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124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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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호사카에게나 문스톤 기획에게나 너무 좋은 기회였다.
무라니시 고루가 지금 AV 업계에서 잘나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공중파에 꾸준히 출연을 하면서 화제성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화제가 되면 대중의 시선이 몰리고 그것은 곧 돈이 되었다.
호사카와 문스톤 기획은 그런 재주가 없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화제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런데 천재 감독으로 유명한 오시마 타케시와 협업을 한다. 이건 무라니시 고루가 공중파에서 몇 달을 광대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큰 화제였다.
호사카는 일이 완성되기까지 조심했다. 원래 낚시는 물고기가 완전히 물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사냥은 총알이 사냥감의 심장을 꿰뚫을때까지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하는 법이었다. 다된 밥에 코를 떨어뜨리는 일은 인생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오시마 감독님도 소속된 회사가 있겠죠. 회사와는 이야기 해보셨습니까?”
“아니. 하지만 내가 한다는데 누가 막을까.”
“오시마 감독님의 명성을 생각하면 회사가 반대를 할수도 있는데요.”
“신경 안쓴다니까.”
오시마 타케시는 걱정을 하는 호사카를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는 예술가의 혼에 사업가의 머리를 가지고 있군. 흔치 않은 재능이야. 혼 없이 머리만 가지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대처럼 되고 머리가 없이 혼만 가득하면 현생에서는 실패한 인생이 되기 싶지. 하지만 내가 확실히 말하지. 나는 그냥 자네와 작업을 해보고 싶은 것 뿐이야.”
“감사합니다.”
호사카에게 이렇게 좋은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이마이 유마가 호사카에게 속삭였다.
“어때. 이런 거물이 우리와 협력을 하겠다니. 최소한 반년은 떠들썩할 소식이지 않아?”
“정말 그렇네요. 다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진행이 되는걸 보니 걱정이 조금 되는 것도 있습니다.”
“뭐 어때. 문제가 생기면 그때마다 대처를 하면 되고.”
호사카는 문스톤 기획의 입장을 이마이 유마를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오시마 타케시와 일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오시마 감독님과 일을 할 수 있다면 저에게도 영광입니다. 그럼 지금 떠오른 제 생각을 몇가지 말씀드려도 될까요?”
“말해보게. 아이디어 뱅크로 유명한 호사카 감독의 생각이라니 기대가 되는군.”
“먼저 오시마 감독님은 저희 회사에서 일을 하실수도 있다고 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가 오시마 감독님의 영화에 출연하는게 옳은 것 같습니다.”
“왜지?”
“저는 오시마 감독님과 일을 한다면 감독님의 밑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럼 감독님의 각본과 지휘 아래에서 배우 일에만 집중하는게 좋습니다.”
누구나 칭찬은 좋아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영화계의 전설이 된 감독도 흐뭇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호사카가 이런 제안을 한 다른 이유들도 있었다.
먼저 호사카도 오시마 타케시처럼 작품의 완성도에 욕심이 있었다. 호사카는 AV 업계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회귀를 했고 오시마 타케시를 존경했다. 오시마 타케시의 예술성을 최고로 발휘시키기 위해서는 호사카는 배우일에만 집중하는게 좋았다.
또한 화제성의 문제가 있었다. AV 업계가 아무리 성장중이라고 해봐야 현 시대에서 가장 큰 예술 업계는 영화 산업이었다. 일본 영화는 수많은 명감독들로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일본 내에서만 활성화된 AV 업계와는 다르게 일본 영화는 전세계에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나중에 폭삭 망해서 애니메이션의 실사 영화만 나오는 미래와는 다르지.’
이런 상황에서 오시마 타케시가 AV를 찍는 것보다 호사카가 오시마 타케시의 영화에 출연하는게 더 큰 화제가 될 것이었다. 대중들은 영화를 보고 호사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AV를 궁금해하고 그대로 AV 팬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었다. 호사카가 원하는 화제성을 위하면 이런 방식이 가장 좋았다.
호사카의 설득력은 이번에도 먹혔다. 오시마 타케시는 자신을 존경하며 아래로 숙이며 들어오는 호사카를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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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로 호사카는 오시마 타케시와 함께 다니게 되었다. 호사카는 아침밥을 먹자마자 오시마 타케시의 집으로 가서 그와 하루를 보내었다. 오시마 타케시는 차기작에 대해서는 간단한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었다. 이를 정리하여 기획을 정리하는 중이었는데 호사카는 그의 옆에서 그 작업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는 호사카에게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오시마 타케시는 자신의 차기작에 주연을 맡을 호사카의 연기를 봐주기도 했다. 연기는 연기 선생이 가장 잘가르치지만 연기를 가장 잘보는 사람은 현장에서 가장 먼저 연기를 보는 감독이었다. 오시마 타케시가 호사카의 연기를 보고 단점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연기가 그렇게 능숙하지는 않군.”
