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148)

00141 관관저구(關關雎鳩) =========================

 출산을 하고 이 경은 영선과 희 치에게 장담했던대로 떵떵 거리면서 패악을 부렸다.

"흠흠, 태이의 요 예쁜 눈이 누구에게서 나온 건지 아느냐?"

 영선이 바로 대꾸한다.

"뭘 묻긴 물어요? 치아랑 똑닮았구만!"

 이 경이 눈매를 팍 날카롭게 하면서 영선을 노려본다. 그에 영선이 농을 하여 받아치려는 것을 희 치가 묵묵히 사과를 깎던 중에 그것을 반으로 잘라 각각 영선과 이 경의 입에 넣어준다. 이 경이 으적이면서 침상에서 사과를 받아먹고 영선이 눈알을 데굴거리면서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

 희 치는 가족을 얻었고 태이를 얻는 순간 가정을 일구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희 치는 그것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경을 끼고 돌았고 태이의 등장에 감격해서 이 경을, 제 아들을 낳은 음인을 아끼고 또 아끼고 있었다. 그것은 영선보다 더 심한 과보호인지라 영선은 속으로 기막혀 하면서 그 꼬라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희 치가 조심조심 사과를 깎고 있다. 영선이 또다시 헛웃는다.

"북방의 대장군이 사과를 깎다니!"

 그렇게 말한 영선은 조물조물 이 경의 발을 주무르고 있다. 이 경이 태이를 끌어 안고 한참을 즐거이 그의 이목구비를 뜯어본다. 희 치의 천인 같이 훌륭하고 뛰어난 외모를 물려받은 태이다. 이 경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영오의 얼굴도 준수했는데 태이는 그에 비하면 훨씬 더 꽃 같고, 옥 같고, 하여간 이 경의 미숙한 수사로는 표현이 불가할만큼 아름답고 잘생긴 황자였다. 이 경이 그를 보면서 한참을 즐거워하다가 그를 희 치에게 건내어 준다. 희 치가 태이를 소중하게 끌어 안아 그를 품에 안는다. 태이는 이제 희 치보다 소중한 아이였다. 희 치가 그의 숨결, 그 작은 콩닥임, 심장소리에 아득함을 느꼈다. 희 치의 흑벽같은 두 눈을 고스란히 담은 맑은 두 눈이 깜빡인다. 희 치를 보고 꺄르르 웃고 있었다.

"눈을 떴구나."

 희 치가 중얼거린다. 태이가 문득 희 치의 머리카락을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는 앞을 볼 수 없을 터이지만 희 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희 치는 고개를 숙였고 제 머리를 쥐어뜯는 희 치에 고개가 푹 꺽이고야 말았다.

"푸흡."

 제 아들에 껌뻑 죽는 희 치가 어쩌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사과를 뱉어낼뻔한 영선이 고개를 돌리고 큭큭거리다가 곧 유모에게서 태요를 돌려받은 이 경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태요가 웃고 있다. 태요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꺄르르르.. 아웅앙.."

 이 경이 신이 나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을 한다.

"이 아이는 너를 닮아서 웃음이 많구나! 참 웃는게 예쁘다."

 마치 그를 꼭 닮은 주홍색 머리카락. 그리고 눈은 아직 뜨지 못했지만 분명 그 안은 황갈색, 호박을 닮고 또 묘안석을 닮은 눈이 있겠지. 별처럼 반짝이고 찬란한, 그 사랑을 담고 바라볼 때에 다각으로 빛나는 감정의 편린. 이 경이 태요를 바라보면서 사랑을 그렸다. 그렇다. 태요는 그의 아이였다. 이 경과 영선의 아이.

 불연듯 이 경이 중얼거린다.

"태요가 너무 소중해."

 그 전까지 이 경이 아이를 낳으면서도 느끼지도 못했던 감정이 그를 장악했다. 이 경은 황제였다. 이 경은 자신의 자리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 강 채요의 일도 이제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었다. 영선과 희 치가 숨기고 있는 것에 무언가 그가 모르는 음습한 암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저 이 경이 아이를 위해서 그 동안 모르는 척 해왔으니 사실 자식들이 죽고 죽고, 후궁들이 싸우고 모함하고, 그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 경이 두려움에 휩싸여 중얼거린다.

