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16화 데뷔
* * *
“나와 섹스를 하고 싶다고?”
“네!”
츠지 미유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호사카도 응해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사카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에게 섹스는 즐거움인 동시에 비즈니스였고 회사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할 기회를 즐거움으로 망쳐버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왜 너와 AV 촬영을 할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네.”
“에? 하지만 저와 하면 주연 테스트를 합격할만큼 매출이 될건데요.”
츠지 미유가 호사카와 찍은 동정헌터 첫번째 작품은 그만한 매출을 올렸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건 그 이상이야.”
호사카의 목표는 높았다. AV 업계 탑이 되어서 누구도, 심지어는 사장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시작을 평범하게 할 수 없었다. 동정헌터로 눈에 띄는 시작을 했으니 이번에는 날아오를 차례였다.
“너도 AV 업계에서 일하면서 더 뛰어난 여배우가 싶다면 말이야. 항상 고민해야 해. 그냥 이쁘기만 하고 카메라 앞에서 다리를 벌릴 줄만 안다? 그럼 금방 도태되고 사라질걸.”
호사카의 날카로운 말에 츠지 미유는 조요한 성격 답지않게 눈썹을 찡그렸다. 호사카는 그것을 좋은 징후로 받아들였다.
‘욕망이 없으면 화를 낼 이유도 없지. 그리고 욕망이 없는 사람은 발전도 없고.’
츠지 미유는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도 카메라 앞에서 다리를 벌리는건 아니에요. 저도 언젠가는 S급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구요.”
“노력? 무슨 노력을 하고 있지?”
츠지 미유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특별히 말을 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다른 AV 여배우처럼 좋은 외모로 업계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외모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그녀가 한 것이라고는 카메라 앞에서 벗을 용기 하나 뿐이었다.
자신을 예쁘게 찍는 것은 카메라 감독이 할 일이고 자신을 흥분시키는 것은 남자 배우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소재를 가져오는 것은 총감독의 일이었고 잘 파는 것은 회사의 영업 사원의 일이었다.
“간단히 이야기 해줄까? 나는 문스톤 기획에 있는 모든 여자 배우들이 게으른 쓰레기라고 생각해.”
이번에는 호시노 사키가 화를 낼뻔 했다. 그리고 호시노 사키가 화를 내기 직전의 절묘한 타이밍에 호사카는 말을 이어나갔다.
“자신의 몸매를 예쁘게 가꾸기 위해서 운동해? 거의 안하지. 지금은 젊어서 먹어도 살이 안찌고 안쳐진다지만 20대 중반만 넘어가면 몸의 변화가 일어날걸.”
호사카의 독한 말은 끊이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하면 더 섹시하게 보일지 고민하는건? 감독에서 남자들이 꼴릴만한 소재를 알려줘본적은 있나? 거울을 보면서 오이라도 빨면서 연기 연습을 해본적은?”
지금의 문스톤 기획은 예쁜 얼굴과 몸매,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섹스를 할 용기만 있으면 누구나 여배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전 생에서 문스톤 기획은 무라니시 고루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해서 사라졌다.
문스톤 기획에 있던 대다수의 여배우들, 미래를 준비하지 않던 여자들은 도태되었다.
호사카가 모든 말을 끝내자 츠지 미유는 울먹이고 있었고 호시노 사키는 고리눈을 하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말할건 없잖아!”
그녀들은 호사카의 말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아직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말이 터무니 없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아니. 나는 그런 생각으로 AV 업계에 있어. 최고가 되지 않으면 이쪽 일을 할 생각이 없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츠지 미유는 입을 열었다.
“저는 돈이 필요해요. 그래서 성공해야만 해요.”
호사카는 조용한 성격의 여자가 무슨 일로 AV 업계에서 일을 하고 그렇게 돈을 원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왜 그런거지?”
“제가 사정을 이야기 해준다면 저를 최고의 여배우로 만들어주시겠어요?”
호사카는 츠지 미유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착해 보이는 얼굴에 글래머한 몸매. 분명 이 시대에 인기가 있는 외모는 아니었다. 그래서 가장 낮은 B급에서 겨우 한단계 높은 B+급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는 어떤 가능성이 느껴졌다.
“약속하지.”
호사카가 약속하자 츠지 미유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가정사였다.
“저희 부모님은 두부 가게를 하세요. 하지만 아버지께서 다치시고 가게 영업이 많이 힘들어졌죠. 은행에 돈을 빌리고 그 후에는 야쿠자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으니까.”
호사카는 야쿠자 쪽에서도 일을 해본만큼 그 놈들이 쓰는 사채 수법이 얼마나 더러운지 잘 알고 있었다.
“저는 가족을 지켜야 해요. 그래서 여자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이곳을 택했어요.”
호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AV 업계는 자신이나 호시노 사키처럼 섹스가 좋아서 들어온 경우도 있지만, 여배우는 돈 때문에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리고 개인적인 탐욕으로 들어온 여자보다 츠지 미유처럼 간절한 여자가 더 좋은 여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좋아. 그럼 너와 다음 작품을 찍도록 할게.”
