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화 〉 312화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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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는 레리 레이건이 신이 나서 떠드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레리 레이건은 지금 벌어들이는 돈만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지만 또 돈을 더 벌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돈이 좋기는 하지만.’
호사카도 돈이 좋았다. 일본에서 따로 직원을 두고 미래의 지식으로 레리 레이건 이상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호사카는 돈보다 포르노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호사카는 돈만 보고 포르노를 만들려고 하는 레리 레이건을 좋게만은 볼 수 없었다.
‘아직 티를 낼수는 없지만.’
프레드릭 파인더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었다. 그게 진실인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레리 레이건과 쌓아온 신뢰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호사카는 레리 레이건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미스터 호사카. 프레드릭 파인더와 나와 함께 회의를 한번 해주면 안되겠나? 아, 물론 영화 촬영 때문에 바쁜건 아네. 하지만 포르노 출연도 해주고 있고 이렇게 여배우들과 시간도 보내고 있으니 늙은이들에게도 시간을 좀 내주지.”
호사카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지금 그가 느끼기에 포르노 전쟁은 금방 한계에 부딪칠 기획이었다. 두세번의 포르노로는 대중의 관심을 모을 수 있지만 이게 장기화될수록 지금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전쟁은 어린아이들의 전쟁놀이보다 못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레리 레이건은 호사카를 설득하기 위해서 말했다.
“550만 달러. 410만 달러. 480만 달러일세.”
“무엇이 말입니까?”
“지금까지 포르노 전쟁으로 벌어들인 수익 말이야.”
호사카도 AV 업계와 포르노 업계가 돌아가는 구조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레리 레이건이 말한 어마어마한 수치는 제작비나 마케팅비를 빼면 절반도 남기 힘들었다. 그걸 레리 레이건은 호사카를 설득하기 위해 무작정 가장 큰 숫자를 부른 것 뿐이었다.
이 숫자에 눈을 크게 뜨는 사람은 케이 러브레스 정도 밖에 없었다. 드루 디아즈도 영화계를 오래 경험하여 큰 숫자는 오히려 더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호사카는 레리 레이건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레리 레이건이 호사카를 속이고 부려먹으려고 한 것이라면, 호사카가 잘나갈수록 나중에 크게 손해를 입는건 레리 레이건 자신일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 일정을 좀 잡아보죠.”
“하하! 당연하지! 우리 같은 사장은 별로 바쁜게 없거든. 미스터 호사카의 일정에 맞춰야지.”
두 남자가 일단 합의를 보는데 성공하자 술자리는 금방 화기애애 해졌다. 그렇게 술자리는 한동안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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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가 끝나고 혼자서 술을 마시지 않은 호사카는 뒷처리도 혼자서 해야 했다. 사람들은 같은 일을 한다는 편안함이 있어서 그런지 마음놓고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다.
호사카는 경비원에서 백달러 정도를 찔러주고 뒷정리를 해달라고 할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역시 자신의 여자들은 자기가 챙기고 싶었다. 덤으로 적이 될지 아군으로 남을지 알 수 없는 레리 레이건도 포함해서 말이다.
우선 나이가 많아서 차가운 바닥에서 잔다면 다음날 시체로 발견될 것 같은 레리 레이건을 들어올려 회의실 테이블 위로 올렸다.
포르노를 만드는 회사라 샤워 후에 입는 두꺼운 가운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걸 이불처럼 3겹 정도로 레리 레이건의 몸 위에 올려두니 훌륭한 이불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여자 셋이 남았다.
‘아무리 그래도. 여배우들을 회사에 버려두는건 좀 그렇지.’
호사카는 결국 야간 경비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에게 백달러를 찔러주고 야간에도 운행하는 택시만 불러달라고 했다. 경비원은 택시 한번 부르는 대가로 백달러를 받을 수 있으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호사카는 경비원의 도움을 받아서 여배우들을 택시로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경비원이 린다 파커를 옮기는 동안 호사카는 드루 디아즈를 옮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케이 러브레스를 업을 차례였다.
여자들은 모두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 관리를 받고 있어서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케이 러브레스를 등에 업으니까 술냄새와 여자 냄새가 동시에 풍겨왔다.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케이 러브레스는 술기운에 호사카의 목을 더욱 감싸 쥐면서 웅얼거렸다.
“으음. 호사카 씨이.”
“그래. 그래.”
케이 러브레스는 술을 마시고 나니 평소의 고고하던 얼굴은 완전히 사라지고 마치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호사카는 그녀를 업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에 케이 러브레스는 호사카에게 계속 중얼중얼 말했다.
“나랑 할래요? 여기서 하고 싶은데…”
“여기서?”
“왜요? 밖에서 하는건 싫어요?”
“그럴리가.”
