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각성 (7/11)

#6. 각성

니콜라스는 몇 분째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현관문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햇볕이 닿지 않는 현관문은 유독 어두컴컴하게 보였다. 밖으로 통하는 그곳이 오히려 깊고 습한 굴로 통하는 것 같아, 쳐다보기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흣….”

현관문과의 눈싸움을 이어가던 중년 남성은 마침내 포기 선언을 하고 눈을 깜빡였다. 배 속에서 무언가 부담스러운 감각을 느낀 탓이었다.

감각의 근원을 확인하기 위하여 아랫배 쪽을 쳐다보기가 겁났다. 배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이미 알았다. 공포의 근원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두려운 상황이었다.

두 아들은 알을 품어야 한다고 거의 세뇌하듯 말해왔었고, 별다른 준비 없이 줄곧 관계하다 보면 언젠가 알을 품을 수 있을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듯했다.

집 안에만 있으니 살이 찌는 건가 했지만 점점 아랫배 쪽만 부풀어 오르자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보고도 믿기 힘들어 몇 번이고 확인했었다. 초반에는 그저 본인만 알 수 있을 만큼 살집이 약간 불어났고, 배를 누르면 안쪽이 당기는 기묘한 감각이 솟아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배가 부풀어옴과 동시에, 숨만 쉬어도 안쪽에 무언가 자리 잡았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겁에 질린 니콜라스는 배가 꽤 부풀 때까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일같이 아랫배를 더듬고 눌러보며 알을 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들었다. 그럴수록 알은 존재감을 드러내듯 배 안에서 착실히 크기를 불려갔다.

뱃가죽 아래에서 느껴지는 다소 단단한 것의 감각은 심지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안에 알이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한 니콜라스는 곧바로 욕지기를 삼켰다. 속에서 올라오려 해도 꾹 참으며, 절대로 구역질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다. 육안으로 봐도 배가 부풀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임신 징후를 보이고 싶지 않은 심리에서 기인한 방어적 행동이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육욕을 마구잡이로 즐겨댄 대가가 분명했다. 정확히 알을 품고 싶어 했던 건 아니더라도, 아들들과의 방탕한 교미를 즐겼던 것을 부정하긴 힘들었다.

몸을 짓이겨버릴 듯 밀고 들어오는 거대한 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아랫배와 엉덩이 구멍이 근질거렸다. 알을 품고 혐오감과 절망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도 거근에 대한 은밀한 열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점이 니콜라스를 더욱 자기 혐오의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하….”

아들의 거대한 좆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안쪽이 달아오르면서 박히고 싶어 안달 나는 것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알까지 품은 주제에 아주 잘 하는 짓이라고 속으로 조소해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엉덩이가 먼저 들썩거리면서 아들의 배 위의 갈라진 틈에 대고 음란하게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유혹의 결과는 당연히 정신 차리지 못할 만큼 난잡하고 질펀한 교미였다.

깨어 있을 때는 아들들과 교미하고 꿈에서는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는 나날들이 반복되었다. 두 아들과 똑같은 무시무시한 파충류들이 알에서 깨어나는 꿈을 꾸고 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무기력감이 찾아왔다.

마치 내면에서 일어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꾹꾹 억누른 나머지, 감정을 처리하는 기관이 고장 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니콜라스는 두 아들이 없는 집에 혼자 방치되어 있었다. 니콜라스가 알까지 품은 데다가 감히 어디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이 생활에 적응했다고 판단한 두 아들은 함께 사냥을 나갔다. 교대로 나가서 먹이와 필요한 것들을 조달해 오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할지는 몰라도, 각자가 부담하는 수고스러움은 훨씬 큰 탓이었다.

두 아들이 집에서 사라지자 줄곧 니콜라스의 음욕을 부추기던 페로몬이 끊겨버리고 말았다. 알을 품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를 만큼 강했던 성욕은 삽시간에 수그러들고, 변해버린 몸을 마주한 공포만이 남게 되었다. 정신을 취약하게 하던 페로몬이 사라지자마자 니콜라스는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면서 패닉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환상에 빠져 있다가 깨어났을 때처럼 모든 게 끔찍하고 흉악하게 느껴졌다. 집구석은 여전히 더럽고 비좁았고, 아들들은 둘 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렸으며, 불우한 가장은 아들과의 난교를 통해 덜컥 알을 가져버린 상태였다.

