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185화 1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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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항상 눈이 반짝거리던 남자였다. 젊은 날의 무라니시 고루는 항상 자신감이 가득차서 말했다.
“나는 일본의 모두가 즐겁게 섹스를 하는 세상을 만들꺼야! 누구나 섹스를 즐겁게 누릴 수 있게!”
쿠로키 하루는 보수적인 어머니의 밑에서 성적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런 그녀에게 무라니시 고루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처럼 보였었다.
쿠로키 하루는 이 낡은 집에 있으면 그 무라니시 고루가 떠올랐다. 자신을 해방시켜주고 자유롭게 만들어 준 그 남자를 기억할 수 있었다.
“현업에 복귀하실 생각은 없나요?”
호사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쿠로키 하루도 많은 돈이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AV에 많은 애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복귀하지 않을 이유가 충분한 것처럼 복귀할 이유도 충분했다. 남은 것은 그녀의 결정 뿐이었다.
“제안은 고맙네요. 하지만 지금은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요.”
쿠로키 하루는 자신 안에 쌓인 슬픔을 풀어낼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무라니시 고루를 사랑했다. 그가 가장 찬란했던 순간부터 그가 타락하는 순간까지 사랑했다. 그 감정이 슬픔으로 변하자 그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호사카는 여기서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쿠로키 하루를 설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속에 묵혀두고 있던 말이었다. 그도 사람이었고 비밀은 간직하고 있는 것만으로 사람을 좀먹는 것이었다.
“이제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저도 무라니시 감독을 존경했습니다. 인간의 인생은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죠. 그리고 무라니시 감독의 말년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제가 그를 보며 AV의 꿈을 키웠던건 부정하고 싶지 않네요.”
어떤 사람은 유명인이 잘못을 하나 저지르면 그의 인생을 모두 부정하고 물어뜯는다. 하지만 호사카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회귀 전에 힘든 인생을 살면서 인간에게는 다양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왜 있는지 알게 되었다.
“하하. 진짜. 호사카 감독은 가끔 늙은이처럼 이야기한다니까요.”
그리고 쿠로키 하루는 호사카의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저런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몇명 없었다.
호사카는 쿠로키 하루와 무라니시 고루에 대해서 몇가지를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떠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남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호사카는 무심코 무라니시 고루의 회귀 전 일까지 말했다.
“그러고보면 무라니시 감독은 참 이상한 짓도 많이 했죠. 하와이에 가서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섹스를 하다가 감옥에 가기도 하고. 텔레비전에 유료 AV 채널을 만들려고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붇다가 망하기도 하고.”
“어머? 오닉스 영상에서 AV 채널을 만들려고 했다는건 기밀에다가 호사카 감독이 업계에서 두각을 내기 시작해서 취소되었는데?”
호사카는 급히 말을 돌렸다.
“하하하. 그만큼 무라니시 감독은 꿈이 있는 남자였다. 그런 말이죠. 남들이 보기에는 멍청해 보이고 쓸데 없어 보여도.”
쿠로키 하루는 의심은 접었다. 호사카가 미래에서 돌아왔다는 생각은 터무니 없었다. 그보다 무라니시 고루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틀어막은 슬픔을 풀어내는게 더 좋았다.
“꿈이란 그런거죠. 누군가에게는 1엔의 가치도 없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100억엔을 줘도 포기할 수 없는…”
둘은 잠시 무라니시 고루가 항상 떠들어대었던 거대한 꿈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쿠로키 하루는 호사카의 꿈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그럼 호사카 감독의 꿈은 뭐죠?”
“무라니시 감독과 비슷합니다. 모두가 섹스를 행복하게 즐기는 세상을 만드는거죠. 그 수단이 AV이고. 대신.”
“대신?”
“더러운 짓은 안하려고요. 배우들에게는 충분한 돈을 주고 모두가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호사카는 무라니시 고루를 존경했다. 그의 죄는 미워했다. 그의 꿈은 따라가되 그의 행동은 따라하지 않을 뿐이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쿠로키 하루는 호사카를 보았다. 젊은 날의 무라니시 고루처럼 반짝거리는 눈을 하고 그보다 커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역시. 호사카 감독을 먼저 만났으면 일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게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일은 안되고 벌어질 일은 벌어지는게 인생 아닙니까. 그냥 자기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거지.”
“그럼 호사카 감독의 앞날을 응원할게요. 그 뜻이 변하지 않도록.”
쿠로키 하루와 호사카는 악수를 나누었다.
“그럼 다음에 좋은 날이 있으면 다시 만나요.”
“네, 좋은 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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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니시 고루가 죽고 나서 호사카는 명백한 AV 업계의 1인자가 되었다. 그것은 곧 그가 해야할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미 일본은 AV가 대중화가 된 나라였다. 외부에서 수많은 광고, 텔레비전 출연, 인터뷰 제안 등등이 호사카에게 오게 되었다.
