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6/72)

15.

“오늘 낮에 왜 그냥 가셨어요?”

“응?”

해가 질 때쯤 일리야가 키릴의 곁으로 돌아왔다. 읽던 책을 덮으며 일리야를 맞던 키릴이 우뚝 멈춰 섰다.

“저 보시는 줄 알고 불러 주실까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훈련 중인 그를 훔쳐본 것을 들킨 것 같아 키릴은 부끄러움에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딱히 용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방해할까 봐.”

키릴은 어설프게 시선을 피하며 의자에 도로 앉았다. 일리야는 더 묻지 않았다. 어깨를 감싸고 있던 케이프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 두고 저를 보지 않는 키릴을 찬찬히 살폈다. 긴 속눈썹에 음영 진 눈가의 색이 평소보다 짙었다.

“잠은 잘 주무시고 계신 겁니까?”

“걱정해 줘서 고맙구나.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잘 자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는 키릴의 목이 깨끗했다. 일리야는 희기만 한 목덜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눈을 내리깔았다.

“서 있지 말고 앉아. 다리 아프잖아.”

일리야가 테이블 옆 벽에 기대서자 키릴이 제 옆의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호위 중인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온종일 서 있어도 괜찮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같이 있는 것 자체가 호위지. 여기 신전 안이고 내 숙소야.”

키릴에겐 이곳이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딱히 호위는 필요 없었다.

그렇다고 일리야를 내보내고 싶진 않았다. 애초에 일리야를 전담 기사로 받아들인 건 호위가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추기경이 전담 기사를 권한 이유 역시 단순히 호위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키릴이 우울해하다가도 일리야와 마주칠 때면 안색이 밝아진다는 이야기를 수행 사제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추기경은 단지 키릴과 오랫동안 교류해 온 선황의 부고에 그가 걱정되어 그랬을 것이다. 과한 염려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꼭 기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수행실에서 꾼 꿈을 생각하며 키릴은 몸을 숨기듯 가운을 끌어당겼다.

“저녁이 되니 날이 서늘하네요. 담요라도 가져다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추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손을 내젓던 키릴이 힐끔 일리야의 표정을 살피다 멈칫했다. 일리야가 제 입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입가에 뭐가 묻었나 싶어 더듬어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일리야가 말없이 쓴웃음만 짓자 키릴이 시선을 피하던 것도 잊고 되물었다.

“왜 그래?”

재차 묻자 일리야가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 후,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머릿속에서 자꾸 되새겨져서.”

일리야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뒤늦게 저를 멍하니 보던 일리야 눈빛을 다시 떠올린 키릴이 어색하게 시선을 내렸다. 아무래도 그는 키릴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성적으로.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일리야와 정사를 치른 이후 키릴은 예전과 같은 눈으로 그를 볼 수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그가 소년일 적부터 보아왔으면서도 그랬다.

그날 이후 일리야를 볼 때면 가슴이 술렁거리고 마음이 심란했다.

그건 죄책감 때문일 때도 있고, 기억 속 소년에 대한 애틋함이었을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 키릴이 그를 성애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 가장 컸다.

특히나 오늘은 몽정과 같은 꿈을 꾼 탓인지 응접실에 들어선 일리야를 보자마자 몸이 반응했다. 가만히 있는데도 안이 쑤시고 물이 고이는 듯한 야릇한 느낌에 속으로 많이 당황했다. 유륜 주변이 간질거리는 것이 튜닉 위로도 유두가 도드라져 있을 게 뻔해서 가운으로 가리기 급급했다.

낯 뜨거운 추태를 밝힐 수 없어 눈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제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일리야를 보자 우습게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

키릴은 긴장을 풀고 일리야의 손을 잡고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바로 옆의 소파에 앉으려다 멈칫했다.

“일리야, 손 좀 보여 주렴.”

“제 손을 말입니까?”

일리야가 양손을 번갈아 보며 의문을 표하자 키릴이 직접 한쪽 손을 잡아당겼다.

“여긴 왜 이런 거지?”

키릴이 엄지와 검지 사이에 생긴 상흔을 가리키며 물었다.

원래도 고생한 흔적이 묻어나던 손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무언가에 찢긴 듯한 상처는 없었다.

“어제까진 못 보던 건데.”

키릴이 묻자 일리야가 난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깐 망설이던 그가 부끄럽다는 듯 고백했다.

“검을 닦다가 실수로…….”

자신을 보고도 그냥 가버린 키릴을 떠올리며 별생각을 다 하다 손질하던 검에 베였다. 바보 같은 실수였다. 그래서 실수한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다행히 키릴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하얀빛에 감싸인 제 손을 내려다보던 일리야가 말했다.

“이렇게 치료해 주시니 처음 뵈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처음. 키릴이 기억을 더듬다 물었다.

“신전에서 본 게 처음이 아니라고 했었지?”

“네.”

“전에 내가 도와주었다고 했잖아. 정확히 어떻게 도와준 건지 물어도 될까?”

키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리야는 잠시 말없이 키릴의 얼굴만 들여다보다 낮은 목소리로 오래전 일을 털어놓았다.

“제국에 전염병이 유행했을 때 키릴 님께서 직접 오셔서 사람들을 치료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전염병…….”

키릴은 빛바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아주 오래전, 키릴이 어린 사제였을 적 그런 일을 했던 것도 같았다.

일리야는 아직도 제 손을 붙잡고 있는 키릴의 흰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돌아가신 건 아니고…….”

거스를 수 없는 존재에게 납치당했다.

한번 빼앗긴 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는 친애하는 가족을 잃었다.

부친은 처음부터 없었다. 자신이 귀족의 사생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소문을 통해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를 데려간 것은 부친이 아니다. 납치범은 애초에 인간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은 채 사라졌다.

굶주리고 있던 아이를 불쌍히 여긴 이웃 누나가 아이를 자신이 일하는 가게로 데려갔다. 일리야는 그때부터 환락가의 가게에서 하인으로 일했다. 글을 읽고 쓰고 셈을 할 줄 알기에 장부 기록을 돕기도 했다.

힘들어도 견딜 만했다. 일리야를 데려온 아가씨는 누나라고 부르라 하면서도 일리야를 자식처럼 대했다. 가게에 일하던 다른 이들은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기에 그런다고 수군거렸다. 이유가 뭐든 좋았다. 가게의 누나는 일리야에게 부족한 육친의 정을 대신 채워 주었다.

그런데 누나이자, 두 번째 어머니나 마찬가지였던 사람이 병에 걸렸다.

전염병이었다.

어여쁘던 얼굴에 검은 돌기가 생기고 관절이 망가졌다.

