앙 운다.

 영선도 흐느꼈다. 태요를 끌어안고 흐느꼈다. 갓 태어난 태요를 바라보며 영선이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그것을 이 경이 잔잔한 웃음을 그리며 바라본다. 이 경은 제 딸을 안고 뺨을 비비는 영선을 잠시 바라보다가 문에서 감히 그 안을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 희 치를 바라본다. 이 경이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희 치."

 희 치의 몸이 움찔 거린다. 고개를 들고 희 치가 이 경을 보았다. 이 경이 웃었다. 저 덩치 큰 사내가, 저 북걸이, 저 도올제일인이 두려움에 가득찬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들어와."

 희 치가 그 말에 감히 거역을 하지 못하고 홀린듯이 침상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이 경이 품에 안긴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다. 갓 태어난 쪼글한 아이임에도, 그 아이는 모든 것이 희 치를 닮아 눈이 크고 행인처럼 그 선이 붓을 그린듯이 유려했고 피부가 백옥같았다. 그 머리색이 새까맣고 그 얼굴이 어여뻤다.

 이 경이 웃으면서 매이를 건냈다. 희 치가 떨리는 손으로 그를 껴안아 들었다. 거짓말처럼 떨림이 멈췄다.

 얼굴을 본 순간 희 치의 숨이 멎었다. 세상이 멈추고 그의 모든 고통에 종말이 찾아왔다.

 희 치가 매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 경이 중얼거렸다.

"나와 너의 황자. 이 황실의 첫 적통황자인 태이(台弛)다."

 이 경이 잠시 말을 멈추다가 우는 듯이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치. 우리의 기쁨이다. 다시 우리에게 기쁨이 찾아왔어."

 차곡하게 쌓인 행복이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눈처럼 녹아보이고 또다시 나의 고통이 계속 되었던가?

 빛이란 없었고 슬그머니 다가온 나의 기쁨을 내가 내 손으로 져버렸던가.

 희 치는 태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우두커니 서서 태이를 보았다. 갈라지는 마음. 찢겨진 영혼. 절망이 나를 무릎을 꿇게 하여 더 이상 빛을 바라지 못하게 했지. 구원을 차마 바라지 못하게 나를 학대하고 괴롭게 했지. 그래서 희 치는 굴복했다.

'나는 음월전에서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평화롭게. 그저 아무 일 없이. 그저 아무 일도 없이 살다가 죽을 것이다.

 그 순간 희 치가 울부짖었다.

 평화가 뭐지? 아득한 저 편에 그가 본디 가지고 있었던, 다른 사람들처럼 가지고 있었던 그 일상의 아늑함은 무엇이였지? 희 치가 그 순간에 둑이 무너져서 그에게 물 밀려오듯이 쏟아지는 감정에 휩싸였다.

 아, 참으로 괴로웠다.

 참으로 고난뿐인 삶이었다.

 그저 길들여진 개처럼 복종했고 차마 평온을 바랄 수가 없었다. 그저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헀다. 희 치가 비명과도 같은, 가슴이 찢기는 울음을 터뜨리며 태양전의 바닥에서 쓰러졌다. 태이를 끌어안고 그 바닥에서 몸을 웅크렸다.

 태이는, 태이가 있었다. 이제 그에게 평범한 삶이 있었다.

 희망이 다시 찾아왔다. 희 치가 흐느끼면서 태이를 끌어 안았다.

 그가 잃어버린 이후로 절대로 가질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상의 시작이, 태이와 함께 돌아오고 있었다.

 이 경이 바닥에서 짐승처럼 우짖는 희 치를 가만히 바라본다. 무언가를 느낀 이 경이 입을 떼지 안고 스륵 눈을 감았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이 경이 침대에 몸을 파묻고 중얼거린다.

'일어나서, 화를 낼거야. 따지는 것은 일어나서 해야지.'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도 피곤하다. 손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만큼. 그러니 일어나서 영선이와 희 치를 갈구고 떵떵거려야지. 설마 저렇게 예쁜 아이를 낳았는데 내 투정을 받아주지 않을 수 있겠어? 이 경이 호언장담을 하며 하품을 한다. 천천히 시야가 흐려지고 있었다. 이 경이 눈을 몇번 느릿하게 깜빡이더니 이윽고 졸음을 이기지 못해 색색 거리며 숨을 내쉬었다. 이 경이 천천히 수마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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