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5화 〉 415화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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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포르노 업계의 분위기는 험악하기 그지 없었다. 금방이라도 마피아 조직과 크립스 갱이 전쟁이라도 날 것 같았고 포르노 팬들은 포르노를 볼때면 당연히 그런 흉흉한 분위기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호사카는 먼저 어떤 포르노를 만들어야 할지 아이디어의 씨앗을 제공했다. 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도 우두머리가 해야할 일 중 하나였다.
“뭔가 밝은 분위기면 좋겠군. 로맨스 영화처럼 말이야. 그리고 영상미가 엄청 뛰어나서 처음 5초를 보는 순간 포르노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군.”
모든 예술은 그랬다.
그림은 처음 본 그 순간의 인상이.
음악은 전주의 5초가.
소설은 첫 페이지 첫번째 문단이.
그리고 영화는 시작한 이후에 5초 동안 영상이 중요했다.
그리고 마이클 브라운이 손을 들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런 영상을 원한다면 제가 촬영을 맡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마이클 브라운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화면을 화려하고 섹시하게 만드는데는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화면은 어딘가 질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의 포르노는 마치 소스가 가득들어 있는 치즈버거 같았다. 한입 먹었을때는 그 맛에 흠뻑 빠져들지만 그런 치즈버거는 결국 고급 레스토랑에 사용될수는 없었다.
“그럼?”
“호사카 사장님은 오시마 타케시 감독과도 친분이 있지 않습니까.”
“흐음.”
호사카는 오시마 타케시를 떠올렸다. 예술성으로 세계의 인정을 받고 일본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하는 몇 안되는 감독. 호사카의 스승 중 하나였다.
영상미를 아름답게 만들면서 눈길을 끌게 하는 것은 그만한 감독이 없었다.
“연락을 한 번 해봐야겠군.”
**
예전에 호사카는 오시마 타케시에게 포르노를 한번 찍자고 말했다가 그의 일정 때문에 거절 당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호사카는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오시마 타케시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오시마 타케시는 일정이 비어있었다. 그리고 오시마 타케시는 예전에 일을 함께 하자고 말했던게 예의상 한 것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오시마 감독님! 정말 나쁜 일이 생기면 좋은 일도 생기고 그러네요. 하하하.”
“무슨 좋은 일까지야. 그냥 할 일 없는 노인네가 미국까지 놀러가는게지.”
“오시마 감독님이 도와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오시마 타케시는 바로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오시마 타케시와 호사카는 바로 회의를 했다. 오시마 타케시는 각본도 쓸 줄 아는 감독이었고 그와 회의를 하며 함께 밝은 포르노 각본을 만들어나갔다.
“일단 테마는 첫사랑으로 하지. 나도 맨날 우중충한 사랑 이야기만 촬영했더니 밝은 내용도 만들고 싶었어.”
“오시마 감독님의 밝은 첫사랑 이야기라니. 재미있겠는데요. 보통 첫사랑은 씁슬한 추억이죠. 다들 실패하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에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더욱 밝지 않습니까.”
“역시 자네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군.”
진짜 천재와 미래의 지식으로 만들어진 천재는 빠르게 대본을 만들어나가고 촬영까지 이어나갔다.
제목은 레즈비언 러브. 여배우는 오시마 타케시도 만족시킬만한 연기력을 가진 드루 디아즈가 딱이었다.
첫 화면은 미국의 대학을 오시마 타케시가 아름답게 찍는 것을 시작되었다. 오시마 타케시의 섬세한 손길에 푸르고 활기찬 대학 캠퍼스가 찍혀졌다. 대학을 다니기 전의 고등학생들이 꿈꿀만한 광경이고 대학을 졸업한 성인들은 미화된 추억을 떠올릴만한 화면이었다.
누구나 이 청량한 화면을 보는 즉시 포르노 업계에서 일어났던 피비린내 나는 사건은 생각하지 못할 것이었다.
먼저 미국인들이 가장 섹스를 많이 하는 대학생 역할로 호사카와 드루 디아즈가 등장했다. 이 둘은 교수실로 향했다. 교수는 적당히 나이든 배우 중 하나를 사용했다.
“저… 교수님.”
호사카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옆에 드루 디아즈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뾰루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교수가 말했다.
“무슨 일인가 호사카 군?”
“이번 조별 과제는 좀 변경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왜지? 조별 과제는 나중에 회사에 들어가서도 다른 사람과 협동을 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보네만?”
교수는 적당한 변명을 미리 했다.
조별 과제는 대학 교수들이 학생들의 평가를 편안하게 하려고 흔히 쓰는 방법이었다. 단순히 학생들을 둘씩 짝지어도 평가할 항목은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사회에 나가 필요한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라는 훌륭한 변명거리도 있었다.
그리고 호사카는 말했다.
“교수님은 모르시겠지만 여기 드루는 레즈비언에 남성을 혐오하고 있습니다.”