츠지 미유는 왠지 호사카의 말에 믿음이 갔다. 그의 능력을 떠나서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이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호시노 사키는 잠깐 화를 삭히면서 호사카가 말한 내용을 곰곰히 생각하고 말했다.
“오늘은 너랑 섹스할 날이 아닌가보네. 나는 먼저 가볼게.”
호시노 사키도 욕망이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A급이기는 그 위로는 A+와 S라는 등급이 있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호사카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시노 사키가 떠나고 호사카는 츠지 미유를 바라보았다.
“그럼 슬슬 작품의 컨셉을 정해야겠네.”
츠지 미유는 호사카가 적어둔 AV 업계의 간략한 역사와 앞으로 먹힐 수 있는 컨셉을 바라보았다.
호사카는 이곳에 적어두지 않았지만 미래의 AV 업계의 흐름은 잘알고 있었다.
무라니시 고루가 열어놓은 격렬한 AV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 급기야는 강간 및 살인 사건까지 AV의 소재로 삼고 전국민의 분노를 산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AV를 탄압하고 AV 업계는 크게 축소하게 된다.
이후에 그 유명한 AOD에서 독창적인 컨셉과 소재를 이용한 히트작을 만들면서 AV 업계는 다시 되살아나게 된다.
예쁘고 섹시한 것도 중요하지만 소재와 연기력도 중요한 시대가 오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히트작을 지금 사용한다고 성공할 수 있을까?’
호사카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동정헌터는 분명 미래에서 먹히는 작품이었다. 편집이나 구도가 조금 촌스럽기는 했지만 이런 류의 작품이 많이 나오고 많이 팔렸다. 하지만 호사카가 기대했던 것만큼은 팔리지 않았다.
‘역시 각 시대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다른가.’
호사카가 원하는 것은 단순무식하게 밀어붙이는 무라니시 고루식의 AV가 아니었다. 9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는 창의력의 AV였다. 호사카가 생각하기에 그것이 더욱 세련되고 수준이 높은 AV였다.
‘하지만 어떻게?’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조금씩 미래의 지식을 풀어 대중의 입맛을 바꾸는 것이었다.
다시 호사카는 츠지 미유를 바라보았다. 80년대 일본에서는 흔치 않은 글래머의 여자였다.
“재미있네.”
“네?”
호사카는 새로운 도전을 할 생각에 흥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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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스톤 기획에서는 모두가 데뷔작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투자금도 적고 다른 인적 지원도 변변치 않으니 시간만은 많이 준 것이다.
그 시간에 호사카는 츠지 미유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어차피 호사카도 육체 훈련을 계속 해야했다.
이 둘의 훈련은 큰 차이가 있었는데 호사카는 정력 증강을 위한 훈련있었고 츠지 미유는 섹시한 몸매를 갖기 위한 훈련이었다.
그리고 공통점도 있었다. 정력 운동이나 섹시한 몸매를 위한 운동이나 하체 운동이 많다는 것이었다.
둘은 식사도 함께 했다. 정력에 좋은 음식들은 또 다이어트에 좋은 음식이기도 했다. 80년대. 좋은 다이어트 방법이 일반인에게 소개가 되지도 않았을때, 호사카가 미래의 지식으로 츠지 미유를 훈련시키니 그 결과는 바로 나왔다.
“오늘도 몸의 변화를 확인해 보자. 벗어봐.”
츠지 미유는 호사카의 요구에 바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도 촬영이 아닌데 다른 남자 앞에서 옷을 벗는데 주저했었다. 하지만 호사카가 운동의 변화는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로 그녀를 설득했다.
이는 진짜였다. 그녀의 벗은 몸은 호사카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도 했지만 실제로 미래에는 눈바디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인간의 몸은 수분량과 근육, 지방의 비율에 따라 몸무게와 몸매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몸매를 드러내야 하는 직업은 눈으로 비교하는게 가장 정확했다.
호사카는 거금을 들여 구매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츠지 미유의 나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이 인화되자마자 츠지 미유에게 건네었다. 츠지 미유는 사진을 받아서 잠금장치를 해둔 사진첩에 넣어두었다.
“많이 발전했어.”
호사카는 사진첩에 있는 츠지 미유의 몸 사진들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처음에는 배와 옆구리에도 살이 있고 허벅지에 셀루라이트도 있던 몸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할리우드 서양 여배우 같은 몸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매일 찍은 사진에 그 변화가 고스란이 남아 있었다.
“호사카 덕분이지.”
“역시 큰 돈을 쓸만했네.”
폴라로이드 사진기는 77년에 대중화가 시작되었고 80년대까지만 해도 꽤나 고가의 물건이었다. 하지만 호사카의 말대로 사진을 찍어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볼 수 있어서 츠지 미유도 자신의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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