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두 번째 만남
생각해 보면 꽤나 운명적인 만남이다. 우연이 인연이 된 것도 놀라운데 의진은 얼굴마저 잘생겼다. 아직 까 보진 않았지만 몸도 탄탄해 보이고 키까지 크다. 인정한다. 서운은 조금 들떠 있었다. 상대방의 외적 조건에서 오는 아주 원초적인 설렘이었다.
의진은 처음 만난 그날처럼 서운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의진을 발견한 서운이 저도 모르게 활짝 웃어 보였다. 의도하지 않아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냥 막 나왔다. 서운은 애써 광대를 끌어 내리며 의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은 안 늦었죠?”
“엄밀히 따지면 그날도 늦은 건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서운 씨는 저랑 약속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순식간에 미소가 사라졌다. 이렇게 빨리 미소가 사라질 줄 알았으면 억지로 광대를 내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괜한 짓을 했다. 서운은 의진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번에도 약속 장소는 카페였다.
“서운 씨도 오셨으니 주문하고 오겠습니다.”
“그럼 같이….”
나 지금 누구랑 말하니? 의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계산대 앞에 서 있는 뒷모습은 참 훈훈하기 짝이 없다. 어딘가 조금 이상해서 그렇지 의진은 예의가 없지는 않다. 많지 않아서 그렇지 있기는 있었다.
어쩌면 센스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서운은 눈앞에 놓인 아이스 라테를 바라보았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커피라니, 그래 놓고 지는 차를 시켰다. 서운은 아리송한 기분으로 커피를 마셨다. 막상 마시니 또 맛은 있다. 서운은 연이어 커피를 마셨다. 의진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최소한의 안부 인사도, 인사치레도 없다. 업무 미팅도 이렇게는 안 한다. 서운은 조금 불쾌한 기분이 되어 커피를 내려놓았다. 누가 보면 내가 결혼하자고 따라다니는 줄 알겠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의진이 딱히 서운을 따라다닌 것도 아니다.
“결혼 얘기가 진심이라고 하셔서 뵙자고 했습니다.”
“네, 진심입니다.”
“…의진 씨 저 아세요? 제가 누군지도 모르잖아요.”
“압니다. 정서운 씨인 거.”
“그게 다잖아요. 이름만 아는 사람이랑 어떻게 결혼을 해요.”
“못 할 건 또 뭡니까. 그렇게 따지면 오래된 연인들은 죄다 결혼해야겠군요.”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한 마디도 안 진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다. 하물며 묘하게 논리적이다. 서운은 침착하게 무기를 정비했다.
“전부는 아니어도 저희보다 확률은 높겠죠.”
“저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뭐, 아니라고는….”
“좋습니다.”
결연한 한 마디와 함께 노트북이 등장했다.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의진이 손을 풀며 말했다.
“저희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개선 방안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차근차근 짚어 봅시다. 우선 간단하게 개요부터 작성하겠습니다.”
순간 서운은 의진에게서 전 회사 팀장님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무슨 말만 하면 회의실로 팀원들을 소집하던 회의 중독자인 동시에 워커홀릭이기도 했다.
“이제 말씀하시면 됩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의진의 손놀림이 경쾌하다. 지금 저 새끼가 부쩍 생기 있어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서운은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녹음은 왜 하는 거예요…?”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녹취는 기본입니다.”
참 쓸데없이 섬세하고 프로페셔널하다. 잘은 모르지만 일 하나는 기똥차게 잘할 것 같다. 서운은 말없이 커피를 들이켰다. 순간적으로 손목을 꺾어 한입에 털어 마실 뻔했으나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기본적인 인적 사항은 그렇다 쳐도 서로가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전부 다요. 음식 취향이나 생활 습관, 소비 패턴도 모르고….”
“음식은 다 잘 먹으니 서운 씨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드시면 됩니다. 생활적인 부분은 일절 터치하지 않을 테니 서운 씨가 생활하시는 대로 생활하시면 되고요. 서운 씨만 괜찮으시다면 입주 도우미를 쓰고 싶군요. 생활비는 서운 씨가 원하는 만큼 지급하고, 용돈도 필요하시다면 필요한 만큼 드리겠습니다. 서운 씨 몫의 소득은 서운 씨가 자유롭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
“다른 건 더 없으십니까?”
“잠깐만요. 생각 좀 하고요.”
“입주 도우미를 쓰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쓰면 당연히 좋겠지만… 집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어색할 것 같은데…. 일단 둘이 같이해 보는 걸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집안일은 할 줄 알아요?”
