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 다정한 불효 (10/11)

#9. 다정한 불효

니콜라스는 너른 초원을 걷고 있었다. 그의 양옆에는 두 아들이 함께했고, 거구를 자랑하는 진짜 코딜리언들이 앞서는 중이었다.

초원의 풀은 니콜라스의 허리 위까지 올 만큼 무성했다. 부드럽지만 어딘가 서늘한 바람을 타고 풀이 율동하듯 너울거렸다. 평화로운 초원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마냥 넋 놓고 난생처음 보는 멋진 풍경을 구경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니콜라스와 그의 두 아들은 두령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니콜라스의 소식을 전해 들은 두령은 그들의 특별한 결합 방식을 눈여겨보았다. 코딜리언이란 원래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죽을 때까지도 싸우는 종족이었다. 실제로 두령은 배필을 선택할 때 수 마리의 수컷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싸우도록 해서 승리한 자를 불러들였다.

두령은 그런 난폭한 성질을 가진 수컷이 서로 양보하도록 만든 번식체가 궁금했다. 동시에 그 수컷들의 변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코딜리언에게는 없는 특성을 가지고 불온한 사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계했다.

이미 두 변이체 수컷은 만난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변이체 특유의 짧고 얇은 꼬리를 제외하면 별다른 이상이 없는 평범한 변이체들이었다. 그래서 직접 둘에게 어째서 한 암컷을 공유하고 있는지 물었을 때, 둘은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답변만 내놓았다.

그러니 더더욱 의문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네가 그 번식체구나.]

초원 한가운데서 거대한 코딜리언을 만난 니콜라스는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아들이 ‘두령님’ 하고 코딜리언의 수장을 일컫는 것은 들어 보았어도, 그녀가 이렇게 커다란 존재일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다른 코딜리언은 매우 빈약한 개체처럼 느껴질 정도로 두령은 거대했다. 게다가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온 듯, 팔뚝과 등판, 꼬리 할 것 없이 긁힌 흉터가 가득했다. 그녀는 한눈에 봐도 압도적으로 강하고 권력을 독점한 자라는 게 느껴졌다.

“…….”

인간인 니콜라스는 살갗을 울리는 두령의 쉭쉭거리는 소리에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자리에 서서 땅만 바라보았다. 야수의 발은 아주 무시무시해 보였다.

[용서하십시오, 두령님. 아버지께서는 코딜리언의 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군. 괜찮다.]

[하지만 말은 알아들으시니 말씀하셔도 됩니다.]

로건이 예의 바른 말씨로 두령에게 말했다. 거대 파충류들에게 이질감과 반감을 품고 있던 두 형제도 어느새인가 그들의 페로몬에 동화되어, 이제는 진정으로 두령을 따르고 있었다. 이 사회에서 우두머리에게 충성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두령을 독재자쯤으로 여기던 더스틴도 그녀가 가진 통찰력과 지성, 그리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인정한 지 오래였다.

[흐음.]

두령은 니콜라스에게 말을 거는 대신 그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는 진즉 이 땅에서 절멸시킨 여타 인간들과 다르지 않게 생긴 작은 외모에, 겁에 질린 태도를 보였다. 지극히 평범한 게 오히려 더 놀라웠다.

[달리 전달할 말이 있다기보단, 궁금하군. 어째서 두 변이체와 함께 살기로 했는지 말이다.]

“그게….”

니콜라스는 상대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설명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두령은 니콜라스가 말할 기회를 주는 대신 자세를 낮춰 그와 시선을 맞추는 것을 택했다. 그녀가 깊게 숨을 들이쉬자 대기가 진동했다. 니콜라스는 몸을 한껏 움츠리며 커다란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평범해도 너무 평범해. 내가 생각한 이유가 전혀 아니라는 것만은 알겠구나.]

그저 이 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나이 든 중년의 얼굴은 두령을 안도하게 했다. 모략 따위가 깃들 수 없는 얼굴이었다.

[번식체치고는…. 건강해 보이지만 다소 페로몬이 약하군.]

니콜라스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체취를 들이마신 두령이 평가했다. 이 중년 남성은 두 수컷의 페로몬에 쉬지 않고 노출된 덕에 변이 자체를 매우 안정적으로 거쳤고 건강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페로몬이 강하지는 않았다.

페로몬의 강하기는 곧 생식 능력과도 연관이 있었다. 지금이야 초산이니 제법 멀쩡하다고 해도, 이대로면 얼마 안 가 쉽게 무너져 내릴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야. 우수한 개체라 동족의 번식을 위해 더 힘써주길 바랐거늘.]

[아버지께서 곧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더스틴이 두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하는 것 자체는 결례가 아니었기 때문에 두령은 별 거리낌 없이 작은 변이체에게 답했다.

[그건 아니지. 하지만 지금처럼 번식을 할 수는 없을 테다.]

[그럼 그게 언제쯤일지 알 수 있습니까?]

인간도 성별과 관계없이 갱년기를 맞이하는 만큼, 영원히 번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아버지의 불능에 대한 예고는 갑작스러웠다. 더스틴은 계속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코딜리언은 변이체 주제에 보통 당돌한 게 아니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변이체들이었다면 겁에 질려 고개를 조아리기 바빴을 터였다.

[지금 같이 나약한 상태라면 아마 두 번에서 세 번쯤 알을 더 낳으면 페로몬이 끊긴다고 봐야겠군.]

[뭔가 방법이 없습니까?]

두령은 꼬리를 움직이며 단정적으로 답했다. 막연히 10년 뒤, 혹은 그 너머라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겠지만 두 번은 확실히 일렀다. 게다가 니콜라스는 벌써 두 번째 알을 품고 있었다.

더스틴이 방법을 강구하자 두령은 꼬리를 휘휘 저으며 잠시 생각했다.

[있기야 하지. 하지만….]

금수의 눈이 니콜라스를 향했다. 당장 콧김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커다란 짐승이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작은 인간이 겁먹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니콜라스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보았다. 풀이 움직이는 모양 하나하나가 유독 눈에 밟혔다.

[지금껏 번식체에게 그 방법을 시도해본 적은 없어서 말이다. 만일 감내할 수 있다고 하면 조치를 취해주겠지만, 굳이 모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기도 하지.]