잔인한 현실을 자각하자마자 그는 곧 속에서 타오르는 분노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난폭하게 행동하려 해도, 몸을 조금만 크게 움직이면 안에 품은 알 때문에 속에서 부담감이 올라왔다. 그럴수록 알을 밴 사실만 확인하게 되는 꼴이라 더욱 괴로웠고, 분노는 금방 좌절감에 좀먹혔다.

판단력을 잃고 겁에 질린 중년은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현관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나가도 되는 걸까?

나가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로건과 더스틴이 겁준 대로 길에는 그들과 같은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수도 있었다. 나가는 순간 커다란 괴생명체들이 달려들어 성기를 들이댈 거라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면?

사랑하는 아들들은 이미 다 죽어버리고 괴물의 껍데기만 남아버린 것이라면. 그것들은 아이들인 척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고 아버지라고 친히 쉭쉭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껴 기르는 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모든 게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허울뿐인 이름만을 부르면서 괴물들을 아들처럼 대하고 있던 것이 분했다. 마치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된통 사기당한 듯한 착각이 일었다.

“다, 잘못된 거야.”

망설인 결과가 어떠했는가? 도망갈 거면 침공이 선언된 첫날 어떻게든 두 아들에게 여지를 주거나 동정하지 말고 도망쳤어야 했다. 그때 미적지근하게 굴어서 여기까지 와버린 거였고, 결과는 비참했다. 인간도 아닌 것들에게 다리를 벌리고 변태스러운 행각을 하면서 그것들의 알을 품어버리기까지 했으니.

비논리적으로 사고를 확장시켜가던 니콜라스는 곧 비관에 빠졌다. 이렇게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이에도 시간은 가는 중이었고, 여기서 더 지체하면 두 괴물이 돌아와 영영 탈출할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었다.

강박에 의해 숨이 가빠지자 덩달아 배 안쪽이 찌르릇거렸다. 그럴수록 니콜라스는 안쪽에 자리 잡은 알의 존재감을 느끼며 배를 부여잡고 후들거렸다. 페로몬의 영향권 밖으로 벗어났어도, 변이해버린 몸은 범해지는 것을 원했다.

한 번 커다란 것으로 박히기 시작한 이상 그것보다 더 좋은 쾌락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멀쩡해진 정신이 속에서 올라오는 충동에 계속해서 제동을 걸었다. 알까지 밴 상태에서 그런 짓을 또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움직임도 부자유스러운데, 여기 남아 있는 게 그나마 안전한 길이라고 외치는 마음속 미온적인 속삭임을 가까스로 뿌리쳤다. 니콜라스는 결심을 굳혔다. 안타까울 정도로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난 중년 남성은 한 발씩 현관문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한 발, 한 발 가까워질 때마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약하게나마 내면에 자리한 번식체의 본성이 끝까지 마음 밑바닥에 들러붙어 독단적인 행동을 막아서는 중이었다. 당장에라도 문을 열면 사냥에서 돌아온 두 초록 괴물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아냐, 안 돼, 할 수 있어.”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니콜라스가 문손잡이를 붙잡고 돌렸다. 무자비한 괴물들이 손 같지도 않은 앞발로 마구 돌려댄 탓에 망가지기라도 한 것일까? 문은 잘 열리지 않았다.

니콜라스는 당황해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손잡이를 부술 듯 돌리고 흔들었다. 그럼 그렇지, 영악한 괴물들이 수를 쓰지 않고 그냥 나갔을 리가 없었다.

“제발, 제발 열려, 열리란 말이야…!”

니콜라스는 이성을 잃기 일보 직전이었다. 언성을 높여가며 현관문과 씨름한 끝에 그는 자기가 하도 문손잡이를 잡아본 지 오래되어 손잡이를 반대로 돌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대 방향으로 손잡이를 돌리자 문은 아주 쉽게 열렸다.

문이 열리면서 안으로 들이닥친 서늘한 바람이 이마를 덮을 만큼 길어진 곱슬머리를 부드럽게 간질였다. 니콜라스의 앞으로 좁은 아파트 복도가 펼쳐졌다. 수년간 드나들던 곳인데, 굉장히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복도였다. 순간적으로 니콜라스는 이렇게 낡고 음침하고 퀴퀴한 곳에서 본인이 살아왔다는 것에 지독한 회의감을 느꼈다.