“처음에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뭐든 배우면 곧잘 합니다.”
“안 해 봤다는 거네.”
“네. 안 해 봤습니다.”
“그럼 요리를 내가 할 테니까 뒷정리랑 설거지를 의진 씨가 해요. 그 정도는 할 줄 알죠?”
서운은 자연스럽게 의진과 집안일을 분배하기 시작했다. 서운의 질문에 의진이 비장하게 대답했다.
“요리도 배우면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집에서 밥 먹을 일이 더 많으니까 내가 하는 게 더 편해요. 장도 내가 볼게요. 청소랑 빨래는요?”
“요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배울 것이 적군요. 청소와 빨래는 제가 하겠습니다.”
“둘 다 의진 씨가 한다고요? 욕실 청소 쉽지 않을 텐데.”
“그럼 처음 한 번만 알려 주시면 다음부터는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처음 해 보는 일에는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니 여유를 가지고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뭐, 그래요 그럼. 지금 정한 게 영구적인 건 아니니까 얼마든지 유동적으로….”
“네.”
“…….”
“서운 씨.”
“…….”
“서운 씨?”
말렸다. 서운은 어느 순간 의진과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결혼 후를 논하고 있었다. 어, 어느 틈에 이렇게 된 거지. 서운은 황급히 커피를 마시며 머리를 식혔다. 녹취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의진은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이러다 진짜 저 알파랑 결혼하는 거 아니야? 서운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까 집안일이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네, 맞습니다. 애초에 문제가 아니니까요.”
“…의견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조율이 안 되는 문제도 있잖아요.”
“네. 말씀하세요.”
언제든지 받아 적을 준비가 되어 있는 손가락이 서운의 뒷말을 기다렸다. 서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속궁합이랑 페로몬요.”
“…….”
“아시잖아요. 이건 진짜 안 맞으면 답이 없어요.”
얼음을 먹는 척 두 눈을 내리깐 서운이 열심히 눈동자를 굴려 의진의 반응을 살폈다. 무슨 말만 하면 받아 적기 바쁘던 의진의 손가락이 처음으로 멈춰 있다.
의진의 시선이 손목시계로 향한다 싶더니 이내 노트북이 닫혔다. 의진이 얼음을 먹고 있는 서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운 씨는 식견이 넓고 생각도 깊으신 것 같습니다.”
“다짜고짜요?”
“서운 씨 말씀이 맞습니다. 결혼 준비에 정신이 팔려서 그 부분은 미처 생각을 못 했군요.”
“아니, 그 중요한 걸 어떻게 생각을 못 해요?”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요.”
얼음을 물고 있느라 발음이 영 시원찮다. 좀 없어 보이려나. 그런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싶다. 서운은 대수롭지 않게 컵 속의 얼음을 휘적거렸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 20분에 화상 회의가 있습니다.”
“아, 네. 곧 일어나죠.”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서운 씨만 괜찮으시면 지금 바로 확인하러 가는 건 어떠신지요.”
“뭘요?”
“속궁합이랑 페로몬 말입니다.”
컥! 서운은 또다시 사레가 들렸다. 입 안에 든 얼음을 뱉지 않으려 연신 속 기침을 해 대자 의진이 계산대에서 얼음물을 받아 왔다. 두 사람은 서운이 얼음물을 반쯤 비우고 난 뒤에야 대화를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그, 자자고요?”
“네. 맞습니다.”
“…….”
“괜찮으시면 1시간 뒤에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남성 오메가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서운은 처음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가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말 그대로 순수하게 이 상황이 웃겼다.
서운은 고민했다. 원나잇은 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서운이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운은 의진을 선 자리에서 만났지만 따지고 보면 원나잇과 다를 바가 없다. 아는 거라고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전부다. 성병의 유무는 물론이고 어떤 성적 취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건 의진도 마찬가지 아닌가? 의진 역시 서운을 모르며,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생각보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서운은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을 일생일대의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죠, 뭐.”
서운은 곧장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시간이면 돼요?”
“네. 충분합니다.”
“열심히 하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첫 섹스까지 앞으로 1시간, 서운은 마저 커피를 마셨다. 맛있었다.
* * *
의진은 정확히 약속을 지켰다. 이동 시간을 제외한 순수 공부 시간으로 딱 1시간이 걸렸다.
“오. 끝?”
“네. 다 끝났습니다.”
슈트 차림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 의진과 달리 서운은 샤워 가운만 입은 채 침대 헤드에 기대 있었다. 어차피 할 일을 하려면 장소를 옮겨야 했고, 카페 영업시간도 끝나 가서 두 사람은 일찌감치 호텔에 와 있었다.
