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3 관관저구(關關雎鳩) =========================
"흠흠."
이 경이 헛기침을 한다. 머쓱해하면서 금을 만지작 거린차던 이 경이 빼꼼 눈치를 보면서 영선을 바라본다. 영선이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해요."
"응?"
"먼저 해요?"
"어, 어?"
이 경이 드물게 망설이자 영선이 참지 못해서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능숙하게 당신의 연주를 따라가야지요! 그래야지 서툰 당신의 음을 맞추지."
"아, 알겠다."
이 경이 머뭇거리면서 금을 쓰다듬는다. 모후께서 타신 금이다. 이 경이 음악에 시큰둥한 태도를 가진지라 그것을 창고에 쳐박아두고 꺼내지를 않았는데 저번에 피리를 꺼내면서 영선에게 선물하여 그와 함께 타겠다고 맹세한 바가 있었다. 영선은 그 말을 곧 붙잡아 매달아, 질색하는 이 경을 닥달하여 금을 가르쳤다. 태교에 좋다는 소리를 들으니 이 경도 우물쭈물하면서도 금을 배웠다.
한 지금 일년인가? 이제 여름이 다 지나가고 가을도 이제 거의 끝나가니 아마 그 때이겠지. 처음의 약속은 봄에 같이 합주를 하자는 것이였으나 어쩌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이 경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금에 손가락을 올린다.
퉁, 하고 튕겨오는 금이 곧 떨려오고 이 경이 곧 진지한 얼굴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영선도 그것을 말없이 웃으면서 바라보다가 곧 숨을 들이 마쉬고 피리를 입에 댄다.
맑고 청아한, 이 경의 것과 확실히 차이가 나는 아름다운 소리가 누대에 번졌다. 이 경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손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영선의 아름다운 피리 소리에 주눅이 들어서 소심했던 이 경이지만 곧 그를 격려하는 듯한 경쾌하면서도 종종거리는 피리 소리에 홀려, 그리고 그 다정한 웃음을 보곤, 그 눈을 마주하면서 무언가의 따스함을 느껴, 곧 그를 신경쓰지 않고 손을 놀렸다.
곧 영선의 피리 소리가 능숙하게 이 경을 앞서 당겼다. 이 경은 무언가 훨훨 나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사람이 악기를 배우는 건가.'
이 경이 얼떨떨한 심정으로 손을 놀렸다. 아리야향문(阿李芽香文)을 영선이 손수 편곡하여 사랑이 넘치는 다정다감한 곡으로 만들어 이 경에게 익히게 한 것이다. 영선의 연주는 이미 아득한 경지에 이르려 합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고 이 경은 본래에 퉁명스러운 소리 대신에 그런대로 영선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금소리를 내었다.
시간은 찰나와 같았다. 이 경은 평온함을 느꼈고 영선과 눈을 마주하면서 마음에 안정을 느꼈다.
'아 이런 것이구나.'
이 경이 깨달았다. 이래서 모후와 부황이 합주를 하셨구나. 다정하게 서로 마주보고 그렇게 금과 피리를 함께 탔구나. 이 경이 시간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그 세상은 달고 아름다웠다. 영선은 부드럽게 웃었고 반짝이는 묘안으로 그를 담았다.
아주 찰나라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 이 경은 금의 마지막 음을 튕긴 것을 깨닫고 탄식했다. 영선이 피리에서 입을 떼고 느릿하게 숨을 내쉬었다.
영선이 고개를 들어 이 경과 마주 보면서 웃었다. 황홀할만치 사랑스러운 그 두 눈이 휘었다.
"제법 아름다웠죠?"
이 경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응."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이미 할 말은 다 한 것 같은데. 이 경은 그를 안고 사랑한다고, 목숨보다 귀애한다고, 총애한다고, 그리고 너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너를 원한다고, 각인을 하자고 말했다. 그 말은 다 진심이었고 지킨 것도 있고 못 지킨 것도 있으나 이 경은 그 말을 언제라도 이룰 자신이 있었다. 영선이 배 위에 올라간다. 물을 하지 못하는 그의 연인은 뱃놀이를 무척 좋아했다. 이 경이 노를 저었고, 말리는 영선을 막으면서 말했다.
"내가, 내가 하고 싶어."