호사카는 원래 자신이 나가고 싶은 방송만 나가자는 주의였으나 얼마전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었다. 문스톤 기획이 계속해서 승승장구하기 위해서는 1인자인 그가 할 일이 많았다.
‘무라니시 고루처럼 홍보로만 쓰는건 좀 그렇지만… 역시 홍보를 안할수는 없지.’
호사카는 무라니시 고루의 홍보 방식은 따르지 않을 생각이었다. 무라니시 고루는 자신의 적은 폄하하고 자사의 작품은 홍보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호사카는 다른 것을 홍보하려 했다.
‘돈은 이미 충분하고 굳이 자라나는 신생 업체나 감독을 짓밟을 필요는 없지.’
호사카는 AV 업계를 사랑했고 새로운 천재의 등장은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그는 오히려 남자든 여자든 새로운 인재가 더 업계로 유입되기를 원했다.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이고 새로운 인재가 나타나 건전한 경쟁이 이루어질때 업계는 발전했다.
호사카가 홍보하려는것은 이 AV 업계가 한 인간에게 꿈의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AV 업계가 얼마나 돈벌이가 되는지 그리고 이곳에서 일하는게 얼마나 즐거운지 세상에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호사카는 평일 낮의 토크쇼에도 출연을 했다. 주부를 상대로 하는 방송이었다. 이전의 호사카라면 절대 나가지 않았을 방송이었다.
이 방송도 호사카의 조건을 잘따라주었다. 호사카는 자유롭게 말을 하되 부적절한 말은 방송국에서 알아서 편집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호사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좀 망언을 한게 방송을 타도 상관이 없었다.
‘AV 배우는 말실수를 해도 사람들이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거든.’
만약 배우나 정치인이 말실수를 하면 그건 큰 문제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AV 배우는 말실수를 하더라도 저 직업은 원래 그래 하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서 무라니시 고루도 방송에서 거침없이 말을 하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다.
낮의 방송은 심야 방송의 분위기와 많이 달랐다. 촬영 스튜디오는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중년의 인자한 얼굴을 한 남자 아나운서와 젊고 이쁜 여자 아나운서가 차례로 질문을 하나씩 던졌고 호사카는 생각나는대로 답변을 해주었다.
“호사카 감독님 AV 감독과 배우로서의 일은 어떻습니까. 힘이 들지는 않나요?”
“힘들죠. 하지만 힘든 것보다 좋은게 더 많아요.”
“어떤 점이 힘들고 어떤 점이 좋은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하루에 최소 2번은 촬영을 하죠. 그리고 한번 촬영을 할때 최소 2번은 사정을 하구요. 하루에 섹스를 4번 해야 한다는 소리죠.”
호사카의 말에 중년의 남자 아나운서는 아찔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중년에 이미 정력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침에 텐트도 쳐지지 않고 와이프가 은근한 눈빛만 보내도 두려움이 앞섰다. 그런데 하루에 최소 4번 섹스? 두려움이 후에는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굉장하네요. 그럼 좋은 점은 뭔가요?”
“섹스죠. 남자 중에 섹스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걸로 저는 돈을 버는겁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만약 다시 태어나도 AV 배우 일을 또 할겁니다.”
진심이었다.
남자 아나운서는 호사카의 말에 공감을 했다. 그도 섹스를 많이 하고 싶었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 때문에 못하는 것 뿐이었다. 여러 여자에게 자신의 씨를 뿌리고 싶은 것은 남자의 본능이었다.
여자 아나운서는 약간 질린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강한 남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보호 받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호사카의 말도 동의하기 싫었다.
“그럼 노동의 가치는요? 저는 학교에서 일은 돈을 버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배웠어요. 하지만 호사카 감독님의 말에는 자아의 실현이라는 측면은 잘느껴지지 않네요.”
남자 아나운서는 중간에 여자 아나운서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말을 했다. 호사카는 손짓으로 오히려 남자 아나운서를 제지했다.
“섹스는 자아의 실현이 될 수 없나요?”
“좀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요.”
“음악은 자아의 실현이 될 수 있나요?”
“그렇죠. 많은 음악가들이 그러고 있고 또 많은 팬들이 그 꿈을 응원하고 있죠.”
“제 AV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배우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많은 팬들이 AV를 즐기고 응원하고 있죠.”
여자 아나운서는 말문이 막혔다. 호사카는 여자 아나운서의 논리를 이용하고 있었다.
“제 생각에는… AV를 막연히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좀 편견이 있어서 하는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자세히는 설명을 못하겠지만 말이죠.”
호사카는 방청객에서 여자 아나운서의 편을 드는 듯한 한 아줌마를 보았다. 아줌마는 호사카가 말을 할때마다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여자 아나운서가 말을 할때면 동의를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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