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 - 1화 (1/12)

  0. 단군이세요?=)

선로 위보다 철도 박물관에 전시되는 게 어울릴 듯한 1호선 열차 안. 에어컨의 미지근한 냉기와 시큼한 사람들의 체취, 시트에서 올라오는 케케묵은 먼지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러 왔다.

객실 전등이 깜빡거리고 열차의 속도가 느려지더니, 곧 노량진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열차의 문이 열리자마자 습한 비린내와 지친 얼굴들이 동시에 밀려들어 왔다. 그 사이를 비집고 밖으로 빠져나온 선웅은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개찰구에 도착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선웅은 난간 너머의 두툼한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있는 남학생을 발견하고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중고 직거래 애플리케이션 ‘단군마켓’의 이용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 봤음 직한 그 대사를.

“단군이세요?”

“네.”

상대를 확인한 선웅이 오늘의 거래 물품인 아이패드를 가방에서 꺼낼 때였다. 가방 안에서 굴러다니던 학생증이 개찰구 밖으로 떨어졌다. 선웅의 학생증을 대신 주워 든 뿔테의 얼굴에 어딘가 뚱한 빛이 스쳐 갔다.

뿔테는 선웅의 학생증으로 아이패드의 베젤을 콕콕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 흠집이 있네요?”

“네? 그럴 리가…….”

뿔테의 뭉툭한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은 매끈하기만 했다. 조금씩 돈을 모아서 산 아이패드는 배터리가 조금 빨리 닳는다는 것 말고는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선웅이 워낙 애지중지 관리해 온 탓이다.

선웅이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흠집이 뿔테에게는 잘 보이는 모양이었다.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선웅에게 뿔테가 본심을 뱉었다.

“만 원만 더 깎아 주세요.”

“네?”

어쩐지 보이지도 않는 걸로 트집을 잡는다 했더니, 상대방의 목적은 결국 ‘네고’였던 것이다. 선웅의 입매가 일자로 다물리자, 뿔테는 얼른 작전을 바꿨다.

“학생증 보니까 한국대생이신 것 같은데……. 저 한국대 가고 싶어서 삼수 중이거든요.”

“……예?”

군사 분계선을 두고 대치하는 판문점의 남북 군인도 아니건만, 두 사람은 난간을 사이에 두고 가격 협상을 시작했다.

기실 협상이라기보다 거의 뿔테의 신세 한탄 및 입시 상담에 가까웠지만.

듣다 듣다 지친 선웅이 결국 거래 금액보다 2만 원을 더 깎아 주고 나서야, 뿔테는 축축한 지폐를 쥐여 주고 신나게 역을 빠져나갔다.

영혼을 탈곡기에 넣고 돌린 것처럼 진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선웅이 털레털레 계단을 내려갈 때였다.

단군!

단군마켓 어플의 발랄한 알림음이 울렸다. 선웅은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썬더볼트님이 거래를 요청합니다.]

「썬더볼트: 기타 팔렸나요?」

어제 올린 판매 글에 대한 문의였다.

「여서눙: 아니요」

상대는 메시지를 바로 확인했다. 대화창 위로 ‘…’ 아이콘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설마 깎아 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조금 전 뿔테와의 협상에서 패배한 선웅은 괜히 불안해졌다.

「썬더볼트: 인증샷이 더 필요한데요.」

도착한 메시지는 생각보다 평범했다. 깎아 달란 소리가 아니어서 일단은 다행이었다. 평화로운 단군마켓치고 평범한 요구였다.

「여서눙: 제가 지금 밖이라서, 이따가 집에 가서 찍어서 보낼게요.」

선웅이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벼락같은 속도로 답장이 도착했다.

「썬더볼트: 지금 어딘데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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