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5화 〉 455화 몰락
* * *
“요즘 스위트룸에서 레오스라는 신인 감독이 나와서 좋은 평을 받고 있는 포르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인터뷰에서는 호사카 씨에 대한 비판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먼저 그 신인이 만든 작품은 좋았습니다. 몇가지 더 고칠만한 점이 있지만. 그래도 요즘 신인 감독 중에서는 돋보이는 재능이더군요. 그리고 다음 질문은. 저에 대한 비판이었죠?”
호사카는 잠시 숨을 골랐다. 방청객들이 그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방청객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시청자들도 동일한 반응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죠. 저도 포르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배우만 하는게 아니라 저만의 감각을 담아 시나리오와 감독까지 하는 그런 작품을 말이죠.”
“오. 호사카 씨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겠네요. 기대가 되는데요?”
호사카는 신인의 공격은 가볍게 넘겼다. 이 업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칙. 더 꼴리는 작품을 만드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호사카는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토크 쇼는 여기서 끝이 나는게 아니었다. 프레드릭 파인더는 호사카가 준비한 다음 대본을 태연하게 연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스위트룸에서 레오스 감독과의 전화 인터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호사카 씨 몰래 말이죠.”
호사카가 프레드릭 파인더에게 제안을 했고 그는 덥썩 이 제안을 받았다. 현재 포르노 업계의 강자는 호사카이며 AVN은 도전을 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리고 호사카가 이렇게 제안을 해주는 것은 오히려 감사할 일이었다. 이름값으로 봐도 네오스 카락스가 얻을 인지도가 더 많았다.
호사카는 잠깐 놀라는 연기를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시죠. 포르노 업계의 선배와 후배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겠죠. 어차피 이 업계의 승리자는 내가 될테지만 말이죠.”
호사카의 말에 방청객들은 환호했다. 호사카는 이들을 자극하듯이 말했다.
“어차피 미국은 나를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남자는 나를 부러워하고! 여자는 나를 먹어보고 싶어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호사카의 말은 방청객들의 더욱 크게 소리 지르게 만들었다. 잠시 방송이 중단될 정도의 환호였다.
호사카는 손짓으로 조금만 조용하자는 식의 제스처를 취했다. 방청객들의 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데이비드 레노는 전화를 연결했다. 이미 네오스 카락스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네, 레오스 감독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심통이 나 있었다. 호사카는 네오스 카락스가 이 자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이런 잔재주 없이 순수하게 작품만으로 승부를 보고 싶은게 분명했다.
진행자는 잠시 빠져주었다. 포르노 업계의 지배자와 새로운 천재의 대화만으로 충분히 화제가 될 것이었다.
“저와 대화를 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네요.”
“아뇨. 한번쯤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과거의 호사카 씨는 훌륭한 포르노 제작자였으니까요.”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요?”
“배우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혼이 담긴 작품은 없고.”
호사카는 여유롭게 웃었다.
“지금 제 방송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결국 포르노를 만드는 사람이고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포르노 업계를 석권했는지 보여주도록 하죠.”
분위기는 호사카에게 완전히 넘어왔다. 네오스 카락스가 무슨 말을 하던간에 포르노 업계에서 쌓아온 업적은 호사카가 압도적이었다.
천재 신인과의 대립.
리얼리티 쇼의 성공.
지금 차기작을 만들기에 딱 적당한 시기였다.
**
호사카는 네오스 카락스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서 그를 꼬득여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계약의 위약금? 그냥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 설득하는 것도 자신이 있었다. 호사카는 오시마 타케시라는 예술 감독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호사카는 오히려 네오스 카락스와 대립각을 세웠다. 객관적으로 이제 막 포르노 작품 하나를 낸 네오스 카락스가 호사카와 대립을 한다는건 말이 안되었다. 하지만 호사카는 의도적으로 네오스 카락스를 자극하고 띄워줬다.