“그럼 저도 씻고 오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서운은 그 자세 그대로 저와의 섹스를 위해 샤워를 하러 가는 알파를 배웅했다. 긴장도 처음에나 했지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 든다. 현실감이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뽀송한 샤워 가운을 입고 뽀송한 침구 위에 늘어져 있다 보니 이보다 더 편할 수가 없다. 서운은 의진이 공부를 하는 동안 샤워를 하고 휴대폰 게임을 했으며, 방금 전까지는 오늘 자 웹툰을 보고 있었다. 있던 긴장도 다 사라진 판국이었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서운은 의진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숙박을 할 것도 아니면서 당연하게 호텔을 찾는다. 둘째, 좋은 차를 끈다. 셋째, 특정 상황에 맞닥뜨리면 눈썹을 까닥거린다. 마지막의 경우 아직 표본수가 부족해서 전제 조건까지는 도출해 내지 못했으나 종합해 보면 그는 재정적인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래 봤자 결국 추측에 불과하다. 정작 서운은 의진의 나이도 모른다. 아마 나이를 알게 되어도 당장 말을 놓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다. 상상만 해도 어색함에 숨이 막힌다.
“서운 씨.”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의진이 곧장 서운을 찾았다. 그는 서운처럼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졸리진 않으십니까?”
“…….”
“서운 씨?”
있었, 는데… 어, 그러니까…. 서운은 대답하는 것도 잊고 오로지 의진을 감상하는 데 몰두했다. 혹여 눈이라도 감으면 이 절경이 사라질까 눈도 한 번 못 깜빡였다.
“서운 씨, 많이 졸리십니까?”
“아니. 전혀.”
무의식이 알아서 말을 놓았다. 서운은 뒤늦게 이성을 되찾았다.
“아, 아직 자려면 멀어서 괜찮아요.”
“평소에 늦게 주무시나 봅니다.”
“항상 그런 건 아니고 요즘만 그래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일이 있으면 있어서 늦게 자고 없으면 없어서 늦게 잔다. 누구 하나 간섭하는 이 없는 프리랜서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럼에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건 직장인, 그것도 워커홀릭에 가까운 의진이 어떻게 생각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억지로 잘 보일 필요는 없지만 굳이 부정적인 여지를 남길 필요도 없다. 연인 관계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장점은 부각시키되 함부로 약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나의 약점은 나를 향한 공격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생각을 하니 복근과 가슴 근육에 들떠 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서운은 가만히 의진을 바라보다가 이내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색한 사람이랑 있을 때는 술만 한 특효약이 없지. 서운이 와인을 살피며 물었다.
“와인 좋아해요?”
“…못 마시지는 않습니다.”
“가볍게 술이나 한잔하죠. 어떤 와인이 좋아요?”
우리나라 호텔도 술 종류가 많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방에 묵어 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고주망태가 되려는 건 아니니 양주는 빼야겠다. 서운은 별생각 없이 와인을 살펴보았다.
“꼭 드셔야 하는 겁니까?”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서운은 와인을 살피다 말고 그대로 숨을 멈췄다.
“그런 건, 아닌데….”
“그럼 와인은 다음으로 미루죠.”
서운이 들고 있던 와인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서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와인을 제자리에 내려놓은 의진이 마저 말을 이었다.
“맨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하는 섹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
“하물며 처음일 때는 더 그렇습니다.”
“처음요?”
“오늘이 저희의 첫 관계 아닙니까?”
잠깐이지만 헛소리를 할 뻔했다. “그, 렇죠. 오늘이 처음이죠. 맞네요, 처음.” 서운이 황급히 동조했다.
“침대로 가시겠습니까.”
이제 곧 섹스를 할 사이지만 손 한 번 잡지 않았다. 아는 거라고는 서로의 이름이 전부다. 배덕감인지 긴장감인지 모를 원초적인 흥분이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서운은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의진과 함께 침대로 갔다.
“조명은 괜찮으십니까?”
“하나만 더 끄죠.”
“이 정도면 괜찮습니까?”
“네.”
