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5화 〉 495화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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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는 회귀를 하기 전에 일본에 있었고 미래에 한류라는 열풍이 일본에 불어온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드라마였다. 그 다음은 아이돌이었다.
호사카는 아줌마들이 보는 드라마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의 아이돌과 다르게 섹시미를 무기로 사용하는 한국 아이돌은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그는 아이돌들이 연애 좀 한다고 지랄하는 팬들이 싫을 뿐이지 길쭉한 다리로 각선미를 뽐내는 여자 아이돌은 언젠가는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류의 중심에 있는 것이 MS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호사카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투자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자 이수환 사장은 당장 약속을 잡자고 했다. 시간과 장소를 잡았다.
이수환 사장은 모든 일정을 미루고 그날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어차피 호사카는 한국에서 할 일도 별로 없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호사카는 택시를 타고 서울 중구에 있는 고급 중화 음식점으로 향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고급스러운 벽지가 있었다. 이곳 쉐프는 호텔 주방장 출신이라고 안내하는 글이 한쪽 벽에 있었다.
‘맛은 있겠네.’
호사카는 종업원에게 자신을 밝히자 그녀는 호사카의 이름을 듣고도 싫어하는 기색을 밝히지 않았다. 고급이라더니 접객 교육을 제대로 받은 모양이었다.
호사카는 안쪽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안경을 낀 중년의 남자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호사카를 보자마자 일어났다.
“이수환입니다. 반갑습니다. 호사카 씨.”
그의 눈에는 감출 수 없는 욕망이 가득했다. 호사카는 왠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두 남자는 빠르게 서로를 탐색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인맥을 늘리는 목적은 단 하나였다. 상대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
“네, 호사카 켄토입니다. 한국 이름은 있지만 익숙한게 편해서.”
“이해합니다. 앉으시죠.”
호사카와 이수환은 마주보고 앉았다.
“여기는 코스 요리가 좋습니다. 딱히 가리시는게 없다면 코스 요리는 어떻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죠.”
이수환이 코스 요리를 시키고 종업원은 밖으로 나갔다. 이제 둘만 남았다. 대화를 할 시간이었다.
호사카는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한국에서 돈을 쓸어담고 있는 아이돌 그룹 HOOT가 이수환 사장님이 키우신 애들이라면서요? 그럼 따로 투자가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원래 사업이라는 것이 그랬다. 처음에는 투자 하나를 따오기도 그렇게 힘들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공 괘도에 오르면 투자자들이 자신의 돈을 가져가 달라고 난리를 부린다. 사장이 투자자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인 먼데일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MS 엔터테인먼트는 이미 성공을 하고 있었다. 따로 투자자를 모집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수환 사장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분명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호사카가 직접적으로 물어보자 이수환은 호사카가 사업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한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차피 이수환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서로를 속이는 것보다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미 다 알고 오셨군요. 그럼 간단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지금 저희 아이들이 한국 가요 시장을 휩쓸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겨우 이런 작은 나라에서 만족하면 되겠습니까?”
호사카는 이수환 사장이 나중에 일본 시장과 중국 시장을 한국 아이돌로 공략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래의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보니 이수환 사장은 한국에서 성공을 할때부터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는게 분명했다.
“처음은 일본과 중국. 그 다음도 꿈꾸고 있지요?”
이수환 사장은 크게 웃었다. 지금 자신의 주변 사람들은 한국에서 큰 성공을 했으니 이제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 하지만 그건 사업을 모르는 무지렁이들이 하는 소리였다. 비록 현실은 항상 냉정하게 보고 있어도 가슴 속에는 뜨거운 꿈을 품고 있어야 하는게 사업가였다. 그렇지 않다면 성장의 한계가 금방 찾아오는 것이 사업이었다.
“네. 미국까지도.”
“그럼 저와 협력을 하고 싶겠군요.”
호사카는 일본에도 인맥이 넓었고 미국에서도 인맥이 넓었다. 호사카가 도와준다면 세계 진출이 훨씬 쉬워질 것이었다.
여기까지 대화가 되고 종업원들이 첫번째 요이로 특선냉채를 가져왔다. 대화는 잠시 멈추었다.
“호사카 씨. 드셔보세요. 여기 음식 맛이 아주 일품입니다.”
호사카는 재료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먹어보았다. 상큼한 냉채가 순식간에 입맛을 돋구었다.
그리고 이수환은 종업원에게 말했다.
“사업 이야기를 긴히 해야 하니까. 요리를 모두 깔아두고 먹읍시다. 원래 중국 요리는 또 그렇게 먹는 것 아닙니까.”
“네, 준비하겠습니다.”
