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0화 〉 550화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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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말년의 대통령은 한가하기 마련이지만 김중대는 달랐다. 그는 마치 대선 후보와 같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나이가 드니 새벽잠이 없어졌다. 새벽 5시쯤에 일어나서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정신을 맑게 만들었다.
혼자 조식을 먹으면서 그 날 있을 연설을 준비했다. 매번 똑같은 연설을 사용하는 것은 효과가 떨어졌다. 각 지역별로 사람이 다르고 역사가 달랐다. 거기에 맞춰서 연설을 바꾸는게 필수적이었다. 김중대는 이런 디테일까지 챙겨가며 대통령이 되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고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면 오전에 두 개 지역에서 연설을 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에 두 개 지역의 연설을 하고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거리 연설을 2시간 했다.
노년에 접어든 대통령에게는 힘든 일정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것을 열심히 수행했다. 일정 사이사이에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 일정이 끝나면 최대한 빨리 잠에 든다고 하지만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고생길이었다.
그리고 김중대는 체력 문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힘든 일정을 따라가고 있었다. 어차피 은퇴를 하면 쉴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을 했다.
이제 곧 대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중대의 생각대로 호사카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중대가 연설로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면 호사카는 포르노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고 있었다. 각자 자기가 잘하는 것을 선택한 셈이었다.
호사카가 최근에 내놓은 미래 시리즈는 그 상상력이 너무 거창해서 오히려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국민들이 지금은 열광은 하고 있지만 그 말도 안되는 상상력은 상상력으로 끝날 것이라고 보여졌다.
김중대는 호사카를 잠깐 생각하는 것만으로 피로감이 느껴졌다. 자신은 늙고 젊은 정치인들이 호사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하자.’
자신의 손을 벗어난 걱정거리는 그저 스스로를 파괴할 뿐이었다. 뒷일은 뒷사람에게 맡겨야 하는 법이었다.
호사카 앞에 어떤 장애가 있어도 그 놈이 멋지게 빠져나가서 더 큰 성공을 할거란 생각도 그만해야 했다.
김중대는 일부 국민이나 자신에게 반대하는 정치인이 다 늙은 대통령이 노년에 쓸데 없는 짓을 한다고 떠드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럴 수 밖에 없었다. 누구는 추하다고 스스로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라고 말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다시 들었다.
호사카가 만든 그 말도 안되는 포르노 같은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평생을 바친 대한민국이 음란하고 방탕한 나라고 될 것 같았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전화를 김중대는 핸드폰을 들어보았다. 호사카였다. 받고 싶지 않은 전화였지만 받을 수 밖에 없는 전화였다. 호사카는 김중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김중대는 최대한 냉정한 목소리로 자신을 꾸몄다.
“이제 곧 투표날이지 않습니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정적에게 인사라도 하려구요.”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질 것 같아서 그럽니까?”
김중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김중대는 대한민국을 믿었다. 그 국민을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번번이 부서졌다. 김중대는 아직 국민을 믿고 있었고 이 모든 일의 원인은 호사카로만 보였다. 이제 호사카가 괴물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가 등장해서 국민들을 포르노에 열광하는 사람들로 만들었다.
“내가 밉습니까?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미 한국의 국민들도 섹스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나는 그냥 그걸 쿡 찔러서 흘러나오게 한 것 뿐입니다.”
김중대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일본은 텔레비전에서 개그맨이 룸살롱에 가서 여자 가슴을 만지고 논 이야기를 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유명한 여자 셀럽이 자신과 원나잇을 했던 남자들에 대한 품평을 하구요. 한국에서는 왜 그러면 안됩니까?”
호사카는 이제 그 행보 하나하나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한국이라는 폐쇄적인 사회를 깨부수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 호사카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했다. 미국에서는 호사카를 포르노 업계의 체 게바라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그리고 미국은 당연히 세계 최강대국이고 미국에서 유행을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기 마련이었다.
