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137화 영화
* * *
시상식은 천천히 작은 상부터 선정이 되었다. 각본상, 심사위원상 등 하나씩 차례차례 수상작이 불려 나갔다. 상을 받은 영화인들은 하나같이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오시마 타케시가 예전에 받은 적이 있는 감독상에도 설경은 불리지 못했다. 호사카는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이 칸 영화제에서 제일 권위 높다고 할 수 있는 황금종려상과 2등이라고 할 수 있는 심사위원대상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랑프리 심사위원 대상. 설경의 오시마 타케시 감독.”
그리고 진행을 하는 서양인의 입에서 오시마 타케시의 이름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건 통역도 필요 없었다. 호사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오시마 타케시도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설경은 새로운 스타일의 개척이었고 과거의 죄를 씻어내기 위한 과업이었다. 자신이 만족할만한 작품을 만들었고 이를 해외의 영화인들이 인정해 준다는 것은 또다른 감격을 안겨주었다.
호사카와 마츠다 나기사는 감독에게 축하를 건네면서 그와 악수를 했다.
**
시상식이 끝나고 호사카는 즉시 일본에 전화를 걸었다. 이마이 유마 팀장이었다. 역시 일본은 난리가 나 있었다. 해외에서 유명한 상을 타기 전에는 조용하거나 비웃던 반응이 한순간에 180도 바뀌었다.
‘역시 세상은 웃기는 곳이야.’
이마이 유마는 신이 나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여러 방송국에서 칸 영화제를 생중계하고 있다고! 평소에는 영화에 관심도 없었으면서 일본인이 진출했다니까 부랴부랴 말이야. 하하. 그리고 호사카 군의 이름이 다시 매스컴에 노출이 되고 과거 작품이 다시 팔리기 시작했어! 이제 상을 탔으니까 더 잘팔리겠지? 크하하하하!”
이마이 유마는 정신이 조금 나간 것 같았다.
‘원래 비즈니스는 좀 미쳐야 되는 법이지.’
이 세상은 논리만으로 설명을 할 수 없는 곳이고 세상에서 뭔가를 팔아먹으려면 논리를 뛰어넘는 광기가 일정 부분 필요하기는 했다.
이마이 유마는 신이 나서 문스톤 기획의 다음 판매 전략을 설명했다. 먼저 호사카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억엔 섹스 토너먼트를 재편집하고 포장을 다시 하여 판매를 할 것이라고 했다.
“좋은 전략이네요.”
AV 배우 출신이지만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탄 영화의 남자 주인공 역할을 했다. 이번 화제는 1억엔 섹스 토너먼트 때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강하게 지속될 것 같았다. 포장을 바꾸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다시 구매하고 빌려볼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영화제에서도 설경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군.”
칸 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였다. 그 말은 2개의 영화제가 더 남아있다는 소리였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라던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추가적인 수상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 전세계의 중소 영화제까지 생각하면 한동안 엄청 바빠질 수도 있었다.
“음. 저는 일단 세계 3대 영화제만 참가를 하는걸로 하죠. 물이 들어왔을때 저어야 하니까요.”
“응? 지금 영화제에 참가해서 얼굴을 비추는 것보다 더 화제가 될 일이 있나?”
“이 틈에 AV도 제작해야 할 것 아닙니까.”
호사카는 아직도 무라니시 고루가 텔레비전에서 자신에게 이죽거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것으로 일정 부분 복수를 한 셈이지만 역시 AV 배우는 AV로 승부를 봐야 속이 시원했다.
호사카는 자신의 의향을 오시마 타케시와 마츠다 나기사에게도 전달했다. 그들은 호사카가 자신들과 함께 세계의 영화제에서 자주 참가할거라 생각을 했는지 아쉬움을 표했다.
“나중에 다른 3대 영화제에서도 불러준다면 그때 뵙죠.”
“베를린 영화제는 8월 말쯤에 하니까 볼수도 있겠군.”
“그럼 그때까지 건강해요.”
오시마 타케시와 마츠다 나기사는 다른 중소 영화제에도 초청을 받았는지 칸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다른 나라로 이동을 할 예정이었다. 세 사람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호사카는 일본으로 돌아오자마자 공항에서 수많은 환영 인파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에는 AV 배우라고 화제작이 나올때만 다가오던 기자들이 수십명이 입국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에 있는 모든 방송국과 신문사, 잡지사에서 모두 기자를 하나씩 보낸 것 같았다.
이들은 호사카가 오자마자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고 촬영을 돌리기 시작했다. 설경의 다른 감독과 여배우가 해외에 있으니 일본 내의 주목은 호사카가 온전히 받게 된 것이다.