[실패하면 불이익이 큰 방법인가요?]

[그렇다기보단, 번식체에게 시도한 적이 없어 그 방법을 감행해도 될지 모르는 쪽에 가깝다. 코딜리언에게는 효과가 입증된 방법이다.]

두령의 말을 옮기자면, 코딜리언의 페로몬을 보강하는 입증된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이 여태까지 번식체에게 행해진 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번식체들은 재생산의 핵심을 담당하는 암컷 코딜리언에 비해서는 하위 개체, 대체 가능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에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그럼, 안 되는 걸까요….]

두령의 말을 듣고만 있던 로건이 다소 처량하게 말했다. 단순히 아버지와 더 번식을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번식체라는 이름답게 아버지의 역할은 번식이었고, 만일 쓸모가 없다고 판정되면 가혹한 처분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걱정이 앞섰다.

[안 될 건 없지. 전례가 없었을 뿐. 대단한 이익이 없었기 때문에 시행하지 않은 것인데….]

두령은 셋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꽤 특이한 경우이긴 했다. 권력이 없는 암컷이 수컷 여럿을 거느릴 수 있다는 것도 그러했고, 서로를 극진히 위한다는 점도 이상스러웠다.

[너희의 태도를 보아하니 새로운 번식체를 짝지어주겠다고 해도 마다할 것 같군. 그렇게 필사적으로 방법을 강구하다니 말이다. 그럼 뭔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겠지.]

두령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으론 이 작은 존재들에게 특례를 허용했을 경우 산출할 수 있는 이익에 대해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동족의 이익이 된다는 것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데 말이다. 조건을 걸겠다. 만일 너희가 조건을 받아들인다고 하면 특별히 이 번식체에게 처치를 허용해주도록 하지.]

셋은 긴장한 채로 두령의 말을 기다렸다. 두령이 내건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지원해주는 만큼 적극적으로 알을 생산해올 것. 그리고 둘째로, 이번이 번식체에게 기술적으로 처치를 해주는 첫 시도이니 지속적으로 니콜라스를 연구하는 것을 허용할 것.

두 번째 조건은 어딘가 니콜라스를 실험체처럼 쓰겠다는 것처럼 들려 꺼림칙했지만, 굳이 사형 판결이나 다른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이 발이나 꼬리를 한 번 구르면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허락을 구한다는 점에 주목하기로 했다. 니콜라스를 포함한 셋이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의사를 밝히자 두령은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그르릉대며 말했다.

[별일이 다 있군. 하기사, 변이체를 만드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기도 하니.]

[정말 감사합니다.]

로건이 먼저 아주 정중하게 두령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더스틴도 뒤이어 감사 표시를 했다.

[내가 연구를 담당하는 자들에게 일러두도록 하겠다. 아마 때가 되면 그들이 너희의 번식체를 데리러 갈 거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야기는 끝난 것 같군.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해라.]

셋은 다시 다른 코딜리언들의 인도를 받아 풀숲을 빠져나왔다. 두령의 영역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니콜라스는 간신히 크게 숨을 들이켜며 긴장을 풀었다.

“괜찮은 걸까…?”

[괜찮을 거예요. 무섭게 생기긴 했지만 꽤 정중하고 합리적인 분이시니까….]

[흠, 너무 경험적으로 생각하나 싶긴 한데. 저렇게 특례라면서 잘 안 해주려 들어도 결국은 뭔가 이득 보는 게 있다는 소리겠죠. 그래도 특례는 특례인 겁니다. 저희 쪽에도 이득이란 소리로 들리네요.]

“그렇겠지…. 하지만.”

니콜라스는 걱정스럽게 살짝 부푼 배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아들의 페로몬은 의식해도, 본인의 페로몬은 의식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니콜라스 본인도 알을 계속해서 갖고 싶었고, 정상적으로 번식 활동을 하고 싶었다.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았다.

단지, 가 본 적 없는 영역을 새로 개척한다 하니 겁이 먼저 났을 뿐이었다.

[괜찮아요, 잘할 수 있으니까. 여태까지 잘 해왔잖아요.]

[맞아요. 저희도 계속 옆에 같이 있어 드릴 거니까요….]

두 아들은 불안해하는 아버지를 격려해주며 빠르게 가까이 붙었다. 몸을 맞대면 떨던 아버지가 쉽게 진정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학습한 뒤 자주 하는 행동 중 하나였다.

“그래….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니콜라스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음을 굳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난 뒤, 니콜라스를 데리러 온 코딜리언들이 굴을 방문했다. 이제는 그들이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거구의 덩치들 옆에 서면 주눅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수컷 코딜리언들의 몸에서 은근히 풍기는 페로몬이 신경 쓰였다. 번식체는 변이체들에게 끌리는 만큼 발정하지는 않아도, 페로몬을 감지한 몸은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니콜라스와 그의 두 아들은 코딜리언들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나섰다. 이주한 이후 밖에 거의 나다닌 적이 없지만,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우거진 숲이 셋을 반겼다. 도시 끝자락에 위치한 숲은 어쩌나 깊은지, 들어가기 전 밖에서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커다란 파충류들은 따라오라는 듯 꼬릿짓을 한 번 해 보이고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여긴 도대체 뭐 하는 곳이니…?”

니콜라스가 두 아들에게 물었다. 숲 안은 나무가 너무 울창하게 우거진 탓에 어두컴컴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바람 소리와 사부작거리는 코딜리언들의 발소리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더더욱 기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눈을 감고 집중만 한다면, 나무가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잘 모르겠어요. 저희도 여기는 처음 와 봐요.]

로건이 코딜리언들을 따라가며 말했다. 로건과 더스틴은 상급 개체에 비하면 키가 작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보폭을 맞추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아버지의 발이 푸석거리는 낙엽 위를 걷는 데 적합하지 않음을 발견한 더스틴은 뒤처지려는 니콜라스의 몸을 번쩍 안아 들고 성큼성큼 걸었다.

[이곳은 연구소다.]

니콜라스의 인간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로건의 답변을 듣고 부자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아차린 코딜리언이 덧붙였다. 이어서 쉭쉭거리는 소리와 함께 특유의 꼬릿짓으로 다량의 정보가 전달되었다.