누나는 바로 가게에서 쫓겨났고 평소 그녀가 가까이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리야 역시 가게에서 해고되었다. 일리야는 그 후 단칸방에서 누나를 돌보며 지냈다. 약을 구해보려 했지만 구하지 못했다.

아무도 그녀를 돌봐 주지 않았다. 가게를 오가던 의원 역시 치료를 거부하고 전염병이 생긴 곳이라며 뒷골목을 떠나기 바빴다.

얼마 못 가 누나가 죽었다. 일리야는 또다시 혼자 남았고 병까지 얻었다.

숨 쉬는 것마저 버거워 죽을 날만 기다렸다. 아쉬운 것이라면 몸이 아프고 돈이 없어 누나의 장례조차 치러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염병으로 죽은 자 중 대부분은 화장도 못 하고 창고에 버려졌다. 일리야는 그게 가장 서러웠다. 무력감과 비참함에 울던 아이는 모두를 원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전에서 사람이 왔다. 신전의 사제와 성기사, 의원과 제국 기사가 빈민가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거리를 정화하고 집마다 환자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골목을 돌다 돌아간 후 다음 날이면 다시 나타나 환자를 치료했다. 일리야도 그 환자 중 한 명이었다.

신전에서 나온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사제였다. 파란 눈과 붉은 기가 도는 입술을 제외하고 전신이 새하얀 사제였다. 그는 일리야를 치료하고 깨끗이 정화하더니 어디에서 죽까지 받아와 손수 먹여 주었다. 사제는 특히 일리야를 자주 챙겼다.

어린아이가 홀로 죽어가던 것이 퍽 불쌍해 보였나 보다. 일리야는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마음이 비틀렸다. 사제가 좀 더 빨리 왔다면 누나가 살 수도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만약이란 가정이 소년을 괴롭게 했다.

하지만 그런 원망도 오래가지 않았다.

일리야는 하얀 사제의 일행이 뒤에서 사제를 헐뜯는 것을 들었다.

세금도 내지 않고 더러운 병만 옮기고 다니는 짐승 같은 것들에게 쓸데없는 친절을 베푼다고 했다. 그 친절마저 가식적이라고 했다.

이상만 넘치는 어린 풋내기가 부리는 멋모르는 고집에 귀한 인력을 낭비하고, 그들을 고생시킨다며 비난했다.

빈민굴의 치료는 나라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다. 신전에서 귀한 사제를 위험한 뒷골목에 직접 보낼 리 없었다. 잘해야 식량과 약재를 베푸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라에서도 의원을 보내지 않았다.

당시 황제는 민생에 큰 관심이 없었다. 치료 약이 곧 시중에 퍼지면 적어도 양지에 있는 이들은 큰 피해 없이 수습될 것이었다.

그래서 빈민굴과 같은 뒷골목은 치료가 아닌 통제를 하려 했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가둬 그 안에서 모두 끝나기를. 잔인한 처사였지만 반대는 많지 않았다.

신전마저 침묵하는 가운데 다음 대 대신관은 물론 추기경 후보로 거론되던 사제가 갑자기 순례를 청했다. 따로 사제를 불러들여 목적지를 들은 추기경이 성기사 몇을 붙인 후에야 한숨을 쉬며 사제를 보내주었다. 그 일행에 제국에서 보낸 기사와 의원이 추가된 것은 덤이었다.

소년은 덤으로 따라온 의원들이 하는 말들을 듣고 그제야 그들이 이곳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늘 마을 사람들이 제 것을 훔치지 않을까, 제 몸에 멋대로 닿지는 않을까 경계했다.

하지만 그 경계심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사제는 늘 목깃이 길고 손등을 덮는 긴 옷에 장갑까지 갖춰 낀 모습이었는데,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가린 모습에 오히려 음심이 돋는다고 겁 없이 떠드는 자들이 있었다.

사제가 수줍게 웃으면 뒤에서 저런 애가 가게에 들어오면 하루도 못 참고 매일 들락거릴 거라며 입맛을 다시는 자도 있었다.

그 불충한 시선을 느낀 성기사들은 사제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차마 사실을 고하진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고 사제를 연신 재촉했다.

하지만 사제는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 그 자신의 의지로 더럽고 세금 하나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이들의 곁에 머물렀다.

신조차 평등하지 아니한데, 사제는 빈민가의 병자들도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대하고자 노력했다.

소년은 사제가 어쩌면 정말 물정을 몰라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신전에서 곱게 자라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야비하고 파렴치한지 아마 머릿속에선 상상도 못 할 테니.

그래도 참으로 맑고 어여뻤다.

일리야는 원망과 분노가 걷힌 눈으로 사제를 눈에 담았다.

후광처럼 하얀빛을 뿌리는 은발에, 입고 있는 사제복만큼이나 더러움 한 점 없이 새하얀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소년은 사제를 따라다녔다. 사제는 그런 소년을 거부하지 않고 제 옆에 두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마친 뒤에도 홀로 누나의 장례식을 치르고자 하는 일리야를 도와주었다.

창고에서 누나의 시신을 꺼내오며 아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잔뜩 부패하여 알아보지도 못할 거란 예상과 달리 시신이 이미 깨끗하게 수시까지 마친 뒤였다. 알고 보니 사제가 한 일이었다. 사제는 엉엉 우는 아이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다 품에 안고 달래 주었다.

더러운 전염병의 흔적을 단 아이였다. 같은 빈민가의 사람들마저 꺼리는데 사제는 하얀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상관치 않고 아이를 힘껏 안아 주었다. 다정하게 보듬어 안고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를 보며 감탄하던 그 얼굴은 진심이었다.

죽은 이를 화장하고 같이 예배를 올렸다. 무사히 신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기도를 올리고 난 뒤 일리야는 엉엉 울며 사제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사제는 소년을 쳐내긴커녕 전과 같이 품에 꽉 안아 주었다.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또 쓰다듬어 주는 손길은 이전처럼 따스했다.

부드러운 옷의 감촉과 기분 좋은 냄새, 그리고 사제의 숨소리와 온기가 좋았다. 누나도 이렇게 안아 준 적은 없었다. 일리야는 내심 사제가 떠나지 않기를 빌었다. 하지만 그건 이룰 수 없는 소원이었다.

떠나기 전 사제는 혼자 남은 아이를 위해 보육원을 추천해 주기도 했다. 사정이 딱한 아이가 있다면 같이 가라고 일러 주며 몰래 돈을 챙겨 주었다. 일리야는 고개를 끄덕이다 조심스럽게 그 보육원에 사제님도 오시냐고 물었다. 사제는 고개를 저으며 신전 밖으로 나가는 일이 드물다고 답했다.

“그럼…….”

