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초행
선규의 표정이 짐짓 심각해졌다. 그는 아침부터 계속 입술을 씹거나 손톱 밑을 누르며 자신을 괴롭히기 바빴다. 태훈은 그것을 말릴까 잠시 고민만 했을 뿐 저지하진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출발할까?”
“…….”
“선규야. 차 밀릴지도 모르는데 조금만 이따가 출발할까?”
태훈은 시간을 오히려 당기며 재차 물었다. 선규는 고개를 돌려 태훈의 눈을 응시했다. 태훈은 웃는 얼굴로 대답을 구하듯 눈썹을 위로 당겼다.
대답해야 하는데. 이런 마음과는 달리 선규는 눈을 감고선 소파에 몸을 편히 기댔다. 세 번째 재촉은 없었다. 태훈의 손이 선규의 이마 위에 닿았다.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볼에 부드러운 입술도 닿았다.
“힘들면 다음에 가자.”
“아뇨. 지금 가요.”
“무리하지 말고.”
“그럴 리 있겠어요. 우리 형 보러 가는 건데.”
선규는 어색하게 웃으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태훈의 곧은 시선이 선규의 볼을 쓸었다. 그는 이미 옷을 갈아입은지 오래였다. 선규는 그 차림새를 한 번 보곤 얼른 준비하겠다며 힘주어 걸어 나갔다. 선규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태훈이 모를 리 없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선규였다. 두 손을 꽉 말아 쥐고선 벌벌 떨기에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태훈은 잔뜩 긴장했다. 멀리서 선규가 옷을 갈아입는 걸 보던 태훈은 그 날 선규의 목소리를 상기했다.
“갈 수가 없었어요. 처음엔 죄의식 때문에, 나중엔 내가 다녀온 걸 부모님이 알까 무서워서…….”
“이젠 가도 괜찮겠어?”
“태훈 씨랑 같이 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태훈은 방금 전의 선규처럼 고개를 뒤로 편하게 젖혔다. 서로의 마음에 대해 확인한 건 오래 전의 일이었다. 머릿속,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 것들을 터놓은 지도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지 않았나. 전부 말했다고 생각하자마자 속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존재들. 선규에겐 그 중 하나가 제 형에 관한 것이었다. 형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다 말해주었지만 그 뒤 자신의 마음을 말할 때마다 입술을 꽉 깨물고 큰 숨을 몇 번이고 들이마셨다. 그 숨들 사이에서 말을 고르고, 또 골라내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기다려준 태훈이 민망할 정도로.
옷을 갈아입던 선규는 거울 속에 늘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 태훈을 잠시 보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런 용기조차 내지 못했을 터다.
“준비 끝났어요.”
선규는 고개를 들고 눈에 힘을 주었다. 앞으로 다가온 태훈은 그의 볼을 손등으로 한 번 쓸고는 어깨를 감쌌다. 오늘따라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형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돌아온다면 혼이라도 내겠다는 듯이 말이다.
차가 이렇게까지 안 막힐 수가 있나. 선규는 자신이 예상한 시간보다 훨씬 빨리 도착한 걸 보곤 입꼬리 끝에 힘을 주었다. 일자로 쭈욱 펴진 입술에서 그의 생각을 읽은 태훈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일찍 가서 할 말 다 하고 오면 좋은 거라고 생각 해.”
“……그렇게 티 났어요?”
“대문짝만하게 써 있어.”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선규는 입술을 안으로 말고선 이로 꾹꾹 눌렀다. 선규가 제 몸을 괴롭히는 걸 보던 태훈은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선규는 단단한 태훈의 손가락 사이에 제 손을 얽어가며 뜨거운 한숨을 쉬었다.
태훈의 차가 주차장 앞에 멈추었다. 사실 그는 선규가 주소를 알려주기 전까지만 해도 나름 대단하다고 자부하는 집안이니 선산 주소를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알려준 곳은 지방의 납골당이었다. 선규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멈추었다. 아마 마음이 더 편해지는 때가 되면 그 주소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태훈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선규를 만난 이후로 침묵의 값에 대해 매일, 매 순간 배우고 있었다.
“태훈 씨, 이쪽이에요.”
“나는 여기 있을게.”
“가, 같이 안 가려고요?”
선규는 태훈의 손을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붙잡고 있던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붙잡고 있었다. 선규의 앞에선 단 한 번도 모질게 군 적 없는 태훈이었다. 그는 다른 손을 들어 선규의 손을 떼어냈다. 이걸 두고 모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뿌리치려니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오늘은 너만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아. 다음에는 나도 인사드리면 되고.”
“그래도…….”
“네가 여기에 도착했을 때부터 내 동생 언제 오나, 하고 계실거야. 얼른 가 봐.”
태훈은 몸을 살짝 숙여 선규의 눈을 마주했다. 땅을 꺼지게 만들 것처럼 아래를 보고 한숨을 쉬던 선규는 태훈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을 굳혔다. 먼저 이곳에 오자고 한 건 선규 본인이었다. 태훈은 지금 자신을 위해 배려해주고 있었다.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잊었던 사람인 양 몇 번이고 속으로 읊었다. 나를 위해, 라고.
선규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본 태훈은 허리를 곧게 펴고 선규의 손을 놓아주었다. 선규는 별다른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태훈은 그 자리에 서서 크고 낮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선규의 등을 응시했다.