[코딜리언들이 세운 연구소래요. 중요한 기관인가 봐요.]

건물이 하나도 없는 숲길이 어떻게 연구소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니콜라스는 본인이 인간의 시대에도 연구소라는 장소에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음을 떠올리고 아들의 말을 수긍해 버렸다.

[우선 이 특이 번식체의 몸을 조사할 예정이다. 그리고 부족한 결함을 보충할 것이고.]

[저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조사와 보충에 필요한 자재를 나르고 아울러 다른 검사를 받으면 될 것 같군. 번식체도 특이 번식체이지만 너희 변이체 역시 평범해 보이지는 않으니.]

코딜리언들 중 기술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자들은 니콜라스에 대한 보고를 받고 아주 흥미로워했다. 침공이 이루어진 지 이제 한 계절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이렇게 안정적으로 알을 생산해낸 니콜라스의 상태는 의심스러웠다.

이 거대 파충류가 인간이라는 종족을 변이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변이하기 전의 인간 몇을 사냥해서 조사했을 때 적어도 두 계절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이 지나야 어떤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거라 예상했었다. 니콜라스는 연구진의 예측을 한참이나 빗나간 개체인 셈이었다.

게다가 번식체가 거느리고 있는 두 변이체도 어딘가 수상했다. 그 둘은 두령에게 충성하는 것은 물론, 꼬박꼬박 일도 빼먹지 않고 제 할 일을 다 해내는 우량 개체들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해보면 코딜리언은 물론, 다른 변이체들과도 사고방식이 달랐다. 코딜리언은 그 이질감을 ‘인간 냄새’가 덜 빠진 것이라고 추정했다.

원종족의 냄새가 덜 빠지는 일은 숱하게 있었지만, 그런 개체들은 대부분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거나 반기를 들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충성심을 보이면서 적응도 잘하는 한편, 원래의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 유지한다는 건 특이하다고 할 만했다.

어서 니콜라스를 살펴보고 싶어 들뜬 코딜리언들은 저들끼리 꼬리로 의사소통하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이제부터는 갈라져야겠군. 번식체는 우리를 따라오도록 해라. 그리고 너희 변이체들은 저쪽을 따라가도록 해.]

더스틴은 안고 있던 아버지를 내려주며 속삭이듯 쉿, 하는 소리를 냈다. 니콜라스는 머뭇거리며 주저하다가 아들의 길쭉한 주둥이를 한 번 꽉 안았다가 놔주었다.

[뭐라고 했어?]

[잘할 수 있다고, 얼른 검사 끝나면 보러 가겠다고 했어.]

우리보다는 아버지 쪽이 처치가 더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더스틴은 형에게 쉭쉭거리며 말했다. 로건은 뒤를 돌아 멀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니콜라스 또한 발걸음을 옮기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잘할 수 있다고 소리 내서 격려하는 대신 사람이 손을 흔들듯 꼬리를 크게 휘휘 저어주다가 다시 앞서가는 다른 코딜리언들을 따라나섰다.

이제 니콜라스는 완벽히 혼자였다.

항상 두 아들과 함께했었고, 혼자가 되었던 경험은 몰래 집을 빠져나갔던 그때뿐이었다. 어두운 숲의 분위기와 맞물려,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저… 어디까지 가는 거죠?”

한참을 걸어도 계속해서 깊은 숲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너무 숲이 어두워서, 이제는 정말로 앞서가는 코딜리언의 형체만 간신히 구분할 수 있었다. 니콜라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코딜리언은 발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번식체 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너는 우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니, 우리가 하자는 대로 얌전히 따라주길 바란다.]

“그럴 수가….”

황당한 답변이었지만 따져 물어봐야 그들이 못 알아듣는 실정이었기에 니콜라스는 잠자코 그들을 따라갔다. 코딜리언들이 도착한 곳은 숲 어딘가에 연구용으로 닦아 놓은 공터였다.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식별하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는 코딜리언들은 재빨리 니콜라스를 검진할 준비를 했다.

오로지 인간의 몸을 가진 니콜라스만이 앞을 보지 못한 채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주변을 둘러싼 소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깜깜하니 무섭기도 했고, 볕이 하나도 들지 않아 추웠다.

다소 사무적인 태도의 코딜리언들은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절한 것도 아니었다. 벌써 살갑게 대해주고 극진히 챙겨주던 두 아들의 빈자리를 느끼며 니콜라스는 손으로 양팔을 감쌌다. 어깨 위로 소름이 돋을 만큼 공기는 서늘했다.

[정온 동물인 인간은 우리보다도 추위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진단 말인가?]

니콜라스가 덜덜 떠는 것을 발견한 코딜리언들은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기웃거리다가 발양석이 든 상자를 하나 내왔다. 상자 주위로 금방 온기가 확 퍼져 나갔다. 니콜라스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상자 주변에 가만히 서 있었다. 진흙을 굳혀 만든 상자 안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거리는 게 보였다.

[자, 그럼 검사를 해볼까. 겉보기에 건강하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그게 사실인지는 한 번 계측해봐야 알겠지.]

‘무엇을?’이라고 반문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커다란 손이 니콜라스의 손목을 휙 낚아챘다. 코딜리언은 니콜라스가 양손을 들고 있게 한 다음 주변을 돌며 그의 외관을 관찰했다. 어디 긁힌 부분은 없는지, 혹은 결함은 없는지 면밀히 살폈다.

인간은 아주 특이한 생물이었다. 환경 적응력도 약하고 그렇다고 해서 사냥 능력이 출중하지도 않으면서, 도구와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데 능했다. 몸에 털이 거의 없는 건 코딜리언과 비슷했지만 비늘도 없이 미끈한 피부나, 하필이면 털이 달려도 머리통 일부에만 달린 꼴은 정말로 이상했다.

외형에 대한 평가는 뒤로하고, 코딜리언들은 기존에 조사했던 인간과의 차이점 위주로 니콜라스의 몸을 살폈다. 기본적으로 니콜라스는 몸집이 컸다. 관찰을 위해 사냥했던 말라빠진 인간들에 비하면 근육도 많고 뼈가 굵어 훨씬 튼튼했다.