신전에 따라가도 될지 묻고 싶었다.

일리야는 멍하니 사제를 보다 고개를 숙였다. 사제의 뒤에 선 일행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없이 초라한 자신과 달리 번듯하고 온갖 빛으로 번쩍거렸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소년은 자신과 사제 사이에 놓인 아득한 간격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곁에 서고 싶었다. 그 의지 하나만으로 일리야는 결국 보육원이 아닌 신전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지금 그의 전담 성기사가 되었다.

“아…….”

키릴은 일리야의 긴 이야기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전염병에 걸린 아이 중 유독 마음이 쓰이는 아이가 있었다. 부모 형제 없이 홀로 남아 죽어가던 아이였는데, 전염병 환자를 간호하다 병에 걸린 것은 그 아이가 유일했다. 다른 이들을 탓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전염병에 걸리면 설령 가족일지라도 죽도록 버려두는 것이 보통이었으니까.

처음엔 낯선 이를 경계하더니 병마에서 벗어나 운신할 수 있게 되자 곧 경계를 풀었다. 건강해지면 뭘 먼저 하고 싶냐고 물으니 아이는 누나의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고 했다. 키릴은 감탄했다. 어린 몸으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알 텐데도 기죽지 않고 이리 제 의지를 세우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창고에 있던 시신들은 많이 부패한 상태라 단체로 화장하여 그 자리만 정화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누나의 장례식을 치르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는 걸 안 키릴은 마을 사람의 도움을 받아 누나의 시신만 따로 정화하여 보관했다.

키릴은 아이를 돕고 싶었다. 그래서 할 일을 모두 마친 뒤에도 좀 더 머물렀다.

그 뒤로 연이 없어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인상 깊은 아이였다. 허름한 행색에도 참 곱게 생긴 아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키릴이 멍하니 일리야를 보았다. 빼빼 말랐던 어린 몸이 저렇게 커졌다고 생각하니 놀랍고 기꺼웠다. 키릴이 충동을 참지 못하고 일리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쩌면…….’

오래전 제게 차가운 잔을 내밀던 소년이 유독 눈에 들어왔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날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이를 알아보진 못했어도 기억 한편엔 분명 아이에 대한 것이 남아 있어 일리야를 알아보았던 건지도 모른다.

제가 살린 아이가 다시 키릴을 살렸다. 몇 번이고, 그 존재만으로 그리했다. 감동과도 같은 충만감이 가슴에 가득 차올랐다.

“꼭 그때와 같네요.”

얌전히 머리를 내어준 일리야가 손길을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을 올려 키릴의 손에 깍지를 끼었다. 흠칫한 키릴이 쓰다듬던 손을 멈추자 그대로 잡아내려 손등을 입을 맞췄다. 쪽 하고 입술이 떨어지기 무섭게 키릴이 손을 거뒀다.

아쉬워하며 고개를 들던 일리야는 키릴의 얼굴에 가득한 홍조를 보고 슬쩍 시선을 내렸다. 튜닉 위로 유독 도드라진 부분이 보였다. 일리야의 시선을 눈치챈 키릴이 급히 가운을 여미고 단추를 채웠다. 일리야가 쓰게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키릴 님, 다시 나가시려는 게 아니면 단추를 채울 게 아니라 가운을 벗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하아.”

키릴이 차마 말을 못 하고 한숨만 쉬자 일리야가 가운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키릴은 기분이 이상하여 몸을 움츠렸다.

“부끄러워…….”

“부끄러우실 게 뭐가 있습니까. 제게 숨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은 물론이고 당신의 기분이나 몸 상태 모두. 가감 없이 말씀해 주세요.”

“…….”

“키릴 님께서 뭘 하시든 당신은 제 은인이고, 제 모든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시면 전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위해만 가지 않는다면 뭐든.”

“……알아. 넌 이미 그리해 주고 있어.”

과분할 정도였다.

욕실에서 부끄러운 꼴을 봤으면서도 경멸은커녕 키릴의 치부를 숨겨 주었고 약에 취해서 했던 민망한 요구까지 기꺼이 받아 주었다. 성기사가 제 육신의 성결마저 버리며 그리했다.

키릴이 그날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 사이, 일리야가 자리에서 일어나 키릴에게 다가갔다. 소파에 앉아 있는 키릴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무릎을 바닥에 대었다. 허벅지를 세워 반쯤 앉은 자세로 키릴의 눈높이 조금 아래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키릴이 놀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키릴 님.”

일리야는 기도했다.

“그러니 당신의 곁, 가장 가까운 자리를 저에게 주세요. 바로 곁에서 당신을 모실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런 식으로 고백하는 자신의 약삭빠름을 키릴이 눈치채지 못하길 바랐다.

“넌 이미 내 전담 기사야.”

“당신의 평생을. 영원히. 그래도 되겠습니까?”

영원이란 말이 주는 압박감 때문인지 키릴이 대답을 망설였다. 일리야는 가만히 기다렸다.

키릴이 두 손을 움찔거리며 입술을 달싹이다 일리야를 쳐다보았다. 모친과 두 번째 가족마저 잃고 오직 키릴만 보고 이곳까지 온 소년이 그곳에 있었다.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외면하기도 싫었다.

키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일리야가 기뻐하며 키릴을 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가슴과 배에 연신 입술과 얼굴을 비볐다. 들뜬 숨소리가 유두를 자극했다. 키릴은 가슴이 간지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일리야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때도 이렇게 키릴 님께 안겼었죠. 이젠 제가 안아드릴 수 있습니다.”

일리야가 일어나 그 옆에 앉으며 키릴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늘 이러고 싶었어요.”

그 말에 키릴은 일리야의 품에 가만히 얼굴을 묻었다.

그 작던 소년이 키릴을 안고도 남을 만큼 너른 품으로 성장한 것이 새삼 기뻤다.

키릴이 일리야의 목에 팔을 두르고 머리와 어깨를 쓰다듬었다. 손바닥에 만져지는 단단한 근육마저 흡족했다.

키릴을 안은 일리야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서로의 가슴팍이 밀착하고 두 사람의 몸이 단단히 겹쳤다. 따뜻한 체온에 감싸이자 가슴 한구석이 녹아드는 것 같았다. 전신이 따뜻하게 젖어 들었다. 이대로 떨어지기 싫어 서로를 안은 채로 소파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키릴은 일리야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나른한 숨을 뿌렸다. 머리부터 등까지 쓸어내리자 손안의 근육이 바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이유 없이 호흡이 가빠졌다.

질식할 만큼 서로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서로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다급하게 몸을 끌어안고 입술을 깊이 겹쳤다. 서로의 호흡을 허겁지겁 탐하며 더 달라붙지 못해 안달했다. 어떻게든 사제와 더 깊이 맞물리고자 하는 성기사의 탐욕스러운 갈구는 절박하기까지 했다.

