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1/72)

10.

둘째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였다.

키릴은 용의 씨를 품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임신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비하면 생각보다 더 더뎠다. 둘의 정액을 같이 받는 날이 많아서 더 불안한 것도 있었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걱정하는 키릴과 달리 네스토르는 태평하기만 했다. 아무리 용이 만든 자궁이라도 종이 다른데 수태가 쉬울 리가 있겠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단에서 키릴을 불렀다.

저번과 같은 성물 제작 때문은 아니었다. 교황은 후계자를 준비하고 있었고 교육을 목적으로 외부에 나가 있는 추기경들과 예비 추기경인 키릴을 불러들였다. 한 명씩 돌아가며 지명한 것이라 거부할 수 없었다. 내심 교황의 곁에서 지내는 둘째의 소식이 궁금하였기에 처음엔 그 명령과 같은 부탁이 기꺼웠다.

그러나 키릴의 표정에 떠오른 반가움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둘째 아이의 얼굴이 용의 모습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제국의 수도 신전과 달리 교황처엔 온갖 성물과 신물이 있어 네스토르의 기척을 잡아낼지도 몰랐기에 키릴이 가면 둘은 한동안 만날 수 없었다. 용 역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교황청에 발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

네스토르는 늘 제가 원한 상황에서 키릴을 안으려 들 때마다 약속을 운운했으면서 정작 임신에는 키릴보다 더 느긋하게 굴었다. 종이 달라 임신이 늦어질 걸 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긴 시간을 사는 종이라 키릴과 느끼는 시간이 다른 듯도 했다.

그리고 최근 느낀 것이지만, 네스토르가 임신을 들먹이는 건 어쩌면 키릴이 저를 거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했다. 임신을 원하긴 하지만, 임신할 수 있는 제 짝을 더 원했고, 지금은 임신보다 키릴과의 관계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굴었다.

“오 년간 너를 삼 일 이상 보지 못한 적이 없는데……. 내가 바빠도 몰래 얼굴이라도 보고 갔는데 이번엔 그것도 못 하겠구나.”

지금도 그는 키릴이 짝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도 이행하지 못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키릴의 얼굴을 한동안 볼 수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네스토르는 키릴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연신 제 짝의 냄새를 맡았다. 잘생긴 미간을 일그러뜨리고 키릴의 존재에 한껏 집중했다.

“말 좀 해 봐. 그러다 네가 간 사이에 목소리까지 잊어버리겠어.”

“……그럴 정도로 오래 있을 건 아니고, 아마 열흘 정도만 있다가 올 겁니다.”

“열흘씩이나…….”

“…….”

오 년간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건 그리 늦는 게 아니라며 별거 아닌 것처럼 굴면서, 키릴을 보지 못하는 열흘은 무시무시한 시간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용 주제에 말이다.

네스토르가 이럴 때마다 키릴은 당황스러웠다. 때론 남자의 모습 위로 일리야가 겹쳐 보여 마음이 술렁거리기도 했다.

“오늘은 계속 나와 같이 있어. 네 어린 기사도 오늘은 내게 눈치 주지 말라고 해. 그 어린 것은 나처럼 열흘이나 널 못 보는 건 아니잖니.”

“…….”

“나와 약속한 거 잊은 거 아니지? 여기로 내 새끼를 수태하기로 했잖니. 열흘이나 못 보니 오늘 많이 노력하자.”

“……예, 그럴게요.”

원망스러운 듯 키릴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조르던 네스토르가 그제야 씩 웃었다.

키릴은 그날 온종일 네스토르와 함께 있었다. 예배를 마친 키릴이 집무실로 가던 중 지나치던 화원에서, 그리고 집무실에서. 인식 방해를 건 채 주변을 상관치 않고 키릴을 안았다. 그럼에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침실까지 따라와 일리야와 함께 새벽까지 키릴의 자궁이 미어터지도록 씨물을 뿌렸다. 임신을 위해서라며 안아 놓고 정사가 끝난 후에도 그는 키릴의 품에 얼굴을 박고 밤새 놓지 않았다.

키릴은 그날만은 저보다 긴 세월을 산 용이 마치 아이처럼 느껴졌다. 뒤에서 느껴지는 일리야의 든든한 존재감과는 반대였다. 키릴은 지쳐 늘어지는 몸을 일리야에게 완전히 기댄 상태로 품에 안긴 용의 등을 다독이다 잠들었다.

앞뒤로 두 남자에게 갇힌 모양새였지만 키릴은 그 어느 때보다 평안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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