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1/72)

10.

솔 제국의 동태가 수상했다.

야쿠치는 탁상 위에 놓인 지도를 보며 조금 전 들은 보고를 되뇌었다.

“황실 기사단과 중앙군을 따로 모아 훈련을 보낸다니. 이유 없이 일정에 없던 훈련이 추가된다고? 변방이나 북방도 아니고, 중앙에서?”

양옆에 있던 수하 중 하나가 얼마 전에 올라왔던 보고를 언급했다.

“이 주 전 황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그것과 관계가 있을까요?”

다른 쪽에 서 있던 수하가 지도의 어느 지점을 손으로 짚었다. 제국 수도에 있는 주신전이었다.

“수도의 주신전과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어쩌면 신전에 경고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신전은 황제에게 유독 호의적으로 굴었는데 인제 와서? 갑자기 왜?”

“저희와 관련이 있을까요?”

“군을 움직이면 나랑 제대로 한판 붙겠다는 말인데……. 제국에 이득이 있나?”

“글쎄요……. 들이는 수고에 비하면…….”

“그래, 우리와 제국은 둘 다 머리 위에 몬스터 산맥을 두고 있지. 양쪽에서 나눠서 감당하는 것도 귀찮은데 그걸 혼자 하겠다고 할 리가 없다. 영토와 자원이 늘어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니까.”

솔 제국은 물론 볼그람 또한 굳이 영토를 늘리고자 한다면 탐나는 곳은 미온 왕국이지 서로가 아니었다. 그런 이해관계 덕분인지 볼그람과 미온 왕국은 최근 사이가 험악해도 솔 제국은 아니었다. 서로 이웃하는 주제에 이상하게 사이가 좋았다. 어쩌면 둘 다 바다 너머 동쪽 제국을 같이 견제하는 동지라 그런 건지도 모른다.

“미온 왕국은 아닐 테고, 동쪽 제국인가?”

“하지만 최근 그쪽은 우리 대륙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닙니다.”

야쿠치는 별거 아닌 일을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거슬렸다.

‘이 느낌 전에도……. 그래, 그 녀석을 봤을 때도 그랬지.’

야쿠치는 키릴을 떠올렸다. 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인간을 보는 순간 탐심이 일었다. 동시에 기이할 정도로 야쿠치의 신경을 긁었다. 지금 예정에 없던 제국의 군사 훈련에 자꾸 정신이 쏠리는 것처럼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원래 창고에 가뒀던 키릴을 야쿠치가 직접 제 침실에 던져두었다.

그 수인 마을에 인간은 그 혼자였다. 일행이 있는 것 같진 않고 무력도 없어 보였다. 마법사가 아닌 것도 확인했다. 그런데 설마 신의 대답을 들은 간택자였을 줄이야. 아니 간택자인 것도 의심스러웠다. 가끔은 인간이 맞는지 싶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키릴 역시 제국인이었다.

‘거슬리는 건 솔 제국 그 자체인가?’

그래서 작은 소식 하나를 이렇게 집요하게 헤집어 보게 되는가.

거기까지 생각한 야쿠치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럴 리가. 고작 거슬린다는 이유로 그러기엔 야쿠치의 감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 녀석도 그 감 하나로 얻은 셈이지.’

얌전한 얼굴로 그렇게 수컷을 환장하게 만들 줄이야. 야쿠치는 입술을 핥으며 키릴의 몸을 떠올렸다.

“계속 살펴봐. 이상한 거 있으면 작은 거라도 보고하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야쿠치는 숙소로 돌아가며 침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키릴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도 생각한 것인데 그는 키릴이 인간인지 의심스러운 때가 있었다. 처음 수하를 시켜 키릴에게 관장약을 먹였을 때, 키릴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평소보다 자주 갔지만 소변만 누고 나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게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보라 했더니 평소에도 거의 대소변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소변만 하루에 한두 번 보고 끝이란 말에, 인간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심했다. 그놈이 혹시 요정이었던가. 아니, 그럴 리가.

자기 몸의 신진대사마저 조절하는 마스터 급의 무인이나 마법사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다. 그리고 곧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키릴의 몸에선 정말로 신성력 외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신성력을 가진 다른 유사 인간종인가도 싶었지만, 그런 종족은 몇 없었기에 그것도 제외.

결론은 그저 특이한 인간이라는 것이 다였다. 어쩌면 키릴이 가진 신성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강한 신성력을 가질수록 육신은 늘 최상의 상태를 유지했다. 노화와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물론 어떤 이는 순수 인간 주제에 거의 용족만큼이나 오래 살기도 했다. 그러니 키릴도 그런 비슷한 경우라 보면 되겠지.

어찌 되었건, 재밌는 것을 주웠다.

오늘은 키릴과 무엇을 하며 놀지를 생각하며 숙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으로 한 발 들어서기 무섭게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코끝에 비릿한 냄새가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정액 냄새였다. 나오기 전 분명 수하에게 침실 정리를 맡겼으니 이런 냄새가 나는 건 이상했다.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날 선 눈으로 천천히 응접실을 둘러보던 야쿠치의 귀에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야쿠치가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실이 있는 곳이었다.

빠르게 다가가 벌컥 방문을 열었다.

야쿠치의 침대 위에서 두 놈이 달라붙어 헉헉거리고 있었다. 침실 시중을 맡겼던 빨간 머리의 수하 놈이 지금 흘레질하는 짐승처럼 허리를 들썩거리며 좆질을 해댔다. 그 아래 짓눌린 키릴은 엉덩이만 들어 올린 채로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이 온 것도 모르고 허리를 흔들던 놈이 갑자기 몸을 굳혔다. 부룩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사정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오기 전 얼마나 싸댔는지 키릴의 하반신은 물론 사방이 희끄무레한 점액이 튀어 엉망이었다.

자신의 허락도 없이 붙어먹은 둘을 쳐다보는 야쿠치의 눈빛이 흉흉했다. 그가 으르렁대는 듯 이를 드러냈다.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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