나간다고 무슨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배는 부풀었고, 혼자 사냥할 능력은 없는 데다, 옷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그래도 도망치고 싶었다. 아들들은 이미 죽었는데 환상을 붙잡고 혼자 망상에 빠져 세월을 낭비했다고 생각하니 질식할 것만 같았다. 니콜라스는 핏발 선 눈으로 점점 걸음을 빨리해 낡은 아파트를 벗어났다. 거기까지 나오는 동안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고, 거의 비어 있는 아파트의 복도를 따라 울리는 공허한 바람 소리만이 들려왔다.

“하아… 흐….”

배가 부푼 것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걷지 않아서인지 고작 몇 걸음 걸었다고 다리가 뻐근하고 숨이 찼다. 만일 평소에 근력을 키워두지 않았다면 진작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니콜라스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니콜라스의 얼굴은 꼭 한밤중 공동묘지 부근에서 담력 시험을 하다가 무언가에 놀라 도망치는 철부지처럼 보였다. 실체도 없는 어떤 것을 두려워해 필사적으로 내달렸고, 그의 낯에서는 눈물 대신 두려움과 공포심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렇게 달려서 도착한 곳은 통근 버스를 기다리던 곳이었다.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까지 나오는 동안 가슴이 뛰어서 미칠 것 같았다. 숨이 차긴 했지만 심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내달렸을 때의 그 감각이 아니었다. 집 밖에 나신으로 나온 게 부끄럽기도 했고, 지금 대단히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조마조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니콜라스는 본인의 불안감이 계속된 페로몬 샤워로 인해 생긴 부작용이란 것을 몰랐다. 지속되던 페로몬이 끊기니 금단 증상의 일환으로 감정이 마구잡이로 날뛰게 된 것이었다.

무지한 인간은 밝은 대낮이었는데도 그늘을 찾아 서 있었다. 햇볕이 뜨거워서 피하는 게 아니었다. 괴물들의 알을 가진 자기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었고, 헐벗고 길 한가운데 있는 게 수치스러웠으며, 혹여라도 괴물들에게 발각될까 봐 두려웠다.

어차피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는데 거기 서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니콜라스는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전부터 느끼던 것이었는데 안경을 안 써서 그런지 사물이 굉장히 흐릿하게 보였다. 니콜라스는 잔뜩 인상을 쓴 채 혹시라도 접근 중인 괴물은 없는지 경계하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다리 근육은 걷는 일에 금방 적응했지만 도로 위를 걷는 맨발바닥은 그렇지 못했다. 여타 코딜리언 변이체들과 달리 번식체는 외적으로 변이가 뚜렷하지 않았기에, 발바닥이 매우 따끔거리고 고통스러웠다.

“하아… 후우….”

정처 없이 걷던 니콜라스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숨이 찼다. 갈 곳이 있긴 하던가? 목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방황이었다. 이래서야 집이 싫어서 무작정 가출한 반항아만도 못한 꼴이었다. 그 시절의 반항아들은 그나마 옷도 있고 돌아갈 곳이라도 있었다. 지금의 니콜라스는 탈출한 괴물의 소굴을 집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내가, 내가 뭘….”

뭘 잘못했길래. 억울한 마음이 속에서 펑펑 솟아오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답답한 마음에 도망쳐 나왔으나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끓었다.

감정적으로 격해져도 마땅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평생 동안 무기력함을 학습해온 중년 남성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불합리함을 참고 버텨내는 것뿐이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기에 니콜라스는 체계적이지 못한 데다 알고 있는 정보도 거의 없었다.

두 아들의 부재라는 기회가 그저 한 날의 요행으로 흘러가게 될 판이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저으며, 니콜라스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침착하게 생각하자고 속으로 끊임없이 곱씹으면서 우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려고 애썼다.

지금 나는 어떤 상황인가?

비관을 제외하고 가장 객관적으로 상황을 정의한다면 조난당한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씩 사고가 유연해지면서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조난당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니콜라스는 한 번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교육받은 적이 없었다. 그의 생존 능력이나 판단 능력이 썩 좋지 못한 것은, 이미 이전부터 사회에서 반항적인 개체로 자라지 못하도록 반항심과 함께 영민함을 거세당한 탓이었다. 재난과도 같은 파충류들의 침공 앞에서, 그 영특하고 합리적이었던 사람들은 진작에 전부 숙청당하거나 도태되었다는 사실은 꽤 역설적이었다.