중앙 조명을 끈 의진이 마침내 침대로 올라왔다. 시야를 메우는 묵직한 존재감에 벌써부터 온몸이 다 짜릿하다. 아, 잘생겼다. 침대에 올라온 조각이 서운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린다. 그러네, 조각이 바로 내 앞에 있네? 내가 얼굴을 이렇게 밝혔던가. 서운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의진은 전혀 아이 같지 않은 얼굴로 아이처럼 빤히 서운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 내가 언제 이런 알파랑 자 보겠어. 서운은 일차원적인 행복에 몸서리쳤다. 설마 몸만 이런 건 아니겠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지만 어차피 곧 밝혀질 테다. 서운은 모든 걸 잊고 시각적인 효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맞다.”
“무엇이 말입니까?”
“…몇 살이에요?”
의진은 이제 막 서운의 가운을 풀어내려 하고 있었다. 질문을 한 서운도, 질문을 받은 의진도 사이좋게 어색해졌다.
“서른하나입니다.”
“아.”
“서운 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제가 형이네요.”
“농담하시는 겁니까?”
“이 상황에서 누가 농담을 해요. 전 서른둘이에요.”
“절대 그렇게 안 보이십니다.”
“오.”
“당연히 저보다 어리실 줄 알았습니다.”
가운을 동여맨 끈을 잡아당기다 말고 의진이 그대로 멈춰 섰다. 곧바로 서운의 시선이 따라붙자 의진이 진지하게 물었다.
“벗겨도 됩니까?”
“안 벗고 하는 게 더 좋아요?”
“가끔은 그럴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다 벗은 게 더 좋습니다.”
오, 이 새끼 뭐 좀 아는데. 서운이 피식 웃으며 의진의 손을 잡아당겼다. 두 사람의 첫 신체 접촉이었다.
“그럼 벗고 하죠.”
“…….”
“일일이 안 물어봐도 돼요. 싫으면 때려서라도 멈추게 할 거예요.”
“말로 하시면 충분합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마냥 농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게 한 말도 아니었는데. 매사에 진지한 남자는 무엇 하나 가볍게 흘려듣지를 않는다. 당연히 그래야지. 서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살짝 웃고 말았다.
눈이 마주쳤다. 천천히 가운이 벗겨졌다. 찝찝하다는 핑계로 벗고 있던 속옷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의진의 시선이 서운의 나신을 훑어 내렸다. 서운은 민망해하는 대신 재빨리 의진의 가운을 벗겼다.
의진은 가운 안에 속옷을 입고 있었다. 뒤늦게 민망함이 몰려왔다. 서운이 불퉁하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벗을 거 뭐하러 입었어요.”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뭘 또 그렇게까지.”
“아니요. 서운 씨 말씀이 맞습니다. 서운 씨는 참 생각이 깊은 것 같습니다.”
속옷 한 번 안 입었다고 생각이 깊을 건 뭐가 있지. 민망함이 배가되었다. 서운은 그만 입을 닫았다. 어차피 더 할 말도 없긴 했다.
무릎으로 침대를 딛고 선 의진이 스스로 속옷을 벗었다. 서운의 시선이 긴박하게 아래로 향했다. 와, 씨… 내일 로또 사야지. 아닌 척 힐끔 쳐다본 것뿐인데 시선 끝에 두툼한 존재감이 걸린다. 이건 된다. 무조건 된다! 서운이 조금 더 노골적으로 의진의 성기를 힐끗거렸다.
아, 역시. 잘못 본 게 아니다. 한 것도 없는데 저 혼자 고개를 쳐들고 있는 튼실한 성기를 내려다보며 서운은 다짐했다. 이래 놓고 발기 부전이거나 조루 혹은 지루일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적어도 한고비는 넘긴 셈이다.
잘생겼는데 키도 크고 몸도 좋다. 복근과 가슴 근육도 있고 허벅지 근육도 있다. 심지어 고추도 크다. 언제 또 이런 알파랑 자 볼 수 있을까. 서운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슈트로도 가려지지 않는 떡 벌어진 어깨와 그 밑으로 자리한 탄탄한 가슴 근육, 쪼개진 복근과 군살 없는 허리, 탱탱하게 차오른 허벅지 근육까지. 서운은 점점 아래가 젖어 오는 걸 느꼈다. 아직 키스도 안 했고 애무도 안 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뒤가 젖어 들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서운은 손을 뻗어 의진의 몸을 만졌다. 핏줄이 도드라진 목덜미부터 천천히 나신을 쓸어내렸다. 입을 맞출 생각이었는지 서운에게 가까이 다가온 의진이 눈에 띄게 몸을 움칠거렸다. 서운은 손끝으로 전해지는 탱탱한 근육의 감촉을 즐기며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운동 오래 했나 봐요.”
“체력 단련을 위해서 빼지 않고…, 흠, 합니다.”