김중대는 결국 자신의 생각을 짧게 정리해 서 말했다.
“인류가 성욕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걸 문화와 교육을 어떻게 통제하려고 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쓸데 없는 욕심 때문이죠. 김중대 대통령이 예전에 그랬죠. 자신은 평생 한 여자만 바라보며 살았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말을 돌려드리죠.”
호사카의 말 하나하나가 송곳처럼 김중대의 가슴에 박혔다.
“나를 보세요. 나는 내 주변의 여자들과 자유롭게 섹스를 하고 아이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흥미를 느껴서 떠난다고 하면 붙잡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내 것이 아니니까요. 그냥 서로 즐기는 관계일 뿐이니까.”
전화가 끊어졌다.
호사카는 슬쩍 한숨을 쉬었다. 그가 김중대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해본 이유는 그가 변하지 않았나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활동을 해도 결국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국민들 중에도 김중대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상관 없어. 이미 시대는 움직이고 있고. 그것에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뒤쳐질 뿐이니까.’
남들이 모두 섹스를 즐기는 세상에서 섹스를 못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만 불쌍한 사람이 될 뿐이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그래왔다.
한명의 선구자가 대중의 열망을 읽고 그것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바꾸었다. 대중이 원한다면 대통령이 아니라 왕과 황제라고 하더라도 그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호사카는 일종의 혁명가였다.
유교와 기독교로 섹스를 말하는 것조차 죄가 되었던 나라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하지 못했던 것을 아무렇지 않게 해버리는 호사카에게 국민들이 열광을 하는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걸 보고 있으면 응원을 할 수 밖에 없어진다.
호사카는 그냥 단순한 포르노 배우이자 미국의 재벌이자 미국 대통령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시대를 바꾸는 사람이었다.
호사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호사카의 뒤에서 그의 걸음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제는 호사카를 반대하는 세력도 호사카가 써내는 드라마의 악역처럼 보일 뿐이었다. 호사카가 그걸 이겨내고 성공을 하는 것을 호사카의 등 뒤에서 즐겁게 보면 될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호사카는 국민들에게 물었다.
포르노를 어떻게 할거냐고.
호사카는 원한다면 미국 정부의 손을 빌려서 한국을 더 압박하고 강제로 포르노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호사카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은 할만큼 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쟁취할 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에 한국 사람들은 진짜 섹스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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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당일이 되었다.
유래 없이 많은 성인들이 투표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투표율이 90퍼센트는 넘을거라는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런 현실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전국 각지의 투표소에 서 있는 줄을 보면 전국의 성인들이 모두 나왔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줄을 선 국민들은 뭔가 거대한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역사의 한 순간에 있는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짜릿해 지는 것 같았다.
기자가 이런 장면을 생중계하면서 국민들에게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오늘 투표에 대한 열의가 굉장합니다. 직접 투표를 하러 나오신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국가적으로 큰 일에 국민이 직접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게 좋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여론 조사나 이런 것은 랜덤으로 표본을 수집하여 신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잖아요. 그런데 전국민에게 의견을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 정치인들도 무시는 할 수 없을거구요. 앞으로 전국적인 투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에는 중요한 안건을 3개 정도 뽑아서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부동산 문제라던가. 세금 문제라던가. 일제 청산 문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었다. 각자 어디에 표를 던질지는 달랐지만 대통령이라는 대리인을 내세우는게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안건에 의견을 정면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이 축제 같은 열기는 밤이 되어도 식지 않았다. 투표가 끝나면 개표 방송이 진행되었다. 모두가 텔레비전 앞에 모여서 개표 방송을 보았다.
국민들의 머리 속에는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지는 이미 없었다. 개표 방송도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포르노 전면 합법화.
그것에 대한 찬성과 반대.
양측의 투표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한국의 국민들의 포르노 전면 합법화에 표를 던졌다. 그리고 모두들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거대한 변화의 시작일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