아마 그런 부분이 변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요인 중 하나일 거라 추측하던 코딜리언 연구자가 전보다 훨씬 봉긋해지고 무게감이 실린 니콜라스의 가슴을 건드렸다.

“읏….”

니콜라스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가슴은 묵직함에 비례해서 민감히 반응했다. 아침에도 아들이 젖을 짜주었지만 벌써 젖이 차오른 듯, 유륜 주변으로 지끈거리며 자잘한 통증이 느껴졌다.

[저런, 젖이 나오나 본데.]

[아직 변이가 덜된 건가? 알까지 낳았으면 그건 아닐 텐데.]

코딜리언들끼리 쉭쉭거리며 의견을 나누었다. 니콜라스는 그들이 나누는 몇몇 대화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니콜라스가 보이지 않게 꼬리로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연구자들은 유즙이 흘러나오는 현상을 불완전한 것으로 치부했다. 굳이 젖을 먹일 대상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젖이 나오는 건 에너지 낭비였다. 연구자들은 니콜라스의 특이 사항을 꼼꼼히 기록해 나갔다.

그 밖에도 몸 구석구석을 쿡 찌르거나 들춰보면서 살피는 검사가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니콜라스는 수치심을 느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코딜리언들에게 인간의 기준을 적용할 수도, 심지어 그만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조차 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소리를 참고 숨을 죽이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낯선 수컷들의 페로몬을 맡으면서 경계하고 있던 몸은 자극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했다. 몸은 본능적으로 씨를 받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이미 두 아들을 배우자 삼은 정신은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니콜라스는 얼굴을 굳히고 꾹 눌러 참는 표정을 지으며 괴물들의 손길을 받아냈다.

[변이체들이 작다지만 확실히 인간이라 그런가, 번식체의 크기가 너무 작은데.]

[산란한 알 크기도 작아. 배양소에 있는 걸 보고 왔는데, 꽤 신경 써야 부화시킬 수 있을 것 같더군.]

“잠깐, 우리 애들이 거기 있어요?”

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니콜라스가 놀라서 질문했다. 아이들이 알을 거둬갔을 때의 비통함으로 한동안 우울해했었는데, 그 알들이 어딘가에 잘 있다는 것을 들으니 마음이 놓이기도 했고 소식이 궁금하기도 했다.

[얌전히 있도록. 곧 적응성 검사를 할 거니까.]

연구자들은 니콜라스의 질문에 딴소리를 하며 본격적으로 도구를 사용해 그의 몸을 진단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막대기를 비롯해 니콜라스가 알 수 없는 것들을 들이대던 파충류들은 이상한 냄새가 나는 점도 높은 액체를 니콜라스의 하반신에 발라주기까지 했다.

[이 위에 앉아.]

그들은 니콜라스를 발양석의 영역에서 끌어내 더 어두컴컴한 곳으로 보냈다. 그들이 가리키는 곳을 볼 수 없던 니콜라스가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커다란 손이 니콜라스의 어깨를 눌러 자리에 앉혔다. 차가운 돌 같은 것이 둔부와 허벅지에 닿았다. 본인이 어딘가 평평하고 매끄럽게 깎인 돌 위에 앉았다는 것을 인지한 것도 잠시, 돌 위에 체중이 실리자 덜컥거리며 밑이 열리는 게 느껴졌다.

다리에 닿는 느낌으로 볼 때 돌은 앉은 사람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 묵직했지만 안은 텅 빈 것 같았다. 흡사 변기 위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니콜라스는 본인의 허벅다리 쪽에 시선을 고정하고 눈을 깜빡였다. 어서 눈이 이 어둠에 적응해 뭐라도 식별해 내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의자 위에 앉은 중년 남성은 텅 빈 아래쪽의 공간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허벅지에 닿는 것의 감촉은 아주 축축하고 끈적거렸다.

“자, 잠깐, 뭐야 이거…!”

당황해서 소리치는 니콜라스의 목소리가 공터에 메아리쳤다. 코딜리언들은 친절히 설명해주기보단 니콜라스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질긴 줄기로 팔과 다리를 묶는 쪽을 택했다. 돌로 만든 의자의 양옆으로 툭 튀어나온 양각의 용도는 사용자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리를 고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 마, 이상해, 읏…!”

질척거리는 것이 자꾸만 둔부에 닿았다. 다리를 벌리고 편하게 돌 위에 앉은 상태에서 다리가 고정된 터라, 갈라진 엉덩이 틈으로 선홍빛의 구멍이 훤히 보였다. 물론 이것은 아래쪽 함 안에 비치된 생명체의 시점이었다.

코딜리언의 기술은 인간과 아주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고, 그들은 정교하게 사물을 가공하는 방식 대신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을 활용하는 방식을 더 선호했다. 그 말은, 각종 검사를 비롯해 인간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도 그런 방식으로 행해진다는 뜻이었다.

변이 물질로 오염된 비를 맞고 번식체가 되는 경험을 겪고도 니콜라스는 그들의 방식을 낯설어했다. 함 안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온 것은 구멍 주위에 발린 특수 용액의 냄새를 맡고 그 주변을 기웃거렸다.

“흐윽…! 뭐야! 싫어!”

그 뱀 같은 것이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니콜라스는 허리를 빳빳하게 펴고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서 피해 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다리를 묶은 가공된 식물의 줄기가 살을 파고들어 올 뿐이었다.

“아, 으앗…! 하지 마, 아!”

중년 남성이 몸을 심하게 들썩거렸다. 몸에 발린 액체와 함에 들어 있던 정체 모를 생물의 표면을 흐르던 점액이 만나 반응하면서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로 들어오는 것이 기구 같은 무생물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점이 소름 끼쳤다. 니콜라스는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이리저리 틀어대며 그것이 배 속을 헤집는 것을 참아내려 했다.

[몸집이 작은 것치고는 제법 큰 놈도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군. 적응성은 아주 우수해.]

옆에서 니콜라스를 관찰하던 코딜리언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는 동안 몸 안으로 기어들어 온 것은 계속해서 꿈틀거리며 니콜라스를 괴롭혔다.

“아, 아니야, 이런, 으읏…!”

이런 괴상망측한 것이 구멍을 쑤시고 있는데 성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두 아들에 의해 예민하게 길들여진 몸은 착실히 반응했다.