“흡…… 으으응…… 하아, 흐웁…… 츕…….”

부드러운 입술을 정신없이 빨고 핥던 일리야가 질척하게 혀를 얽으며 키릴의 옷을 파헤쳤다. 급하게 옷을 벗기다가도 참지 못하고 옷 위로 몸을 만졌다. 허리와 등을 쓸어 만지던 커다란 손이 기어이 유두를 찾아 짓뭉갰다. 내내 그를 유혹하던 부푼 살덩이를 엄지로 뭉개고 이리저리 굴리다 천 위로 비비고 긁어 댔다. 키릴이 잔뜩 흥분해서 숨을 허덕였다. 일리야는 더욱 입을 깊이 맞추며 키릴의 숨결을 죄다 훔쳐냈다.

“흑, 읍……! 학, 하아, 츕, 우응…….”

키릴이 막힌 입으로 신음하며 일리야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일리야는 두 눈을 뜨고 그와 입 맞추는 키릴을 눈에 담았다. 그의 사제는 눈을 꼭 감고 정신없이 키스에 몰두하고 있었다. 잔뜩 붉어진 얼굴과 침을 흘리며 헐떡이는 모습이 제 옷이 벗겨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후읍…… 츕, 하아, 하, 으응…….”

가운을 벌리고 튜닉과 셔츠마저 풀어 헤쳤다. 키릴이 흘린 타액을 핥으며 한쪽 팔로 키릴의 허리를 들어 바지마저 벗겨냈다. 키릴은 그제야 제가 양팔만 남기고 벌거벗겨졌다는 걸 알았다. 그는 일리야를 잠시 밀어낸 뒤 스스로 걸치고만 있던 옷가지를 벗었다. 바닥에 떨어진 사제복을 본 일리야가 해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대로 키릴을 끌어안고 유두를 덥석 물었다.

“흐읏!”

“더 커졌어요, 키릴 님.”

옷 위로 만져 준 덕인지 살덩이가 더욱 커져 있었다. 말캉하고 반질거리는 살덩이를 쪽쪽 빨아 주자 그것만으로 키릴이 흐느끼며 몸을 들썩거렸다.

입을 떼고 침에 젖어 번들거리는 유실을 집요하게 살폈다.

“그때보단, 하아, 색이 연한 것 같은데. 기분 좋게 해드리면, 붉어질까요?”

“흐, 더, 으응, 더, 아! 으으응…… 아, 아!”

젖구멍을 혀로 쑤시며 이로 잘근잘근 깨물자 키릴이 펄떡이며 일리야의 머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일리야의 얼굴에 제 가슴을 비벼 대는 것이 더 예뻐해 달라고 조르는 것 같았다. 기꺼이 그리해드릴 생각이었다.

“으흣! 흐, 으응, 조……아…… 흣! 으응!”

쾌락에 흠뻑 젖은 신음이 달콤했다. 억누르지 말고 더 들려주었으면 했다. 일리야는 키릴의 가슴은 물론 목과 겨드랑이까지 닿는 곳이라면 모두 핥고 빨고 깨물었다. 엉덩이와 가슴을 쓸어모아 주물럭거리기도 했다. 굳은살 박인 투박한 손바닥이 키릴의 전신을 우악스럽게 탐했다. 다급하게 매만지며 감촉을 만끽하다 못해 살갗이 붉어질 때까지 함부로 비비고 손안에 움켜쥐었다.

“학, 하악, 으…… 으으응, 아, 흐읏……!”

그 거친 손길에 키릴은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이며 흐느꼈다.

“키릴 님, 전신이 발긋, 읏, 한데 제 손, 기분 좋, 으세요?”

일리야 역시 흥분으로 거칠어진 숨이 멋대로 튀었다.

“아, 윽, 하아, 흣……!”

“하아, 좋으셨던 거 같네요.”

키릴의 다리 사이로 완전히 발기한 성기가 보였다. 선액을 흘렸는지 성기는 물론 고환까지 축축하게 젖었다. 일리야의 눈빛이 더욱 짙어졌다.

키릴의 엉덩이를 터뜨릴 듯이 움켜쥐고 하반신을 겹쳐 비볐다.

“더 좋게, 해드릴게요. 흣.”

“흣, 아, 아! 으응, 응! 아, 흐으……읏!”

제복 바지가 젖었지만 상관치 않았다. 두 사람은 아래를 비벼대며 정신없이 상대의 몸을 더듬었다. 입술이 질척하게 맞물렸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하아, 하, 아……. 흐으, 배 안이, 하아, 간지러…….”

“제가, 안에 들어가서, 긁어드릴까요?”

“흐으읏, 아, 흣……!”

튕겨 오르는 몸을 누르고 귓가를 핥으며 대답을 재촉했다. 헐떡이던 키릴이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복을 풀어 헤치는 일리야의 손길이 거칠었다.

처음 키릴을 안은 이후 얼마나 참았던가.

마치 머릿속에 그날의 기억이 각인된 것처럼 키릴을 볼 때마다 그와의 정사가 떠올렸다. 키릴의 안에 제 것을 묻고 그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한 몸처럼 녹아들던 그 황홀했던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막 성에 눈을 뜬 사춘기 소년처럼, 아니, 막 발정기에 돌입한 짐승처럼 키릴을 눈으로 탐했다. 달싹거리는 색이 진한 입술, 흰 뺨, 길고 곧은 목덜미, 발긋한 귀 끝. 옷 속에 감춰진 하얗고 부드러운 몸을 머릿속에 그리며 그 몸에 제 흔적을 남긴 채 제 밑에서 제 것을 삼키고 환희하는 키릴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망상이 아닌 현실에서 키릴을 끌어안는 순간, 상상 이상으로 폭력적인 충동이 끓어올랐다.

그는 당장 안에 제 것을 처박고 싶은 것을 참고 키릴의 아래를 살폈다. 약을 먹지 않은 키릴이 아프지 않도록 안쪽을 충분히 적실 생각이었다. 조심스레 주름을 더듬는데 이미 흥건하게 젖은 구멍이 뻐금거리며 음액을 질금질금 흘리는 것을 보고는 굳었다.

애무라곤 몸을 만지고 키스를 나눈 것뿐이었다. 약을 먹지 않아도 이리 젖어 있을 줄 몰랐다.

“아, 아흐, 응, 으응……! 아……!”

