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12화 동정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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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에 몰입하고 집중을 하게 되면 아무것도 안보이거든. 진짜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 같달까.”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죠?”
호사카는 잠시 고민해보다가 말했다.
“간절함이지.”
이전 생에 야쿠자 후배에게 촬영장에서 맞고 모욕을 당한 이후로 심리적인 충격이 컸는지 발기부전에 걸리게 되었다. 비아그라를 남용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몸상태까지 되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호사카는 이번에는 이 업계에서 성공하고 싶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성공해서 즐기고 싶었다.
그런 간절함이 있어서인지 호사카는 이번 첫 촬영에서 이전 생보다 집중이 잘되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그게. AV를 찍는데 간절할 정도야?”
“그럴 사정이 있어.”
역시 호시노 사키는 호사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츠지 미유는 호사카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있으니 천천히 여자들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들은 기분이 좋아지니 회사 사람들에 대해서도 떠들고 사적인 이야기도 했다. 츠지 미유는 호시노 사키와 호사카가 무슨 관계인지 궁금해 했다.
“별 관계는 아니야. 어제 면접에서 보고 마음에 들어서 밤에 찾아갔지.”
“밤에 찾아가다뇨?”
츠지 미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사카는 그런 그녀의 반응으로 보며 80년대에 아직 살아있는 순수함을 느꼈다. 비록 AV 배우이지만 밤에 여자가 남자를 찾아간다는 것에 놀라는 면이 있는 것이다.
츠지 미유에 반해서 호시노 사키는 발랑까진 여자나 마찬가지였다.
“너도 알거 아냐. 여기 호사카가 얼마나 섹스를 잘하는지.”
츠지 미유는 호시노 사키의 말에 얼굴을 아래로 숙였다. 지금 츠지 미유의 뺨이 붉게 달아오른 것은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유는 아직 순수하네. 남자는 섹스가 하고 싶어서 소프를 간다던지 캬바걸을 만나든지 하잖아. 여자도 똑같이 섹스하고 싶을 수 있잖아. 오히려 나처럼 점잖게 찾아가서 섹스 할래? 하고 물어보는게 좋은거 아냐?”
“그, 그건 그래요.”
호시노 사키는 평소 자신의 자유분방한 연애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많았는지 점점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해. 자기들도 다 잘생긴 남자랑 섹스를 하고 싶어하면서 잘생긴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나를 욕해.”
“그런가요?”
“그렇다니까! 그리고 남자들도 똑같아. 나랑 섹스하고나면 내가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는걸 싫어한다니까? 이게 말이야 방구야?”
호사카는 호시노 사키가 자신의 섹스관을 츠지 미유에게 강요하려는 것이 보이자 그녀를 말렸다.
“사키. 네 말이 틀린건 아닌데. 그런건 다 개인마다 다른거지. 어떤 사람은 한 사람과 평생 섹스를 하면서 사는거고 어떤 사람은 수백 수천명과 섹스를 할수도 있는거고.”
“너도 그래? 내가 너랑 한번 잤다고 내가 다른 남자랑 자는게 싫어?”
“아니, 그렇지 않지. 어차피 우리는 AV 배우잖아. 감정 없이 섹스하는게 직업인데… 너도 다른 남배우랑 하겠지. 그리고 나도 다른 여배우랑 할거고.”
혼자서 열이 받아있던 호시노 사키는 호사카가 차분히 자신의 말을 받아주자 히죽 웃으면서 차분해졌다.
“역시 넌 재밌는 남자네.”
그녀는 호사카의 코를 가볍게 비틀어 쥐고는 그의 다리 사이로 쓰러졌다. 호사카는 호시노 사키를 흔들어서 깨우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기절을 한 상태였다.
호사카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츠지 미유를 보았다.
“오늘 술자리는 여기까지 해야겠는걸?”
“네, 괜찮아요.”
츠지 미유는 아직 좀 더 마시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착하게 호사카를 배려해주었다.
“여기는 내가 계산하고 갈게. 미안하지만 미유는 혼자서 집에 가줘. 나는 사키를 좀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제가 도와드리지 않아도 될까요?”
“괜찮아.”
호사카는 이케다 타카하시 선배가 야쿠자 은퇴 선물이라고 찔러준 용돈으로 술값을 계산했다. 그리고 호시노 사키를 등에 업은채로 츠지 미유에게 야간 택시까지 잡아주었다.
호사카는 츠지 미유가 떠나는 것을 보면서 아쉽다는 듯이 입을 다셨다. 촬영의 섹스와 사적인 섹스는 다르다. 츠지 미유와도 개인적인 해피 타임을 가져보려고 했는데 등 뒤의 짐덩어리 때문에 그것이 실패한 것이다.
“에휴… 다음 기회가 있겠지.”
어차피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계속 얼굴을 마주하게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택시 안의 츠지 미유는 호사카의 얼굴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른스러운 남자가 취향이었다.
처음부터 촬영 현장을 주도하는 호사카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호사카가 제안한 식사를 응답한 것이다.