괴상한 촉수가 아들의 것만큼 배 속을 꽉 채우거나 마구 내벽을 긁어대는 건 아니었다. 대신 놈은 기가 막히게 예민한 곳을 알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금방이라도 알주머니 안으로 들어올 것처럼 입구를 파고들자 니콜라스는 버티지 못하고 크게 야릇한 소리를 내버렸다.

“흐아, 아, 으핫…!”

얼굴이 확 달아오르면서 어둠 속에서 눈이 커졌다. 성기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고개를 치켜든 채 꺼떡거렸다. 움찔거리며 들어온 것을 조여봐야 충족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수치스러운 와중에 괴로움이 가중되었다.

물리적 자극을 받은 알주머니 즉각적으로 점액을 흥건히 내보냈다. 그러자 몸 안을 역으로 기어올라오던 것이 재빠르게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허억… 흐, 으윽… 도대체 이게 무슨….”

[흐음, 반응도 아주 좋아. 이 정도면 알주머니 자체는 아주 제대로 자리 잡은 데다 기능도 우수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왜 이렇게 페로몬이 약한 거지?]

[아마 세척 단계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을 거라 추정은 되지만…. 그거야 보충하면 그만이다.]

[큰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군. 여러 검사를 더 해보고 싶을 정도야. 이렇게 변이가 잘 되는 일도 드물어서.]

[변이체를 둘 거느린 게 변인이겠지. 세척 단계에서 미흡했던 것을 변이체들이 채워준 모양이야.]

니콜라스가 검사를 위해 안에 받아들인 것의 크기는 상등급에 해당했다.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에 들어갔던 것이 빠져나오는 반응 속도를 보면 알주머니의 기능도 튼튼했다. 이제 남은 건 니콜라스의 부족한 페로몬을 보충해주는 일이었다.

“하아… 하….”

계속해서 들쑤시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극이 금방 끝나버리자 몸이 근질거렸다. 할 수만 있다면 손가락이라도 넣어 알주머니를 달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니콜라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허공을 응시했다.

몸이 시리고 안이 허전했다. 낯선 코딜리언들에게서 수컷의 체취를 느낄지언정, 그들은 발정기가 아니었으므로 그리 유혹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외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한층 크게 불러일으켰다.

[준비된 건 전부 투입했나?]

[그래. 놈이 오고 있다.]

[변이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

놈들은 계속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니콜라스를 묶어뒀던 것을 풀어주고 다시 원래 있던 곳까지 데려다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시 발양석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니콜라스는 온기의 소중함을 절감하며 상자 주변에서 허리를 숙이고 열을 쬐었다.

분명 구멍이 쑤셔지면서 희롱당했다고 생각했지만 코딜리언들의 건조한 반응을 보니 항의하기도 애매했다. 인간이 그들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을 뿐, 파충류들은 전문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으읏….”

내부가 건드려졌는데 충족감 없이 그냥 허무하게 끝나버려서 몸 안이 간질거리는 것일까? 니콜라스는 속에서 화끈거리면서 간질거리는 느낌을 상쇄하기 위해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상자에서 새어 나오는 빛에 의해 유독 몸의 돌출된 부위, 가령 가슴이나 팔뚝, 그리고 허벅지의 둥그런 부분이 부각되었다.

“다음 검사는 언제쯤….”

몸 안이 달궈진 것 같았다. 이런 예열은 원치 않는다고 생각하며 니콜라스는 자리에서 서성거렸다. 한시라도 빨리 아들들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엉덩이 안쪽의 가려움을 해소해줄 굵직한 것이 필요했다.

코딜리언들에게 물어봐야 소용없었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는 형체는 전부 어느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 그곳에 뭐가 있는지 보려 해도 캄캄한 어둠뿐이라 니콜라스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

[준비가 끝났군.]

빛이 없어도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코딜리언은 정확히 20분이 지나자 신호를 보냈다.

[이리 와라. 거기 그 상자도 들고.]

니콜라스는 시키는 대로 발양석이 든 상자를 들고 코딜리언들을 따랐다. 연구자들이 멈춘 곳은 어느 못 앞이었다. 상자에서 흘러나온 빛이 물 위로 잔잔히 퍼지는 것을 보며 니콜라스는 그 앞이 전부 물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들어가.]

“여, 여길요?”

[깊지 않다. 어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얼추 니콜라스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한 코딜리언이 답했다. 코딜리언에게는 허리 아래, 인간에게는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의 얕은 못이었다. 이 얕은 연못은 코딜리언들이 의도적으로 조성한 것이었으며, 그 안에는 기다란 촉수를 수십 개나 가지고 있는 생물을 사육하고 있었다.

주로 체내에 한 번에 많은 양의 페로몬 물질이나 약물을 주입할 때 이 방법을 사용했다. 니콜라스가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자 연구자 중 한 놈은 그가 들고 있던 상자를 뺏고 다른 한 놈은 등을 떠밀었다.

“읏, 차가워.”

[안으로 더 들어가도록 해.]

넘어지진 않았지만 바로 못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니콜라스는 코딜리언이 그만 멈추라고 할 때까지 못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다. 물은 상당히 차가워서, 아마 거울을 보면 지금쯤 입술이 파랗게 질렸을 거라 생각했다.

못의 바닥이 진흙으로 이루어진 건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한 니콜라스는 물속에서 다리를 분주히 움직였다. 진흙보다 훨씬 더 말캉거리는, 이를테면 실리콘 같은 것을 밟고 있다고 생각할 때였다.

“어…?”

무언가 바닥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고 느낀 순간, 니콜라스의 앞쪽에서 첨벙거리며 물보라가 튀었다. 먹이가 들어온 것을 감지한 슬러그가 못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고개라고 하기에는 어디가 머리인지 알 수 없는 신체 부위였지만, 니콜라스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놈은 넓은 못 전체 바닥을 뒤덮을 만큼 크게 자라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뭐, 뭐야….”

눈앞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지 헤아리지 못한 니콜라스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슬러그는 계속해서 몸을 꿈틀거렸고, 그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크기에 불과한 니콜라스는 딛고 서 있는 바닥이 심하게 흔들거리는 것처럼 느꼈다.

“크윽…!”