어쨌든 니콜라스는 인류에게 벌어진 상황을 거시적으로 볼 줄 몰랐고, 괴물들을 피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떠올려야 하는 판국이었다. 그는 조난당했을 때 취해야 할 세부적인 생존 전략은 알지 못해도, 인간에게 의식주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불행히도 지금 의식주 중 하나도 가진 게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니콜라스는 한숨을 쉬었다. 충동적으로 나오지 말고 옷가지라도 챙겨올 것 그랬다며 후회해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자꾸만 로건이 새롭게 빨아 이리저리 쌓아둔, 안락한 둥지 형태의 옷더미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지낼 만한 곳…. 우선 어디든 몸을 숨길만 한 곳이 있어야겠지.”

돌아갈 집이 없다는 데서 집의 필요성을 간절히 느낀 니콜라스는 적당한 도구를 챙긴 뒤 어디든 거처로 삼을 만한 곳이 있는지부터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숨어 살고 있는 인간들이 많을까? 아니면 전부 죽었을까.

코딜리언에게 인간은 한 입 거리임을 눈으로 목격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니콜라스는 버스 정류장을 한참이나 지나 집 주변 상가로 향했다. 종류를 막론하고 문명의 산물인 도구를 얻기 위함이었다. 옷이든, 주방 집기든 뭐든 좋았다.

거리의 상황은 처참했다. 거주지 대신 가건물이 지어져 있던 저지대는 지난 장마 기간 동안 배수시설이 관리되지 못해 수해를 입은 흔적이 역력했다. 난장판으로 어질러진 거리는 인간도, 코딜리언의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텅 빈 거리를 걸어가는 니콜라스의 꼴은 처참했다. 두 아들이 열심히 씻겨 깨끗하던 피부는 곧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흙먼지로 인해 지저분해졌고, 온몸은 땀범벅이었다. 오랜 시간 자르지 않아 덥수룩해진 앞머리가 굽실거리면서 축축이 젖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턱에도 수염이 꽤나 자라 있었으며, 얼굴을 타고 땀이 뚝뚝 떨어졌다. 침공 이전과 동일한 부분이라곤 속눈썹이 길게 자란 순해 보이는 눈뿐이었다. 그마저도 푹 젖은 속눈썹 아래의 눈동자는 이미 반쯤 코딜리언처럼 변해버린 뒤였다.

몸이 변이하면서 근육이 크게 빠지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니콜라스는 여전히 건장하고 근육이 잘 잡힌 인간 남성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슴은 근육으로만 들어찼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더 풍만하고 묵직해 보였고, 배 또한 한눈에 봐도 비정상적으로 보일 만큼 도톰하게 나와 있었다.

힘겹게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부푼 배와 가슴이 흔들렸다. 배는 무거웠고 가슴은 아릿거렸다. 어느 쪽이든 몸에 손을 대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아 니콜라스는 몸을 움츠린 채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하… 진짜, 빌어먹을.”

배가 당겨서 더 걷는 것은 힘들었다. 로건이 일하던 상가 거리까지 가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다른 전략을 모색했을 거라며, 니콜라스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쳤다. 잠시 그늘 가에 앉아서 쉬는 동안 코끝에 무언가 이상한 냄새가 스쳤다. 낯선 냄새에 바짝 긴장한 니콜라스는 눈동자를 굴리며 혹시 다른 코딜리언 개체가 나타난 건지 경계했다.

두 아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것과는 냄새의 결이 달랐다. 니콜라스는 냄새를 맡으면서 느껴지는 감정이 과거 어떤 경험과 유사한지 상기해내려고 노력했다. 처음 맡아보는 페로몬이라 놀랐을 뿐, 그 자체가 나쁘게 느껴진 건 아닌 데다가 왜인지 모르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페로몬을 맡고 마음 한구석에서 뭉클거리며 올라온 기시감의 출처를 알아내려 들던 니콜라스는 의아해했다. 약간의 벅참이 느껴지는 이 감정은 젊은 시절 인류의 비전을 내세우며 도시를 홍보하던 판촉물을 봤을 때랑 비슷했다. 종이에 인쇄된 근사한 고층 빌딩들을 보면서 ‘언젠가 이런 데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희미한 희망과 기대를 품던, 그 당시의 기분이 생생히 떠올랐다.

지금 쨍쨍한 볕 아래에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걸어가고 있던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장면이었다. 다 지난 일인 데다, 당장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장면이 왜 갑자기 떠오른 건지 의문스러웠다.

