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4화 〉 474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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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가 미국 포르노 업계까지 평정하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다시 1년이 지나고 빌리 클린턴은 무난하게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다. 지금 그는 모르지만 호사카는 알고 있었따. 빌리 클린턴은 2선에 성공하여 무려 8년이라는 기간 동안 지구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게 될 남자였다. 그런 미국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가 된 호사카는 마음 먹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호사카의 여자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원래 포르노에 뜻이 있는게 아니라 호사카가 좋아서 이 업계에 있던 여자들은 하나씩 임신을 했다.
처음에는 드루 디아즈였다. 그리고 제인 먼데일이 임신을 했다. 호시노 사키와 츠지 미유까지 임신을 했다. 마치 줄줄이 도미노 같았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대신 호사카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들에게 양육비를 넉넉하게 지불했다. 가정부 하나를 데리고 편안하게 여생을 살 수 있을만한 돈이었다.
남자가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건 부양할 돈이 없어서였다. 능력이 있는 남자는 마치 숫사자처럼 여러 부인을 거느리고 아이를 많이 나았다. 어차피 아이들에게 물려줄 재산도 충분했다. 그의 아이들은 원한다면 백수로 평생 살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고 공허한 삶이었다. 포르노를 만들어도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대중들은 여전히 호사카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 당사자의 마음은 달랐다.
1995년이 되었다.
그리고 심심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호사카에게 편지 하나가 왔다.
아이를 낳고도 여전히 비서 일을 하고 있는 제인 먼데일이 팬레터를 가지고 왔다.
“이건?”
“사장님이 읽어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뭔데?”
“한국에서 온 편지에요.”
호사카는 미국으로 건너온 이후에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자라온 곳은 일본이었고 일본 AV 업계를 사랑하기는 했지만 그가 어렸을 당시에는 수많은 일본인 학생들이 그를 괴롭혔다. 그런 성장 과정에서 제대로 된 학업이나 꿈을 가질 수 있을리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비행 청소년이 되고 야쿠자가 되고 AV 배우가 되었다.
지금은 그 덕분에 미국에서 모두가 알아주는 셀럽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일본인이라고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재일조선인이 미국에서 포르노로 성공을 하는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원래 해외에서 성공하는 한국인이 있으면 대대적으로 국뽕을 빠는 전통이 있었다. 부모 중 하나가 한국인이라도 그랬고 심지어는 조부모가 그래도 한국의 핏줄이라고 다함께 자랑스러워 했다.
만약 호사카가 영화계에서 활동하거나 텔레비전 쇼에만 나왔으면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호사카는 다른 곳은 그저 화제를 일으키는 용도로 이용만하고 결국 포르노 업계로 돌아갔다. 그는 포르노 스타 중 최고였고 이는 한국에서 정보를 통제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한국의 모든 매스컴은 호사카의 존재를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굳이 한국인이 포르노 스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아예 발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문화를 개방하지 않은 일본과 다르게 미국의 문화는 한국에도 계속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미국에 많은 유학생이 있었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유학생은 호사카라는 인물의 인기를 알고 그것을 한국에 조금씩 퍼트리고 있었다.
한국은 인터넷 기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김영수 정부는 1994년부터 한국의 전역에 초고속 인터넷 망을 깔겠다고 발표를 했고 PC 통신도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PC 통신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맹활약 중인 호사카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미국의 호사카에게 팬레터까지 온 것이다. 한 남자가 영어 사전을 뒤져가면서 더듬더듬 쓴 편지였다. 비록 문법은 엉망이었지만 그 뜻은 명확했고 정성을 엄청 쏟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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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씨에게.
당신이 미국에서 포르노 스타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여러 곳에서 한국인임을 밝히고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저는 어떤 분야에서나 한국인이 세계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상황이 어떤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를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입니다.
말만 그렇게 하지.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군부독재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한국에는 성인이 즐기는 제대로 된 성인물이 없습니다. 섹스를 하는척만 하는 가짜 성인 영화가 나올 뿐이지요.