결국 니콜라스는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허우적거리는 움직임이 커질수록 먹이의 싱싱함을 알아챈 슬러그는 느릿한 움직임으로 촉수를 뻗어 니콜라스의 사지를 휘감았다.

“놔…! 으윽…! 제기랄, 검진한다면서 이게 무슨…!”

니콜라스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발양석 쪽을 쏘아보았다. 못가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코딜리언들이 자리를 비운 거라고 생각한 니콜라스의 공포가 가중되었다. 괴생명체를 통제해줄 만한 존재가 없는 상황이었다. 정체불명의 거대한 생명체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덜덜 떨려왔다.

“시, 싫어, 안 된다고…! 난 우리 애들이…!”

비록 니콜라스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지만 엄연히 처치를 위해 개발된 생체 장치였다. 슬러그가 물에 접근한 생물체를 잡아먹는다는 특성을 이용해 만든 이 사육된 개체는 철저히 코딜리언들의 명령에 따랐다. 그것은 못에 주입된 다량의 페로몬 촉진 물질을 니콜라스의 몸에 흡수시키고 젖을 짜내는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반투명하고 기다란 촉수들이 니콜라스의 사지를 허공에 띄우고 고정했다. 물 대신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만이 몸 위로 내려앉자 니콜라스는 추위에 떨면서도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촉수 괴물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으니 더 두려웠다. 축축하고 질척한 촉수는 사지를 잡아 찢거나 하는 대신 딱 기분 좋을 정도로 적당한 압박감을 실어 몸을 주물러왔다. 손이나 꼬리 따위로 주무르는 것과는 결이 다른 감각이었다.

“아, 으, 으윽, 이상해, 큿….”

뭉친 근육을 눌러오니 시원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몸 구석구석 빠짐없이 미끈거리는 것이 닿으니 간지러웠다. 니콜라스가 간지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틀어도 촉수는 집요하게 따라붙어 몸을 더듬었다.

“아…! 아, 아파, 읏…!”

전문 장치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사육된 슬러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니콜라스의 풍만한 양쪽 가슴을 휘감은 촉수는 부지런히 꿈틀거리며 뭉친 근육과 유선을 자극했다. 하얗고 봉긋한 가슴이 검은 촉수에게 붙들린 채 누르는 대로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하며 주물러졌다.

슬러그는 나선을 그리듯 가슴을 말아쥔 형태로 휘감은 채 주기적으로 꾹꾹 압박을 가했다. 아들이 손으로 가슴 위를 쓸면서 유륜 쪽으로 젖을 모으던 것과는 판이한 움직임이었다. 그래도 특정한 목적성을 가지고 사육된 개체인 만큼 젖을 짜내는 솜씨는 수준급이었다. 촉수에 휘감겨 주물러지는 것만으로도 니콜라스의 가슴은 유즙 줄기를 뿜어냈다.

“하아, 아, 앗…. 흐으…. 이상해, 제길.”

유즙이 흘러나온 것을 감지한 촉수가 꿈틀댔다. 심지어 놈은 길쭉한 촉수 끝에 난 갈라진 틈을 벌려 유두를 포함한 유륜 주변 전체를 집어삼키고 빨아들이기까지 했다. 네 갈래로 갈라진 촉수의 안쪽에는 빨판 같은 돌기가 다닥다닥 달려있어, 피부 위에 흡착하는 느낌이 아주 기묘했다.

어둠 속에서 낯설고 이상한 것에게 몸 전체가 주물러지니 겁을 먹고 있던 니콜라스도 차츰 감각에 적응하고 놈이 주는 성감에 익숙해져 갔다. 놈은 이미 뻣뻣하게 고개를 든 유두가 봉긋하게 볼록 솟은 모양이 될 때까지 빨아들였다.

“아, 아아… 으, 흐윽….”

니콜라스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붙잡힌 채 촉수에게 젖을 빨렸다. 두 아들이 입술을 잃고 주둥이를 가지게 된 만큼, 피부 위에 단단히 흡착한 채 빨아주는 감각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젖을 주무르고 뭉친 것을 마사지하는 동시에 빨아들이자, 막혀 있던 것이 터져 나오듯 유즙이 흘러내렸다. 촉수는 니콜라스의 즙을 받아 마시듯 꿈틀거리며 남김없이 젖을 흡입했다.

물에 사는 생명체답게 슬러그는 온몸에서 번들거리는 체액을 분비하는 중이었다. 놈의 체액 성분은 살고 있는 수질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코딜리언들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해서 배양하는 못의 성분과 농도를 관리하곤 했다.

니콜라스는 거의 온몸으로 암컷 페로몬의 분비를 돕고 코딜리언화를 한층 안정적으로 돕는 페로몬을 주입당하는 셈이었다. 심지어 유두를 빨아들이고 있는 두 촉수도 계속해서 윤활액을 분비해내고 있었고, 촉수 안쪽에 달린 빨판의 표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침과 같은 돌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것이 피부를 쓸기만 해도 피부에 점액이 흡수되는데, 달라붙어 빨기까지 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흡수가 빠르게 촉진되었다.

촉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니콜라스가 가슴의 감각에 집중한 사이 다리를 벌리게 하고 직전까지 검사받던 구멍을 기웃거렸다. 코딜리언의 성기에 비하면 훨씬 얇은 촉수 몇 개가 모이더니 니콜라스의 살을 벌리고 들어왔다.

“읏… 크으웃…!”

갑작스러운 침입에 놀란 니콜라스는 아래쪽에 힘을 주며 들어온 것을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사타구니와 허리 등을 더듬고 눌러대며 근육의 힘을 푸는 촉수 때문에 순식간에 하반신에 들어갔던 힘이 빠져나갔다. 힘이 풀린 것을 확인한 촉수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오는 한편, 니콜라스의 입에도 촉수를 물려 점액을 삼키게 했다.

“흐아, 흡…! 크, 아, 흐읍….”

못에 이미 다량의 코딜리언제 페로몬 물질이 투하되었기 때문에 촉수의 체액은 어딘가 익숙한 맛이었다. 꼭 그것이 아들들의 정액처럼 느껴진다고 생각하며, 니콜라스는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액체를 삼켰다.