호사카는 온갖 장소에서 섹스를 다 해본 남자였다. 일본에서도 문스톤 기획의 회사 건물 안에서 섹스를 즐겼다. 이제와서 섹스를 하자는 여자를 거절할리가 없었다. 게다가 경쟁사의 여배우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호사카는 사적으로 섹스를 할때 술에 취해서 정신도 못차리는 여자와 섹스하는건 좋아하지 않았다. 섹스는 남자와 여자와 교감이며 최소한의 정신은 있어야 완전히 즐길 수 있었다.
“혼자서 옷을 벗을 수 있다면 해줄게. 난 시체처럼 누워만 있는 여자는 싫어.”
“시체요? 그런 여자가 될 생각은 없지만…”
호사카는 케이 러브레스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아랫층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택시 기사에게 넉넉한 팁을 주고 두 여자를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보냈다. 호텔에는 따로 연락을 해서 여자들을 잘 챙겨달라고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케이 러브레스를 업고 이번에는 미스 허슬러 건물의 최상층으로 향했다. 어느 회사나 사장이 가장 좋은 의자를 사용했고 좋은 의자는 섹스를 하기도 적당했다.
케이 러브레스는 겁도 없이 사장실 문을 막 열고 들어가는 호사카를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스위트룸에서는 그 어떤 배우도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호사카는 그녀를 사장 의자에 앉혀 놓았다. 그리고 잠깐 쉬기 위해서 거리를 벌리려는 순간 케이 러브레스는 팔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 호사카의 옷깃이 잡혔다. 순식간에 호사카의 상체가 그녀에게 끌려갔고 케이 러브레스와 호사카의 입술이 닿았다. 호사카는 잠깐 놀랐다가 금방 진하게 키스를 했다. 케이 러브레스의 혀에서 위스키 맛이 느껴졌다.
“술은 좀 깼어?”
“아뇨. 잠깐만 있어볼래요? 금방 깰거에요.”
호사카는 사장실에 있는 작은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서 케이 러브레스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물을 마시면서 말했다.
“원래는 호사카 씨를 꼬셔서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경쟁사의 사장실에서 하게 될줄은 몰랐네요.”
“그래서?”
“오히려 두근거리면서 좋은데요?”
케이 러브레스는 스릴 있는 섹스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시원한 물을 마시고 술기운이 많이 가신 것 같았다. 호사카는 그녀를 자리에서 일으켜세우고 이번에는 자신이 의자에 앉았다.
“뭐하려구요?”
“나를 위해서 춤을 춰봐.”
“으흥. 이제 사장님 놀이를 하시겠다?”
“뭐,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 없지.”
케이 러브레스는 호사카가 원하는 것은 왠만한 것은 모두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춤을 추면서 자신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호사카는 그것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
케이 러브레스와 진하게 섹스를 하고 나서 롬보 3 영화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며칠이 지나고 제인 먼데일을 통해서 레리 레이건과 프레드릭 파인더와 회의 일정이 잡혔다.
호사카와 두 사장은 회의실 테이블 주변에 앉았고 제인 먼데일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최선을 다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딱 봐도 제인 먼데일에게 호사카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지금 포르노 전쟁이 얼마나 잘나가고 있는지 얼마나 더 잘나갈 수 있는지 조사를 시킨 모양이었다.
제인 먼데일은 여자의 몸으로 임원이 될만큼 능력이 있었고 프레젠테이션은 훌륭했다.
‘다만, 내 여자에게 이런 쓸데없는 고생을 시킨게 마음에 들지 않네.’
그리고 두 사장의 노림새도 뻔했다. 호사카의 여자가 설득을 하면 좀 더 설득이 잘될 것을 기대한 것 같았다.
‘전혀 쓸모 없는 시도지만.’
호사카는 자신의 여자들을 아꼈지만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절대 하지 않는 뚝심이 있었다. 그는 여자의 말에 휘둘리는 스타일의 남자가 아니었다.
호사카는 제인 먼데일의 발표를 모두 듣고 나서 사장들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포르노 전쟁이 잘팔리고 잘팔릴 것 같다는 말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대중은 언젠가는 질릴거라는 점. 그럴바에야 화려하게 마무리를 하고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하는게 좋다는 점.”
지금까지 호사카가 보여준 전략과 같았다. 하나의 시리즈를 화려하게 성공시킨다. 그리고 대중들이 질려하기 전에 기존의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리즈를 다시 성공시킨다.
이는 호사카 같이 천재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좋은 전략이었다. 대중들의 관심은 끊임없이 끌면서 높은 판매량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존 시리즈를 좋아하던 팬들은 새로운 시리즈에 관심을 이어가며 흥행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전략을 대부분의 포르노 제작사에서 쓰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하하하. 하지만 그런 좋은 시리즈가 항상 나오는건 아니지. 그래서 대중들이 질릴때까지 우리가 비슷한 포르노를 만드는 것 아닌가.”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은 것인지. 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인지.
호사카는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끊임없이 도전을 하고 싶었다. 저기 도전을 멈추고 현재의 돈에만 눈이 먼 두 사장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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