그리고 호사카는 자신의 연기 재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V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남자 배우였지만 영화판에서는 조연도 하기 힘든 연기 실력이었다. AV에서는 보는 남자들이 자위를 할때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연기력이면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참을때 참고 쌀때 싸고 여배우를 배려하는 능력이었다.
“후회되십니까?”
“아니. 연기력은 얼마든지 늘 수 있는 분야야. 평생 연기를 해본적이 없는 신인 배우가 진짜 양아치처럼 연기를 하기도 하지. 그리고 명배우라는 사람이 이상한 감독을 만나 개발 같은 연기를 하기도 하고.”
“그럼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배우에 대한 내 감을 잘맞는 편인데. 자네는 잘할거야. 눈빛이 다르거든. 마치 인생의 온갖 맛을 다본 노인 같은 눈빛이 보일때가 있어. 자네 혹시 팔목과 발목을 좀 보여주겠나?”
호사카는 오시마 타케시의 이해할 수 없는 요구도 들어주었다. 팔목과 발목의 옷을 걷어서 그 안을 보여주었다.
“수술 흔적은 없군.”
“수술이요?”
“자살을 해본 사람의 눈빛이 나오기도 하거든. 하하. 그리고 보통 자살을 시도하면 손목을 긋거나 뛰어내려서 발목이 작살 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야.”
호사카는 다시 한번 오시마 타케시의 안목에 놀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었다.
“그럼 연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오시마 감독님도 보셨겠지만 제 연기는 AV판에서 쓰던 것이라 근본이 없습니다.”
오시마 타케시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기본적인 연기 이론과 자신의 안목에 의지해서 설명을 했다.
“연기를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감정적으로 캐릭터에 동화되는 것과 이성적으로 밖으로 보여지는 것을 계산하는 사람이 있었지.”
호사카는 오시마 타케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지금까지 다른 여배우들의 연기는 많이 관찰했지만 자신의 연기를 타인의 시선에서 평가 받은 적이 없었다. AV도 결국 연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시마 타케시의 조언은 크든 작든 도움이 될 것이었다.
“자네는 감정적으로는 캐릭터에 동화를 되고 싶어 하지만 머리로는 끊임없이 밖에서 어떻게 보여질지 고민하는 것 같군. 혹시 자네가 가장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배우가 누군가?”
호사카는 오시마 타케시가 자신의 말을 비웃을까봐 걱정을 하다가 결국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쿠로키 하루라는 AV 여배우를 아십니까?”
“알지. 무라니시라는 광대의 여자 아닌가. 광대에게는 아까운 여자지. 훌륭한 배우야.”
오시마 타케시는 쿠로키 하루를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인기 AV 배우로 알고 있지 않았다. 그는 쿠로키 하루를 훌륭한 배우로 알고 있었다.
“좋은 배우지. 섹스에 한해서이지만 메소드 연기를 완벽하게 하지.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마치 그게 실제 상황인 것처럼 느껴지지.”
“네. 저도 그녀와 몇 편의 AV를 찍어보았지만 대단한 배우더군요. 저는 제가 직접 경험해본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저에게는 최고의 배우입니다.”
“그렇군. 그래서 그런거였어.”
“뭐가 말입니까?”
“자네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야. 촬영 중에도 생각할게 많지.”
호사카는 오시마 타케시의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
호사카는 쿠로키 하루처럼 섹스에 완전히 몰입하여 촬영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건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먼저 쿠로키 하루처럼 연기를 하는 것은 뛰어난 재능이 바탕이 되어 있어야 했다. 다른 수많은 여배우들도 하지 못하는 것을 호사카가 쉽게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다음으로 그냥 섹스를 즐겁게 하면 되는 여배우와 다르게 남자 배우는 신경을 써야 할게 많았다. 남자가 섹스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테크닉과 체위에 대해서 항상 고민을 하고 있어야 했다. 사정을 참거나 빠르게 사정을 해야 할때도 있었다. 여배우가 촬영에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야 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호사카는 뛰어난 남자 AV 배우가 될 수 있었지만 섹스에는 완전히 몰입하는 것은 더욱 힘이 들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보다 먼저 해줘야 할 말이 있겠군. 캐릭터와 완전히 동화가 되는 메소드 연기는 훌륭한 방법론이지만 최고의 방법론은 아니야.”
“그런가요?”
“자신의 감정에 완전히 몰입되기 때문에 다른 배우를 배려하기 힘들어지지. 촬영 분위기도 엉망으로 만들고 말이야. 좋은 작품을 만들때 방해가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
오시마 타케시는 오랜 시간 다양한 배우들의 연기를 봐왔기 때문에 메소드 연기의 폐해도 많이 알았다.
“그리고 감정을 컨트롤하지 않기 때문에 화면에 어떻게 나오는지 신경을 쓰기 힘들지. 나는 말이야. 메소드 연기도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는 방법이라 생각해. 가장 좋은 배우는 머리를 쓸때는 머리를 쓰고 가슴을 쓸때는 가슴을 쓸줄 알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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