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화 〉 235화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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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으로 들어가는 문 앞.
호사카는 들떠 있었다. 10만명이 넘는 사람이란 것은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동시에 숨을 내쉬기만 해도 공기가 떨릴만한 숫자였다. 그들은 오늘 어떤 쇼를 보게 될지 기대하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나누는 잡담소리가 호사카의 심장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올림픽 정도나 되어야 가득차는 경기장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 경기장이 가득찬게 이상하지도 않았다. 호사카가 벌이는 것은 국가간의 자존심이 걸린 미니 올림픽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종목이 섹스일 뿐이었고 섹스는 스포츠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제인 먼데일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잘 할 수 있죠?”
“당연하지. 나랑 섹스를 그렇게 많이 했으면서 아직 의심하는거야?”
“하하. 섹스 실력으로만 보면 전혀 의심할 거리가 없기는하죠.”
안쪽의 경기장에서 진행자를 맡은 한 미국인이 나타났다. 그는 정장을 입고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그는 마치 복싱 경기를 진행하는 사람 같았다.
경기장 사방에서 설치된 스피커로 드럼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10만에 이르는 관중들은 조용해졌다. 드럼 소리에 그들의 심장박동이 일치해나가면서 뭔가 거대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대감이 커져갔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오래 기다렸습니다! 미스 허슬러에서 주최하는 섹스쇼! 동양과 서양의 대결! 그 성대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자는 우렁차게 대결의 시작을 선언했다. 관중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호사카는 진행자의 멘트가 마음에 들었다. 원래 초안은 미국과 일본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호사카는 자신이 일본을 대표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는 방송 중에도 자신이 한국인임을 당당히 밝혔다. 그래서 일본에서 약간 손해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대표로 뭘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군.’
결국 이번 섹스쇼도 동양과 서양의 대결로 진행되었다. 호사카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진행자는 미국 대표를 먼저 소개하기 시작했다.
“키 6.4피트(193cm)! 몸무게 255파운드(115kg)! 포르노 업계의 헤라클레스! 스위트룸의 대표 남자 배우! 리처드 에드워즈!”
경기장의 한쪽에서 문이 열리고 그리스 석상에 색을 칠한 것 같은 남자가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로마 시대의 전통 의상인 토가를 입고 있었다. 반달 모양의 긴 옷을 몸에 휘휘 감은 것이었다.
로스엔젤러스 메모리얼 콜로세움은 로마 시대 콜로세움에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 되었고 지금 촬영 세트장도 그 기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포르노 배우들도 그에 깔맞춤을 한 것이다.
게다가 로마는 노예제가 남아 있었고 섹스 문화가 발달했었다. 섹스쇼를 하기에 적당한 컨셉이었다.
“키 5.6피트(171cm)! 몸무게 121파운드(55kg)! 고전적인 할리우드의 섹시함을 가지고 있는 포르노 스타! 바바라 린!”
바바라 린은 로마 시대에 여자가 입던 스톨라가 아니라 남자들의 옷인 토가를 입고 있었다. 디테일이 있는 컨셉이었다. 로마 시대에 여자가 남자 옷을 입는 것은 매춘부를 뜻하는 것이었다. 옷이 없는 창녀가 손님의 옷을 입은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굉장히 잘어울렸다. 스위트룸에서는 바바라 린의 몸 곡선이 잘드러나게 옷을 잘둘러주었다. 바바라 린은 모델처럼 엉덩이를 흔들면서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리처드 에드워드의 팔짱을 끼었다.
두 사람은 마치 이미 대결에서 승리한 사람처럼 손을 흔들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열화와 같은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진행자는 동양측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여자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이름! 호시노 사키! 키 5.2피트(157cm)! 몸무게 103파운드(47kg)! 일본에서 건너온 신비의 여인입니다!”
호시노 사키는 이번에도 기모노를 입었다. 미국인들은 방송에서나 봤던 기모노를 입은 여자를 보고 환호했다.
호시노 사키는 한손에는 대나무살에 종이를 발라 만든 전통 우산까지 쓰고 있었다. 기모노를 입은 덕분에 종종걸음으로 중앙 경기장까지 가야했다. 담백한 얼굴과 조금 밋밋한 몸매를 가진 호시노 사키는 전통복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마지막으로 도쿄 섹스킹! 섹스쇼를 통해서 동양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남자! 과연 그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키 5.8피트(177cm)! 몸무게 167파운드(76kg)! 호사카 켄토!”
마지막으로 호사카가 입장했다. 주인공과 챔피언은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법이었다.
호사카는 동양을 대표하는 것처럼 중국 황제의 면류관과 황제복을 난잡하게 입고 있었다. 섹스에 타락한 탕왕 같은 모습이었다. 옷은 중국식으로 입고 몸은 한국인이고 자라난 곳은 일본이니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합체라 할 수 있었다.
