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화 〉 293화 헐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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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있는 고급 바로 두 남자는 움직였다. 그곳에서도 VVIP만이 들어갈 수 있는 프라이빗 룸에 들어갔다. 역시 실베스타 몬디는 그냥 술을 먹자고 호사카를 부른게 아니었다. 프라이빗 룸에는 오천달러쯤 되는 술을 혼자 마시고 있는 다른 남자가 있었다.
“누구시죠?”
“아, 내 친구. 영화 감독 파블로 맥도날드라고 하네. 사실 이 친구와 술을 한잔하다보니 미스터 호사카가 생각이 나서 말이야.”
파블로 맥도날드라고 하는 감독은 호사카를 보며 아는체 했다. 호사카는 미국에서 잘나가는 포르노 스타였고 왠만한 남자는 호사카를 모두 알고 있었다.
“오, 미스터 호사카. 처음 뵙겠습니다. 실제로 보니까 더 잘생겼군요. 몸도 좋아보이고.”
“안녕하세요. 호사카 켄토입니다.”
“예전에 일본에서는 영화 배우 역할도 했다죠? 영어도 잘하고. 헐리우드에서도 먹힐지 모르겠네요. 재능이 보입니다.”
“배우로 말입니까?”
“그렇죠. 요즘 일본이 워낙 잘나가서 일본인 배우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는데 영어도 잘하고 비주얼 좋고 연기력도 있는 일본 배우는 거의 없어서 말입니다. 일단 제 이름을 마끄도나르도라고 하는데서 다 탈락이죠.”
“하하하. 일본이 좀 그렇죠. 맥도날드 씨.”
어차피 호사카는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 욕은 얼마든지 들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파블로 맥도날드는 처음 보는 남자에게는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부탁도 했다.
“혹시 옷을 좀 벗어줄 수 있나요? 아! 다른건 아니고 제가 액션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보니 몸이 좋은 배우가 필요하거든요.”
어차피 호사카는 남들 앞에서 옷을 벗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옷을 벗는데는 아무런 저항감이 없었다. 호사카의 상의를 벗고 자신의 근육을 보여주자 파블로 맥도날드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호사카는 정력을 위한 운동을 주로 했지만 몸의 일부분만 발달시키면 결국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에 상체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탄탄한 하체와 슬림하지만 근육이 있는 상체를 가지게 되었다. 마치 단거리 육상 선수 같은 몸이었다.
“흐음. 나쁘지 않네요. 상체의 볼륨이 좀 약하기는 한데. 조금만 훈련을 받으면 금방 몸이 좋아지겠어요.”
파블로 맥도날드는 호사카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가 원하던 동양인 배우가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이다.
파블로 맥도날드는 호사카에 대한 칭찬을 좀 더 늘여놓다가 술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는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음. 기다리면서 혼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보군. 그럼 오늘은 먼저 들어갈테니 다음에 또 봅시다.”
호사카는 파블로 맥도날드가 프라이빗 룸에서 나가는 것을 보고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실베스타 몬디와 따로 대화를 하고 싶었었다.
실베스타 몬디는 위스키 하나를 주문하고 호사카를 위해서 여러가지 안주를 시켰다. 헐리우드에서 스타로 성공한 그는 음식을 남길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냥 여러가지 음식을 시키고 그 중에 호사카가 원하는 것을 골라먹게 했다.
“음. 저를 영화 배우로 고용하려는건가요?”
“하하하. 뭐, 그렇게 된 건가? 어쨌든 좋은 일이죠.”
실베스타 몬디는 은연 중에 영화 산업이 포르노 산업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이건 미국인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포르노 배우가 아무리 잘나가도 영화 배우가 훨씬 돈을 많이 벌고 존중도 많이 받기 마련이었다.
“그럼 미리 말하지만 저는 포르노 배우 일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응? 왜죠?”
“저는 섹스에 미쳐있거든요.”
“헐리우드 스타가 되어도 섹스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잘나가는 남자 배우가 미녀들과 원나잇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알면 놀라겠구만.”
“그래봐야 아마추어죠.”
호사카는 여자의 얼굴과 몸매만 보고 섹스를 하는 수준은 넘어선지 오래였다.
“섹스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여자는 다르죠. 포르노 여배우만큼 섹스를 잘하는 직군도 드물죠. 뭐, 창녀도 있기는 하지만 그쪽은 성병이 무서우니까.”
“하하하하. 이상하게 설득되는군요.”
실베스타 몬디는 술을 마시면서 호사카가 한 말을 천천히 이해했다. 그는 호사카와 닮은 점이 많았고 그 같은 남자는 저런 말을 농담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음… 그리고 영화에 잠깐 출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일본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호사카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영화 산업은 어느 나라에서나 대중적이나 예술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호사카는 동양인의 한계를 넘어서 미국 포르노 산업에 도전하고 있었고 헐리우드에서 활동을 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었다. 예전에 일본에서 예술 영화를 찍었던 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이 될 것이었다.
호사카의 말에 실베스타 몬디는 환하게 웃었다.