입 밖으로 삼키지 못한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지만 이미 몸 전체가 촉수의 체액으로 질척하게 젖어 크게 표시 나지 않았다. 살짝 달짝지근하면서도 쌉쌀한 맛이 도는 체액을 마시고 나니 목구멍이 텁텁했다. 간지러운 듯, 갈증이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니콜라스는 본능적으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아직 입안에서 빠져나가지 않은 촉수를 빨고 그 위로 혀를 비벼댔다. 그래도 간지러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흐, 크윽… 아, 잠, 앗…!”

아래를 벌리고 들어온 촉수는 지금껏 받아들이던 것보다 상대적으로 얇았기 때문에 별 느낌 없이 품고 있을 수 있었다. 단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여기저기를 찔러대는 게 조금 곤란할 뿐이었다. 하지만 곧 안에 있던 촉수가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훨씬 크고 두꺼운 것이 벌어진 입구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미끈거리면서도 하반신에 힘을 주면 탱탱한 감촉이 느껴지는 해괴한 촉수가 천천히 안으로 진입해왔다. 촉수의 표면에는 또 다른 작은 촉수들이 달려있어, 수시로 꿈틀거리면서 니콜라스의 내벽을 자극했다.

“크흣…!”

안에 일단 뭐가 됐든 들어오면 기쁘게 조이고 보는 내부였다. 촉수 표면의 꿈틀거리는 잔촉수들은 니콜라스의 뜨거운 내벽을 파고들듯 쿡쿡 찔러대다가 날름거리기를 반복했다. 작은 혀들이 배 속을 누비는 느낌이었다.

“하아윽…!”

특히 전립선을 눌러대거나 알주머니를 건드리면 니콜라스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고 허리를 튕겨대며 물을 내뿜었다.

목구멍이 간질거렸던 것처럼, 내부도 간질거려 허리를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촉수가 들락날락하며 점막을 긁어주고 회음부부터 그 위쪽까지 자극을 주고 있었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하… 으, 앗, 더… 거기, 거기가 아니라….”

니콜라스는 어느새 성감에 취해 더 느끼고 싶다고 생각하며 몸을 자꾸만 꿈틀거렸다. 허리를 튕겨보기도 하고 몸을 할 수 있는 한 앞으로 뺐다가 무르기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강했다. 그럴수록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만족감을 위해 애처롭게 몸부림쳤다.

성기도 촉수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놈은 니콜라스의 체액이 마음에 들었는지, 질척하게 달라붙었다. 가슴과 마찬가지로 성기도 칭칭 휘감고 정액을 짜 올리듯 위아래로 율동감 있게 움직였다.

시커먼 촉수에 붙잡힌 검붉은 성기는 수시로 울컥거리며 말간 정액을 내뿜었다. 이제는 굳이 씨를 뿌려 생식할 필요가 없는 몸이었기에, 정액은 점점 말갛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흐르는 체액마저도 아깝다는 양 촉수는 귀두 끝부분도 입을 벌리고 집어삼킨 뒤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촉수 내부의 빨판은 기둥에 달라붙어 흡착하고, 안쪽에 들어있던 유기체로 이루어진 심 같은 것은 요도에 파고들어 남은 정액을 깨끗하게 빨아냈다.

“흐으, 아… 흐, 윽….”

성감대만을 노리듯 파고들어 오는 놈 때문에 니콜라스는 정신 차리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전신을 유린당하고 있으니 지금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도 구분 가지 않았다.

분명 기분은 좋았다. 자극에 의해 절정이 겹겹이 들이닥쳐 만성적으로 절정에 달하기 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욕정은 가라앉지 않고 스위치가 고장 나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그런 상태가 유지되는 중이었다. 너무 좋아서, 니콜라스는 손발을 꿈틀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한 채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못의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나 살과 촉수끼리 닿으면서 질척거리는 소리만이 고요를 깨뜨렸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전부 꿈이 아님을 넌지시 일러주는 유일한 지표였다.

“흐윽…!”

육체적으로는 극상의 쾌락을 느끼고 있지만 정신은 그렇지 못했다. 수컷 변이체 코딜리언의 페로몬 없이는 만족할 수 없었다. 한껏 고개를 젖히고 전신의 근육을 꿈틀거리며 몸을 수시로 뒤틀면서도, 니콜라스는 두 아들의 좆을 그리워했다.

누구든 좋으니 이 흉물스러운 것들을 제치고 박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박히고 있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단전 깊은 곳부터 해소되지 않는 욕구가 쉼없이 꿈틀댔다.

“우브, 흐으, 긋, 아… 로지….”

헐떡거리며 아들의 이름을 불러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관계할 때마다 절정으로 인해 몸을 못 가누고 목놓아 부르면 대답해주던 그 바람 새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니콜라스는 더 애가 탔다.

“아아…! 아, 학, 윽, 더스, 으흣…!”

두 아들이 여기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름 부르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검고 반투명한 촉수에 단단히 구속당한 채 몸의 내밀한 곳을 들쑤셔지면서 니콜라스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고요한 검은 숲은 정말로 이 감정 상태와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지나치게 춥고, 어둡고, 두려웠다. 오히려 이제는 한나절 전에 쐬었던 햇볕이 꿈처럼 느껴졌다.

“크훕…!”

거부감을 느낀 니콜라스는 들이마셨던 촉수의 체액을 토해냈다. 자극에 정신이 팔려 있어 몰랐는데, 촉수의 체액이 닿은 곳은 묘하게 감각이 예민해져 간지러움과 열감을 더 민감하게 느끼게 된 기분이었다.

단지 육체적으로 불만족해서 자꾸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해 공허한 몸짓을 하는 게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행위에 만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교미가 아니라 처치에 불과했고, 촉수와 성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니콜라스는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현실을 인지했다. 달아오른 몸이 차갑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두 아들의 잘생긴, 비늘로 뒤덮인 얼굴이 아른거렸다. 어서 이 처치가 끝나기만을 빌었다.

“흐아윽… 아, 으윽….”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던 처치에도 끝은 있었다. 마침내 정해진 분량만큼의 체액을 주입한 촉수는 니콜라스를 물가에 놔주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얘들아…?”

어둠 속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니콜라스는 풀밭 위를 미친 듯이 더듬거리며 아들을 찾았다. 그러다가 손에 딱딱한 코딜리언의 발이 닿았다.