“와, 몸 진짜 좋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운동했어요?”
“네. 점심시간에 다녀왔….”
“주로 무슨 운동 해요?”
“…….”
“헬스?”
어느새 서운은 의진의 허벅지 사이를 더듬고 있었다. 남은 한쪽 손으로는 엉덩이를 주물렀다. 탱탱하면서도 단단하게 자리 잡은 엉덩이 근육이 무척 섹시했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을 정도였다.
“아….”
입을 맞출 거라고 생각했는데 목덜미에서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의진의 몸을 누비던 서운의 손길이 잠시 멎었다. 쪽…. 의진이 서운의 목덜미에 입술을 내리며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잊지 않고 쇄골에도 입술을 내린 의진이 대놓고 가슴팍에 얼굴을 비벼 댔다. 매끄러운 살결 위를 유랑하는 이목구비의 감촉이 생경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아래가 흥건히 젖어 버렸다. 아직 페로몬 조절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아래에서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쿨쩍거리며 애액이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기에는 서운이 너무 맨정신이었다. 서운은 소리를 감추려 괜스레 의진과 대화를 시도했다.
“의, 진 씨는 언제 발현했어요?”
“…7살 때 발현했습니다.”
“일찍 발현했… 아….”
“…….”
“그, 그래서 페로몬 조절도 잘하나?”
멈칫, 잠깐이지만 서운의 몸을 더듬던 의진의 손길이 멎었다.
“…그렇습니까?”
“으, 응. 잘하는 것 같은, 데….”
“다행이군요. 많이 연습했습니다.”
연습했다고? 서운이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의진이 다시금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아, 간지러웠다.
“이제 남들 정도는 합니다.”
“남들, 정도요…?”
“그렇습니다. 보통 다 이 정도는 하니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요즘은 약이 잘 나오니…. 까, 응….”
가볍게 젖꼭지가 빨리고, 동시에 맨몸이 만져졌다. 서운이 그랬던 것처럼 목덜미에서 시작한 손길이 끈적하게 상체를 훑기 시작했다. 목에서부터 한 번에 허리 라인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양쪽 젖꼭지를 빨기도 했다. 의진을 만지던 서운의 손은 제 기능을 멈춘 지 오래였다.
의진은 아예 자세를 잡고 서운의 위에 올라타 있었다. 무릎으로 침대를 딛고 있어서 서운에게 전해지는 무게감은 없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무거운 존재감이다. 의진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서운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발현했을 때….”
“서운 씨.”
“네?”
“민망하면 말씀이 많아지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의진이 딱 잘라 서운의 질문을 차단했다. 페로몬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니 겨우 두 번 본 서운의 질문이 내심 불쾌한 건지도 모른다. 혹여 그렇지 않다 해도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는 데에 재주가 있는 놈이다. 이렇게 딱 집어서 정곡을 찌를 줄이야.
“…그런 것 같죠?”
서운이 작게 대꾸했다. 서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의진이 고개를 들어 서운과 시선을 마주했다.
아, 잠깐. 이거 좀 반칙 아닌가. 서운은 의진이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서운을 올려다보는 의진의 입가가 부드럽게 올라가 있었다. 서운은 처음으로 의진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역시 섹스의 위력은 대단했다.
“저는 집중하면 말수가 적어집니다.”
“…그래 보이네요.”
“제가 대답이 없어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진 씨도요. 저 혼자 떠들어 대도 신경 쓰지 마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래가 많이 젖으셨군요.”
“…말수 적어진다며!”
“네, 그렇습니다. 본격적인 삽입에 앞서 먼저 손가락으로 아래를 넓혀 드리려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사전에 서운의 의사를 묻는 것도, 표현의 방식도 정중하기 짝이 없는데 어쩐지 하나도 정중하지 않은 기분이다. 당황한 서운이 대답 대신 입술만 뻐끔거렸다.
“대신 처음은 콘돔 없이 넣고 싶군요.”
“뭐, 뭐를요?”
지레 놀란 서운이 새된 소리를 지르자 의진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손가락 말입니다. 처음은 아무것도 없이 맨살로 느껴 보고 싶습니다.”
“…….”
“물론 싫으시다면 콘돔을 끼우고 하겠습니다.”
“…소, 손가락은 괜찮지만 다른 데는 안 돼요.”
“명심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손가락에도 꼭 콘돔을 씌우죠.”