야유와 환호가 동시에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의 크기는 지금까지 나왔던 어떤 포르노 배우의 입장때보다 거대했다. 경기장 전체가 하나의 스피커가 되어서 울리는 것 같았다.
호사카는 중앙까지 가서 진행자에게 잠깐 마이크를 달라고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무 말도 없이 쇼를 진행하는 것이 아쉬웠다. 자신의 섹스를 보기 위해서 모인 수많은 관중들과 대화를 하며 교감을 하고 있었다.
호사카는 이 쇼를 만든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애드립을 할 권력이 있었다.
‘일본에서 뉴욕하츠에 나갔을때가 떠오르는군.’
그때도 수많은 방청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큰 화제를 만들어내었다. 과거의 경험이 지금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호사카에게 마이크가 하나 주어지고 미스 허슬러의 직원은 급히 마이크를 더 가져와서 다른 출연자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역시 LA야! 태양만큼 화끈한 남녀가 섹스를 즐기는 도시지!”
호사카가 LA를 띄워주자 야유하던 사람들까지 일시적으로 응원을 보낼 정도였다. 호사카는 마이크를 관중들에게 향해서 그들이 좀 더 소리를 지를 수 있게 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훨씬 좋은데. 어지간한 남자는 쫄아서 자지가 서지도 못할거야. 물론 나는 아니지만!”
호사카는 마치 락스타처럼 관중들을 조종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관중들은 폭발적으로 환호했다.
리처드 에드워즈는 당황했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체구가 컸고 평생 상남자로 살아왔었다.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면 추파를 던지는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포르노 업계로 들어와서 수많은 여자를 따먹으면서 행복한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리처드 에드워즈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냥 동양인 하나를 섹스로 깔아뭉개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했던 과거가 후회될 정도였다. 호사카의 말대로 10만명이 환호성을 지르는데 자지를 세우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혀 쫄지 않고 대중들에게 말을 거는 호사카가 대단해 보였다.
리처드 에드워즈는 미리 비아그라를 먹어두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위트룸의 사장은 그에게 승리를 한다면 어마어마한 거금을 약속했기 때문에 그는 미리 비아그라도 두 알 먹어놓은 상태였다.
그러는 사이에 호사카는 여전히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는 백만 명이 참가한다면서! 우리 같은 이성애자들도 좀 더 힘을 내야 할것 아니야!”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등이 참가하는 축제였다. 미국 여기저기에서 열렸고 축제 하나에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이성애자였다. 호사카는 이성애자들에게 성적 소수자들에게 지지 말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자 관중들은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좋아. LA의 사람들이 얼마나 섹스에 진심인지 느껴지는군. 그럼 이쯤에서 마이크를 내 상대를 하러 온 사람에게 넘겨볼까? 헤이, 미국 대표. 그쪽도 한번 말을 해보지.”
리처드 에드워즈는 갑자기 자신에게 발언할 시간이 주어지자 머리가 하얗게 질렸다. 호사카처럼 방송물을 충분히 먹지 않고 타고난 기질이 없으면 이러는 것이 정상이었다.
관람객들은 미국의 대표랍시고 나와서 얼어붙어 있는 남자를 보고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마초 문화는 겉모습 뿐만이 아니라 속까지 마초인 남자를 원했다. 리처드 에드워즈의 옆에서 왜소해 보이는 호사카가 차라리 더 상남자 같아 보였다.
호사카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원래라면 자신이 악당이고 여기 있는 리처드 에드워즈가 정의의 용사로서 응원을 받아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존재였다. 호사카가 지금까지 이루어낸 업적, 그의 실력, 리처드 에드워즈의 쫄보기질까지 합쳐져서 현재의 반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러면 멋진 승부가 안나겠군.’
호사카는 미국 대표를 압살하기를 원치 않았다.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선에서 멋지게 이기고 싶었다. 그게 그의 이미지를 위한 최선의 길이었다. 그래서 호사카는 어쩔 수 없이 리처드 에드워즈까지 케어해 주어야 했다.
호사카는 리처드 에드워즈에게 속삭였다.
“말을 못하겠으면 그냥 인상을 굳히고 있으라고. 터미네이터처럼.”
리처드 에드워즈는 자신의 연약한 면을 감추기 위해서 호사카의 말을 따랐다. 터미네이터의 남자 배우가 연기를 잘못해서 대사도 표정 연기도 없는 배역을 주로 한다는 것은 좋은 전략이었다. 그 전략은 리처드 에드워즈에게도 잘 먹혔다. 비주얼이 좋은 남자는 말을 안해도 멋있었다.
“하하. 여기 미국 대표는 과묵한 편이군. 어차피 섹스를 하러 온거라 이건가? 하긴, 그것도 정답이기는 하지.”
그리고 리처드 에드워즈는 자신보다 작은 호사카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열이 받았다. 리처드 에드워즈는 평생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 어떤 남자도 그를 존중했고 여자들은 그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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