손가락을 집어넣자 허리가 바들거렸다. 푹 젖은 내벽이 손가락을 부드럽게 삼켰다. 안에 물이 가득 고여 점막을 헤집을 때마다 벌써 질꺽질꺽 소리가 났다. 음란한 구멍이 손가락을 잡아먹듯이 압박하며 안쪽으로 빨아들였다. 어느새 마지막 마디까지 모조리 삼켜진 뒤였다. 키릴이 신음하며 골반을 약하게 흔들었다. 마치 어서 쑤셔 달라 재촉하는 것 같았다.

일리야가 손가락을 구부려 안을 휘저으며 속살을 짓눌렀다. 지난번의 정사 때 키릴의 반응을 떠올렸다. 어딜 찔러도 쾌감의 극점인 양 물을 토하는 구멍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강하게 반응하는 곳이 있었다. 내벽 가장 깊은 곳에 살짝 부푼 자궁 입구가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였고 두 번째가 중간쯤에 있는 전립선이었다.

안을 더듬던 일리야가 전립선을 꾹 눌렀다.

“하악! 힉, 흐핫……!”

순식간에 허공에 정액이 튀었다.

일리야가 손가락으로 안을 푹푹 쑤시자 키릴의 성기에서 연이어 정액이 튀었다. 소파에 하얀 얼룩이 곳곳에 생겼다.

그저 손가락을 넣고 조금 안을 문질렀을 뿐인데…….

한번 몸을 겹쳤기에 키릴이 얼마나 민감한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약 기운 탓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키릴의 몸은 상상 이상으로 야했다.

“좋으셨어요?”

일리야가 정액으로 범벅된 키릴의 배를 빨며 물었다. 게걸스럽게 키릴의 정액을 탐하는 와중에도 눈은 계속 키릴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핥듯이 키릴을 보며 제 입술에 묻은 흰 점액을 혀로 핥아냈다. 어리고 예쁜 얼굴에 퇴폐적인 기운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아…….”

저를 보는 진득한 눈빛에 배 안쪽이 찌르르 떨렸다. 키릴은 남몰래 허벅지를 떨었다. 다리가 저도 모르는 사이 슬쩍 벌어졌다. 키릴은 뒤늦게 제 치태를 알았지만 벌린 다리를 다시 오므리진 않았다. 대신 한쪽 팔을 들어 제 눈을 가렸다.

키릴이 얼굴의 반을 가린 탓에 잔뜩 붉어져 헐떡이는 입술만 보였다. 일리야는 키릴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드러난 하얀 이와 분홍색 혀를 보며 가슴까지 튄 정액을 모조리 핥아 먹었다. 비릿하고 씁쓸한 정액을 음미하듯 입안에서 굴리다 꿀꺽 삼켰다.

“달아. 키릴 님은 모든 게 달아서 중독될 것 같아요.”

“흣……!”

키릴의 성기에 묻은 남은 정액을 쪽쪽 빨자 축 늘어져 있던 성기가 다시 꿈틀거렸다.

일리야는 입술을 떼고 키릴의 엉덩이를 벌렸다. 절정을 맛본 음란한 구멍이 연신 끈적한 물을 뱉으며 벌어졌다 우므러지길 반복했다. 먹음직스럽게 달아오른 발긋한 구멍을 엄지로 비비자 키릴이 허리를 떨었다. 구멍이 손가락을 물고자 가쁘게 발름거렸다.

일리야는 달뜬 눈으로 키릴의 몸을 훑었다.

진한 분홍빛 유두와 발갛게 물든 하얀 나신은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유혹했다. 그런 키릴이 지금 그의 앞에서 스스로 허리를 비비듯이 흔들며 뒷구멍을 벌름거리고 있었다. 음란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일리야는 이를 악물었다. 폭력적일 정도로 난폭한 충동이 치솟았다.

저 몸으로 전 황제에게 안기고 자신에게 안겨 울었다.

일리야는 당장 키릴을 끌어안고 그의 안 가장 깊숙이 파고들어 격렬하게 박아 대고 싶었다.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며 다른 이가 아닌 제가 준 쾌감에 키릴이 울부짖도록, 자신의 사제에게 지극한 쾌락을 퍼붓고 싶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들끓었다.

“일리야…….”

어느새 팔을 내린 키릴이 일리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리야는 뒤늦게 제가 헐떡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연무장을 몇 시간이나 달린 것처럼 거칠게 내뿜는 숨소리가 짐승 같았다. 고조되는 분위기 이상으로 치솟는 흥분에 가슴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일리야는 축축한 엉덩이골에 제 성기를 비비며 선액을 뚝뚝 흘렸다.

“키릴 님, 아직, 간지러우시죠?”

“아, 아……. 흐읏……!”

애액과 선액으로 질척하게 젖은 성기가 예민한 살갗을 긁어 대자 키릴은 까닭 없이 애가 달았다.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살기둥이 구멍을 스칠 때면 은밀한 기대감에 가슴이 술렁거리고 아랫배가 꽉 죄어들었다. 안에서 흘러넘친 물로 아래가 끈적하게 젖어 들었다.

“윽, 흣……. 가, 간지러워……!”

일리야가 키릴의 다리를 잡고 활짝 벌렸다. 엉덩이 사이로 두툼한 귀두가 닿았다. 축축한 살덩이가 안으로 꾹 밀고 들어왔다.

입구가 뻐근할 정도로 열리는 감각에 키릴이 눈을 크게 떴다. 단단한 살덩이가 물렁물렁한 안쪽 살을 사정없이 벌리며 강제로 쑤시고 들어왔다.

“으응…… 응!”

손가락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분명 며칠 전에도 일리야의 것을 뒤로 품었는데 남성기를 삼키는 게 무척 오랜만인 것 같았다. 내벽이 움찔거리며 허겁지겁 귀두를 조여 물었다. 두꺼운 살덩이가 안을 열고 들어오는 느낌만으로 갈 것 같았다.

“아……! 아!”

키릴은 겨우 귀두만 삼킨 상태에서 또다시 사정하려 했다.

“키릴 님, 안이, 떨고 있어요. 아…… 부들거리며 제 것을 너무 조여서, 하아, 싸고 싶으십니까?”

“흐으읏, 안에, 차서, 으응! 참기 힘들…… 아……!”

“벌써 말입니까? 이제, 시작인데. 윽……!”

쫀득한 안이 귀두를 쪼갤 듯이 수축하자 일리야가 탄성을 흘리며 퍽 소리가 날 정도로 허리를 크게 쳐올렸다. 그리고 정신없이 안을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다. 귀두가 좁아 든 내벽을 강제로 찢듯이 벌리며 속살을 득득 긁으며 전진했다.

“아, 안 돼, 으응! 응! 가, 하악! 가아……. 아…… 아!”

