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9화 〉 499화 아이돌
* * *
언론을 이용해서 전초전을 치루었다. 이제 국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무작정 호사카를 욕하지는 않았다.
장앤김 법무법인의 변호사는 호사카를 칭찬하며 말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습니까?”
“어차피 재판이라는게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는건 다 착각 아닙니까? 그냥 더 논리적으로 보이는 사람. 국민 감정상 더 착해 보이는 사람이 이기는거죠.”
“하하. 그게 맞는 말이기는하죠. 아무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분위기가 좋은 호사카 진영과는 다르게 MS 엔터테인먼트는 분위기가 식어 있었다.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이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가장 성공을 하고 있던 HOOT는 몇년간 같이 고생한 MS 엔터테인먼트를 버리고 술과 여자를 사주는 호사카에게 가버렸다. 그리고 호사카를 친형처럼 따르면서 그가 원하는대로 행동을 해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HOOT을 폭력이나 협박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MS 엔터테인먼트의 사내에서는 이상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전까지는 회사를 더 키우고 아이돌을 더 성공시키고 그래서 자신의 몸값을 올리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직원이 그저 정해진 일과만 더듬더듬 하고 있었다.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소송은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이수환 사장은 그동안 모은 돈을 풀어서 가장 유능한 변호사를 사려고 했다. 하지만 호사카는 발빠르게 움직였고 돈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2등이라는 법무법인 대서양을 고용했다. 이곳도 만만치 않은 곳이기는 했다. 그리고 법무법인 대서양은 이번에야 말로 장앤김을 이겨보겠다고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2등은 2등이었고 여론은 여론이었고 HOOT은 여전히 호사카의 손에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수환 사장마저도 벌써 패배감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수는 없었다. 그는 순결한 아이돌로 한국 학생들의 돈을 모두 빨아먹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이수환은 변호사와 만나서 연일 어떻게 하면 재판을 이길지 토론을 했다. 그의 목표는 명확했다.
호사카가 순진한 HOOT을 속여서 타락을 시켰고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HOOT을 다시 MS 엔터테인먼트에 복귀를 시키고 다시 활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론이 반전이 되었습니다. HOOT의 인기는 확실히 대단하더군요. 카메라 앞에서 조금 울음을 터트렸다고 모두의 시선이 호사카에게서 벗어나다니 말이죠.”
“변호사 양반. 적을 칭찬하는건 지금 하기에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앗! 이수환 사장님. 죄송합니다.”
변호사는 저의 술수가 뛰어남에 감탄을 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그럴때가 아니었다. 재판은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는 게임이었다. 무조건 이겨야 했다. 아니면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도 보여주어야 했다.
이수환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론에 풀만한 다른 이야기는 없습니까? 호사카는 한국 사람들 모두가 싫어하는 포르노 배우입니다. 대서양도 꽤나 큰 곳인데 여론도 꽤나 다루지 않았습니까.”
“여론전은 하면 할수록 서로를 더럽히는 일입니다. 지금 이상으로 하면 MS 엔터테인먼트도 상처를 많이 입을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끄응.”
이수환은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냥 한국에서 패배를 하거나 똥물을 뒤집어써도 미국으로 돌아가면 그만인 호사카와 다르게 이수환은 한국을 기반으로 계속 활동을 해야 했다. 이건 불공평한 싸움이었다.
잠시 회의실에 있는 이수환과 변호사들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변호사 중 하나는 생각했다.
‘적으로 상대하기 힘들다면 친구로 지내면 될텐데. 하긴 그것도 힘든 일인가.’
변호사도 머리가 명석했고 이수환의 고민은 알았다. 호사카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한국의 아이돌 이미지를 바꾼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건 큰 위험을 동반했다.
섹시 스타로 아이돌을 바꾸는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돌은 학생이 주요 소비자였다. 그리고 그 학생들은 부모에게서 돈을 받았다. 부모들은 섹스를 하고 다니는 미국식 스타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지금 흥신소를 고용해서 호사카와 HOOT 멤버들을 계속 따라다니고 있으니 쓸만한 증거가 많이 모일겁니다.”
“지금 모인 것은 없습니까?”
“강남 나이트에서 엄청 놀고 있다는군요.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여자들과 논다는군요.”
“끄응.”