다음? 우리한테 다음이 있나? 그런 의문에 잠길 틈도 없었다. 의진의 손가락이 넘쳐흐른 애액으로 축축해진 엉덩이 골 사이를 비벼 왔다. 허벅지를 쓰다듬던 한쪽 손이 그대로 아래로 파고들어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활짝 벌어진 아래가 지치지도 않고 또다시 애액을 토해 냈다.
아, 그냥 술 먹자고 할걸. 서운은 민망함에 몸서리치며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서운 씨.”
“또 왜요.”
“허리 좀 들어 주시겠습니까?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습니다.”
그 말에 번쩍 눈이 뜨였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자신을 쳐다보는 의진과 눈이 마주쳤다. 다른 것도 아니고 보기만 하는 거면…. 잠시 고민하던 서운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예의 바른 감사 인사와 함께 허리 밑에 베개가 끼워졌다. 동시에 서운의 다리가 위로 떠올랐다. 서운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은 의진이 활짝, 서운의 다리를 열어젖혔다.
민망해서 딱 죽어 버릴 것 같았다. 우습게도 그래서 더 흥분됐다. 의진은 스스로 애액을 토해 내는 서운의 구멍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먼저 백기를 든 건 서운이었다. 참다못한 서운이 의진을 재촉했다.
“뭐 해요. 사람 민망하게…. 왜 아무것도 안 해.”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 좀 하느라.”
“이 상황에서?”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됩니까?”
“당연히 솔직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애액이 흘러나와 있어서 빨아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운의 아래가 난리가 났다. 일찌감치 일어선 성기는 저 스스로 고개를 꺼덕였고, 아래에서는 다시 한 번 애액을 뿜어냈다. 시발, 로또는 무슨. 그 전에 수치사로 뒤지겠다. 서운은 참담하게 자신의 흑역사를 관망했다.
“빨아 봐도 됩니까?”
“스텝 바이 스텝 몰라요? 좀, 천천히 갑시다. …다음에요.”
“알겠습니다. 오늘은 손가락만 넣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회심의 성대모사였는데 의진은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거세된 사람이었다. 덕분에 분위기만 더 어색해졌다. 보통 이럴 때 어떻게 했더라, 잠시 고민해 봤지만 도리어 혼란만 더해졌다.
서운은 연인이 아닌 사람과는 섹스를 해 본 적이 없다. 그것뿐일까.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도 무척 오랜만이다. 꾸준히 소개팅을 하고 이제는 하다 하다 선까지 보고 있지만 연인 관계로 발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타인의 체온이 낯설다. 섹스는 어떻게 하는 거였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는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몇 년 만의 섹스 상대가 이제 겨우 두 번 본 알파라니, 한 달 전의 서운이라면 절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한동안 관계를 하지 않았으니 조금은 아플 거라고 생각했는데 애액이 많이 나와서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기분 좋은 압박감과 이물감이 서운을 덮쳐 왔다. 의진은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내벽을 살피고 있었다. 꾹꾹 내벽을 잡아 벌리기도 하고, 점막을 하나하나 더듬기도 했다.
신음도, 페로몬도 모두 참기가 힘들었다. 조용히 내벽을 넓히던 의진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서운 씨. 이상합니다.”
“뭐, 가요….”
“안이 너무 뜨겁습니다.”
“…….”
“남성 오메가의 체온이 더 높다는 말은 못 들어 봤는데…. 이상하군요.”
앞으로도 그런 소리는 듣지 못할 테다. 남성 오메가든 여성 오메가든 인간의 체온은 모두 똑같으니까. 물론 서운 혼자 속으로만 생각했다. 지금 입을 열었다가는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서운 씨는 원래 물이 많이 나오십니까?”
집중하면 말수가 적어진다던 알파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중동이라도 간 건가. 서운은 의진이 그만 닥쳐 주길 바라며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남성 오메가가 특별히 더 잘 젖는다는 이야기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
“너무… 잘 젖는군요.”
“…아….”
“뜨겁고, 부드럽고… 축축합니다. 탄력도 좋아서 만지면 만지는 대로 잘 늘어나는데… 가만히 있으면 원래대로 돌아오는군요.”
“…의진 씨, 입, 좀….”
“지금처럼 말입니다. 혹시 일부러 그러신 겁니까?”
“아, 의진, 씨… 잠깐, 만….”
“네. 서운 씨.”
“으응…!”
“…….”
“아, 아!”
애써 소리를 참던 서운이 기어코 신음을 토해 냈다. 줄곧 조절하고 있던 페로몬도 함께 터져 나왔다.
“…이게 서운 씨 페로몬이군요.”
“아, 앗!”
“너무….”
“아으응…!”
“…하아….”