이런 두 천재의 싸움이라는 요소가 포르노 업계를 더욱 발전시키게 될 것이었다. 네오스 카락스는 자존심이 강한 천재였고 칭찬을 해줄때보다 대결을 할때 더욱 천재성을 빛내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호사카는 네오스 카락스에게 아무런 유감이 없었지만 지금은 이런 관계로 지내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호사카의 의도대로 네오스 카락스는 흥분했다. 그 또한 차기작을 더욱 뛰어나게 만들어서 호사카의 콧대를 눌러주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하며 다녔다. 그 소식을 들은 호사카는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네오스 카락스는 이제 미친 듯이 포르노를 빌려서 보았다. 호텔에 박혀서 자신의 수발을 드는 직원에게 과거 미국에서 나왔던 포르노와 일본에서 나온 AV까지 모조리 빌려오라고 했다. 가장 명작이라고 할만한 작품만 빌려도 그것을 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네오스 카락스는 영화광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자폐를 앓았고 영화에 꽂혀 있었다. 그때도 눈을 떠 있는 시간에는 영화만 보면서 살았다. 그게 그의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크게 키워주었다.
그리고 지금 포르노와 AV를 보면서 그는 새삼 감탄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남자를 꼴리게 만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는 훌륭한 예술이었다. 영화처럼 다양한 감정을 일으킨다는 목적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목표가 명확한만큼 더욱 선명하게 그 예술성이 다가왔다.
‘게다가 남자들의 취향은 다양하지. 그저 꼴리게 만든다는 짧은 말로 끝내는 것도 예의가 아니야.’
그렇게 네오스 카락스는 포르노에 대한 지식도 빠르게 쌓아갔다.
그리고 문득 네오스 카락스는 이렇게 영상에 빠져 있는게 얼마만인지 생각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자폐는 그에게 한 분야에 미친듯이 파고들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해서 치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그가 이렇게 포르노를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호사카라는 천재의 자극 때문이었다. 아직도 호사카와 전화로 대화를 나누던게 느껴졌다.
호사카는 자신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시하고 있었다.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서 아직 멀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게 네오스 카락스를 자극시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에 자부심이 있었다. 호사카가 깜짝 놀랄만한 포르노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감정이 그를 오랜만에 한 분야에 집중하게 만들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과 호사카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호사카 또한 세상 사람들과 AVN 상부의 인정을 동시에 받고 싶어했다. 비슷한 감정이었다.
네오스 카락스는 공책과 볼펜을 잡았다. 이 감정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뛰어난 포르노를 만드는 것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성욕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꼴리게 만들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그러지 못하는 법이었다.
네오스 카락스는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사실을 절절히 느꼈다. 그는 자신 속의 불덩어리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품을 구상하면서도 불덩이는 작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크게 활활 터오르기 시작했다.
프로로서 작품으로 말을 해야한다는 것은 잘 알았다. 그리고 지금 이 감정이 작품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게 그를 괴롭게 만들지 않는다는건 아니었다.
네오스 카락스는 예술을 하다가 미쳐서 자살한 사람을 몇명이나 알고 있었다. 흔한 일이었다. 원하는 경지는 보이는데 그 경지에 오를만한 재능이 없을 경우 사람은 자살에 이를 정도로 좌절했다. 그도 거기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영화나 포르노나 원하는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백만마리 개미에게 뜯기는 듯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네오스 카락스는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 중에서 쓸만한 것들을 모아서 캐릭터를 만들고 상황을 만들었다.
어느 순간에 네오스 카락스는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음을 느꼈다. 그게 느껴지자 배가 고파왔다. 네오스 카락스는 시계를 보았다. 작업을 시작한지 10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는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가 만든 초안들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 초안을 고르고 다시 수정 작업을 하려면 휴식이 필요했다.
그는 전화로 룸서비스를 대충 시키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식사를 하고 잠깐 눈을 붙인 다음에 체력이 회복되면 작업을 이어나갈 생각이었다.
네오스 카락스는 잠에서 깨자 한 나이든 남자가 그의 초안을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프레드릭 파인더였다.
이 호텔에 돈을 지불하고 있는 사람은 프레드릭 파인더이니까 문을 열고 들어오는건 간단했다.
“미안하군요.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그냥 연락이 없어서 걱정이 되어서 잠깐 들렀습니다.”
프레드릭 파인더의 말에 네오스 카락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재는 괴팍하다지만 이런 사정에도 화를 내는 정신병자는 아니었다.
“뭐, 어쩔 수 없죠. 작업을 한다고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프레드릭 파인더는 초안을 만지며 말했다.
“벽이 있나 보네요.”
“네?”
“하긴 호사카라는 사람이 만만한 사람은 아니죠. 포르노를 잘만드는 것만으로 그 위치까지 올라갔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