삽입만으로 사정감이 치밀던 차에, 안을 거칠게 들쑤셔 대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키릴이 등허리를 크게 휘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거대한 살기둥이 순식간에 뿌리까지 쑤시고 들어온 순간 키릴이 참지 못하고 앞뒤로 싸질렀다.

첫 번째 사정으로 녹진해진 내벽이 두 번째 절정으로 발작하듯 경련했다. 일리야는 지독한 압박감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애써 치밀어 오르는 사정 욕구를 참았다. 꽉 조여든 내벽이 요망하게 제 것을 씹어 대는 감각이 황홀했다. 그는 인내 속에서 그 느낌을 음미하며 돌연 허리를 억세게 튕겨 올렸다.

“아흑!”

두툼한 귀두가 자궁 입구를 비비적대다 갑자기 위로 찔러 올리자 키릴의 몸이 튀어 올랐다. 일리야가 그대로 허리를 흔들었다. 키릴을 옴짝달싹 못 하게 끌어안고 아래로는 흉기 같은 성기를 몇 번이고 쑤셔 넣으며 무른 살을 연이어 찧어 댔다.

“아, 아! 흣! 너, 너무 빨라, 응! 윽! 으으응……!”

허릿짓이 격렬했다. 까슬한 음모가 회음부에 따갑도록 비벼졌다. 얼마나 빠르게 쳐 대는지 짧은 사이에 안이 헐 것 같았다. 무른 살이 짓무를 정도로 박고, 문대고, 짓이기듯 찧어 댔다. 질퍽한 안을 치받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성기로 틀어막힌 구멍이 연신 오물거리며 애액을 찍찍 싸 갈겼다.

키릴이 고개를 마구 흔들며 신음을 내질렀다.

“학, 하, 아, 으응! 안 돼, 거기 그, 흣, 그렇게 하면…… 응, 나 너무, 흐읏, 흥분해서 여, 열릴지……! 아, 아! 안 돼, 아, 더, 으응!”

“키릴 님?”

안 된다고 하면서 키릴은 쏟아지는 쾌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너무 느껴 벅찬 쾌감에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 몸이 도저히 멈추지 않았다. 멈추긴커녕 되레 일리야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결합이 더 깊어지도록 안으로 당겼다.

“후으, 으으응! 너, 너무 좋아! 아, 안 돼. 응, 흑!”

키릴은 제가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것도, 흘러나온 침이 턱을 적시는 것도 몰랐다. 지독하게 안이 들쑤셔지는 감각에 뇌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열락에 빠진 사제의 두 눈에 이지가 사라졌다. 발정 맞은 암캐처럼 숨을 헐떡이며 음탕한 색향을 뿌려댔다. 일리야가 밖으로 삐져나온 키릴의 혀를 빨고 흘러내린 침을 핥아 올리며 물었다.

“여기는, 괜찮을까요?”

너무 좋아서 안 된다는 말에 일리야는 자궁 입구를 쑤셔 올리다 전립선을 비벼 눌렀다. 키릴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흣, 조…… 아, 흑, 아, 아! 더, 아으흣! 으응!”

키릴은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안을 찔러 대는 성기가 너무 좋았다. 두꺼운 귀두가 어딜 찔러 대도 자궁이 열릴 것 같았다.

“열려도 돼. 흐윽, 열릴 거야. 이거 너무! 아! 으응! 기분 좋아서, 학, 열릴 거야. 흐으, 좋아, 일리야, 너무 좋아…… 아!”

키릴의 입에서 나온 좋다는 말에 일리야의 턱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저도, 저도 좋아합니다. 키릴 님, 좋아해요.”

키릴은 단지 기분이 좋다는 말이었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저가 좋다는 키릴의 그 한마디에 일리야는 극도로 흥분했다.

강하게 박아 올리는 힘에 내벽이 자지러지듯 요란하게 꿈틀거렸다. 아까보다 더 뜨거워진 내벽에 일리야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벽 끝을 쾅쾅 내려찍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키릴은 일리야의 품에 갇혀 속절없이 흔들렸다. 도저히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다. 마치 잡아먹히는 것만 같았다.

그 느낌이 이상하게 황홀하여 되레 겁이 났다.

“처, 천천히…….”

키릴의 애원에 잠시 멈칫한 일리야가 이를 악물더니 성기를 빼지 않고 안을 짓뭉갰다. 아아, 키릴의 입에서 쾌락에 젖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거칠게 흔들린 탓에 풀린 다리가 일리야의 허리를 다시 단단히 휘감았다. 키릴이 골반을 돌리며 내벽을 꽉 채운 성기에 축축하게 젖은 제 안을 비볐다.

“조…… 아, 흣, 좋아, 일리야……! 아, 아아!”

일리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퍽퍽 쳐 대고 싶은 것을 참는 듯 키릴의 엉덩이를 터뜨릴 듯이 마구 주무르며 허리를 거칠게 돌렸다. 질퍽하게 푹 젖은 내벽이 물을 뿜으며 허겁지겁 두꺼운 성기에 달라붙었다. 키릴의 신음이 높아졌다. 키릴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들썩이며 허리를 흔들었다. 난잡하게 뒤엉킨 육신의 몸짓이 점점 더 격렬해졌다.

난폭하게 성기를 빼낸 일리야가 뿌리까지 쑤셔 넣고 앞뒤로 잘게 떨듯이 흔들었다. 그러자 흉흉한 살덩이를 따라 내벽은 물론 내장 기관까지 진동하듯 덜덜 떨렸다. 절절한 쾌감에 키릴이 자지러지며 등을 활짝 휘었다.

“흐아……! 아! 흐으응!!”

키릴의 성기에서 후드득 정액이 떨어졌다. 하지만 사정감보다 더 큰 쾌락을 탐하느라 키릴은 제가 사정했는지도 몰랐다. 일리야의 몸에 매달려 정신없이 아래를 조이며 허리를 흔들었다.

“싸 줘, 안에, 흣, 네 걸로 가득! 윽, 채워 줘. 으응!”

일리야의 목덜미를 깨물며 배덕한 청을 반복했다. 일리야의 목에 선 핏줄을 핥고 연신 씨물을 뿌려 달라 속삭였다.

키릴은 언뜻언뜻 제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약을 먹은 것도 아닌데 머릿속이 음욕으로 가득 차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좋아, 더 해 줘, 아, 아! 싸 줘, 흣, 으으응!”

키릴은 기이할 정도로 치밀어 오르는 성욕에 발정 난 짐승처럼 아랫도리를 흔들며 제 안에 들어온 수컷을 부추겼다.