“하하….”

그때만 해도 새파랗게 젊다 못해 어렸고,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이렇게 늙고 지친 몸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을뿐더러, 멋진 고층 빌딩이 보이는 좋은 집에 입주하는 꿈을 그 어떤 인간도 이루지 못할 미래가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니콜라스는 회상에 젖어들 뻔한 자기 자신이 우스워 소리 내어 조소하며 숨을 골랐다.

높은 계단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구역의 경계를 나누는 계단이었다. 상업 지역으로 가려면 반드시 계단을 올라가야 했고, 별거 아닌 돌계단이 유난히 드높은 장벽처럼 보였다.

“하…. 제길, 해보자고.”

여기까지 온 이상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니콜라스는 힘겹게 계단을 오르며, 뭐라도 손에 거머쥐리라고 다짐했다.

종말은 사람을 낭만적으로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가능성과 확률에 대한 이성적인 통찰 대신 맹목적인 낙관을 좇게끔 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리라 믿게 했고, 불안정한 모든 것들에 강렬한 애착을 갖게 만들었다. 과거 인류가 끝없이 전쟁을 벌이고 행성을 불모지로 만들어가며 비이성적 낭만을 추구한 습성이 이 불쌍한 번식체에게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력하게 남아 좌절하는 것보다 뭐라도 해보는 게 낫다며 강인한 마음을 먹는 게 끈기인지 어리석은 낭만인지 밝혀지기까지 머지않은 순간이었다. 마침내 니콜라스는 계단 끝에 다다랐다. 턱 하나만 넘어가면 상업 지역에 들어설 수 있었고, 건물이 많은 만큼 은신할 만한 장소가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니콜라스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은, 애초에 본인이 집 안에 얼마나 유폐되어 있었는지 계산해본 적 없다는 점이었다. 세계는 코딜리언의 침공을 기점으로 아주 크게 변모한 지 오래였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에 더 가까웠다. 원주 생명체인 코딜리언의 문명과 흔적을 파괴하고 함부로 집을 지은 것은 다름 아닌 인간들이었다.

“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니콜라스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멀리서 흘러온 페로몬을 맡고 들었던 묘한 익숙함의 정체가 확실해졌다.

상업 지구부터 멀리 보이는 도심의 랜드마크까지, 모든 것이 코딜리언의 방식으로 변해 있었다. 이 영리한 파충류들은 모든 것을 허물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대신, 인류의 문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본인들의 새로운 둥지와 영역을 구축해버렸다.

인간이 보기에는 심각할 정도로 기괴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외관이었다. 어떤 건물에는 진흙이 덕지덕지 덧발려 있기도 했고, 대부분의 건물은 금방이라도 유령이 튀어나올 것처럼 으스스한 모양새였다. 특히 건물의 입구들은 죄다 코딜리언들의 몸 크기에 맞춰 허물어져 있기 일쑤였다. 풀인지 뭔지 모를 것들이 엉성하게 눌어붙은 건물들은 딱 괴물들에게 점령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건….”

참혹한 건물들과 변해버린 환경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니콜라스는 수컷들의 페로몬 영향력에서 벗어났을 때보다 더한 이질감과 우울함을 느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들어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엉망이 된 건물들이었다.

그러나 코딜리언의 입장에서 느끼기에는 아주 훌륭하고, 아늑해 보이는 건물이기도 했다. 도심의 새로운 개발 구역이 인간들에게 설레는 비전을 제시한 것처럼, 코딜리언의 새로운 건축 양식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변이한 번식체를 감화시켰다.

인간으로서의 니콜라스는 급변한 환경에 공포를 느꼈으나, 번식체로서의 니콜라스는 코딜리언 양식을 보며 조화로움과 감동을 느꼈다. 상반된 두 감상은 굉장한 인지 부조화를 불러일으켰다.

주로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는 인간은 시청각적 신호와 기호를 중심으로 건축 양식과 사회 문물을 발전시켰지만, 코딜리언은 그렇지 않았다. 촉각과 후각 위주로 발전한 문물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립되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니콜라스는 아주 분명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두 아들의 말대로, 인간의 몸으로는 더는 이 세계에서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단지 괴물 파충류들과 다른 심미안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급변한 체계와 규칙을 혼자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격변한 세계를 앞에 두고 니콜라스가 느끼는 감정은 소외감이었다. 혼자만 동떨어진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혼자서는 영영 그들의 세계에 합류할 수도, 눈길을 피해서 숨어서라도 살아남을 수 없음을 실감했다.