종업원은 주방에 그 말을 전했다. 이곳 주방장은 진짜 솜씨가 좋은지 몇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미리 준비해둔 온갖 요리를 한꺼번에 가져왔다.
불도장이니 모자새우, 팔보채, 양갈비, 식사로 할 짜장면과 짬뽕이 한그릇씩 나왔다.
주방장은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나서 말했다.
“식사를 다 하시면 종업원을 부르세요. 후식을 준비하겠습니다.”
그 음식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형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호사카와 이수환은 테이블을 돌려가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씩 맛보았다. 확실히 그 맛은 대단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이수환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포르노 배우라고 하기에는 더 대단한 사람이군요. 제 속내를 이만큼 알아차리다니.”
“하하.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저는 포르노 배우입니다.”
“자신의 근본. 그런 느낌인가 보네요.”
“그렇습니다.”
호사카는 음식을 하나씩 계속 먹어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이수환은 자신과 손을 잡고 싶어한다. 그리고 호사카는 그의 남자 아이돌을 이용해서 섹스 스캔들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냥 평범한 사업가를 뒷통수를 치는건 좀 그런가?’
호사카는 이수환이 자신에게 속마음을 보여주자 그의 뒷통수를 치는게 조금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적이라고 확정이 되면 인정사정 없이 몰아 붙였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피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 그럼 먼저 일본에 진출하고 그 다음이 미국이겠네요.”
“그렇죠.”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아이돌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그걸 이겨내려면 같은 무기로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이수환은 호사카가 진심으로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기뻐하며 말을 했다.
“확실히 같은 컨셉이면 자기 나라의 아이돌을 좋아할 가능성이 더 크죠.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한국인과 일본인은 비슷하다고 하지만 역시 다른 점이 많습니다.”
“어떤?”
“일단 외형적으로 한국 사람이 일본 사람보다 크죠. 크다는건 더 섹시하다는거고. 지금 일본 아이돌들도 남자다운 매력보다는 소년미, 귀여움. 이런 것들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이수환은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HOOT은 말도 안되는 컨셉을 많이 취했었다. 세기말 전사라던가 인형 같이 총천연색 옷을 입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걸로 인기를 얻었다. 아무래 아이들은 좀 만화적인 컨셉을 좋아한다는게 이수환의 생각이었다.
남성미, 섹시미. 이런걸로 승부를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려운 길이었다.
“보니까. 지금 아이돌은 일본 아이돌의 컨셉을 많이 벤치마킹 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런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일본과 한국은 문화적으로 단절이 되어 있었고 일본에서 잘나가는 것은 한국에서도 잘나갈 가능성이 컸다. 아이돌 문화도 그렇다.
“새로운 컨셉을 만드는건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기존에 소녀팬들에게 환호를 받았던 섹시 스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흠.”
“최근에 로미오X줄리엣을 보셨습니까?”
“네, 봤습니다.”
이수환은 트렌드를 읽기 위해서 요즘 유행하는 것은 무엇이든 보았다. 그리고 로미오X줄리엣은 그냥 잘생긴 레오 디카프리오가 나온 것만으로 인기를 끌만한 작품이었다.
“거기서 레오는 정장도 입고 그러죠. 거기에 여자들이 엄청 환호하지 않던가요?”
“그건 그 배우가 워낙 잘생겨서.”
“하지만 그걸 잘생긴 한국 아이돌이 입어도 어느 정도 섹시미가 나올 수 있겠죠.”
“흠…”
호사카는 이수환에게 아이돌도 섹시 노선으로 가야 한다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그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인지 섹시에 대해서 작은 거부감을 보였다. 아니면 호사카가 품고 있는 검은 속내에 대해서 눈치를 챈 것인지도 몰랐다.
“서양 락스타들도. 소녀팬들은 몰고 다니고. 온갖 사고는 다 치지만 그래도 잘나가지 않습니까. 한국도 세계로 진출하려면 그런 식으로…”
호사카는 이수환에게 아이돌도 섹스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열심히 어필했지만 이수환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일본이 아무리 성적으로 열려 있다고 해도… 역시 동양 국가에서는…
호사카는 결국 이수환을 설득해서 서로 윈윈하는 방향은 포기하기로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사지 멀쩡한 젊은 남자들은 연애도 섹스도 못하게 하는 이 사장을 우회하기로 했다.
“음. 그럼 일단 일본에 진출하려면 일본어를 좀 배워야겠네요.”
“네, 안그래도 일본어 선생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걸 제가 할까요? 여자 선생을 구하는 것보다는 제가 안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중에 일본 진출을 하려면 저와 친분을 미리 다져놓는 것도 좋을거고.”
호사카의 말은 틀린 점이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할까요?”
이수환은 호사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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