흉흉한 충동을 참지 못한 일리야가 다시 성기를 완전히 빼내었다.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나 키릴을 바로 앉힌 후 다리를 잡아 벌렸다. 일어선 채로 키릴의 골반을 잡아 올린 일리야는 무릎을 굽혀 바로 그 안에 귀두를 찔러 넣고 단번에 안으로 쳐들어갔다. 짐승처럼 헐떡이며 빠르게 추삽질을 이으며 끝없이 안을 파고들었다.

선 채로 온 체중을 실어 허릿짓을 하자 성기가 안을 푹푹 내려찍는 소리가 흉흉하게 울렸다. 성기가 쑤셔박힐 때마다 여지없이 애액이 밖으로 튀었다. 제 입에 들어가야 할 것을 잃은 것 같아 일리야가 짐승처럼 목을 울렸다. 흘린 애액 대신 키릴의 볼을 어린 짐승처럼 핥아 댔다.

발정 난 수캐처럼 정신없이 허리를 쳐올렸다. 두 번째라 처음보단 자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보다 더 난잡하게 키릴의 안에서 날뛰었다. 안을 마구 처대 귀두로 속살을 으깨듯이 짓이기고 닳도록 비벼 대길 반복했다. 힘줄이 솟은 굵은 살덩이로 전립선이 헐도록 집요하게 헤집자 키릴의 성기가 묽은 정액을 쏘아 올렸다. 동시에 일리야 역시 키릴의 안에서 사정했다.

안이 뜨끈하게 젖어 드는 느낌에 키릴이 황홀한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아…… 읏, 으응?”

일리야가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질펀하게 싸지르고도 아직 사정 중인 성기가 갑자기 안을 푹푹 쑤셨다.

사정 후 잔뜩 민감해진 내벽을 다시 헤집어 대자 절정의 여운이 가시기는커녕 순식간에 몸이 뜨거워졌다.

“아, 아! 흑! 하으, 응! 으응… 흑! 이, 학! 일리야?”

후희처럼 은근히 비비는 것도 아니었다. 일리야는 애액을 뿜은 구멍에 제 것을 남김없이 쑤셔 박고 절정에 발발 떠는 속살을 무자비하게 짓이겼다. 밀려나는 몸을 움켜쥐고 뿌리까지 처박고 빼길 반복하며 빈틈없이 맞물린 몸에 까슬한 음모를 비비기도 했다. 철퍽철퍽, 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읏! 윽! 응! 왜, 안 멈춰, 응? 아직, 다, 흐윽, 안 쌌는데, 아흑!”

키릴이 고개를 마구 저으며 신음을 내질렀다.

“또, 아, 아! 아흑! 또 안에, 그렇게, 하면, 흑, 으으응! 학……!”

“막 싸고, 흣, 난 뒤, 안에 긁어 주면, 좋아하셨죠. 그날은 몰라서, 훅, 못했지만, 이제부턴 잔뜩 비비고, 긁어드릴게요.”

“힉! 너, 아직, 아! 사정 중인데…… 아! 아흐! 읏!”

“참다가 하는, 거라서 그런지, 후우, 잘 안 멈추네요. 하아, 흣, 안이 제 걸로 질척질척해요. 키릴 님 물은 이렇게, 끈적거리지 않는데.”

사정이 끝난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성기가 조금 줄어들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다시 크기를 키우더니 자궁 입구를 또다시 퍽, 퍽 쳐 대기 시작했다.

“으응, 아, 아! 아! 흑!”

일리야의 손이 키릴의 가슴을 더듬었다. 툭 튀어나온 말캉한 살을 만지는 손길이 점점 농염해졌다. 키릴의 눈이 탁하게 풀리고 비명같이 내지르던 신음이 점점 달큼해졌다.

일리야가 고개를 꺾어 키릴의 입술을 물었다. 순식간에 두 입술이 맞물리고 갈급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아랫도리는 정신없이 키릴의 안을 치댔다. 키릴의 허리가 흔들리고 맞붙은 하체가 난잡하게 비벼졌다. 결합부에서 하얀 거품과 함께 끈적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읏, 흑, 아, 아! 힛, 으응! 응! 하악……!”

몸 안의 열기가 다시 부글부글 들끓었다. 절정에 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갔다. 키릴의 몸이 멋대로 날뛰었다. 부끄러움도 없이 난잡하게 엉덩이를 흔들고 일리야의 허리를 감은 허벅지를 음탕하게 비비적댔다.

키릴의 반응에 일리야가 수줍게 눈가를 붉히며 물었다.

“키릴 님, 하아, 기분, 좋으세요?”

“흐윽, 읏, 안이 계속, 뜨, 뜨거워서 학, 미칠 것 같아……. 으응!”

“저도, 저도, 그렇습니다. 미칠 것 같이 좋아요, 키릴 님. 아……!”

키릴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아래를 쳐올리던 일리야가 점점 고조되는 흥분에 거친 신음을 토했다. 유두를 짓뭉개던 손이 어느덧 키릴의 몸을 바싹 당겨 안고 허리를 퍽퍽 쳐댔다. 색이 진한 성기가 안을 빠르게 드나들 때마다 찔꺽이는 소리와 함께 애액이 사방으로 튀는 것으로 모자라 정액 섞인 꾸덕꾸덕한 음액이 질질 샜다.

“아, 아! 아으응! 흣! 하으…… 아, 응, 아욱!”

쏟아지는 쾌감에 키릴이 손톱을 세웠으나 일리야는 등이 긁히는 줄도 몰랐다. 그저 키릴의 목과 허리를 끌어안고 추삽질의 속도를 계속 올렸다. 정신없이 속살을 파헤치고, 으깨고, 짓뭉갰다. 거친 움직임에 소파가 부서질 듯 덜컹거렸다. 미향도 미약도 없었지만, 둘 다 정신이 나간 듯 상대를 탐했다.

땀과 정액, 애액, 온갖 체액이 뒤섞인 야릇한 냄새가 후끈한 공기 중을 떠돌았다.

한데 뒤엉켜 짐승처럼 흘레붙는 두 인간 밑에서 괴롭게 신음하는 소파의 마찰음과 질컥질컥 젖은 살과 살이 난잡하게 마찰하는 음탕한 소리가 뭉쳐 부도덕하고 불경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키릴 님, 키릴 님……!”

어린 성기사가 사제의 뒷구멍에 연신 성기를 처박았다. 그는 제 밑에서 헐떡이는 사제를 보며 하나로 연결된 감각이 더없이 황홀하다는 듯 달뜬 표정을 지었다. 쾌락에 젖어 흐느끼는 사제는 제 몸을 파고드는 성기사의 성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안달하며 아랫구멍으로 물고 놓지 않으려 했다. 자신을 보는 성기사의 갈급한 눈빛에 흥분하여 창부처럼 허리를 흔들기도 했다.