"태이와 태요가 모함당하면 어떻게 하지? 해를 당하면 어떡하지? 영오처럼, 영경이처럼, 영연이처럼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 순간 아이를 달래던 희 치의 몸이 굳어진다. 영선이 고개를 들어 이 경을 바라본다. 이 경이 멍하게 태요를 끌어안고 영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영선이 호쾌하게 웃었다.

"당신, 지금 남준과 북걸을 양 옆에 끼고 그 아이를 가졌는데도 그런 말이 나오는군요?!"

 그 순간 이 경이 말똥한 눈을 크게 뜨고 영선을 바라본다. 영선이 무슨 그런 걱정을 하냐는 듯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 아이는 우리 둘이 지키고 있어요. 네? 황제의 아들이고, 북방 대장군의 아들이고, 북걸의 아들이라고요. 도올요호에 천년 묵은 여우 관저궁 신귀비의 딸이고, 그 두려움 없는 남준의 딸이 황상이 걱정하시는 그 아이 라고요!"

 이 경이 그 순간 거짓말처럼 불안감이 사라져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어.."

 순간 그 걱정을 한 것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말마따나 남준과 북걸의 자식인데다가 권력이 공고한 이 경의 자식이 아닌가. 그들의 앞날에 앞으로 창창히 밝은 일만을 남았을 것인데 순간 이 경이 그런 걱정을 한것이 팔불출스럽기도 하고 하여튼 부끄러워 멋쩍게 웃는다. 볼을 긁으면서 이 경이 중얼거렸다.

"그래, 우리 태이와 태요는 너가 지켜줄 거니까."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럽다. 천군만마를 데려와도 그보다 믿음이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 경은 그를 잠시간에 흔들었던 고민을 말끔히 마음 속에 없애곤 호쾌하게 웃었다.

"그래! 내가 바보 같았다. 어련히 아비가 알아서 자식을 챙길까."

 이 경이 그리고 다정하게 새근히 자는 태요의 뺨을 쓰다듬었다. 영선을 닮은 여우상에, 꽤나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아이가 웅얼거리고 있었다. 이 경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면서 태요를 보았다.

"이 아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리고 이 경은 영선이 본 그 누구보다 환하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

 태이는 태어난지 삼일만에 촉왕(蜀王)으로 봉해졌다. 태요도 그 순간 기쁠 희 자와 완전할 완자를 하사받아 희완공주로(喜完公主)로 책봉되었다. 태요라는 옥이 평생토록 흠집나지 않도록, 그 아름답고 찬란한 빛을 유지하라고 이 경이 친히 고른 봉호였다.

 태이와 태요는 태내에서 열달을 같이 함께 한 것을 증명하듯이 서로에게 꼭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태이와 태요가 서로가 멀어지면 울음을 터뜨리고 발작을 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영선은 그들을 음월전으로 보내서 같이 양육하게 해야만했다. 허나 영선이 그 아이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영선은 쌍둥이가 책봉받던 날에 같이 제왕(?王)으로 책봉받은 태령이를 안고 음월전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으니까. 어쩔 때는 음월전에서 잠을 자곤했고 희 치가 영선이 신경쓰여 관저궁으로 그 둘을 보낼 때면 이 경이 그의 손목을 잡고 후다닥 관저궁으로 달려갔다.

 그럴 때면 희 치는 이 경에게 순순히 이끌려서 관저궁으로 끌려가서 그 아이들을 어루어만졌다. 그 아이들은 울어도 아비를 보면 헤헤 웃었고 가끔씩 희 치의 긴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면서 놀았다. 그 때마다 영선과 이 경이 희 치를 놀렸으나 희 치는 어찌되었건 상관이 없었다. 제 자식이 웃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희 치는 익숙하지 않았으나 천천히 그 일상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를 돌보고, 영선과 이 경이 왁자지껄 떠드는 곳에 함께하고, 그들과 같이 농지거리를 하는 삶.

 어느 순간 희 치는 깨달았다. 그의 삶에 뿌옇고 음습하게 자리했던 안개가 걷힌 것을. 지독한 고통이 가시고 희 치는 어느 순간 웃고 있었다.

