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5/72)

7. 일리야(3)

14.

꿈에 선황이 나왔다. 그는 집무실에 앉아 있었고, 자신을 보고 웃는 모습이 정정한 것으로 봐선 쓰러지기 전인 듯했다. 아직 그가 제위에 있을 때였다.

키릴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성기 끄트머리에 유두 흡착기가 맹렬하게 작동했다. 키릴은 두 뺨이 흠뻑 젖을 정도로 엉엉 울면서 바닥을 기었다. 지독한 쾌감에 이성이 나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선황, 아니 황제가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키릴을 보며 웃었다.

흡착기 밑으로 질질 새는 정액을 받아 마시며 웃던 황제의 모습이 이어지고, 다음 장면에선 태의가 키릴의 가슴에 달라붙어 가슴을 빨고 있었다. 흰 물이 그의 입에서 넘쳐 턱을 타고 흘렀다. 다른 쪽 유두를 손가락으로 희롱하다 가슴살을 소 젖을 짜듯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가슴에서 나온 탁한 액이 강하게 쏘아져 나와 사방으로 튀었다.

흰 물을 뒤집어쓴 태의가 정신 나간 듯 웃으며 키릴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쑤셨다. 키릴은 울면서 빌었다. 그만두라고 한 건 아니었다. 제발 이 열이 식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황제에게 애원했다. 정액을 핥던 황제가 태의의 손가락을 물고 있는 구멍에 억지로 제 성기를 쑤셔 넣었다. 태의는 손을 빼는 대신 손가락을 더 찔러넣었다. 키릴의 얼굴에 옅은 만족감이 차올랐다.

향로에서 퍼진 흰 연기가 방안을 뿌옇게 채웠다.

키릴은 임신 중이었다. 배가 제법 부풀었고, 유두에선 쉬지 않고 젖이 흐르고 있었다. 장래 태자가 될 아이를 밴 채로 두 사람에게 천박하게 희롱당했다. 계속된 비일상에 정신적으로는 지칠 대로 지쳐 말이 아닌 상태였으면서도 몸뚱이는 매번 두 사람의 난폭한 손길에 환희에 떨었다.

발정제를 먹었을 때보다 더한 꼴을 보였다. 하지만 바닥을 기고 애원하며 빌었어도 그것이 비참하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음욕에 미쳐 황제와 벌인 추잡한 행위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다만, 왜 다시 이런 꼴이 된 건지 모르겠다. 두 사람은 이미 죽지 않았던가?

이상하다는 것을 의식한 순간, 낯 뜨거운 장면이 멀어졌다.

키릴은 괴롭게 신음하다 번쩍 눈을 떴다.

다행히 꿈이었다. 혹시나 이상한 소리를 내뱉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수행실엔 그 혼자였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자 사정했는지 앞이 축축했다.

“그런 꿈이 몽정이라니. 취향 한번 고약해라.”

키릴은 회의적으로 꿈속의 자신을 떠올렸다. 허구가 아닌 과거 기억을 바탕으로 한 꿈이었다. 성욕에 못 이겨 허덕이던 자신이 불쌍하기도 하고, 제 아이를 가진 상대를 가지고 놀듯이 희롱하다 아슬아슬한 상태가 되고 나서야 욕구를 채워 주던 선황을 다시 보니 답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저렇게 만든 제 안의 인공 자궁이란 존재가 거북했다. 이것이 있는 한 언제 또 임신하게 될지 모른다.

처음엔 약효가 강한 약을 먹어도 안을 여는 것이 힘들었는데 이젠 아주 약간의 미약만으로 쉽게 열렸다. 그만큼 흥분하기 쉬운 몸이 되었다는 뜻이란 걸 알기에 입안이 썼다. 그때도 지금도 쉽게 느끼고, 깊이 쑤셔 주기만 해도 자지러졌다. 익숙해질수록 더 몸이 천박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중엔 약을 먹지 않아도 임신할지도 모른다. 키릴은 언젠가는 오게 될 그 날이 두려웠다.

키릴은 일리야를 떠올렸다. 일리야가 옆방으로 옮겨온 후 매번 잠들 때마다 가까이에 있을 그를 의식했다. 선황을 죽인 일리야가 가까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키릴이 옆방을 의식하고 있어서일까. 그 이후부터 종종 이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앞으로 일리야와 또 그런 일을 하게 된다면……. 키릴은 도중 생각을 멈췄다.

‘어차피 이제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어.’

키릴이 별안간 헛웃음을 터뜨렸다. 수행실에서 이런 꿈이나 꾸고 성기사와 붙어먹을 생각이나 하는 자신이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다.

키릴은 주신께 장소에 맞지 않은 추태를 보인 것을 사죄하며 다시 신성을 퍼트려 성수를 만드는 일이 집중했다.

*

전담 기사가 되었지만 일리야가 항상 키릴의 곁에 있는 건 아니었다. 일리야는 아직 중급 기사라 훈련을 빠질 수 없었고, 직급에 맞는 의무도 이행해야 했다.

키릴이 성수를 만들고 고해를 귀담아들으며, 옛 시대의 성유물을 연구하며 신전의 보호 아래 있는 외부 기관을 챙기는 것처럼. 일리야 역시 성기사로서 마수 토벌이나, 교단의 행사나 각 지방 신전의 요청에 출장을 다녀와야 했다. 물론 전담이 된 이상 지방 출장은 나가지 않겠지만 훈련과 마수 토벌은 예외 없이 참가해야 했다.

키릴은 성수를 만든 후 고해실로 가던 길에 야외 훈련장을 지나게 되었다. 혹시나 해 훈련장 안을 들여다보니 일리야가 안에서 훈련 중이었다. 그는 오늘도 헐벗은 이들 사이에서 홀로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키릴은 문제의 그 날을 제외하고 한 번도 일리야의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일리야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키릴은 수행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곤 부끄러운 마음에 급히 발길을 재촉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