호사카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이마이 유마가 공항으로 나와있었다. 이마이 유마는 마치 어디서 이런 일을 해본 사람처럼 기자들을 통제해서 간단한 기자 회견장을 만들었다. 방송국 기자들이 내미는 마이크를 한곳에 모아서 호사카의 목소리가 한번에 녹음이 되게 했다.
“자, 오랜만에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것이라 모두 흥분을 한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호사카 감독에게 무례하게 하면 그냥 공항을 떠나버릴테니까 모두 예의를 갖춰주세요.”
호사카는 이마이 유마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었다. 그는 기자들의 앞에서 자신을 뽑아주기를 원하며 손을 들고 있는 기자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었다. 첫번째는 역시 가장 이쁜 여자 기자였다. 단발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늘씬한 몸의 라인이 잘 드러나는 회색의 여성용 양복을 입은 여자였다.
“호사카 감독님! 일본 영화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3대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셈입니다! 소감이 어떻습니까?”
“하하. 제가 이 영화를 감독한게 아닌데 감독이라 불리니 좀 쑥스럽네요. 이 자리에서는 그냥 배우라고 불러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호사카 배우님!”
“먼저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고 결실을 이루었네요. 일본에서 흥행이 부진해서 좀 아쉬웠지만 뒤늦게나마 해외에서 저희 영화의 예술성을 알아주어서 감개가 무량합니다. 특히 좋은 영화인데 흥행이 안나왔다고 비아냥 거리는 분들도 많아서 가슴이 많이 아팠죠. 하하하하.”
호사카는 먼저 무라니시 고루를 겨냥해서 애매모호하게 까는 말을 했다. 다음으로는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 좋은 말을 할때였다.
“저는 항상 일본의 예술은 세계에서 먹힐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그 생각을 확인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든 국뽕만큼 이미지 메이킹이 좋은 것은 없었다. 일본인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가장 간단하면서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이었다. 치사량의 국뽕을 맛본 일본 기자들은 일본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순간 호사카는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였다.
그리고 이 환호는 곧 이 공항이 아니라 전 일본을 뒤덮을 것이었다.
‘내가 말한 것이지만 정말 일본 국뽕맛은 더럽군.’
호사카는 재일조선인으로 수많은 차별과 공격을 받아왔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일본에 대한 애정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단지 태어났고 언어가 익숙하고 AV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살고 있는 나라일 뿐이었다.
‘언젠가 내가 누구도 건들지 못할 위치가 되면 일본을 욕해볼까? 그럼 일본 놈들의 반응이 어떨지 또 궁금해지네.’
호사카는 자신의 버킷 리스트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고 다른 기자에게 질문을 허락했다.
다음 기자는 이번에는 좀 무례한 질문을 했다. 딱 보니 호사카를 AV 배우라고 무시하는 듯한 기자였다.
“그런데 설경은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의 수상은 없었습니까? 조금 아쉽기는 하네요.”
호사카는 화를 내지 않았다. 기자에게 화를 내는 것은 삼류 중의 삼류였다. 지금은 일부 방송국에서는 라이브로 현장을 중계하고 있었다.
“기자님. 어디서 온 누구시죠?”
“NNK 방송국의 이토 기요타카입니다.”
“하하. 요즘 기자님들은 사전에 조사를 안하고 오시나봐요. 칸 영화제는 원칙적으로 한 영화가 여러 상을 타는게 불가능한데 말이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각본상이나 심사위원상 정도가 특별한 경우에 남우주연상이나 여우주연상을 탈 수 있죠. 하지만 오시마 타케시 감독님의 설경은 그보다 높은 그랑프리를 탔으니 다른 상은 못받습니다.”
호사카는 일부러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호사카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무례한 질문을 던진 기자의 얼굴을 붉어졌다.
다른 기자들은 같은 기자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그를 불쌍하게 여겼다. 하지만 호사카가 능숙하게 그를 매도하기 시작하자 약한 자를 괴롭히는 일본인의 습성이 퍼지기 시작했다.
또 호사카가 말한 것을 몰랐던 기자들은 자신의 무식이 탄로나지 않기 위해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 기자 님이 바쁠 수 있죠. 절대 기자 님께 뭐라고 하는건 아니구요. 그냥 칸 영화제에 대해서 알려 드린겁니다. 하하하.”
호사카가 착한 척을 하며 웃자 이토 기요타카도 뭐라고 하지 못하고 웃는 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기자들은 자신이 이토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함께 웃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화목하고 행복해 보이는 기자 회견이었다. 그리고 호사카가 절대 만만찮은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자 기자들은 호사카를 섣불리 공격하지 않고 좋은 질문만을 던져주었다.
덕분에 짧은 기자 회견은 깔끔하게 끝이 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