신전에서 해선 안 될 짓이지만 둘은 더 깊이 닿지 못해 안달했다. 사제와 성기사라기보다 수캐와 암캐 같았다. 그들은 정말로 짐승이라도 된 듯 거리낌 없이 싸지르고 울부짖으며 교미하듯 몸을 겹쳤다.

약에 취한 첫 관계 못지않게 미칠 듯한 섹스였다.

“흐응! 응! 힉! 아! 아! 하윽! 응! 흐으응!!”

연약한 점막이 반복해서 쓸리고 마구 긁혔다. 살짝 쓰라리기까지 했는데도 키릴은 안이 엉망으로 망가지는 느낌에 허벅지를 떨며 자지러졌다. 뒷구멍으로 물을 뿜으며 허리를 치들고 쾌락에 젖어 울부짖었다. 꺼떡거리던 성기가 허공에 정액을 뿌렸다.

“아, 아, 또, 또 나와. 아! 흐윽!”

일리야가 자궁 입구를 연달아 찍어 내렸다. 두툼하게 부풀어 오른 그곳을 부서뜨릴 듯이 찌부러뜨리며 마구잡이로 쿵쿵 박아 대자 키릴의 몸이 경련하듯 떨렸다.

“나와, 나와, 또, 나, 아, 아, 또 가… 아, 아응, 흐아…… 아, 아아! 아윽! 읏!”

순식간에 발기한 키릴의 성기가 다시 희끄무레한 점액을 픽픽 뿌렸다. 키릴은 사정하며 감전된 사람처럼 전신을 부들거렸다. 눈앞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지독한 감각이 전신을 꿰뚫고 끝없이 높은 곳으로 키릴을 끌고 갔다. 머릿속에 전류가 튀었다. 눈이 뒤집힐 것 같은 강렬한 오르가슴의 끝에 애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읏! 흑, 흐아앙!!”

“……윽, 큿!”

일리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극렬한 절정을 맞은 안이 미친 듯이 수축했다. 내벽이 요사스럽게 일리야의 성기를 쥐어짜며 극도의 황홀경으로 이끌었다. 사정감이 치밀어 올랐다. 참을 수 없었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속살을 후드득 긁으며 깊이, 더 깊이 파고들었다. 부풀어 오른 귀두로 자궁 입구를 쾅 소리가 나게 박아 올렸다. 뱃가죽이 불룩거리며 성기가 내장을 밀어젖히는 모양이 그대로 드러났다. 일리야는 지독한 쾌감에 신음하며 키릴의 울부짖음 속에서 사정했다.

“하악, 하, 하아, 하아…….”

“헉, 헉…….”

일리야가 널브러진 키릴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땀에 젖은 몸에 연신 입을 맞추고 내내 둘 사이에 끼어 짓뭉개진 유두를 정성껏 빨아 주었다.

“제가 너무 흥분해서, 힘들지 않으셨어요?”

가슴에 쏟아지는 더운 숨에 키릴이 움찔했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키릴은 난잡하고 날것 그대로인 섹스에 익숙했다. 민감한 몸은 작은 자극에도 달아올랐지만, 불붙은 육욕은 부드러운 정사 따위론 만족하지 못했다.

키릴은 더 거칠게 해도 된다고 말하려다 흠칫했다.

키릴을 이렇게 만든 건 선황이었다. 선황은 난폭하거나 수치스러운 정사를 즐겼고, 건강했을 땐 키릴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곤 했다. 병색이 완연했던 때조차 도구로 키릴의 안을 들쑤시고 다른 남자까지 침실에 끌어들였다. 왕성해진 성욕을 채우기엔 만족스러운 관계였지만, 정신적으론 힘들었다. 그래서 키릴은 한창 쾌락을 좇을 땐 늘 안이 망가질 정도로 엉망으로 헤집어 주길 원했다. 그러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 때문인지 원래도 잘 느끼는 만큼 쾌락에 약했지만, 이젠 미약한 쾌락에도 쉽게 이성이 허물어졌다.

하지만 정사가 끝난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임신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도리어 그이기에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리야라면 괜찮았다. 엉망으로 만들어도 좋았다. 아니, 오히려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치밀어올라 당황스러웠다.

“키릴 님, 무슨 생각 하세요?”

네 생각. 키릴은 말 대신 조용히 웃었다.

“계속 빨아도 될까요?”

일리야가 엄지로 유륜 주변을 쓸어 만지며 물었다. 키릴이 대답 대신 일리야의 머리를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일리야가 유두를 할짝댔다.

“으응…….”

말캉한 살덩이를 잘근잘근 깨물며 희끄무레한 점액에 젖은 음모를 만지작거렸다. 제 것과 키릴의 정액으로 젖은 털을 비벼 두 정액을 한데 섞었다. 이제 제 것과 그의 것을 나누지 못할 것이다. 그걸로도 모자라 제 성기를 문대다 못해 키릴의 얇은 음모에 제 무성한 아래 털을 비볐다. 까슬한 감촉에 저릿한 쾌감이 일었다.

참지 못하고 키릴의 가슴을 움켜쥐고 모인 살을 이로 깨물고 강하게 빨아들였다.

“으응, 흣, 하아……! 응……!”

야릇한 자극에 키릴의 가쁜 숨소리가 습하게 젖어 들었다. 일리야가 땀에 젖은 키릴의 몸을 쓸어내리곤 한쪽 다리를 잡아 벌렸다. 온갖 체액에 젖어 엉망이 된 아래를 살피며 물었다.

“키릴 님, 안이 간지럽진 않으세요?”

키릴이 가만히 일리야를 올려다보다 그의 입술에 제 입을 가져다 대었다. 흠칫 놀란 일리야가 뒤늦게 맞닿은 입술을 집어삼키고 진득하게 빨았다. 갈급하게 키릴의 혀를 빠는 모양새가 꼭 젖을 빠는 새끼 같았다.

한참 동안 타액을 주고받던 두 입술이 떨어졌다.

“너와 닿으면, 안이…… 간지러워.”

“그럼 제가 책임져야겠군요.”

기쁘게 미소 지은 일리야가 키릴을 안아 올리고 침실로 향했다. 허공에 뜬 다리가 일리야의 허리에 감겼다. 키릴은 침실로 향하며 일리야의 턱에 입 맞추고 꿈틀거리는 등을 훑어내렸다.

탁-

닫힌 침실 문을 뚫고 또다시 부도덕하고 불경한 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소리는 새벽이 되도록 내내 멈출 줄을 몰랐다.

그 후로 키릴은 매일 밤 스스로 다리를 벌리고 일리야의 것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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