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7화 〉 537화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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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가 돌아간 이후에 김중대는 자신의 집무실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한없이 애처로운 햄스터 같았다. 그리고 몸이 피로해질 무렵에 그는 소파에 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온화한 성품이라고 알려진 김중대마저 굴욕감에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 정도였다.
호사카는 그에게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였다.
이제 곧 김중대의 임기는 끝났다. 그는 나름 대한민국을 잘 이끌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할 일은 여기까지 였다. 차기 정권을 믿고 국민의 선택을 믿으면서 아름답게 물러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호사카는 그걸 원치 않았다. 이 싸움을 오랫동안 질질 끌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의 의견을 직접 물어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리고 김중대는 그 말을 듣자마자 패배를 떠올렸다.
지금 국민들은 호사카라는 악마에게 홀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성매매도 아니고 포르노를 완전 합법화하자고 하면 찬성을 던지는 국민이 많을 것 같았다.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호사카에게 질질 끌려다니다가 다음 정권에 호사카를 넘길수는 없었다. 자신도 많이 힘들었다. 다음 대통령도 할 일이 많을텐데 이런 부담은 넘겨줄수는 없었다.
김중대는 국민들이 호사카에게 환호를 하고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호사카가 한 말이 더 기억이 났다.
“대통령이 동의를 하지 않는다면 또 언론을 이용하든 재벌을 이용하든 해야겠죠. 이걸 해준다면 불우이웃돕기 기부도 엄청한다고 하면서.”
김중대는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설마 민주주의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묻는게 두려운건 아니죠?”
그런 말을 들었을때는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그랬다. 김중대는 지금 국민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국민들이 포르노에 찬성을 할 것 같았다. 그들이 포르노를 보고 그것을 막 따라하면서 한국 사회를 더욱 문란하고 더럽게 만들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계속 절망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대통령의 자리를 맡고 있는 남자의 의무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누군가가 집무실에 노크를 했다. 밖으로 나가보니 자신의 와이프가 있었다.
그녀 또한 옛날 사람이었다. 그냥 부인이라고 하면 남편의 내조를 잘해주고 아이들을 잘키우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김중대의 가장 옆에 있는 여자였고 그녀는 김중대가 얼마나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부인 무슨 일입니까?”
“당신이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옛날부터 남편이 가장 깊은 속내를 보여줄 사람은 부인 아니겠어요?”
김중대는 눈썹을 찡그렸다.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누구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자리에 도달하고도 항상 얌전하게 자신의 뒤에 있던 여자였다. 김중대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그렇게까지 몰려 있었나 그리고 부인이 보기에도 자신이 위태로워보였나 싶어서 쓴웃음이 나왔다.
김중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확실히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습니다. 최측근에게 물어보다 마땅한 답이 없으니.”
김중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호사카가 한 것은 그냥 선전포고일 뿐이었다. 그는 아마 대국민 투표를 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대통령 선거에 O, X만 추가하면 되는 일이었다. 경제적인 논리로 문제는 없었다.
또한 포르노라는 전국민적 관심사를 국민에게 묻겠다고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적인 논리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호사카가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으로 정부를 두들기기 시작하면 정부는 그것에 반대를 하는 것도 궁색해질 것이었다.
김중대는 결국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았다. 참모들이었다면 즉시 해결방안을 말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와이프는 그저 남편의 고통을 공감하고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것만으로 김중대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김중대의 마음이 완전히 진정이 되고 나서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저는 정치에 대해서는 잘모르지만…”
“말해봐요.”
“당신은 한국을 위해서 할만큼 했어요. 국민들의 뜻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그 뜻으로 일을 했죠. 이제 마지막으로 국민들의 뜻을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요.”
“그런가…”
부인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통령은 국민들의 가르치는 자가 아니에요. 이제 곧 당신도 국민 중 하나가 되겠죠. 당신이 할 수 있는건 국민들에게 포르노를 완전 합법화하면 우리 나라에 어떤 악영향이 있을지 말을 하는 것 아닐까요? 그냥 정면돌파해요. 정론으로 말이죠.”
김중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그 방법 밖에는 없었다. 이번에는 그가 부인을 안았다.
“고맙소.”