속이 상했다.

사무치게 서러웠다. 무력한 자신에 대한 분노를 넘어, 세상 전체가 자신을 따돌리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니콜라스는 깊은 좌절을 맛보았다.

엉엉 소리 내어 흐느낄 법도 한데 오히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거친 도로를 맨발로 걸어오면서 흘릴 수 있는 눈물이 다 뽑혀 나가기라도 한 건지, 눈가는 건조했다. 그저 마음이 먹먹하고 괴로워, 가슴이 문드러지는 듯한 감각이 일 뿐이었다.

상업 지구 쪽으로 이동하면 뭐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다시 목표와 갈 곳을 잃은 니콜라스는 격변한 상업 지구로부터 등을 돌렸다. 발밑으로 계단과 직전까지 걸어온 길이 보였다.

“…….”

니콜라스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인정했다. 한 발씩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돌아갈 곳이라곤 두 아들의 품밖에 없었고, 해는 저물어가는 중이었다. 코딜리언들이 야행성이란 사실을 떠올린 니콜라스는 불안에 떨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지금까지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은 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코딜리언이 활동하는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인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니콜라스는 서늘한 오후의 바람을 뚫고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비참한 중년의 이런 허술한 추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었다. 코딜리언들은 야행성이지만 서열이 낮은 변이체들은 상위 코딜리언이 불러다 일을 시키면 군말 없이 때가 어느 때이든 나가서 일을 해야 했다.

그 대가로 먹고 살만큼의 먹이와 필요한 것들을 지급해 주었으므로 아무도 불만을 표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두 아들은 낮에도 일하는 코딜리언의 좋은 예였다. 굳이 낮에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상위 코딜리언들은 대부분 본인들의 둥지에서 쉬고 있었고, 살아남은 변이체들은 집합 시간이었기에 공교롭게도 길에 두 집단 모두 돌아다니지 않는 게 정답이었다.

방금 봤던 그 으스스한 코딜리언 양식의 건물들이 전부 아들을 비롯한 변이체들의 노동력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니콜라스는 알지 못했다. 이미 그들이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아직도 혼자 침공 이전의 감성으로 살아가고 있던 참이었다.

니콜라스가 마주한 코딜리언들의 거리는 마음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환상을 깨뜨리는 역할을 했다. 아닐 거라 부정했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며, 아무리 아이들을 붙잡으려 애써도 그 애들이 다시 사람처럼 행동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처음 페로몬에서 깨어났을 때 느꼈던 것처럼, 두 아들은 정말로 괴물이 되어버렸고 괴물들의 사회에 어울리는 괴물시민으로 살아가는 중이었다.

둘을 계속 아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니콜라스는 걸으면서 로건과 더스틴의 얼굴을 떠올렸다. 길고 푸른 주둥이와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형형한 눈동자 따위가 생각났다. 구부러진 발톱이 자란 앞발까지 떠올렸을 때가 돼서야 지친 남성은 자신이 이미 괴물이 된 아들의 모습만 떠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그들의 이전 모습을 떠올리려 해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것처럼 구체적인 얼굴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함께 했던 장면은 기억나도 웃고 있던 입꼬리까지만 생각날 뿐, 정확히 두 아들이 어떤 얼굴이었는지는 불분명한 형태쯤으로 그려졌다.

사별한 아내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곧 알아왔던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기억들이 마치 30년 전의 일처럼 멀게 느껴지고 있음을 깨달은 니콜라스는 두 손을 꽉 말아 쥐었다. 이 세계에 완전히 단절된 채로 홀로 남았다는 게 실감 났다.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푸념 같은 소리가 바람결에 흩어졌다. 날이 거의 저물어 깜깜해져 갈 때가 되어서야 아파트 앞에 도착한 니콜라스는 스산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코딜리언의 양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위한 장소도 아니게 된 곳이었다. 니콜라스에겐 달리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었고, 무력한 인간은 잠자리와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어둠을 피해 돌아와야만 했다.