이 경이 이윽고 황성의 화려한 불빛을 바라보는 영선을 본다. 꿈을 꾸는 것과 같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두 눈동자. 사가에서 보았던 생기 넘치던 그가 황궁에서 빛을 잃어간다고, 답답해한다고 생각했으나 이 경은 그 생각을 지웠다. 영선은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저 그가 존재하는 곳, 가는 곳곳에 활기를 불어 넣으면서 영선은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이 경이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문득 이 경이 중얼거렸다.
"희 치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영선이 황성의 화려한 경치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반짝이는 묘안을 마주한 순간 이 경이 흔들거리는 눈을 하여 그를 본다.
"너는 내 원망을 묵묵히 홀로 견디고 있었지. 희 치의 과거를 숨겨주기 위해서, 그의 과거를 팔지 않았어."
영선이 말없이 그를 본다. 한 때 영선이 두려울 때도, 그를 의심할 때도, 미워할 때도 알았다. 그러나 이제서야 알았다. 이 경은 희 치의 이야기를 말하지 않은 영선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그는 영선을 알았을 뿐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렇게 홀로 견뎠으니까. 그가 의리를 지켜 말을 하지 않았고 그것이 영선에게 많은 고난을 안겨주었으나 그는 결코 마음을 바꿔 희 치의 이야기를 고변하지 않았다.
증오도, 미움도 있었다. 그리고 이 경은 진실과 마주하고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경이 밤에 수회지의 물을 손으로 쓸었다.
"영선아."
이 경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사랑한다."
영선처럼 유려한 수사도 모른다. 이 경은 시에는 문외한이라 영선이 다정다감하게 아름답고 화려한 시를 늘어놓아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유려한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게 부끄러워서 이 경은 한참을 더듬었고 이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관저궁에 그 현판을 직접 쓸 때부터 너는 내 마음 속에 영원한 짝이자 아내였다."
그저 영선이 웃었다. 빙그레 웃는 영선이 이 경처럼 배 밖에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수회지의 차가운 물을 손바닥에 담는다. 이 경이 깜짝 놀라서 영선의 소매를 당긴다.
"수영도 못하는데 빠지면 어떻게 하려고!"
영선이 맑게 웃으면서, 마치 수회지의 물보다 시원하고 청아하게 웃으면서 이 경의 어깨에 이마를 대었다. 이 경이 얼떨결에 그를 받았다. 영선이 손에 물을 털고 이 경의 허리를 껴안아, 그의 몸에 기댄다. 영선이 이윽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요가 밥을 잘 먹어요."
"응. 그 아이 조그마해서 걱정했더니 생각보다 무럭무럭 잘 크는 구나. 태이보다 커."
"태이가 희 치를 쏙 닮아가죠."
"사실 말은 안했지만 다행이라고 여겼지."
"령이는 당신을 닮았고요."
"음음."
영선이 잠시 침묵하더니 이 경의 품에 얼굴을 묻고는 중얼거렸다.
"사랑해요."
이 경이 숨을 멈춘다. 수회지의 물결에 교교한 달빛이 흐르고 있었다. 아득한 시야에 가득찬 운무, 몽혼적인 밤 사이로 황성의 화려하고 요란한 불빛이 느낀다.
이 경은 곧 귓가에 아무 소리가 들리지도 않은 것을 깨달았다. 오직 이 세상에 그와 영선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경이 이어지는 말에 눈을 감고 영선의 등에 손을 대고 그를 쓸었다. 곧 이 경이 영선을 끌어 안고 눈을 꾹 감았다.
"이 경, 사랑해."
영선이 이 경과 마주한지 육 년이 되는 날 밤이었다.
[도원향가 完]
============================ 작품 후기 ============================
후기는 나중에 올리겠습니다. 일단 숨좀 돌리고.. 지금 심정은... 정말 말을 못하겠네요. 다사다난했던 작품이라 후기를 쓰면서도 제가 눈물이 납니다ㅠㅠㅠ 제가 정신을 차리면 1차 후기를 올리겠습니다. 이 작품이 외전이 다 끝나야 마무리가 되는 작품이라 후기가 1,2차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ㅠ.ㅠ
+) 텍본러가 기승이라 9월 중에 예고 없이 본문을 삭제할 예정입니다. 내일일 수도 있고 모레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한달 후일 수도 있겠죠. 본문 삭제 후 외전이 이어지니 기다려주세요! 32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처음으로 끝마친 장편이라 정말 마음이 묘하네요. 여운이 길게 남아요. 혹시 서평을 써주신다면 혹평도 상관이 없으니 감사하겠습니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독자여러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알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