“우리는 부부 잖아요.”
“부부.”
힘든 일이나 기쁜 일도 함께 하기 때문에 부부였다.
김중대는 크게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대통령의 웃음이었다.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중대의 어깨에는 힘이 빠져있었다. 딱딱하게 뭉친게 사라지고 그 위에 여유로움이 생겼다.
“그렇지. 내가 언제부터 국민들보다 잘난 놈이 되었다고.”
“잘난 내 남편이지요.”
“좋습니다. 다음 대통령에게 호사카라는 짐을 물려주고 갈수는 없겠지. 마지막으로 힘을 한 번 내봐야겠습니다.”
김중대는 혼란스러운 머리가 정돈되었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를 차리겠다고 부인은 집무실을 나갔다. 김중대는 호사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심은 하셨습니까?”
“했지요.”
“그 답은요?”
“그렇게 합시다. 국민들에게 포르노를 한국에서 전면적으로 허용할지 말지. 한번 투표를 해봅시다. 다만.”
“다만?”
“나도 호사카 씨와 이렇게 질기게 인연을 이어나가는 것도 지칩니다. 우리 여기까지만 하죠.”
“어떻게 말입니까?”
김중대는 조금 유쾌해졌다. 지금까지 말도 안되는 제안을 했던 것은 호사카였다. 하지만 이제 자신이 말도 안되는 제안을 하려고 했다.
“국민들이 포르노에 찬성을 하면 정치인들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따를 것이고 그 흐름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포르노에 반대를 하더라도 호사카 씨는 계속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겠죠?”
“뭐, 그렇겠죠.”
“그건 불공평한 것 같네요. 다음 대선에 대국민 투표를 추가하는건 내가 양보를 할테니 호사카 씨도 하나 양보하시죠.”
호사카는 김중대의 기세가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호사카는 오히려 그것을 반겼다. 무력한 상대를 쥐어패는 것도 재미있지만 싸울만한 상대와 주먹을 주고 받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이번 투표에서 국민들이 포르노를 반대한다면. 호사카 씨는 한국에서 떠나 주시죠. 그리고 호사카 씨 아래의 포르노를 한국에 수출하는 것도 그만두시구요.”
“하하하하하!!!!”
호사카는 호탕하게 웃었다. 차라리 이렇게 나와주는게 더 즐거웠다.
한 국가의 수장이라면 이 정도의 호쾌함은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지금 이 둘의 통화는 아무런 공신력도 없었다. 호사카는 거짓말을 해도 되었다. 하지만 호사카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인생에서 호사카는 한번도 가오를 잃으면서 살지 않았다. 차라리 부러질 것을 각오하면서 자존심을 챙기며 살았다.
그는 한 말은 지키고 그건 지금 김중대와 통화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중대 또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럽시다. 나는 이제 한국이 유교와 체면과 기독교를 벗어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약속 한겁니다.”
통화는 끊어졌다.
김중대는 자신의 책상 앞으로 갔다. 임기 말년이었다. 급한 일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제 자신의 말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확신이 섰다.
그는 자신의 최측근을 모아서 앞으로 할 일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최측근은 굳이 명예로운 말년을 보낼 수 있는 김중대가 똥물을 뒤집어 쓸 수 있는 선택을 하자 눈을 크게 뜨고 반대를 하기 시작했다.
“전례가 없었던 일입니다. 대선에 그런 저급한 설문을 하겠다니요.”
“굳이 말년에 그런 정치적으로 오명을 쓸만한 일을 벌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 대통령에게 믿고 맡기시죠.”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김중대는 그 반대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호사카의 일은 내가 마무리를 짓고 가겠습니다. 다음 대선에 대국민 투표로 대한민국 포르노 전면 합법화를 국민들에게 직접 물어보겠습니다.”
다시 반대의 말이 나오려고 하자 김중대는 손을 들어서 그 발언을 막았다. 항상 측근들의 의견을 잘들어주던 그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국민들을 이끌고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설득을 합시다. 국민들도 바보가 아닙니다. 국민들도 포르노의 유해함을 알아줄 것입니다.”
최측근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리더의 결정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리더가 결정하면 아랫 사람은 움직이는 것.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김중대는 뛰어난 리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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