아이들이 집에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날이 너무 좋아서 잠깐 밖에 나갔다고 둘러대기엔 꼴이 엉망이었다. 만일 도망쳤었다는 것을 들키면 두 아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괜한 짓을 벌였다고 후회해봐야 늦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니콜라스는 최대한 빨리 돌아가 용서를 구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비굴하게 행동하는 건 평생 동안 학습된 태도가 아니었던가. 상대가 과거 아들이었던 괴물들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권력자는 인간이 아니라 거대 파충류들이었다.

“…….”

현관문을 마주한 니콜라스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다. 문을 열면 뭐가 있을지 몰라 두려웠다. 침공 선언이 있던 바로 그날의 기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이번엔 헷갈리지 않고 문고리를 제대로 된 방향으로 돌렸다. 문은 한 번에 열렸고, 어둠 속에서 니콜라스는 두 쌍의 짐승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두 아들이었다.

[아버지!]

로건이 높은 소리를 내며 니콜라스에게 서둘러 다가왔다. 그 큰 몸으로 내는 속도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였다. 순식간에 아버지에게 다가온 둘은 니콜라스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다.

[어디 가셨었어요, 저희가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이제 막 밤이라 찾으러 나갈 참이었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니콜라스가 돌아오기 전까지 두 형제는 언쟁을 벌이며 어디로 아버지를 찾으러 갈 것인지 의논하고 있었다. 로건은 아버지를 혼자 두는 게 아니었다고 자책했고, 더스틴은 그런 식으로 징징거리는 소리를 해봐야 달라질 건 없으니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동생의 타박에 정신 차린 로건은 우선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주장했다. 코딜리언과 달리 인간은 주행성인 동물이었고, 아직 인간의 습성이 남아있는 아버지가 해 지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게 그의 논지였다.

마음이 급했던 더스틴은 밤이 되고 돌아오지 못했는데 다른 놈들의 표적이 되면 어쩔 거냐고 따져 물었다. 로건은 상위 개체들은 변이한 번식체에겐 관심이 없고, 다른 하위 변이체들은 노역을 해서 지쳐있으니 마구 나다닐 리는 없다고 침착하게 맞받아쳤다. 그러던 중 니콜라스가 문을 열고 멀쩡히 제 발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얘들아….”

두 거대한 파충류가 몸을 안아오자 니콜라스는 그대로 굳은 채 그들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두 괴물이 자유를 제한하거나 육체적 학대를 감행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몸에 닿은 아들들의 서늘한 체온에서 안도감을 느낀 중년 남성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거리며 고이다가 뺨을 타고 툭, 흘러내렸다. 비록 전과 달리 두 팔을 벌려 두 아이를 동시에 품에 안는 것은 무리가 있었지만, 니콜라스는 그들이 겉껍질과 상관없이 여전히 아들임을 확신했다.

아이들을 의심했던 게 미안했다. 어떻게 사랑하는 아이들을 버려두고 떠나갈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뭐든 해주고 싶은 아들들이었는데.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가족들인데.

“미안, 미안해…. 내가… 내가 뭔가에 홀렸었나 봐.”

두 파충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페로몬은 니콜라스에게 안락함을 느끼게 했다. 아이들의 품에 안겨 그들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 페로몬을 맡은 니콜라스는 진심으로 밖에 나갔던 것을 후회하고 반성했다.

페로몬에 중독된 남성은 취해있지 않은 상태를 ‘홀렸다’라는 단어로 규정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주 괴상한 판단이었지만 셋은 겉모습에만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코딜리언의 세계에 속한 이들이었다.

니콜라스가 반성하는 만큼 두 아들도 아버지를 소홀히 대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한동안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있던 더스틴은 그가 몸의 먼지를 닦아낼 수 있도록 수건을 건네주었고, 로건은 그에게 마실 것을 주었다.

“내가 진짜 미안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다친 데 없이 무사히 돌아오셨잖아요…. 다음부터 안 그러시면 되니까요.]

로건은 온건하게 쉭, 하는 소리를 내며 빈 컵을 회수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저희한테 말을 하세요.]

무덤덤하긴 했지만 더스틴도 아버지를 추궁하기보다는 믿고 맡기라는 식으로 따뜻한 말을 건넸다. 니콜라스가 두 아들의 겉모습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만큼, 두 코딜리언 청년 또한 아버지의 내면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한때 그들은 인간이었지만, 이제는 시시각각 급변하는 날씨와도 같은 인간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는 범주에 접어든 지 오래였다. 그들에게 있어 불안정하고 쉽게 우울감에 빠지며, 충동적으로 행동할 소지가 다분한 아버지는 잘 감시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아버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둘은 극진히 정성을 다했다. 단순히 번식체로서 아버지를 대하는 것과는 비슷한 듯 달랐다. 둘은 전혀 사냥 능력이 없는 아버지를 위해 먹이를 조달해 오는 일부터 시작해, 그의 인간적인 생활 방식을 이해하고 고려했고, 결정적으로 형제끼리 싸우거나 배제하려 들지 않았다.