“더스….”

[잘해내셨어요. 수고하셨어요.]

니콜라스는 붙잡은 개체가 더스틴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약간 서늘하게 느껴지는 비늘 돋은 피부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보고 싶었어, 왜 이제 온 거야.”

니콜라스가 등을 둥글게 말고 아들의 다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는 것으로 보아, 그는 울고 있었다.

[저희도 검사가 있어서….]

[미안해요, 조금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로건이 더스틴을 꼬리로 쿡 찔러 말을 멈추게 한 다음 대신 대답했다. 이 영리한 코딜리언은 사실 관계를 말하기보다는 아버지가 원하는 말을 들려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잘 알았다.

“너무 힘들었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니콜라스는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대충 닦아내고 후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안에 잔뜩 체액을 주입당해 바로 흘러내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몸 밖으로는 아무것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피부도 멀끔했다. 물에 젖은 곳을 제외하면 전부 건조하게 말랐다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점액질의 흔적은 하나도 없었다.

[검사 결과는 양호하대요. 처치도 잘 끝난 것 같고. 끝나면 둥지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어요.]

“얼른, 어서 집에 가자.”

단 1분이라도 이 공간에 더 있기 싫다고 생각하며 니콜라스가 아들의 팔을 붙잡았다. 아버지의 손이 차갑고 축축한 것을 알아차린 로건은 쉭, 하는 소리를 냈다.

[집에 가요.]

숲에 들어올 때 아버지를 안는 것은 동생이었으니, 이번에는 형의 차례였다. 로건은 추위에 떠는 아버지의 몸을 안아 들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로지….”

니콜라스는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예, 아버지. 많이 피곤하셨을 텐데 집 갈 때까지 잠깐 주무셔도 괜찮아요.]

“아냐, 잠이 오는 건 아니라서…. 그냥 불러봤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아들이 있는 게 아직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니콜라스의 팔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맏아들의 품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니콜라스는 처치의 효과인지 몰라도 이전보다 조금 더 다양한 층위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경을 썼을 때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아들의 체취가 더 깊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그저 끌린다고만 생각했던 그 체취를 조금 더 세밀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의 살냄새랑은 다른, 마른 흙과 바위 같은 냄새였다. 하지만 차갑게 식은 흙과 바위보다는 더 따뜻하고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체취였다.

니콜라스는 편안하게 숨을 들이쉬며 두 아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교미하고 싶어졌어….”

구멍이 얼얼했고 쥐어짜인 가슴에는 촉수의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니콜라스는 처치받으면서 느꼈던 불충분했던 감각을 아들과의 교미를 통해 채우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후각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농후하게 체액을 섞는 교미를 둘과 동시에 즐기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요구를 들은 더스틴이 짧게 대답했다.

[집에 가자마자 박아드릴게요.]

숲을 빠져나가는 두 코딜리언의 발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둘은 거의 뛰어가다시피 숲길을 헤치고 나아가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아버지에게 드러내진 않았지만, 둘 모두 검사를 받으면서 아버지를 걱정했었다. 단단하고 투박한 코딜리언이 보기에는 인간의 몸뚱어리는 너무도 약한 데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두려움 섞인 아버지의 표정이 눈에 밟힌 탓이었다. 그래서 둘은 검사가 끝나자마자 앞다퉈 아버지가 처치받는 쪽으로 달려갔었다.

코딜리언들에게는 특이 변이체와 번식체를 조사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사용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니콜라스 부자에게는 굉장히 낯선 경험이었다.

서로의 부재를 통해 서로가 얼마나 애틋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돌아볼 수 있던 기회였다.

아버지는 두 아들이 인간의 마음을 잃지 않게 했고 아들은 아버지를 재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구해냈다. 마음의 크기만큼 서로 열렬히 페로몬을 쏟아부은 덕에 니콜라스 부자는 인간의 몰락 이후 세계에서 도태를 면할 수 있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던 미래였지만 셋은 서로를 구원한 셈이었다.

“이제 내려줘도 괜찮아.”

굴 입구에 다다르자 니콜라스가 아들의 어깨를 툭툭 쳤다. 로건의 품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온 니콜라스는 바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배의 갈라진 틈을 핥고 있었다.

검사 도중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은 휘발되고 몸에 남은 감각만이 행위를 부추겼다. 니콜라스는 이제 검은 숲에서 있었던 일을 흐릿하게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 기억이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만큼은 선명했고, 그러니 아들과 몸을 섞으며 저조해진 기분을 달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으셨어요?]

“그래…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몰라.”

아들의 성기를 입에 넣고 빨아들이던 니콜라스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부끄러움 하나 느끼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암컷이 수컷에게 구애하고 그들을 품고 싶어 하는 건 딱히 이상할 것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니콜라스는 로건에게 희미하게 웃어 보이고 다시 손가락으로 성기를 집어 기둥을 핥기 시작했다. 민감해진 감각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했다. 거의 처음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두근거리고 흥분됐다.

전신에 페로몬 생산을 돕는 액체를 주입당한 결과였다. 상대 수컷의 체취를 더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금 더 교미에 거리낌 없이 관능적으로 굴게 된 니콜라스였다. 두 아들 역시 아버지의 몸에서 흐르는 페로몬을 교태라고 인식했다.

숲에서 느꼈던 모든 찝찝한 감정이 한 번에 녹아내리고 머릿속이 흥분으로 가득 찼다. 고백을 하기 직전처럼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니콜라스는 굴 입구에 무릎 꿇고 앉아 두 아들의 것을 번갈아 가며 빨아주고 손으로 문질렀다. 마음이 그렇게 편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얘들아, 흐웁… 사랑해, 진짜 사랑해….”

두 아들은 거침없이 음란한 행동을 하면서, 순박한 표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버지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가엾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랑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더 즐거울 수 있도록 잘 대해줘야 한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저희도요.”

감사와 사랑은 느꼈을 때 바로 표현하는 것이 니콜라스 집안의 규칙이었다. 셋 모두 인간에서 벗어난 지 한참이었지만 그 험난했던 시간 동안 철저히 고수해온 규칙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난데없는 고백에 똑같이 화답한 두 아들은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손과 꼬리를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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