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화 〉 295화 헐리우드
* * *
호사카는 롬보 3의 계약서에 바로 사인을 했다. 그리고 그가 주요 아이디어를 모두 낸만큼 각본 또한 실베스타 몬디와 함께 쓰게 되었다. 각본료와 배우 금액을 동시에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호사카가 각본에 착석하게 되어서 동양인을 단순한 악역으로 써먹지 않게 되었다. 각본의 초안이 완성되자마자 테스트 촬영이 시작되었다.
마이클 브라운은 원래 영화 감독을 꿈꾸던 남자였고 미스 허슬러에서 현장의 일을 빠르게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헐리우드의 AAA급 영화의 감독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오자 밤잠을 자지 않고 영화에 매진했다.
‘이거 영화쪽으로 방향을 돌리는거 아냐?’
현재 문스톤 기획의 직원으로 있기는 하지만 롬보 3로 이름을 떨치면 여기저기서 마이클 브라운에게 손을 내밀수도 있었다. 호사카는 그가 최소한 AVN에 도전할만한 포르노는 한편 찍어주기를 바라며 물어보았다.
“롬보 3가 잘되면 헐리우드로 돌아가고 싶나?”
다행히 마이클 브라운은 포르노 업계에 정신이 팔린 모양이었다.
“아뇨. 하하. 영화도 좋기는 하지만. 포르노와 영화를 오가면서 활동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호사카 씨가 저를 밀어주시니까 몇몇 포르노 여배우들과 친해져서. 하하하하.”
학교에서 필름만 파고 들던 남자에게 포르노 여배우가 프로 섹스의 맛을 보여준 모양이었다. 마이클 브라운도 나름 여자 친구가 있던 적이 있었지만 역시 프로의 보지맛은 달랐다.
“그건 다행이군. 앞으로도 같이 오래 일하면 좋겠어.”
“호사카 씨는 돈도 제대로 챙겨주니까요.”
마이클 브라운은 호사카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영화 업계나 포르노 업계나 신입에게 돈을 후려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호사카는 절대 돈으로는 장난 치지 않았다.
“그럼 테스트 촬영 준비는 잘되고 있나?”
“네. 이제 곧 촬영 들어가면 됩니다.”
마이클 브라운의 말대로 촬영은 금방 시작되었다.
**
테스트 촬영에 허용된 시간은 딱 10분이었다. 10분이면 영화판에서 닳고 닳은 사장들이 감독의 재능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이클 브라운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그리고 호사카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가 고른 장면은 호사카가 은둔해 있는 롬보를 설득하러 가는 장면이었다.
시나리오 상 롬보는 국가에 실망하여 은둔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미국은 넓은 땅만큼이나 숲이 많은 나라였다. 시골에는 산속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꽤나 있었다.
넓은 숲에 작은 산장이었다.
롬보로 분장을 한 실베스타 몬디는 웃통을 벗고 근육을 자랑하며 도끼로 장작을 패고 있었다. 그리고 숲에서는 잘 나지 않을 소리가 들려왔다. 깡통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롬보는 백전노장의 특수부대원 다웠다. 그는 즉시 산장 안으로 들어가서 화살통과 활을 꺼냈다. 그리고 미리 마련해둔 은신처에 몸을 숨겼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평범한 풀 덤불 같은 은신처였다.
그리고 군복을 입고 있는 호사카가 나타났다. 그는 무기 하나 없이 산장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롬보? 여기에 있습니까?”
호사카는 손에 들고 있던 깡통으로 바닥으로 던졌다. 알람용으로 롬보가 숲 주변에 설치를 해둔 깡통이었다. 이 또한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등산객이 그냥 버리고 간 물건처럼 보였다. 깡통이 바닥을 구르면서 그 안에 있는 동전 하나와 부딪쳐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만들었다.
“누구냐. 내 알람을 알아차리다니. 평범한 군인 같지는 않은데.”
마치 상처 입은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였다. 역시 실베스타 몬디는 좋은 배우였다. 그는 표정을 자유롭게 못하는 장애가 있었고 이민자 출신으로 영어도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자신만의 캐릭터로 승화했다. 지금 롬보 역할도 그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카메라가 살짝 움직였다. 호사카의 뒤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롬보가 나타났다. 날카로운 화살이 당장에라도 호사카의 뒷통수에 꽂힐 기세였다.
“평범한 군인은 아니죠. 사실 미군도 아닙니다.”
“미군이 아니라고? 설마 베트남에서 복수를 위해서 찾아왔나?”
“테일러 대령님이 위험할거라고는 미리 경고를 해주셨는데 그 말이 정말이었군요.”