신중하게 아래를 넓히던 의진이 갑자기 손가락을 콱 쑤셔 박았다. 지금까지와 다른 거센 삽입에 서운의 내벽이 단번에 수축하며 손가락을 잡아먹었다. 자연스럽게 애액이 쏟아져 나왔다. 쿨쩍이는 소리가 사방에 선연했다.
의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개였던 손가락이 순식간에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됐다. 내벽을 쑤시는 의진의 손길이 자꾸만 거칠어졌다. 서운의 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아, 응! 아앗!”
서운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의진의 어깨를 연신 꼬집었다. 오랜만에 느껴 본 성적인 쾌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 이 좋은 걸 그동안 왜 안 하고 살았지. 수도승처럼 살았던 지난날이 후회스러웠다.
더, 더, 더. 기분 좋아. 더 기분 좋아지고 싶어…. 서운이 의진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아래에 고개를 처박고 정신없이 손을 놀리던 의진이 마지못해 딸려 왔다.
의진은 열에 들뜬 서운과 똑바로 시선을 마주했다. 서운이 페로몬을 흘리며 말했다.
“가까이….”
“…….”
“키스하고 싶, 아!”
쑤욱, 내벽을 채우고 있던 손가락이 단숨에 빠져나갔다. 허전함에 허리를 떨자 의진이 가까이 하체를 맞대 오며 위로는 서운에게 얼굴을 가져갔다.
지금이야말로 입을 맞춰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진의 얼굴이 서운을 비껴갔다. 의진이 헤드보드 위에 올려 둔 콘돔을 가져와 성기에 끼웠다. 축축한 입구에 귀두를 맞춘 의진이 서운에게 입을 맞춰 왔다. 두 사람의 첫 입맞춤이었다.
입술이 맞닿자 서서히 입구가 벌어지면서 단단히 발기한 성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애액이 많이 나와서 삽입이 수월할 줄 알았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 맞물린 입술 새로 서운의 고통 어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가 금세 먹혀 들어갔다. 축축하게 젖은 내벽이 빠듯하게 벌어지며 힘겹게 성기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삽입에 집중하느라 자연스럽게 입술이 벌어졌다. 벌어진 틈새로 혀를 밀어 넣은 건 서운이 먼저였다. 어쩐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의진의 혀를 건드리며 서운은 스스로 혀를 얽었다.
마침내 제 것만큼이나 뜨겁게 달아오른 혀가 얽히는 순간, 서운은 비로소 의진의 페로몬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체온과는 어울리지 않는 시원한 박하 향이었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떨쳐 내려는 듯 서운이 의진의 혀를 쪽쪽 빨아 먹었다. 얼음을 먹는 것처럼 그렇게 쪽쪽 빨았다. 의진은 그런 서운을 밀어내진 않았으나 딱히 열렬하게 호응해 오지도 않았다. 의진은 삽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냥 한 번에 쑤셔 박아도 될 것 같은데 쓸데없이 예의가 발랐다.
차라리 한 번에 밀어 넣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서운은 스스로 의진의 허리에 제 다리를 감았다. 꾸욱, 삽입을 유도하듯 양발로 의진의 허리를 찍어 누르자 성기가 좀 더 깊숙하게 밀려 들어왔다.
아, 그래. 이런 거였지. 이런 거였어. 좁은 입구를 지나자 삽입이 한결 수월해졌다. 내벽을 잡아 벌리며 밀려 들어오는 성기의 감촉에 익숙한 충만감이 찾아왔다. 고통은 조금씩 흐려지고, 안쪽 깊은 곳에서 열기가 피어오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들어오면…. 서운은 의진의 혀를 빨며 어설프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하체가 워낙 밀착해 있어서 제대로 허리를 쓸 수가 없었다.
“서운 씨.”
줄곧 서운의 행동을 받아 주던 의진이 돌연 입술을 떼어 냈다. 서운은 입을 맞추던 모습 그대로 멍하게 입술을 벌린 채 의진을 쳐다보았다.
…너무 적극적이었나.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는 서운의 페로몬만 잔뜩 퍼져 있었다. 의진의 페로몬은 점막이 닿지 않으면 느낄 수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몸이 단 건 저 혼자인 것 같았다. 서운의 얼굴이 타오를 것처럼 붉어졌다.
“아프지 않으신 겁니까?”
“네? 네. 괜찮, 네요.”
“그럼 마저 넣어도 되겠습니까?”
바라던 바다. 서운이 기다렸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십니까.”
“으, 아, 니.”