안으로 들어온 선규는 자신이 가야 하는 곳을 다시 확인한 후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넓은 공간에는 선규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문득 방금 전 태훈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소리 내고 있으니 그의 말대로 형은 내 동생이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을지도.
선일이 자리 잡은 곳 앞에 선 선규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참동안 그렇게 서있던 선규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고선 눈앞에 놓인 선일을 똑바로 보았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진 속 선일은 사고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형. 오……랜만이야.”
울면 안 돼.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려면 절대, 절대 울어선 안 돼. 선규는 덜덜 떨리는 숨을 쉬며 눈을 크게 떴다. 눈물을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리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나 필사적이었다.
“나 많이, 기다렸지.”
어렵게 한 마디를 뱉은 선규는 아랫입술 안쪽을 콱 씹었다. 한 문장을 뱉어내는 게 하나의 시험이라도 되는 듯했다. 뜨거운 숨이 그의 폐를 짓눌렀다.
“올 수가 없었어……. 미안해, 미안해. 형.”
미안하다는 말 앞에서 선규는 결국 쓰러졌다. 그는 주저앉지 않기 위해 양손으로 무릎을 짚었다.
다들 나 때문에 형이 그렇게 됐대.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죄 지은 나는 여기 올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어. 내가 그 날 그렇게 집을 나가지만 않았더라면, 형의 전화를 재빨리 받았더라면, 혹은 빨리 집에 왔더라면.
이미 벌어진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가정을 하고 자책하며 살았는지 몰라. 그게 당연하다 여겼어, 형. 그렇게 살아왔어.
그런데 단 한 사람만이 형이 죽은 건 내 탓이 아니래. 형이 없는 세상 속에서 그 사람만이 나를 끊임없이 보듬고 안아줬어. 나는 그 사람 속에서 구원을 받아가며, 나 주제에 살아보겠다고 이렇게 살고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야 와서, 너무 늦어서… 그래서 미안해.”
선규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고르지 못한 숨이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는 입술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깨물며 숨을 고르기 위해 애썼다. 우는 걸 들켜선 안 되던 과거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목적이 전혀 다른 날이었다.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을 형이 속상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금방 또 올게. 그러니까 너무 짧다고 아쉬워 말고.”
하얀 손이 잘 닦인 유리 위에 닿았다. 그는 형의 얼굴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레 유리 위를 쓸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은 사과를 했으니 다음엔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해줘야 겠다. 그렇게 형에게도 기쁜 소식을 빠짐없이 전해야겠다. 선규는 보다 나은 생각을 품고선 느리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선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태훈은 그의 기분 전환을 위해 근처의 괜찮은 카페를 가거나 좋은 레스토랑에 가는 것 따위를 염두에 뒀었다. 하지만 선규의 얼굴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다. 집에 들어가 단 둘이 있는 게 더 나으리라.
“맛있는 거 해줘요.”
“뭐 먹고 싶은 거 따로 있어?”
“특별히 그런 게 있는 건 아닌데…….”
“그럼 제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태훈은 신호를 잠시 기다리는 동안 장난스런 얼굴을 하곤 고개를 푹 숙였다. 선규는 아직도 훌쩍거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두 사람은 함께 샤워를 했다. 편히 쉬라는 태훈의 말과는 달리, 선규는 식탁 의자에 앉아 식사를 준비하는 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부모보다 먼저 간 자식은 죄인이라서 선산에 묻을 수가 없대요.”
선규가 갑작스레 던진 말에 칼질을 하던 태훈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금방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태훈은 입 밖으로 나오려는 거친 말들의 모서리를 갈아냈다.
“그런 집안이 더러 있지.”
“어머니는 그 뜻을 고수하는 아버지와 크게 싸우셨어요. 사실 우리같은 사람들이야…… 어디에서든 편히 쉬기만 바랄 뿐이지만 어른들은 그게 아닌가 봐요.”
선규는 식탁 위에 팔을 늘어뜨리곤 길게 누웠다. 잠시 뒤를 돌아본 태훈은 그가 울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곤 아일랜드 앞으로 향했다. 가까이서 본 선규의 얼굴을 말갛기만 했다. 울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안 울어요. 앞으로도 안 울 거예요.”
“그렇게 다짐까지 할 필요 있나. 울고 싶으면 우는 거지.”
선규는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한 태훈은 배고플 텐데 조금만 기다리라며 손을 흔들었다. 선규는 뒤에서 태훈의 행동을 빠짐없이 보다가 다시 입술을 뗐다.
“다음엔 우리 같이 들어가요.”
“부끄러운데. 나도 혼자 인사드릴 시간 좀 주지 그래.”
“그건 싫은데요? 옆에 서서 뭐라고 하는지 다 들을 거예요.”
선규의 말을 들은 태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입꼬리를 단속했다. 뒤돌아서서 그의 얼굴을 마주하려면 잘 꾸며낸 표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도, 태훈은 그 계획을 실패하고 말았다. 선규의 앞에서 웃지 않기란 너무도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말이다.
태훈의 예상보다 선규는 더 단단해졌나 보다. 형을 보고 온 뒤에도 이렇게 가벼운 농담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울면 달래줘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선규는 이제 다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그의 행동, 그의 삶들이 많이 바뀌었다. 이 모든 게 태훈과 함께라서 가능한 일들이었다.
<『데자 뷰』 2권에서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