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0화 〉 450화 몰락
* * *
휴스턴 헤프너는 옹졸하고 다른 남자를 경계하는 소인배였지만 평소에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여느 부자가 그렇듯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새끼가 있으면 조용히 경비원을 불러서 처리를 했다.
하지만 그는 호사카를 돕고 플레이걸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 과감하게 자신의 평소 모습과는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기로 했다.
원래 부자들끼리 만나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재미없는 잡담이나 하다가 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가 서로를 다치게 만들 힘이 있으면 갑질도 잘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대중들은 그런 부자들의 모습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건 서로 허세와 허영을 부리고 졸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시청자들은 욕을 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호사카와 휴스턴 헤프너는 둘 다 시청자에게 욕 먹는건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신작 포르노만 찾아본다면 욕 정도는 얼마든지 먹어도 되었다.
세상에는 돈이 되는 욕이 있고 돈도 안되는 욕이 있었다. 그 중 셀럽이 허세를 부려서 먹는 욕은 돈이 되는 욕이었다.
**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셀럽과 섹스를 한번 해보려는 그루피는 미국에서 한둘이 아니었다. 하룻밤의 추억을 원하는 여자는 원하는 것을 얻었고 셀럽을 협박해서 돈을 뜯여려는 여자는 이 일만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호사카는 자신의 여자들을 명품으로 치장하는 것을 대대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를 보고 호사카를 제대로 물어서 팔자를 펴보겠다는 헛된 망상을 하는 여자도 생기게 되었다.
올해 20살이 된 애니 페이지는 LA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며 살던 여자였다. 그녀는 고등학교때 치어리더를 할 정도로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정도의 외모로 미국에서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성인이 되고 집을 나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예인을 준비했다.
그리고 여러 오디션에 떨어지면서 자신은 운이 없을뿐 언젠가는 대박이 날거란 꿈을 꿨다. 스스로 성공을 하거나 아니면 성공한 남자의 눈에 들거나.
그녀는 지금 요즘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촬영을 구경하고 있었다. 호사카 켄토라는 동양인 포르노 스타의 리얼리티 쇼였다.
모든 출연진과 촬영진을 압도하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있었다. 애니 페이지는 동양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호사카에게는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 그녀는 자신의 옆에서 촬영을 구경하고 있는 동료 웨이트리스에게 말했다.
“포르노 스타라는게. 돈을 엄청 벌기는하나봐. 옆에 있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명품을 걸치고 있네. 솔직히 나도 저기 한자리는 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애니. 저 여자들 봐. 하나같이 엄청 예쁘잖아.”
“뭐, 어때. 원래 남자란 동물은 새로운 여자한테 헤롱헤롱하는 법이니까.”
동료는 애니 페이지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애니 페이지는 자신감이 있었고 급하기도 했다. 매일같이 자신은 성공할 수 있다고 정신 승리를 하고 있지만 무의식에서는 인생이 망해가고 있다는걸 알았다.
애니 페이지는 지금 자신의 외모와 호사카의 여자들을 냉정히 비교하지 못할만큼 현실 감각이 없었다.
호사카의 여자들은 영화계에 진출을 해도 성공을 거둘만한 외모와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고등학교의 치어리더 출신이 비벼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이 잠시 중단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애니 페이지는 가게에서 잘나가는 맥주 한잔을 들고 호사카에게로 향했다. 마침 호사카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일어나 있었다.
애니 페이지는 호사카가 화장실에 나오는 순간을 노렸다.
“저기!”
“음?”
애니 페이지는 순간 자신이 준비한 말을 모두 잊었다. 여러 여자들의 향이 묻어 있는 남자는 이상하게 가지고 싶은 마음을 극대화시켰다.
원래 애니 페이지는 도도한 매력으로 호사카에게 다가가려고 했었다. 모든 여자들이 호사카에게 헤롱거리고 있으니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준비한 말을 까먹으면서 그런 계획도 모두 망쳤다.
“호사카 씨! 팬이에요!”
그녀가 준비한 말 중에 핵심만 겨우 말했다. 호사카는 방금전까지 허풍을 떨던 셀럽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팬을 아끼는듯한 스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여자 팬들은 많지 않아서. 하나하나가 더 소중하죠.”
애니 페이지의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붉어졌다. 그녀는 호사카에 맥주잔을 내밀었고 호사카는 그것을 조금만 마셨다.
“미안해요. 아직 촬영중이라. 과음은 힘들거든요.”
“아, 예.”