원래 남자는 인기만 있다면 이 여자 저 여자와 모두 하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호사카 씨도 잘알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가 않아서 모든 남자가 호사카 씨처럼 살수는 없습니다. 평범한 남자들은 그냥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자위를 하며 만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높으신 양반들은 그러는 사이에 유흥업소에 가서 여자들을 끼고 술을 마시고 성욕을 풀겠죠. 불과 얼마전에 대통령이 여대생과 술을 마시다가 총에 맞아 죽는게 대한민국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높은 사람들은 자기들은 즐긴건 다 즐기면서 서민들은 비디오를 보면서 자위를 하는것까지 모두 참견하고 막으려고 합니다. 법적으로 말입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옳은 일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돈을 많이 못벌어서 그런 고급 주점에 가서 여자를 끼고 놀수는 없지만. 그래도 모자이크 없이 실제 섹스를 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자위는 할 수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런 성인 비디오 산업이 한국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최소한 미국과 일본의 성인 비디오를 수입하는 것은 허가를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한국에서 이런 말을 공공연히 하면 그저 변태라고 취급을 받으며 욕을 먹습니다. 한 목소리를 내야할 남자들은 체면을 차리기 바빠서 그저 침묵을 고수합니다. 여자들은 해외 성인 비디오를 수입하자고 하면 한 목소리로 일어나서 욕설을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한국의 성인 문화는 발전은 전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호사카 씨는 일본에서는 AV로 성공을 하고 미국에서는 포르노로 성공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호사카 씨가 한국 남자들을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희를 위해 목소리를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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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호사카는 한국에 대해 큰 애정이 없었다. 그냥 자신을 일본인이라 착각하는게 싫었을 뿐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곳의 핏줄을 가지고 있었을뿐이었다.
호사카는 성인이 된 이후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편지 내용을 보고 있으니 한국 남자가 불쌍해졌다. 그가 생각하기에 포르노는 인간의 기본권이었다.
평범한 남자는 태어나서 섹스를 할 기회를 몇번 가지지 못한다. 콘돔이 발명되어 마음놓고 섹스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인류 역사를 따져보면 최근이었다. 콘돔이 있어도 얼굴이 잘생기거나 능력이 좋은 소수의 남자들만 마음 놓고 섹스를 할 수 있었다.
평범한 남자는 태어나서 직장을 가지고 간신히 한 여자와 결혼을 해서 섹스 몇번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섹스는 한 여자와 반복을 하면 질리는게 당연한 행위였다. 그냥 똑같은 반찬을 몇십년 동안 먹는 것이었다.
그나마 남자들에게 다른 반찬이 되어주는게 포르노였다. 여자에게도 남자가 밖에 나가서 돈을 쓰며 헛짓거리를 하는 것보다는 포르노로 해소를 하는게 나았다. 남녀 모두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목소리를 내주는건 문제가 아니지. 그저 한국에서 내 말을 들어줄 용의가 있는지가 문제지.’
호사카는 예전에 롬보 3가 개봉했을때가 기억이 났다. 롬보 3는 미국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흥행을 했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호사카에게 접촉을 해왔었다.
“혹시 한국 이름으로 광고를 해도 됩니까?”
“그러시죠.”
이 정도는 호사카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호사카는 이원섭이라는 한국 이름이 있었고 한국의 반일감정 또한 알고 있었다.
“그리고 포르노 배우로 일을 했다거나 AV 배우로 일을 한 경력은 삭제해도 되나요?”
이 조건은 호사카는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성인 비디오 산업에서 성공한 것은 호사카의 전부였다. 회귀를 한 이후에 호사카는 자신의 인생 전부를 성인 비디오 산업에 던졌었다. 이걸 가리겠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호사카는 반대했다. 한국에서 취재를 나온 방송국 놈들은 감히 일개 포르노 배우가 자신들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을 언짢아 했다.
그들은 그냥 실베스타 몬디만 집중적으로 취재하기로 하고 호사카의 존재는 무시했다. 호사카는 방한하여 영화 홍보를 하기로 한 스케줄도 취소되었었다.
호사카는 제인 먼데일을 불렀다.
“한국에 잠깐 가보고 싶은데.”
“한국이요? 무슨 목적이 있나요?”
“그냥 놀러. 구경을 가보고 싶어서.”
“네. 스케줄을 준비하겠습니다.”
어차피 요즘 호사카는 반쯤 휴식기였다. 한달에 한번 정도 포르노를 내면서 지내고 있었다. 남는게 시간이고 돈이었다.
한국에 목소리를 낸 것이 공허한 울림이 되기 전에 한국의 상황이 어떤지 직접 보고 싶었다.
금방 일정이 만들어졌다.
호사카는 다른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제인 먼데일은 한국에서 호사카를 모실 가이드만 하나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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