“난….”

아들들의 곁을 떠나고서야 그들도 본인 못지않게 적응하려 노력하고 많은 것을 인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니콜라스였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두 아들에게 벌을 받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내심 그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니콜라스는 이 세계에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두 아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든든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집에 누가 있다는 안도감은 모든 불안과 의심을 잠재웠다.

문득, 아이들이 관계할 때 ‘이게 다 아버지를 위해서’, ‘아버지를 구하려고’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니콜라스는 둘의 신의를 저버리면서 뼈아픈 경험을 하고나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한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동시에, 신념에 가까운 한 가지 생각을 마음속에 품게 되었다.

너희가 날 구했듯, 나 또한 너희들을.

코딜리언 청년 둘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알을 갖게 했듯이. 아버지가 코딜리언 청년 둘을 구하려면 무사히 그들의 알을 낳아줘야 했다. 번식체로서 의무를 다해야만, 아이들이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게 할 수 있었다.

간단하면서도 당연하지만, 지금껏 보지 못했던 진실이었다. 서로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무겁게 울렸다. 니콜라스는 흥분으로 상기된 얼굴을 푹 수그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필요한 건….”

물을 마셨는데도 목이 말랐다. 니콜라스는 손으로 식탁 가장자리를 매만지는 행위를 반복하며 말을 골랐다.

괴물이 된 아들들이 무서운 게 아니라, 혼자 고립되는 게 두려웠다. 소외를 넘어 배제된다는 감각이 얼마나 끔찍한지 몸소 체험한 중년 남성은 결심한 듯,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지금 그에게 당장 필요한 건 두 아들이 떠나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둘은 본인의 일탈을 너그럽게 받아주었고, 그런 그들에게 다시 신뢰감을 주고 싶기도 했다.

“너희들이야. 아빠는 너희들을 원해….”

니콜라스는 로건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배 위로 갈라진 틈 주변에 얼굴을 맞대자 짙은 수컷의 페로몬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잊고 있던 아랫배의 당김과 가슴의 뭉침이 되살아났다. 흉터 위를 매만져보듯 아들의 갈라진 틈을 더듬던 니콜라스는 혀를 내어 그 주변을 파고들 듯 날름거렸다.

아들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수많은 방법 중 니콜라스가 택한 것은 교미였다. 니콜라스 그 자신은 두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충실한 번식체이기도 했다.

두 아들이 최선을 다하는 동안 끊임없이 그들의 진의를 의심하고 머릿속으로 나쁜 음모론을 펼쳤던 게 죄스럽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아버지 자격이 없었다는 생각뿐이었다. 변이한 두 아들을 마주했을 때도 도망갈 생각뿐이었는데, 둘은 자신을 다그치긴커녕 걱정부터 해주었다. 니콜라스는 로건과 더스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미안해, 걱정시켜서. 아빠가 진짜 미안해서 그래.”

[괜찮다니까요.]

아버지의 손과 혀가 성기가 들어 있는 곳 부근을 건드리자 갈라진 틈이 움찔거렸다. 자꾸만 벌름거리던 곳에서 마침내 발기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니콜라스는 군말 없이 그것을 입에 담고 쪽쪽 빨기 시작했다.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다른 생각 않고 있는 그대로의 아들과 이 관계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으니, 행위 할 때마다 느꼈던 따끔거리는 죄책감이 흔적도 없이 씻겨 내려갔다.

“미안해….”

실망스럽게 굴어놓고, 아들에게 원한다면서 좆을 빨아대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런 요구를 하는 것 자체가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잘할게, 아빠가 진짜 잘할 테니까, 흐읍, 웃….”

로건의 것이 입안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니콜라스의 한쪽 뺨이 불룩해졌다. 한껏 입을 벌리고 빨아들여도 버거울 만큼 아들의 것은 무지막지한 크기를 자랑했다. 니콜라스는 힘든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더 열심히 빨아들이다가 뻣뻣해진 것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며 실토하듯 말했다.

“박아줘,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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