그리고 호사카는 지금 츠지 미유와 잘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하고 있었지만 츠지 미유는 술에 취한 여자를 챙기는 호사카의 모습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에는 꼭…”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호사카는 기대 받는 신입이었지만 별다른 일을 받지 못했다. 그도 다른 신입과 마찬가지로 엑스트라 일부터 함께 했다.
팀장 이마이 유마는 미안해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남자 배우는 한단계씩 올라가는게 상례야. 처음부터 주연을 맡는 것은 어려워. 저번의 일은 어차피 취소될 촬영이어서 주연을 맡을 수 있었던건 알지?”
호사카도 이 바닥에 구를만큼 굴렀던 입장이었다.
보통의 남자 배우라면 촬영 현장에 익숙해지고 선배의 연기를 보고 배워야 하기 때문에 엑스트라 일부터 하는게 당연했다.
호사카는 굳이 그 질서를 해치면서 다른 배우의 반감을 사고 싶지 않았다. 회귀로 만들어진 가짜 천재성은 저번의 일로 충분히 보여주었었다. 호사카는 어떤 신입보다 빠르게 업계의 인정을 받을 것이었다. 그런데 굳이 튀어나온 못이 되어 망치를 부를 필요는 없었다.
“네, 압니다.”
이마이 유마는 순순히 이 일을 받아들인 호사카를 의외라고 보았다. 그가 아는 천재들은 다들 오만불손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자가 대다수였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하는 자가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호사카도 그 말투가 자신감이 과한게 있었다. 그래서 이마이 유마는 호사카를 다른 천재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선은 넘지 않는다는건가. 어리지만 생각이 깊군.’
이마이 유마는 호사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의 능력은 내가 알아. 내가 팀장으로 있는한 자네를 중요하게 쓸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네.”
호사카는 자신이 나아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 AV 배우는 처음 시작할 때 모두 엑스트라로 시작했다. 전철의 승객이나 학교의 이름 없는 학생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 올라가면 즙배우라고 하여 여배우를 만지지는 못하지만 정액이 필요한 순간에 싸기만 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 위로 올라가면 여배우의 펠라를 촬영할때 나오는 입 한정 배우가 있었다. 펠라는 받을 수 있지만 남자 배우의 얼굴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 위로 올라가야 겨우 남자 AV 배우라고 할 수 있었다. 여배우와 섹스를 하며 자신의 얼굴을 카메라에 비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러도 예쁜 여배우와 섹스할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얼굴이나 몸매가 떨어지는 여배우와 적은 투자비로 겨우 한편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후후. 재밌네.’
호사카는 이 업계를 오래 알았던만큼 자신이 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기뻤다.
모든 일을 잘해낼 자신이 있으니 눈 앞에 있는 것들이 모두 게임의 도전과제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호사카가 이렇게 작은 일을 충실히 하고 있을 때, 이마이 유마는 문스톤 기획의 회장 이시이 준을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
“회장님. 호사카는 물건입니다.”
“그래그래.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모든 일은 순리라는게 있지 않나.”
이시이 유마는 하루라도 빨리 호사카를 주연으로 삼아서 작품을 찍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회장 이시이 준이 그것을 반대했다.
그는 도색 잡지 업계를 한번 평정을 해보았고 그 과정에서 순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업을 하면 여러 사람을 써야 했다. 그리고 한명의 천재에게 총애가 몰리면 다른 사람은 불만을 가지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면 이러한 불협화음이 모여서 한 회사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잘알았다.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츠지 미유는 잘 팔리는 여배우가 아닙니다. 그런데 동정헌터는 첫 일주일 판매량이 이전 작들보다 3배는 많아요.”
미디어를 팔아먹는 모든 산업이 그랬지만 초창기의 판매량이 전체 판매량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대단한 일이지. 나도 알아.”
“그럼 호사카를 주연으로 해봅시다. 그라면 지금 어떤 작품의 어떤 여배우를 만나도 제몫을 할겁니다.”
이시이 준은 날카롭게 이마이 유마를 바라보았다.
“자네.”
“네.”
“호사카를 지금 주연으로 만들면 자네의 목을 걸어야 할텐데 괜찮겠나?”
“네?”
일개 팀장과 회장의 눈높이는 달랐다. 지금 당장 좋은 작품 하나를 만들어 무라니시 고루를 따라가고 싶은 자와 한 회사를 이끌어가는 자의 시각 차이였다.
“그거 보게. 자네도 목을 걸 자신은 없지 않나. 자네가 결심이 충분히 섰다면 당장에 목을 걸겠다고 했겠지. 순리대로 가자고 순리대로. 우리가 기본만 해주고 호사카가 천재라면 우리가 키우기 싫어도 알아서 잘 자라줄거야.”
이마이 유마는 회장의 단호한 말에 고개를 한번 숙이고 회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시이 준은 중얼거렸다.
“저 놈은 그릇이 팀장도 버겁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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