“잘되었군요. 아까 감독도 말했지만 동양인 배역을 구하고 있었던터라.”
“그럼 무슨 작품인지 알려줄 수 있나요?”
호사카는 약간 위험할 수 있는 질문을 했다. 헐리우드는 스포일러에 민감했다. 대박 작품의 시나리오가 유출되어 영화 제작이 엎어지는 일도 흔했다.
“뭐… 제목 정도는 괜찮을까. 롬보 3이네. 자세한 내용이나 대본은 계약을 하게 되면 주도록 하죠.”
호사카에게 회귀 전의 기억이 스쳤다. 그도 남자였고 액션 영화를 좋아했다. 롬보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던 영화였다.
‘그리고 3편부터 망했지!’
호사카는 순간 영화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할뻔 했다.
롬보 1편은 전쟁에서 막 돌아온 군인의 PTSD와 처절한 액션이 합쳐져서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었다. 대중과 비평가의 찬사를 동시에 받았었다.
하지만 이런 영화는 시리즈로 만들기 어렵다는 제작사의 간섭이 있었다. 롬보 2편은 완전한 액션물로 변화했다. 1편의 느낌을 일부 가져가면서도 호쾌한 액션을 보여줘서 흥행을 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호사카의 기억 속에서 3편은 망했다. 2편을 다시 한번 촬영했을 뿐이었고 속의 내용도 없었다.
‘뭐… 시리즈로 만들려면 어쩔 수 없지만.’
포르노 업계에도 이런 일은 많았다. 하나의 명작이 나오면 그것의 이름을 빌려서 시리즈로 2편, 3편을 계속 내며 돈을 빨아먹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포르노 업계에서는 여배우가 적당히 괜찮으면 시리즈롤 몇십편 내보내도 팔렸다. 하지만 영화계는 달랐다.
“그럼 일단 생각을 좀 해보도록 할게요.”
호사카는 확답은 주지 않았다. 망할게 뻔한 영화에 참여해서 어떻게든 성공하게 만드느냐 아니면 이 기회를 버리느냐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좋아요. 당장 결정할 일이 아니기는 하죠. 그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스케줄은 뭐가 있죠?”
“원래는 역사에 남을 만한 포르노를 찍으려 했죠. 드루 디아즈를 출연시켜서. 하지만 딱히 정해진 아이디어는 없습니다. 미스 허슬러의 직원들을 열심히 굴려야죠. 백만달러 서바이벌이 끝나기도 했으니까 한 일주일 정도 휴가도 주고요.”
“포르노라. 나도 포르노를 찍는게 나쁘지는 않았는데. 아니, 오히려 좋았죠. 섹스를 하면서 돈을 버니까.”
실베스타 몬디는 잠깐 추억에 잠기었다. 미국으로 건너와 힘든 무명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포르노 작품에도 출연을 했었다.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된 일이었다.
“보통 포르노 업계를 떠나면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고 하던데.”
“만약 호사카 씨가 포르노 배우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지 않았다면 그럴 엄두도 못냈을거요.”
“섹스를 잘하고 좋아하는 이미지가 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차별은 있을텐데요.”
“하지만 나는 내 과거의 선택을 부끄러워하면서 숨기고 싶지 않았으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포르노를 찍은 것도 나니까. 호사카 씨라면 내 말을 이해하겠죠?”
호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남자는 자신이 과거에 한 잘못까지도 모두 인정하는 법이었다. 호사카도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호사카 씨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지.”
실베스타 몬디는 롬보 3를 위해서 동양인 배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 그는 중국의 액션 스타인 토니 챈을 섭외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실베스타 몬디는 아무 동양인에게나 기회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호사카가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고 비슷한 사람이었기에 호감을 가지고 기회를 주려한 것이었다. 호사카는 실베스타 몬디보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마치 동생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제안을 주신 겁니까?”
실베스타 몬디와 함께 영화를 찍는 것은 모든 배우 지망생들에게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실베스타 몬디는 호사카에게 말했다.
“헐리우드는 좋은 기회에요. 지금 대통령도 헐리우드 스타에서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습니까. 호사카 씨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헐리우드는 큰 힘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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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술자리가 끝이 났다.
호사카는 실베스타 몬디의 제안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분명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호사카는 예전에 칸 영화제를 간 일로 많은 이득을 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헐리우드는 대중적인 면에서 칸 영화제보다 훨씬 강점이 있었다. 영화 팬들만 보는 칸 영화제와 달리 헐리우드에서 만든 블록버스터 대작은 전세계의 모든 사람이 봤다.
‘AVN에 도전할만한 작품을 만드는건 쉽지 않지.’
드루 디아즈라는 여배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각본이 나오는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 그 순간에 차라리 다른 생산성이 있는 일을 하는게 좋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롬보 3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단순히 연기만 해서 성공할 작품이 아니었다. 롬보 3는 실패가 예정이 되어 있는 작품이었고 호사카는 헐리우드의 초짜 배우로서 작품 전체를 개혁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래야 롬보 3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호사카는 오랜만에 가슴이 떨려왔다.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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