“마저 다, 넣겠습니다….”
“으, 으응….”
하, 아…. 서운의 위에서, 그리고 서운에게서 동시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꽉 맞물린 아래가 만족스럽게 서로를 옭아매고 있었다.
“…서운 씨.”
“응….”
“혹시 세게 해도 괜찮습니까?”
…뭐 그런 걸 묻고 그러냐. 정신없는 와중에도 황당함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운은 착실하게 대답했다. 네, 혹시 못 들을까 봐 고개도 격하게 끄덕였다. 그러자 의진이 재차 확인에 나섰다.
“얼마나 세게 해도 됩니까?”
“…그걸 어떻게 설명해요.”
“5점 척도로 얘기해 주십시오.”
“5점요.”
“…….”
“…….”
의진이 가만히 서운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운은 무의식중에 엉덩이를 조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럴 시간이 있으면 삽입부터 마저 하고 싶었다. 살짝 상체를 일으킨 의진이 손을 뻗어 베개를 집어 들었다.
베개는 서운의 허리 밑에 안착했다. 의진이 반쯤 성기를 삽입한 채로 서운을 안아 드는 바람에 각도가 미세하게 틀어졌다. 서운은 코알라처럼 의진에게 매달리며 스스로 엉덩이를 비볐다.
후으…. 귓가에 의진의 끓어오르는 숨소리가 내려앉았다. 이제야 좀 제대로 해 볼 마음이 든 건지 의진이 다급하게 서운을 내려놓았다. 허리 밑에 놓인 베개들 덕분에 서운은 엉덩이가 완전히 위로 들려 있었다. 의진은 서운의 다리 사이에서 침대에 무릎을 딛고 서 있었다.
“아프면, 말씀하십시오.”
“알겠, 으니까….”
“서운 씨.”
“왜, 자꾸….”
의진은 대답 대신 서운의 두 다리를 활짝 열어젖혔다. 의진의 손에 붙잡힌 서운의 발목이 허공에 대롱대롱 떠 있다. 덕분에 서운은 상체를 완전히 침대에 붙이게 되었다. 제 앞에 활짝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서운을 내려다보며 의진이 물었다.
“끝나고 한 번 더 해도 됩니까?”
“…….”
“아니면 한 번을 최대한 길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길게 두 번 하죠.”
“역시 서운 씨는 현명하십니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의진은 반쯤 남아 있던 성기를 모조리 때려 박았고, 서운은 압박감에 발버둥 치면서도 본능적으로 성기를 꽉 물었다.
철벅, 철벅! 성기와 내벽이 부딪치면서 요란한 마찰음이 만들어졌다. 애액으로 가득 채워진 내벽은 쉽게 소리를 낮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퍽! 다시 한 번 성기가 강하게 밀려 들어왔다. 서운의 아래에서 철썩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꼭 파도 소리 같았다. 서운은 의진에게 떠밀려 정신없이 흔들리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어, 어어!”
“…….”
“잠, 아! 아읏…!”
이대로 잠겨 버릴 것 같다.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니었다. 서운은 의진을 받아 내느라 침대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침대에 똑바로 누워 있는데도 정신없이 내벽을 쪼갤 듯 들어오는 의진을 온전히 받아 내기가 힘들었다. 소리를 참는 것도 불가능했다. 틈을 주지 않고 밀어붙이는 의진 때문에 고통과 쾌감이 한데 섞여 감각을 둔하게 만들었다. 내벽을 가르고 들어오는 단단한 살덩이의 감촉, 지금 서운이 인지할 수 있는 감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아! 어떡…!”
“하….”
“으응…!”
내벽이 짓이겨지면서 연결된 부위를 통해 알파의 페로몬이 흘러들어 왔다. 계속 참고 있었던 건지 의진의 페로몬이 지나치게 진했다. 이대로 박하 향에 잠겨 죽어 버릴 것 같다. 처음에는 의진의 성기에 맞춰 한계까지 벌어진 입구가 아팠던 것 같기도 한데 이제는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고통이 쾌감 같고, 쾌감은 더 큰 쾌감을 낳았다. 몸속을 달구는 알파의 페로몬과 내벽을 때려 박는 성기의 추삽질이 점점 서운의 이성을 날아가게 했다.
쾌감이 넘쳐흐른다. 서운은 전례 없는 오르가슴에 완전히 이성을 놓고 행위에 몰두했다. 마침내 서운은 두 번째 행위에서 스스로 의진 위에 올라타는 위엄을 선보인다. 두 사람의 두 번째 만남에서 일어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