 그리고 희 치가 그에 얼떨떨함을 느낄 때 이 경이 그를 찾아왔다.

"희 치."

 영선이 그 옆에 서있었고 웃고 있었다. 이 경도 그를 보면서 무언가 뜻이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희 치는 그 미소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 둘은 각기 태이와 태요를 끌어 안고 희 치의 양 팔을 붙잡고 그를 질질 끌고 갔다.

 황후의 수레에 타면서도 희 치는 그들이 어디가는지를 몰라 의아함을 느꼈으나 그 둘은 입을 다물고 열지를 않았다. 희 치도 곧 포기하여 한손에는 태이를 끌어안아 달래고 요람에 있는 태요를 흔들거리면서 그 얼굴을 바라본다. 아이가 꺄륵 웃더니 결국엔 희 치의 머리카락을 죽죽 잡아당긴다. 희 치가 휘청거리면서도 표정을 일그러트리지 않고 태이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태요의 요람을 흔들거렸다.

 대체 어딜 가는 거지. 희 치가 수레에서 한 생각이었다. 이 경의 웃음을 가벼웠으나 그것은 장난기가 섞여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영선의 눈도 부드럽고 온화한 빛을 가졌으나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들의 웃음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희 치는 의아함을 느끼면서 영선과 이 경이 탄 어가를 바라본다.

 그리고 수레에서 내린 순간 희 치는 숨을 멈췄다. 한참을, 한참을, 희 치가 말을 잇지 못했다. 희 치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심장이 멈춘다. 폐부에 고통이 스며들어 희 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뒤에 희 치가 갈라진 목소리로 고통스럽게 말했다.

"여, 긴.."

 이 경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희가 잠자는 곳이다."

 이 경과 희 치가 눈을 마주한다. 희 치가 얼어붙어서, 그저 얼어붙어서 움직이지를 못했다. 숨조차 쉬지 못해서 그저 멍하게 태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사녀묘. 봉긋하게 솟은 희의 무덤이 그 눈 앞에 있다. 가슴에 묻었던, 어느 순간 그도 모르게 그에게 찾아와 너무나도 쉽게도 사라졌던 그의 기쁨이 그곳에 있었다. 희 치가 격동에 무릎이 꿇리는 것을 참았다. 이 경은 딸의 무덤 앞에서 더 태연했다. 고통을 미리 겪은 이 경은 이제 울음을 흘리지 않았고 가슴 아파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다정하게 희의 위패를 바라보았다.

 희 치가 무릎을 꿇었다. 그간 고통에 희의 무덤을 찾지 않았다. 그녀를 그렸으나 위패를 볼 수도 없었다. 너무나도 그의 마음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심장에서 피가 흘러 멈추지 않았었다. 희가 처음으로 위패 앞에 섰다.

 민도공주(愍悼公主) 희(喜).

 품에서 태이가 바르작댄다. 태이가 꺄르르 웃었다. 이 경이 배향을 하고 그녀의 앞에 선다. 이 경이 누구보다 다정다감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희야.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애석하게도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하고 아비가 너에게 미운 말을 하였다."

 희 치가 위패를 바라본다.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온유한 목소리가 사당을 울렸다.

"처음에 내가 너에게 절망하여, 기뻐하지 않았으나 나는 곧 너가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사랑스러웠어. 나는 분명히 너를 기뻐했고 너의 아비도 너를 기뻐했었지만 우리는 많은 일들이 얽히고 얽혀서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너를 반기지 못했지만. 분명히 너는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희 치의 등이 떨린다. 그의 뒤에서 영선이 눈을 감았다. 영선이 느릿한 한숨을 쉬었다. 영선이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희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기도를 올린다.

"너의 동생이 태어났고, 나는 입 밖에 내지 못한, 세상에 알리지 못한 나와 그의 마음을 드디어 드러낼 것이지만..."

 이 경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사당을 울렸다.

"하지만 희 너를 대신할 수가 없겠지. 언제나 너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겠다."

 이 경이 마지막으로 말을 한다.

"사랑한다. 희야. 죽은 뒤에 우리가 향할 그곳에서, 너가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있거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