테일러 대령은 롬보의 스승이자 상관이었던 자였다. 미국에서 PTSD로 폭주하던 롬보를 유일하게 말릴 수 있는 자이기도 했고 롬보 2편에서는 그에게 다시 죽음의 임무를 주기도 한 사람이었다. 미국 내에서 롬보가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기도 했다.
“테일러 대령님께서?”
롬보는 활시위를 풀었다.
“혹시 나에게 미군의 다른 더러운 일을 맡길 생각이라면 그냥 돌아가라. 나는 이제 더러운 일은 하지 않는다.”
“일단 제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죠.”
롬보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테일러 대령을 위해서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3분의 시간을 주지.”
두 남자는 잠시 앉았다. 의자는 장작패기의 받침으로 쓰고 있던 나무 밑둥이었다.
호사카는 먼저 롬보에게 머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리죠.”
“뭐지? 미국인이 아닌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만한 일은 하지 않았는데.”
“적어도 미군은 한국인에게 충분히 감사를 받을만하죠. 당신은 한국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았겠지만 한국을 도와준 미군의 일원이었음은 변하지 않죠.”
롬보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는 정의를 위해서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을 했으나 미국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군인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온 군인에게 감사 인사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저희 형도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네.”
한국의 부대가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여 어마어마한 활약을 벌인 것은 한국 전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저희 형이 말했죠. 위기의 순간에 한 미군 특수부대원이 M60을 들고 베트콩을 순식간에 다 죽이고 자신을 구해주었다고. 특수부대원 중에서도 그런 활약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명 없죠.”
두 남자는 서로의 눈을 보았다. 호사카는 감사의 눈빛을 했고 롬보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의 마음 속에 응어리졌던 분노가 풀어지는 것 같았다.
“국가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이렇게 사시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군요. 하지만 이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전쟁은 정의가 있었고 미국에서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감사해 하는 사람이 있다고.”
롬보는 슬쩍 하늘을 보며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막았다. 그는 남자 중의 남자였고 그 어떤 순간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눈물을 참는 연기를 함으로서 롬보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동요하는지 보여줄 수 있었다.
“좋아. 한국에서 온 군인. 원한다면 잠시 머물러도 좋다. 먹을 것도 주지.”
이는 롬보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였다. 그리고 호사카는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평화롭게 살고 계신데… 미안합니다. 롬보 씨. 정의를 위해서 한번만 더 힘을 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호사카가 롬보의 분노를 많이 풀어주었기 때문인지 롬보는 2편에서처럼 무작정 거절하지 않았다. 롬보가 가만히 있자 호사카는 진짜 여기에 온 목적을 밝혔다.
“소련에서 북한으로 핵무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소련에서 핵을 쏜다면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겠지만 북한이 단독으로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기껏해야 미국도 북한을 공격할 뿐이죠. 남한과 미국은 북한이 미친 짓을 벌여서 수천만명을 죽이기 전에 이를 막을 사람이 필요합니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눈치를 보며 냉전 시대를 이어갈때 나올만한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북한은 어느 시절에나 미치광이 짓을 하던 나라였다.
“최소한 더러운 짓은 아니군. 하지만 나는 더이상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 어차피 비밀 작전인게 뻔하겠지? 미국과 소련은 둘 다 전면전을 벌이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작전 중에 죽으면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개죽음으로 처리가 될거고.”
롬보는 지금까지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을 유지했다. 그리고 호사카는 롬보를 설득했다.
“네. 그럴 수 있죠. 정의를 위해서 싸우고 그것을 인정 받는다. 그게 군인이 일을 계속 하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롬보 씨.”
롬보는 호사카를 바라보았다.
“때로는 옳은 일을 위해서 아무 대가 없이 움직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특수부대원으로서 이번 작전에 자원했습니다. 기밀 작전이기 때문에 보상은 없고 죽어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갈겁니다. 그리고 저는 역사상 최고의 특수부대원이었다는 저와 같은 일을 해줄 수 없냐고 부탁하는겁니다.”
롬보는 눈을 감고 과거를 생각하는 척 했다. 이 순간에 롬보 1편과 2편의 편집 장면이 들어왔다.
지옥 같은 전쟁에서 돌아왔더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적대시 했던 미국. 그리고 범죄 기록을 지워주겠다는 것을 보상으로 제시하며 자신을 다시 전장으로 보냈던 미군.
“미국에 비하면 차라리 낫군. 좋다. 너와 함께 핵무기를 막으러가겠다.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았군. 나는 존 롬보다. 너의 이름은?”
롬보는 호사카에게 악수를 청했다. 호사카는 그 손을 굳게 잡으면서 말했다.
“원섭 이. 부르기 불편하죠. 미스터 리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호사카는 오랜만에 자신의 한국 이름을 꺼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