그리고 호사카는 가볍게 떠나려고 했다. 애니 페이지는 황급하게 말했다.
“혹시 촬영이 끝나면 저랑 술 한잔 하실래요?”
노골적인 유혹의 말이었다. 만약 호사카가 섹스에 굶주려 있는 평범한 셀럽이었다면 이 어리고 멍청한 아가씨의 유혹에 그대로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호사카는 그루피도 여럿 만나본 여자였다. 그냥 자신의 자지 맛이 궁금해서 접근한 여자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여자인지 대번에 구분이 가능했다.
“콘돔있어요?”
“아, 네!”
남자 셀럽을 등쳐먹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구멍난 콘돔이었다. 일단 임신만 하면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는 미국에서 굉장히 쉬운 방법으로 돈을 뜯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애니 페이지는 멍청한 여자답게 호사카가 자신과 지금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줄 알고 주머니에서 준비한 콘돔을 꺼내었다.
호사카는 그 콘돔을 받아들고 개봉했다. 콘돔 구멍을 벌리고 맥주를 천천히 부었다.
주르륵.
이 여자는 구멍 하나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구멍 여러개를 내놓았다. 그 구멍마다 맥주가 시원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
여자는 호사카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자리에서 떠났다. 레스토랑을 나가버렸다.
호사카는 뒤로 돌아보자 PD가 카메라맨 하나와 함께 이 모든 장면을 몰래 찍고 있었다.
“이거 방송에서 쓸수는 있습니까?”
방송에서 조작을 많이 하는건 이런 상황을 찍었을 경우 모든 사람에게 출연 허락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소송의 나라인 미국에서 모든 사람을 막 방송에 사용하는건 힘들었다.
PD는 웃으면서 말했다.
“모자이크와 음성변조를 하죠. 어차피 중요한건 호사카 씨 아니겠습니까.”
**
호사카가 LA의 로컬 명물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에게 크게 한 턱을 쏘는 것. 휴스턴 헤프너와 실랑이를 벌이는 것. 그리고 그를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그루피의 출현과 호사카의 멋진 모습까지.
PD는 맥주를 마시면서 편집을 하며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옆에서 메인 작가도 좋아했다.
“하필 이럴때 그루피가 등장하고 그걸 호사카 씨가 멋지게 물리치다니. 최고네요.”
“그렇지.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리얼한 것을 꾸며낸 것이지만. 가끔 진짜 리얼한 상황이 나오면 그걸 또 담는게 묘미거든. 이런 에피소드가 하나씩 나와주면 시청자들은 다른 상황까지 진짜라고 믿으니까.”
편집이 되어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 리얼리티 쇼는 재미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호사카와 그녀의 여자들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최적화가 되어 있는 인재나 다름이 없었다.
“각본도 따르면서 애드립도 잘친다니. 앞으로도 포르노 배우들과 일을 자주하면 좋겠네요.”
“원래 포르노라는게 대충 상황이 던져지면 거기에 맞춰서 연기를 하는게 대부분이라서 그렇다던가? 흠. 요즘 연예계에서 이렇게 일을 하는 곳은 마이너한 연극 무대 정도 밖에는 없을테니까.”
시장이 커지고 자본이 커질수록 연기를 하는 분야에서 애드립은 점점 사라졌다. 워낙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다보니 생기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포르노 업계에서는 호사카가 곧 자본이었고 그는 애드립에서 나오는 독창성을 좋아했다. 그 자체도 섹스 연기에서 많은 애드립을 했었다.
이러한 사정이 맞물려서 리얼리티 쇼에 최적화된 배우와 여배우들이 만들어졌다.
“앞으로는 작가들은 재미있을만한 상황만 만들고 뒤로 빠져야겠어요. 맥주나 마시면서요.”
“하하. PD도 그러고 싶군.”
호사카와 그의 여자들의 활약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한동안 흥행이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호사카는 호텔에서 자신의 여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자들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는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워했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던 셀럽의 호화로운 삶이 가짜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런 삶도 한번쯤은 체험해 볼만했다.
여자들은 호텔에서 자신들을 찍은 프로그램이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것을 보고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저게 꿈에 그리던 삶이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지독한 코미디였다.
어떤 방향으로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건 마찬가지였다.
호사카는 포르노 업계를 장악하기 위해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는 것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런 것들이 하나씩 쌓여서 나중에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드루 디아즈는 호사카를 안아주며 말했다.
“호사카 씨는 점점 더 유명해지네요.”
“유명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