교수는 눈을 드루 디아즈에게 돌렸다.
“그게 사실인가?”
“네. 사실이에요.”
“남성을 혐오하는 이유는?”
“그냥 본능적이라고 말해두죠. 개인의 취향까지 교정하려고 하시지는 않겠죠?”
“뭐, 그건 아니야. 다만 드루 양이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사회의 절반인 남성과도 교류를 해야 할 일이 있을거야.”
드루 디아즈는 그럴리가 없다는 생각을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감히 교수에게 말해서 성적을 알아서 깍지는 않았다.
“이번 기회는 두 사람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순간이 되겠군. 드루 양은 이 결정에 찬성을 하는 것 같으니 먼저 나가보게.”
교수의 말에 드루 디아즈는 교수실을 나갔다. 그리고 교수는 호사카에게 말했다.
“힘들겠군.”
“네, 교수님. 제 사정 좀 이해를 해주세요. 저는 성적이 떨어지면 장학금을 못받아요. 저희 부모님은 세탁소를 하시면서 살아서 대학교 등록금을 도와줄 형편이 안됩니다.”
“그럼 상황을 봐서 성적은 조금 더 올려주도록 하지. 하지만 한 가지 더.”
“네?”
“원래 여자들은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해서 많이 하곤 하지. 드루 양은 레즈비언일수도 있지만 양성애자일수도 있고 자신의 성적 취향을 완전히 착각할수도 있지 않나. 호사카 군이 잘 좀 대해보게.”
호사카는 교수가 성적에 보너스를 준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교수실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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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와 드루 디아즈는 애매한 관계의 조별과제를 이어나갔다. 아직 인터넷이 없는 시절이었고 이 둘은 대학교 도서관에서 서로 책을 찾고 교환해서 읽고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드루 디아즈는 마치 바퀴벌레를 보는 것처럼 호사카를 보았고 호사카는 상처를 입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조별과제의 진도는 느렸다.
그러다가 호사카는 계속 이렇게 지낼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드루 디아즈에게 말했다.
“계속 이렇게 하면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고 다른 공부나 과제는 하지도 못하겠네. 내가 가발이라도 쓸까? 그냥 날 여자라고 생각하고 대하면 안되겠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
그리고 호사카는 가방에서 준비해온 가발을 꺼냈다. 머리에 뒤집어 썼다.
남자 대학생이 여자 가발을 쓰고 있는 것은 우스꽝스러웠다.
“푸웃!”
드루 디아즈는 처음으로 호사카를 보면서 웃었다. 호사카는 가발을 벗었다. 그 또한 이건 굉장한 용기를 낸 것이었다. 다른 대학생이 많은 도서관에서 여자 가발을 쓰는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호사카의 얼굴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뭐야. 웃을줄도 아네. 그럼 도서관에서는 책을 빌려서 기숙사 방에서 조별과제를 하자. 아니. 나랑 단둘이 방에 있는건 좀 그런가?”
그리고 드루 디아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괜찮은 생각인것 같아. 그리고 계속 네가 가발을 쓰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니까.”
드루 디아즈는 호사카의 얼굴을 보고만 있어도 가발을 쓴 모습이 떠오르는지 웃기만 했다.
그 이후에 조별 과제는 잘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드루 디아즈는 호사카만큼은 혐오하지 않게 되었고 기숙사 방에서 단 둘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될수록 둘은 점점 다른 대화도 나누게 되었다.
밤 늦게까지 조별 과제를 하고 난 이후에 호사카는 맥주병 두 개를 꺼내서 드루 디아즈에게 내밀었다.
“오늘도 고생했어. 밤도 늦었는데 맥주나 한잔하고 갈래?”
드루 디아즈는 잠깐 고민하다가 맥주병을 받아들었다. 지금까지 호사카와 오랜 시간 지내면서 호사카는 그녀를 응큼한 표정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 그게 신뢰를 만들었다.
호사카는 먼저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면서 말했다.
“이렇게 또 친하게 지내고 보니까 레즈비언 친구도 나쁘지는 않네. 사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만 없다면 그냥 동성 친구랑 다를바가 없잖아? 흐음. 이래서 여자들이 게이 친구를 그렇게 좋아하는건가?”
드루 디아즈도 맥주를 한모금 했다.
“그런가. 나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
그리고 둘은 서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최근에 어떤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는지 어떤 곳에 놀러 갔는지 하는 등의 이야기였다. 친구 사이라면 늘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는 사이에 맥주는 점점 비워져 갔다. 드루 디아즈는 술에 약한 사람이었는지 금방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호사카는 지나가는 식으로 물었다.
“그러고보니까 드루의 첫 남자친구. 아니, 미안. 실수했네. 첫 여자친구는 어땠어?”
동성 친구 사이에서는 흔히 물어보는 옛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드루 디아즈는 잠시 과거를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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