이수환도 가수 출신이었다. 그도 잘나가는 스타가 난잡하게 놀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나 더럽게 놀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HOOT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만 들려도 나이트의 모든 여자들이 달려들 것이다. 그럼 HOOT은 마음에 드는 여자만 골라서 먹으면 그만이었다.
이건 이수환이 원하는 아이돌이 아니었다.
“젠장. 재판도 빨리 진행합시다. HOOT이 나이트 죽돌이에 원나잇을 엄청 즐긴다는 이야기가 나돌면 상황이 더 안좋아지겠군요.”
“네, 그럼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해서 재판을 당겨보겠습니다.”
이수환은 HOOT을 이해할 수 없었다. 중년의 고꾸라든 나이의 남자는 발기를 하는 것도 비아그라를 먹어야 했다.
20대에는 돈을 바짝 벌고 30대부터 이 여자 저 여자와 즐기면서 살면 된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것도 못해서 평생 빌빌 거리며 사는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어린 아이돌 하나도 간수하지 못한 저 매니저처럼 말이다.
이수환은 변호사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진짜 이번 재판은 우리 회사의 명운이 걸려 있는 일입니다. 잘 좀 부탁합니다.”
“사장님. 믿어주십쇼.”
이수환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MS 엔터테인먼트는 현재 악순환이었다. 회사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이 방송 자체를 못나가고 있었다. 지방 행사도 못돌고 있었다. 돈의 흐름이 막혀서 이대로 가면 몇달 버티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재판에서 이기고 지방 행사부터라도 시작을 해야 했다.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를 도는 것만으로 돈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HOOT의 인기가 시들해져도 야간 업소에 출연을 시키면 또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새로운 아이돌을 육성하면 되었다.
이수환은 HOOT의 성공에 자신의 지분이 절반 이상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의 안목과 노하우라면 분명 새로운 성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번 재판을 이기고 손해배상을 받아서 미래를 위한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일이 이렇게 될지는 몰랐는데.’
이수환은 호사카와의 관계가 이렇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가 아는 스타나 사장들은 모두 돈에 미쳐 있었다. 많은 돈을 벌고 가지고 있어도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했을 뿐이었다.
호사카에게서 연락을 받았을때, 이수환은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호사카를 이용해서 일본과 미국에 진출하고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돈 이상을 벌고 싶었다. 호사카가 동양인으로 미국 포르노 업계에서 성공했다면 HOOT도 미국에서 아이돌로 성공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탑 아이돌을 하는 것과 일본 미국에서 탑 아이돌이 되는 것은 벌어들이는 돈의 단위가 달랐다.
그래서 호사카가 만나자는 제안에 바로 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은 순식간에 복잡하게 꼬이고 말았다.
이수환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단 하나 였다. 바로 호사카가 어떤 인간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호사카는 돈을 벌기 위해서 뭐든지 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꿈을 위해 남들은 가족도 팔아먹을 수 있는 돈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남자였다.
이수환은 이런 남자를 상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다. 그냥 말이 통하지 않았다. 돈과 섹스로도 회유가 되지 않았다.
돈과 권력과 섹스를 모두 가지고 있는 역대급 또라이. 그런 미친 놈을 이수환은 상대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 인생에 왜 이런 태클이.’
신을 원망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수환은 차라리 과거의 자신에게 절대 호사카를 만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었다.
호사카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작고 쉽다는 듯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이수환에게 도움을 줄만한 정부나 시민단체는 말만 할 뿐이었다.
돌고 돌아서 결국 이수환은 직접 이 재판에서 이겨야 했다. 물러날 곳이 없었다. 재판만 이기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될 것이다.
변호사들이 재판 준비를 위해서 회의실에서 빠져나가고 이수환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홀로 외로이 생각했다. 몇 달 전만하더라도 자신의 전성기라 할만했다. HOOT은 노래를 내기만 하면 음악시장에서 1등을 했다. 온갖 행사에서 HOOT을 불러달라고 웃돈을 먼저 말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과거의 영광에 머무를수는 없었다. 아이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지금은 재판에 전력을 다할 때였다.
**
재판이 열렸다.
호사카는 주요 증인으로 재판에 참석하게 되었다. HOOT과 이수환도 당연히 참석했다. 장앤김 범무법인과 대서양 변호사도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판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민의 관심사를 증명하듯이 방청객이 꽉 차 있었다. 절대 쉬운 재판은 아니었다.
“그럼 재판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